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31화 (331/404)

외전 - 65. 카세인 협곡(8)

고개를 흔들며 일어난 어린 트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기억하는 건 끔찍한 고통 이후 어딘가로 끌려왔다는 것뿐이다.

“키아악.”

어린 트롤은 천천히 수풀을 헤치며 어미를 찾기 위해 울음을 터트렸다. 태어나 지금껏 어미의 곁을 떠나본 적 없는 어린 트롤에겐 무겁게 내려앉은 숲속 기운은 그 자체로도 공포였다.

어린 트롤의 울음소리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숲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한 무리의 검은 물체가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끼익?”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온 검은 물체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달막한 체구에 대롱을 손에 쥔 검은 물체의 정체는 바로 고블린이었다. 고블린은 작은 체구만큼이나 힘도 약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다. 힘이 약한 만큼 떼지어 몰려다니며 집단으로 사냥을 할 뿐 아니라, 몬스터 중에서도 유일하게 마취독을 제조해 무기로 사용해 덩치가 큰 동물이나 몬스터를 사냥할 만큼 지능도 뛰어났다. 하지만 이런 고블린에게도 천적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트롤이다. 대형 몬스터이면서 두세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닐 뿐 아니라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해 고블린의 마취독도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끼아악-

어린 트롤을 발견한 고블린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어린 트롤은 절대 어미 곁을 떠나지 않는다. 고블린이면 누구나 떠올리는 상식이다. 어린 트롤을 발견한 고블린이 사색이 된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어린 트롤과는 반대쪽, 인간들의 숙영지다.

갑작스러운 습격이지만, 수십의 기사들과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잔뜩 겁에 질린 채 달려드는 고블린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진 않았다. 순식간에 고블린 무리가 정리되고 사방에서 말을 탄 인간들이 달려오자 겁에 질린 어린 트롤이 어미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울음을 터트렸다.

“키아악-”

하지만 사방에서 조여오는 인간에게 어린 트롤의 울음소리는 그저 자신의 위치만 알려줄 신호일 뿐이었다.

“여기다!”

어린 트롤의 울음소리에 주변을 수색하던 기사 하나가 급히 소리쳤다.

“포위해!”

“절대 놓쳐선 안 돼!”

“저기다! 저기로 도망쳤다.”

“죽여!”

정신없이 달리는 어린 트롤을 발견한 기사들이 급히 뒤를 쫓았다.

“요놈, 죽어라!”

마상에서 검을 뽑아 든 기사의 검에 은은한 오러가 맺혔다.

스각-

정확히 목을 노렸지만, 본능적으로 방향을 튼 덕분에 목이 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등 뒤로 긴 검상과 함께 녹빛 피물이 터져 나왔다.

끼악-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면서도 어린 트롤은 살기 위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하! 아쉽지만 저 녀석은 내 거다!”

“빌어먹을!”

자신을 스쳐 지나는 동료의 모습에 분통을 터트린 기사가 급히 말을 돌려 뒤를 쫓기 시작했다.

“제법 날렵하긴 하지만 어림없다.”

달려가는 어린 트롤 옆으로 바짝 붙은 기사의 검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스각-

푸확-

피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지만, 녀석은 방향을 바꿔 가며 다시 달렸다.

“저 녀석 뭐야!”

또다시 도망치는 몬스터의 모습에 기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분명 제대로 검이 가슴을 갈랐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아직도 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트롤 따위가 병사도 아닌 기사가 날린 검을 두 번, 아니, 조금 전 또다시 동료가 날린 검을 맞고도 여전히 도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튼 님을 찾아야 해!”

기사가 황급히 말을 돌려 일튼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튼은 이미 몬스터가 도주할 곳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스르릉-

말에서 내려선 일튼이 검을 뽑아 들곤 숲을 노려봤다. 점점 가까워지는 말발굽 소리와 기사들의 외침, 그리고 몬스터의 비명까지. 곧 기사들이 쫓는 몬스터가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오너라! 단번에 목을 잘라주마.”

