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34화 (334/404)

외전 - 68. 크로먼 백작령(2)

“여기다.”

“여긴…?”

토일을 따라 도착한 곳은 도저히 공방이라고 볼 수 없는 허름한 집이었다. 주변에는 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비슷한 형태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왜? 생각하던 곳이랑 달라 실망했느냐?”

솔직히 실망했다. 카일이 원했던 사람은 보석이나 귀금속은 물론 마나석까지 전문적으로 가공하는 실력 좋은 보석세공사다. 주요 거래 상대도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 아니면 마법사라서 실력만 확실하다면 수입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허름한 곳보다는 영지의 중심가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카일이 머뭇거리자 토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 보석세공사가 이런 곳에 살면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지.”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나라도 이런 곳에 데려오면 실망했겠지만, 일단 따라와 보게,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이 달라질 테니.”

토일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일도 마지못해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값비싼 마법 등이 은은하게 내부를 밝히고 있었고,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두꺼운 책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낡은 외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떤가? 외부와는 전혀 다르지?”

“정말… 그렇군요.”

카일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토일 님!”

그때 안쪽에서 십여 세는 넘어 보이는 소년이 달려와 토일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 멜, 그동안 잘 있었느냐?”

“네, 저야 마스터를 모시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상행을 떠나셨다고 들었는데, 언제 오신 거예요?”

“지금 막 도착했다.”

“네?”

멜이라 불린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토일을 바라보았지만 토일은 대답하기 귀찮은지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마스터는 어디 있느냐?”

“아! 마스터께서는 공방에 계십니다. 안내해 드릴게요.”

토일의 일그러진 얼굴을 살피며 소년 멜이 급히 앞장섰다. 은은한 마법 등이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안쪽 깊숙이 들어가자 제법 넓은 작업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터!”

작은 탁자 위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뭔가에 집중하고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어 멜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이거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멜을 대신해 토일이 먼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깜짝 놀란 노인이 고개를 돌려 토일을 바라보았다.

“토일 님!”

“하하! 오랜만입니다.”

“아니, 토일 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토일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호빗?”

카일의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에 긴 수염까지, 영락없는 호빗의 모습이었다.

“용케 알아보는군.”

토일이 피식 웃으며 호빗 노인에게 다가갔다.

“이 녀석은 카일이라 합니다. 앞으로 아일론 상단의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될 겁니다.”

카일이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카일이라 합니다.”

“아예, 세공사 고투입니다.”

고투가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작업실 한쪽에 만들어 놓은 작은 응접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녀석이 세공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토일 님께서 직접 데려오셨는데 당연히 도와 드려야지요.”

고투가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토일이 카일을 바라봤다. 카일은 가방에서 얼마 전 마티슨에게서 받은 마나석을 꺼내 고투에게 내밀었다.

“흠… 중급 마나석이군요.”

고투가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서 이리저리 마나석의 상태를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흠이 있군요.”

“그게… 중급 마나석이란 게 워낙 구하기가 힘들어서 말입니다.”

“토일 님께서 구하신 마나석입니까?”

“그, 그렇습니다만, 혹 마법진을 새기는 데 문제가 되겠습니까?”

“어떤 마법인가에 따라 다르겠지요.”

고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양피지로 만든 커다란 책을 들고 왔다.

“마나석의 용도와 원하는 형태, 그리고 마법진에 따라 세공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약간의 흠결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문제가 될 수도 있지요.”

“문제가 있다면 어느 정도 큰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마나석 전체에 자그마한 실금이 있으니, 복잡한 마법진을 새길수록 약간의 출력 저하는 감수해야 합니다.”

고투가 카일에게 책자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건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책자입니다. 아직 필요한 마법진을 선택하지 못했다면 이 책자를 보고 선택하시면 됩니다.”

고투가 책자를 넘길 때마다 마법진의 형태가 복잡해졌고, 거기에 첨가된 글자도 많아졌다.

