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17화 (317/404)

외전 - 51. 백작성으로 가는길(4)

쉬익-

“젠장!”

바닥에 박힌 검은 화살대를 부여잡은 붙잡은 카일이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퍼억-

또다시 한 대의 화살이 카일의 어깨를 아슬하게 스치며 바닥 깊숙이 박혔다.

카일이 황급히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높이는 고작 1미터 남짓이지만 강력한 화살을 피할 곳은 바위뿐이었었다.

“이 녀석, 뭐지?”

손에 든 검은 화살대를 살피던 카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금속 재질의 화살대는 생각보다 가볍고 단단할 뿐 아니라 유연했고 무게 중심까지 정확했다. 그야말로 명장이 만든 최상의 화살로, 용병들이 사용할 만한 무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귀족 아니면 기사라는 말인데….”

귀족들 사이에선 궁술을 비겁한 무기라며 천시하는 풍조가 강해 익히는 사람이 적다. 또한 몬스터나 오크 가죽을 뚫기 위해선 제대로 만든 강궁과 오랜 수련이 필요해, 용병들 사이에도 궁술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적었다. 그런데 방금 날아온 화살은 정확히 카일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즉 궁술을 제대로 배운 대단한 실력자란 뜻이었다.

쉬익-

그때 귓가로 들린 낮은 파공성에 카일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황급히 바위에 몸을 바짝 밀착시키며 고개를 틀었다.

퍼억-

퍽-

얼굴과 발목 사이로 검은 화살대가 하나씩 깊숙이 박혔다. 카일의 위치를 정확히 예측해 화살을 날린 것이다.

“미치겠군, 이젠 곡사까지….”

바닥에 박힌 화살을 뽑아낸 카일이 조심스럽게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눈을 가져갔다. 화살이 박힌 위치와 각도를 예측해 숨어 있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찾았다.”

삼백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반대편 구릉 위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한 무리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가장 왜소한 체구의 인영이 커다란 대궁에 황금빛 화살을 시위에 건 체 사선으로 하늘 위를 겨누고 있었다.

‘금빛… 화살?’

가슴속에서 밀려드는 불안감에 카일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검은 화살을 날리다가 갑자기 금빛 화살을 손에 쥐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피이잉-

마침내 화살이 쏘아졌다. 마치 귓가로 날아드는 화살의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해 더욱 마음이 불안해졌다.

하늘 높이, 정점에 올랐던 금빛 화살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카일이 숨은 곳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낮은 욕설을 내뱉은 카일이 다급히 바닥을 굴러 정면에 서 있는 커다란 전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파지직-

황금빛 화살이 대지에 닿기도 전, 강렬한 뇌전이 주변을 휩쓸며 바닥은 물론 카일이 숨었던 전나무까지 까맣게 태웠다. 조금만 늦었어도 뇌전에 휘말려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마법… 화살!”

마법을 작은 화살대에 인챈트시킨 것도 놀라웠지만 그 위력 또한 대단했다. 저런 위력적인 공격이 계속 날아든다면 몸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더구나 오크에 둘러싸인 귀족 마차를 보호하던 기사들도 이제 오러와 체력이 다했는지 점점 오크에게 밀려 더는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운이 나쁜 건가?”

굳은 얼굴로 전방, 구릉 위를 살피던 카일이 그만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적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릉 위로 버젓이 몸을 드러내고선 마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카일에게 자신들을 공격할 수단이 없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긴 삼백 미터가 넘는 거리를 노릴 정도의 강궁은 구하기도 어렵고, 구한다고 해도 궁술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면 당기지도 못할 테다. 우연히 만난 용병 나부랭이가 숙련된 궁사에 강궁까지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라이플을 들고 오지 않은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좁은 길이 마차로 막혀 있어 도보로 이동하느라 말을 끌고 오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웠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카일은 허리에 감긴 벨트를 풀었다. 아니, 언젠가 보일이 카일에게 선물한 드워프제 활을 풀었다. 라이플을 만든 이후에도 오크 사냥에서 가장 사용 빈도가 높은 건 활과 화살이었다. 라이플은 아무래도 마법 스크롤 수급이 어려워 자주 사용하긴 어려웠다.