일튼의 낮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수풀 속을 뛰쳐나온 검은 물체가 일튼을 덮쳤다.

스각-

순간 푸른빛으로 물든 오러소드가 정확히 검은 물체를 베어버렸다.

끼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검은 물체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이건…?”

서서히 달빛에 드러난 검은 물체는 처참하게 난도질을 당한 듯 온몸에 잔혹한 상처들이 빼곡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결정적으로 사로잡은 건 처참한 상처 주위로 부글거리며 일어나는 피거품과 함께 점점 상처가 아물어 간다는 사실이다.

“트롤…!”

일튼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트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며 일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툭 떨궜다. 트롤의 끈질긴 생명력으로도 반쯤 잘려 나간 목을 다시 붙일 수는 없었다.

크아악-

그때였다. 카일이 남겨 넣은 어린 트롤의 흔적을 쫓아 달려온 어미 트롤이 수풀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물러나라!”

일튼이 급히 기사들에게 명을 내리며 물러났다. 그사이 어미 트롤이 처참하게 죽은 어린 트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에 마치 그만 일어나라는 듯 어린 트롤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어린 트롤은 미동도 없었다.

쿵-

들고 있던 거대한 클럽도 내팽개친 트롤이 미동도 없는 어린 트롤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한동안 죽은 어린 트롤을 멍하니 바라보던 어미 트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에게는 죽은 어린 새끼의 피 냄새가 진하게 베여 있었다.

“쿠아악-”

어미 트롤의 눈이 붉게 충혈되며 흉폭한 분노를 토해냈다.

으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어미 트롤이 들고 있던 새끼의 팔을 뜯더니,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을 노려보며 어기적어기적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기사들 하나하나를 노려보는 어미 트롤의 붉게 충혈된 눈엔 분노와 원한만이 가득 담겨있었다.

으적으적-

마지막 남은 살점과 피 한 방울까지 모두 삼킨 어미 트롤이 바닥에 떨어트린 거대한 클럽을 들어 올렸다.

“빌어먹을, 피해!”

트롤이 하늘 위로 높게 뛰어오르더니 기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일튼의 외침에 기사들이 깜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조금 전 충격적인 장면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기사 하나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트롤이 휘두른 클럽에 정통으로 맞아 뒤로 날아가 버렸다.

퍼억-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간 기사의 몸이 기괴하게 꺾여 바닥에 처박히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젠장! 놈을 포위해, 절대 여길 빠져나가게 해선 안 된다.”

일튼이 급히 고함을 지르며 사방으로 클럽을 휘두르며 기사들을 공격하는 트롤을 향해 오히려 달려들었다.

“죽어!”

일튼의 검 위로 선명한 오러소드가 피어올랐다.

스각-

미쳐 날뛰는 트롤의 허벅지를 길게 베어냈다. 일단 트롤의 다리를 묶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부왕-

거친 풍압과 함께 일튼의 머리 위로 거대한 클럽이 떨어져 내렸다. 깜짝 놀란 일튼이 황급히 바닥을 굴러 몸을 피했다.

쿵-

거대한 클럽이 바닥을 때렸지만, 녀석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미친 듯이 클럽을 휘두르며 일튼을 공격했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일튼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일부러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하며 트롤를 유인하고 있었다.

‘녀석을 이곳에서 멀리 떨어트려야 한다.’

이곳은 숙영지와 가까운 곳이다. 만약 놈이 숙영지에 난입 할 경우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일튼으로선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와라! 어서.”

일튼이 주의를 끌며 트롤을 유인하던 그때였다.

부웅-

갑자기 어미 트롤이 방향을 바꿔 또다시 하늘 위로 높이 뛰어오르더니, 뒤를 쫓고 있던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일튼의 활약에 방심하고 있던 기사들에겐 치명적인 한 수였다.

