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39화 (339/404)

외전 - 73. 도예 공방(2)

“에토! 잠이 오면 들어가 쉬도록 해. 불은 나 혼자 지켜도 된다.”

“아닙니다, 스승님! 저도 지켜보겠습니다.”

카일이 에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마에 나무를 집어넣었다.

“가마 속 불길을 잘 보고 기억해라! 도자기가 잘 나오려면 가마 속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냥, 무지 뜨겁기만 한데요?

“하하! 지금은 알지 못하겠지만 계속 불길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그럼, 이렇게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흠… 물론 그냥 보기만 해서는 안 되겠지? 일단 가마 속을 잘 봐라! 푸른 불꽃이 보일 거다.”

“가마 속에요?”

에토가 눈을 크게 뜨고 가마 속을 살폈다.

“아! 저기, 보여요. 푸른 불꽃.”

“그래! 바로 저 불꽃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알겠느냐?”

“네! 저도 빨리 배워서 스승님을 도와드릴게요.”

“녀석, 고맙긴 하다만 불길을 읽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랜 시간 가마 속 열기를 이겨내야 불이 너에게 말을 걸기 시작할 거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불꽃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불꽃이 제게 말을 건다고요?”

에토가 놀란 눈으로 카일을 보며 물었다.

“그래, 불 속에 사는 커다란 도마뱀 녀석이 나타나 네게 말을 걸 거다.”

“그럼 스승님께서도 직접 도마뱀을 보셨어요?”

“아쉽게도 녀석은 이 스승에게 말만 걸 뿐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단다.”

“스승님도 못 보셨단 말인가요.”

“그래, 그러니 넌 열심히 배워 꼭 불꽃 도마뱀과 친구가 되어라! 할 수 있겠지?”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불꽃 도마뱀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에토가 열심히 도예를 배울 수 있게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를 해준 것뿐이었다.

“물론이에요. 열심히 배워서 꼭 불꽃 도마뱀과 친구가 되겠어요.”

에토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래, 넌 분명 할 수 있을 거다. 그렇다고 지금 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알겠지!”

“네, 스승님!”

에토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카일이 에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대략 십여 일 전 피라네시 장원을 매입하고 촉박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저택을 수리하여 급하게 작업실과 건조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정한 수량을 꾸준히 생산하려면 공방을 혼자서만 운영할 수는 없었다. 가마에 사용할 땔나무를 공급해 줄 사람, 평원에서 점토 흙을 파 가져다줄 사람, 그리고 카일의 옆에서 간단한 허드렛일을 도와줄 아이들이 필요했다.

단순한 허드렛일처럼 보이지만 모든 작업을 옆에서 직접 돕는 일이기에 사실상 도제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아일론 상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재능있는 아이들을 소개해 주었지만, 공방에 은근히 자신들의 사람을 심으려 하는 상회의 노림수에 고민만 더할 따름이었다. 그러다 때마침 마주친 사람이 바로 소매치기 소년 에토였다.

“처음엔 그저 굶주림이나 면해 주려 데려왔는데….”

카일이 어느새 잠든 에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오래전, 이젠 희미해져 가는 전생의 기억이 두 소년을 공방으로 데려왔다. 카일은 전생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도예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수비작업을 두 소년에게 맡겼다. 물에 푼 고령토와 점토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앙금을 가라앉혀 고운 점토와 백토를 얻는, 단순하지만 어린아이에겐 제법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도예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 입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카일은 두 소년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들을 제자로 들였다.

* * *

“대장님! 녀석입니다.”

다급히 창가로 다가간 사내의 눈에 커다란 짐마차에 앉은 용병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덩치 큰 녀석이 울프 팩 기사단에게 치욕을 안겨준 녀석이다.

“드디어 나타났군.”

아알론 상회의 본점, 정문이 보이는 낡은 이층집. 이곳에서 아일론 상회의 본점을 감시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용병 길드뿐 아니라 내성 인근까지 은밀히 뒤졌지만 어디서도 녀석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기사단 내부에선 사실상 반쯤 포기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녀석은 각종 물자와 어린 소년 둘까지 마차에 태우곤 곧장 남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흠….”

사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현재 기사단은 정확히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개 조는 헬레나 영애를, 다른 한 개 조는 아일론 상회의 본점을 밤낮으로 감시하는 중이다. 그리고 조금 전 야간 조와 교대를 위해 두 기사가 헬레나 영애의 거처인 여관으로 향했다. 기사 넷이 빠진 상황에서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대장님, 명을!”

부하들이 결연한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았지만 고심하던 사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둘만 따라오고 나머지는 여기서 대기한다.”

“대장님!”

“안 됩니다. 당장 소집령을 내려 주십시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합니다.”

분노에 찬 부하들의 목소리에도 사내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만만한 놈이 아니다. 전력을 기울여도 놈을 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야. 분노에 휩싸여 무작정 녀석에게 접근했다간 오히려 놈에게 당한다.”

“하지만!”

“녀석을 놓아주는 게 아니다. 일단… 쫓는다. 녀석을 잡는 건 거처를 알아낸 후라도 늦지 않아!”

사내가 더 이상의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후드를 깊게 눌러쓰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빌어먹을… 어쩌지?”

“우리가 믿는 대장의 명이다. 고민할 게 있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차갑게 말하며 일어나 한쪽에 세워 놓은 대궁을 들고선 밖으로 향했다.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아, 빌어먹을 얼음 녀석!”