“중급 마법석이니 최대 4서클 마법진을 새길 수 있습니다만, 서클이 높아질수록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 횟수는 그만큼 줄어들고, 마나석에도 무리가 갑니다. 더구나 이 마나석은 흠결까지 있으니… 4서클은 무리고, 2서클 마법진 정도면 적당할 겁니다. 위력을 조정하면 하루에 10회 정도는 무난히 사용할 겁니다.”

고투는 직접 2서클 마법진 몇 개를 보여 주고, 마나석을 가공할 몇 가지 도안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대부분이 목걸이나 반지, 폼멜을 장식하는 보석 형태였다. 하지만 애초 카일의 관심은 2서클의 마법진이 아니었다.

“그럼 중급 마나석에 1서클 마법진을 새기면 하루 사용 횟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카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투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중급 마나석에 1서클 마법진을 새기겠다는 겁니까?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한 번 마법진을 새겨넣으면 다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카일의 담담하게 말하자 고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토일에게로 향했다.

“나도 말려보았네만 어쩔 수 없었네.”

토일의 말에 고투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 한쪽에 놓여있는 마법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건 하급 마나석 중에서도 가장 질이 좋은 마나석을 가공해 만든 마법 등입니다. 세밀한 작업을 위해 특별히 만든 마법 등이죠, 밝기를 강하게 만들면 지속시간이 반나절이 채 안 됩니다.”

“그럼 복도에 걸린 마법 등도 비슷하겠군요.”

“맞습니다. 다만 밝기를 최대한 약하게 한 덕분에 하루 종일 꺼지지 않고 복도를 밝힐 수 있습니다. 물론 마나석도 무한할 수는 없으니 몇 년에 한 번 마나석을 교체해야 하지만요.”

“그럼 중급 마나석에 1서클 마법진을 새기면 횟수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카일의 물음에 고투가 고개를 저었다.

“마법 등은 횟수가 아니라 지속시간입니다. 한 번 마법을 발현한 후 지속되는 시간을 말씀드린 겁니다. 횟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

“마법이 한 번 발현된 이후 공급되는 마나의 양은 처음 마법을 발현했을 때보다 현저히 적습니다. 그러니 지속성 마법일 경우 이론상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단발형 마법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원하는 마법은 익스플로젼 마법입니다.”

“폭발 마법이니 단발형이군요.”

고개를 끄덕인 고투가 책자를 넘겨 마법진을 찾아냈다.

“하급 마나석에 익스플로젼을 새긴다면 대략 10회 정도 쓸 수 있습니다. 마나석은 급이 올라갈수록 흡수하는 마나의 양이 늘어나니, 출력을 약간만 조정하면 중급 마나석으로는 수백 회 이상 사용이 가능하겠군요. ”

“수백 회!”

고투의 말에 카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카일은 가방 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내용물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강철로 된 15cm 정도의 원통과 작은 조각들이었다.

“마나석을 가공해 원통 안에 넣은 뒤, 여기 금속조각과 마나석이 만나는 순간 원통 바로 앞쪽에서 익스플로젼 마법이 발현되게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고투는 원통을 들어 살펴보더니 놀란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이 금속… 어디서 난 겁니까?”

“그건….”

카일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고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씀하기 어려우시면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됩니다. 땅속 친구들이 봤다면 당장 밖으로 뛰어 올라올 일이지만, 저야 그들처럼 금속에 미쳐 있지는 않으니까요.”

“땅속 친구들이면 설마…?”

“아! 오해하진 마십시오.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오래전 인연이 끊겼습니다.”

“아…. 그렇군.”

토일의 얼굴에 잠시 실망스러운 기운이 어렸지만, 곧 마음에 어렸던 미련을 날려버리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흠…. 일단 원통, 아무래도 수정이 조금 필요한 것 같군요.”

“네?”