카일이 활대를 잡고 역방향으로 서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단단한 근육들이 투둑 불거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신력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힘을 가진 카일도 구부리기 힘들 정도로 활대의 강도는 강하고 질겼다.

끼이익-

“일단, 받은 선물을 돌려줘 볼까?”

카일이 구릉 위로 고개를 내밀어 다시 한번 로브를 입은 적들을 살폈다. 적들은 카일이 죽었거나 도망을 쳤다고 생각했는지 구릉 위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휴~.”

카일이 화살을 바닥에 꽂았다. 적이 날린 화살 다섯 대 중 카일이 회수한 화살은 총 세 대. 목표는 화살을 날렸던 왜소한 인영. 적들은 왜소한 인영을 보호하기 위한 진형을 이루고 있었다.

“대장을 죽이면, 무리는 흩어지기 마련이지.”

카일은 바닥에 박힌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었다.

끼이익-

활대가 비명을 지르며 부러질 듯이 휘어졌다.

퉁-

하늘 높이 화살을 쏘아 올린 카일이 번개 같은 속도로 바닥에 박힌 화살을 연달아 뽑아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 * *

“곧 끝나겠군.”

두터운 로브에 얼굴까지 검은 가면을 뒤집어쓴 사내의 목소리는 왠지 불만이 가득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게. 저들 모두는 온전히 오크의 손에 죽어야 해. 외부에서 개입한 흔적이 남아선 안 되네!”

커다란 지팡이를 손에 들고 로브를 뒤집어썼지만 음성이나 행동 모두 나이 든 노인의 그것이었다.

“그럼 왜 그 용병 녀석은 살려 준 겁니까? .”

“…브린이란 녀석 말인가?”

“그렇습니다.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면 녀석도 확실히 죽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녀석은 일종의 보험이네. 아무리 완벽한 계획에도 허점은 있기 마련, 계획이 틀어지면 녀석을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이네. 상단 간 알력 다툼에 휘말렸다면 적당히 핑곗거리는 될 거야! 증거도 남겨놓았고, 나와 접촉한 녀석들은 모두 사라졌으니….”

“저들이 믿지 않을 겁니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네. 어차피 우리가 관여한 흔적만 발각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거야!”

“의심은 할 수 있지만, 증거가 없다는 말이군요.”

“바로 그거야.”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들어 맞은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그 녀석, 죽었을까요?”

“뇌전의 화살을 사용했네, 살아남긴 힘들겠지. 살았다고 해도, 적어도 중상은 입었을 거네.”

“하지만… 주군의 화살을 무려 네 대나 피했습니다. 확인은 해야 합니다.”

“직접 가보겠다는 말인가?”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려…!”

사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더니 다급히 소리쳤다.

“피해!”

사내가 왜소한 인영의 머리 위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화살이 사내의 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워낙 다급하게 휘두르다 보니 오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사내는 검은 화살의 강력한 위력을 받아내지 못하고 화살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하나가 아니다!”

노인이 다급히 소리치며 지팡이를 뻗었다.

“실드-”

노인의 지팡이에서 퍼져나간 푸른 기운이 왜소한 인영을 감쌌다.

꽈앙-

실드가 굉음을 일으키며 화살을 막아냈지만, 실드 마법 역시 무사하진 못했다.

쩌저적-

강력한 충격을 이기지 못한 실드 위로 실금이 퍼져나갔다. 곧 그 위로 검은 화살이 내려꽂히며 실드를 산산히 부수고 왜소한 인영의 어깨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퍼억-

“아악-!”

뾰족한 비명성과 함께 왜소한 인영이 바닥 위로 쓰러졌다.

“아가씨!”

“주군!”

“아가씨를 보호해라!”

차앙-

검은 복면인들이 황급히 달려와 쓰러진 여인을 뒤늦게 둘러쌌다.