붉은 머리 사내가 투덜거리면서도 대궁을 챙겨 황급히 사내의 뒤를 따라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 저 녀석들 정말 백작 성을 벗어나려는 것 같은데요?”

남문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마차를 보며 붉은 머리 사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남문을 통하면 어디로 갈 수 있지?”

“피라네시아 분지를 지나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남부 변경백인 티렐 백작령에 나옵니다. 마차로 대략 보름 거리입니다.”

“…제법 먼 길이군.”

사내의 미간이 좁혀졌다.

“곧 공녀의 탄신 일입니다. 헬레나 영애도 늦지 않게 공작령에 도착하려면 며칠 내로 왕도로 출발할 겁니다. 이대로 녀석을 쫓기엔….”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놈을 놓아주자는 말이냐!”

“냉정히 생각해라! 우리의 제일 목표는 헬레나 영애다. 지금은 감정보단 대의에 집중할 때다.”

“그렇다고 놈을 놓아줄 수는 없어. 녀석 때문에 아가씨뿐 아니라 우리 단원들까지 중상을 입었다고.”

“그럼 넌 헬레나 영애를 이대로 보내주자는 말이냐! 이미 저들도 우리 존재를 눈치채고 있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다음엔 기회가 있을 것 같으냐!”

“그건….”

“명심해! 저런 녀석은 아가씨께서 정당한 자리를 되찾고 나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지만, 헬레나 영애는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붉은 머리 사내가 얼음 사내를 노려보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쓸데없는 논쟁은 필요 없을 것 같군.”

그때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네?”

“저 녀석들, 티렐 백작가로 가는 게 아니다.”

대장의 말대로 앞서 남쪽으로 달려가던 마차가 평원에 이르러서는 방향을 동쪽으로 확 틀어 달렸다. 얼굴을 찌푸린 채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사내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

“이만 돌아간다.”

“대장!”

붉은 머리 사내가 깜짝 놀라 대장을 불렀다.

“평원이다. 지금 뒤를 쫓았다간 우리 정체가 발각될 거다.”

“하지만 녀석의 거처는 확인해야 합니다.”

“그럴 필요 없다. 녀석의 거처는 이미 알고 있으니….”

“네?”

붉은 머리 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장을 바라봤지만, 대답은 얼음 사내에게서 흘러나왔다.

“어차피 피라네시아 평원에서 갈 곳은 한곳밖에 없다.”

“뭐?”

붉은 머리 사내가 멀어져 가는 대장과 얼음 사내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그에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백작 성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어딘지는 알려주고 가야할 거 아니야!”

붉은 머리 사내가 버럭 외치자 앞서가던 대장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말머리를 확 돌려세웟다. 그리곤 붉은 머리 사내에게 다가가며 천천히 손을 들어왔다.

“헉! 대… 대장, 아니야! 대장에게 한 말이 아닌데….”

당황한 붉은 머리 사내가 주춤 뒤로 물러나며 황급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삐이익-

순간 낮은 피리 소리와 함께 하늘 위에서 낯익은 기척이 들려왔다.

푸더덕-

깜짝 놀란 사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대장의 어깨 위로 커다란 붉은 독수리 한 마리가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패밀리어!”

마법사와 영혼의 계약을 맺은 동물을 뜻하지만, 실제 패밀리어를 키우는 마법사는 드물다. 일단 동물과 교감을 나누기가 쉽지 않았고 설령 교감을 나누더라도 영혼의 계약까지 성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패밀리어는 인간과 친숙하고 충성심이 강한 개과 동물이 대부분이었다. 조류, 특히 독수리와 패밀리어 계약에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마법사님께서 보내신 겁니까?”

“…아가씨께서 깨어나셨다.”

“아!”

대장의 말에 붉은 머리 사내뿐 아니라 얼음 사내의 얼굴에도 안도의 기운이 어렸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대장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딱딱하게 굳어있었기 때문이다.

“대… 장, 설마 아가씨께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니다. 전언 대로라면 상처는 무사히 치료되셨다.”

“헌데…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문제가 생겼군요.”

얼음 사내의 물음에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께서 명을 내리셨다. 현 시간부로 모든 공격행위와 적대적 행위를 중단한다. 더불어… 카누스의 주인을 찾아라!”

“카누스라면… 설마!”

“언약자!”

붉은 머리 사내와 얼음 사내가 경악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아가씨께선 이미 이곳으로 출발하셨다.”

“말도 안 됩니다. 카누스는 수 십년 전 사라진 물건입니다.”

“어떻게….”

“아가씨께서 직접 내리신 명이다. 반론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붉은 머리 사내의 외침에 대장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아가씨의 명이다. 불복하겠다는 거냐!”

“아… 아닙니다, 대장.”

“돌아간다. 이후 모든 적대행위는 금한다. 헬레나 영애에 대한 감시 역시 해제하고 모두 복귀를 명한다.”

“네, 바로 전하겠습니다.”

얼음 사내가 곧장 대답하고는 성안으로 달려갔다.

‘으윽, 선수를 놓치다니…!’

붉은 머리 사내가 성안으로 달려가는 얼음 사내를 분노한 듯 바라보았다.

“뭘 멍청하게 서 있는 거냐!”

“아, 아닙니다. 갑니다.”

대장의 사나운 목소리에 붉은 머리 사내가 황급히 뒤를 쫓았다.

‘젠장, 주, 죽었다.’

한동안 이어질 대장의 분풀이를 걱정하며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시커멓게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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