“마법진을 새긴 마나석을 원통 안으로 밀어 넣는 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마법 발현 위치도 마법진을 조정하면 가능합니다. 오히려 장식을 배제하고 원형 막대 형태로 가공해 마법진을 새기면 되니 작업은 간편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요?”

“금속 조각과 마나석이 충돌하는 순간 마법이 발현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린 것처럼, 마나석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는 것은 마나석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원인입니다.”

고투의 말에 카일은 내심 깜짝 놀랐다. 금속조각과 만나 마법이 발현된다고 했음에도 고투는 충돌이란 단어로 정정해 카일에게 다시 물었다. 사실상 카일이 만들려는 물건의 원리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뒤쪽을 황동으로 마감해 충격을 최소화하면 어떨까요.”

“오! 아주 좋은 방법이군요. 아니, 그럴 게 아니라 마나석 전체를 황동으로 감싼 뒤 마나석에 연동 마법진을 새겨 넣으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방법으로 가시죠.”

“마나석에 직접적으로 마법진을 새겨넣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지금까지는 마나석에 마법진을 직접 새겨 넣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카일은 고투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보통은 마나석에 직접 마법진을 새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마법진이 쉽게 활성화되기도 하고, 마법 무구는 귀족들이 장식을 겸해 사용하고 있으니 겉에 금속을 덧씌워 마나석을 가리는 일은 드뭅니다.”

“아!”

마나석은 그 자체로도 보석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여기에 마법진까지 새겨지면 그 가치는 더더욱 높아진다. 귀족들이 아름다운 보석에 금속을 덧씌워 가치를 떨어트릴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보통 2서클 마법진부터는 불완전한 마법진이라고 합니다. 가장 안정적이고 기본적인 1서클의 마법진에 추가로 마법진을 조합하다 보니 그만큼 불완전해집니다. 그래서 마나석에 직접적으로 마법진을 새겨 불완전성을 낮추려는 겁니다. 반면 1서클의 마법진은 가장 기초적이고 안정적이기에 이렇게 마법진을 외부에 새길 수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고투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려운 부탁인 건 알지만, 물건이 완성되면 제게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부담되시면 거절하셔도 되지만, 허락만 해주시면 당분간 작업실과 숙식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비밀도 확실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고투의 제안은 확실히 카일에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라이플을 개량하려면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작업실이 필요한데, 여기만 한 곳이 없었다.

“확실히 여기라면 본단이나 여관보단 여러모로 좋지.”

토일이 둘을 번갈아 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만 지켜주신다면,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하! 결정이 아주 빨라 좋군요.”

고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비용은….”

“형태도 간단하고, 새길 것도 1서클 마법진입니다. 힘든 일은 없으니 20실버 정면 될 것 같군요.”

카일은 곧바로 품에서 20실버를 꺼내어 고투에게 건냈다.

고투가 정중하게 돈을 받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작업실까지 숙소까지….”

“제가 카일 님께 20실버를 받았듯 그 또한 저와 카일 님의 거래에 대한 대가이니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고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이야기가 끝난 것 같으니 아무래도 난 돌아가 봐야겠군. 카일, 넌 어쩔 생각이냐? 헬레나 영애와 상단주께서 포상을 하겠다고 하셨으니 함께 돌아가는 건 어떠냐?”

토일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전 여기 있겠습니다. 늦은 밤에 여길 다시 찾긴 어려울 것 같거든요.”

복잡하고 미로 같은 골목과 연속되는 비슷한 건물들, 낮이라도 찾기 힘든 공방을 늦은 밤 다시 찾아온다는 건 아직 카일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리미엄 자작가의 사람들과 더 이상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하긴 여길 찾기가 조금 힘들긴 하지.”

토일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일찍 쉬고 있어라! 내일 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테니.”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투 님, 내일 다시 찾아뵙죠.”

“조심히 가십시오.”

토일이 웃으며 멜을 따라 다시 밖으로 향했다.

“그럼 우린 다시 이야기해볼까요?”

고투의 말에 카일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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