마법사 노인과 검은 로브 사내가 서둘러 쓰러진 여인에게 달려갔다.

“영감! 어떻게 된 거요!”

여인을 살피는 마법사 노인을 보며 사내가 다급히 재촉했다.

“대단… 한 위력이다. 실드를 부순 것도 모자라 안쪽에 입은 마법 갑주까지 완전히… 꿰뚫었다. 어떻게 이런 위력이….”

“지금 녀석을 칭찬할 때요? 뭐 하는 겁니까? 어서 치료하지 않고!”

사내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선 치료가 불가능하다.”

“무슨… 그럼 설마!”

“앞서가지 마라! 여기선 불가능하다고 했지 치료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일단 간단한 응급처치를 한 뒤 돌아가야 한다.”

“빌어먹을 개자식! 죽여버리고 말겠다.”

고개를 돌려 맞은편 구릉을 바라보는 사내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이런 멍청한 녀석! 지금 아가씨를 죽일 생각이냐!”

노인의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린 사내가 급히 살기를 거둬들였다.

“죄송합니다.”

“네놈, 제정신이냐! 한시가 다급한 이때…. 지금 복수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정말 손을 쓸 수 없을 거다.”

“아… 알겠습니다.”

사내가 급히 달려 나갔다. 그사이 응급처치를 마친 노인이 고개를 들어 맞은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구릉 위에 오롯이 서서 그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간 서 있던 사내가 검은 화살 한 대를 시위에 걸었다.

“아직… 한 발이 남았군.”

노인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단 한 발이지만 화살의 관통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했다. 더구나 조금 전 공격은 하늘 위에서 떨어진 곡사다. 만약 직사로 화살이 곧장 날아온다면 실드만 가지곤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갑자기 몸을 피했다간 아가씨의 목숨까지 위태로우니 자신은 절대 이 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노인은 눈을 부릅뜨곤 지팡이를 든 채 카일을 노려봤다. 죽더라도 피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카일이 천천히 활을 내렸다.

“…살려주겠다는 것이냐?”

노인이 카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카일의 목표는 처음부터 대장으로 보이는 왜소한 체구의 인영이었지 앞을 막아선 복면인들이 아니었다. 죽이진 못했지만 받은 선물은 이자까지 확실히 포함해 넘겨줬으니 일단 목표는 달성한 셈. 다른 사람까지 죽일 이유는 없었다.

“들 것을 가져왔습니다.”

그때 가면을 쓴 사내가 들것을 들고 다급히 달려왔다. 단단한 나무에 입고 있던 두터운 로브를 연결해 임시로 만든 것이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여인을 들어 들것에 올렸다.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하네.”

“제가 직접 들 테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부탁하겠네.”

노인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고개를 돌려 구릉 위에 올라선 카일을 노려봤다.

“오늘 일… 반드시 되갚아주마.”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낮게 중얼거린 사내가 황급히 구릉을 빠져나갔다. 사라져가는 복면인들을 한동안 응시하던 카일이 고개를 돌려 구릉 아래를 바라보았다. 오크를 상대로 치열하게 전투를 이어가던 두 기사 중 하나는 이미 오크에게 처참하게 살육당했고, 살아남은 기사마저도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위태롭게 버티는 게 전부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쩌지….”

카일이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귀족 마차를 구한단 명목으로 이곳까지 고집스럽게 달려왔지만, 사실 귀족 마차를 구하겠단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귀족 간 다툼에 관여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대로 조금만 지체해도 오크들이 알아서 귀족 마차를 깨끗이 처리해 줄 것이다. 더구나 구릉엔 오크 사체 오십여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카일이 마차를 구하러 가지 못했다고 해도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면 안 되겠지?”

로브를 뒤집어쓴 검은 복면인들, 그들이 원하는 건 마차에 탄 귀족의 죽음일 것이다. 어떤 원한이나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카일은 그들 대장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 혹시라도 그들이 찾아올 것에 대비한 안전장치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더불어 이번 계획이 실패해 내부에 혼란이 생기면 카일에겐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카일이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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