“으악-”

트롤의 손에 붙잡힌 기사 하나가 발버둥 치며 트롤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으드득-

“크아악-”

사방을 견제하듯 노려본 트롤이 입을 벌려 기사의 팔을 물어 뜯어냈다. 생으로 팔이 뜯기며 붉은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트롤이 갑자기 포위 중인 기사들을 향해 들고 있던 기사를 집어 던졌다.

“피해!”

여기저기 물어 뜯겼지만, 아직 살아있는 동료 기사가 날아들자 당황한 기사들이 주춤거리는 순간, 트롤의 거대한 클럽이 기사들을 휩쓸었다. 아니, 휩쓸어 가는 순간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켈토의 선명한 오러소드가 클럽을 단번에 잘라냈다.

서걱-

쿵-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클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절반 이상 잘려 나간 클럽을 바라보던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켈토에게 달려들었다.

“물러나라!”

기사들에게 명을 내린 켈토가 트롤에게 마주 달려갔다.

부왕-

강력한 풍압과 함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클럽을 피한 켈토가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며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푸확-

허벅지는 물론 허리까지 길게 갈라지며 녹빛 핏물이 터져 나왔다.

“와아!”

켈토의 활약에 주변을 포위한 기사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단장님이다.”

“남부 최강!”

“이젠 살았다.”

환호하는 기사단을 보면서도 켈토는 담담하게 트롤을 바라보았다.

무릎을 뚫고 자신을 노려보는 트롤에게선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흠…. 무엇이 너의 분노를 키웠는진 모르지만, 아무래도 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부글부글 피거품이 일며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트롤보다도 상처의 회복 속도가 빨라 보였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했다간 멀쩡하게 일어나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늦기 전에 놈을 죽여야 했다.

트롤을 죽이려면 목을 베어버리거나 심장을 완전히 파괴해야 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목을 베는 것. 심장을 잘못 공격했다간 다시 살아날 우려가 있었다.

캘토가 천천히 다가서며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단번에 목을 잘라버릴 심산이었다.

“쿠앙-”

“카아악-”

그때였다. 흉폭한 괴성과 함께 숲에서 두 마리의 거대한 트롤이 뛰쳐나와 기사들을 덮쳤다.

“이런!”

깜짝 놀란 켈토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릎을 꿇고 있던 트롤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켈토로서는 트롤 한 마리를 처리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곤란… 하게 됐군.”

켈토가 얼굴을 찌푸리며 기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트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큰일 났습니다!”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해 대궁과 화살을 점검하던 복면 사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무슨 일이냐?”

“놈들이 방향을 바꿔 곧장 아킨스 자작령으로 향했습니다.”

쾅-

“말도 안 되는 소리!”

복면 사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만한 전력으론 트롤 무리를 뚫고 자작령으로 갈 수는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한단 말이냐!”

“그것이… 조금 전 다핸 남작을 감시하던 아이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일론 상회가 다핸 남작에게 도움을 요청할 경우를 대비해 사냥터 주변에 감시자를 배치해둔 것이다.

“연락이라니?”

“새벽녘… 사냥터에 갑자기 나타난 트롤로 인해 다수의 기사가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그 녀석들이 갑자기 왜!”

“아무래도 기사 중 누군가가 트롤 새끼를 죽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허…. 우리가 트롤을 풀어놓은 곳은 사냥터와는 언덕을 두 개나 넘어야 한다. 갑자기 새끼 트롤이 왜 사냥터에….”

복면 사내의 머리로 자신들을 공격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용병이 스치듯 사라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궁술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녀석이 트롤을 영주의 사냥터로 유인했다고 보기엔 억측이 심했다. 어린 트롤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항상 어미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 트롤을 납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방법이 있다면 마법으로 녀석들을 잠재우는 것뿐이다.

고개를 흔든 복면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카세인 협곡 작전은 취소한다. 전 대원은 즉시 아일론 상회를 추적한다.”

“알겠습니다.”

부하가 황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곳은 카세인 협곡 중간지점이다. 카세인 협곡 입구에서도 하루 이상 떨어진 곳이다. 지금 추격한다고 해도 아킨스 자작령에 도착할 때까지 아일론 상회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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