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16화 (316/404)

외전 - 50. 백작성으로 가는길(3)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입니다.”

“말도 안 돼, 혼자 저 녀석들 모두를 상대한다고…?”

“저 정도 오크는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아무리 엑스퍼트라도 오크 50마리는 무리다.”

마크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카일은 오히려 여유롭게 검을 뽑았다. 거울처럼 깨끗하며 아름다운 은회색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잊으셨군요? 제가 어디 출신인지.”

오크랜드와 가장 인접한 오지 마을, 아일론 상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몬스터와 오크 가죽이 생산되는, 최고의 사냥꾼들이 모인 마을. 험난하고 위험한 오지 마을까지 찾아가는 아일론 상회를 이상하게 여긴 비터와 마크가 상단 일꾼에게 물었을 때 들었던 대답이다. 그리고 카일은 그곳 자경대장의 아들이자 열 여덟에 엑스퍼트에 오른 괴물같은 녀석이었다.

“…그래도 이건 무리다.”

“제가 허락을 구하는 것 같습니까?”

카일의 얼굴에 떠오른 비틀어진 미소와 눈빛에 마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카일의 싸늘한 눈동자에서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왜… 이렇게까지,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이럴 필요가 있느냐?”

마크의 물음에 카일의 검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푸욱-

“크어억-”

쿵-

카일이 던진 검에 목이 관통당한 오크가 단발마와 함께 그대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쓰러졌다.

절대 손에서 검을 놓지 마라, 검은 목숨과 같은 것, 검은 신체의 일부라 생각해라! 전장에서 검을 버리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용병들은 이런 말을 지겹게 들어오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용병들은 죽는 마지막 순간, 아니, 죽어서도 검과 함께 땅에 묻힌다. 그러나 카일은 달랐다. 과감하게 검을 던져 오크를 격살했다. 검술의 체계와 사고방식이 일반 용병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 누가 절 이용하는게 가장 싫거든요.”

“그런….”

“가십시오.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돌아갈테니.”

마지막 말을 남긴 카일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오크 무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빌어먹을… 어쩌자는 거야!”

카일을 따라 오크 무리 안으로 뛰어들 듯 검을 뽑아 든 비터의 앞을 마크가 막아섰다.

“우린 돌아가자!”

“무슨 소리야! 카일을 혼자 놓고 가자고?”

“걱정 마라. 죽을 자리에 뛰어들 정도로 멍청한 녀석은 아니다.”

“뭐…?”

비터가 당황한 얼굴로 마크를 돌아봤지만, 마크는 아덱을 부축한 채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쿠아악-

취-익-

어느새 오크 무리에 둘러싸여 사라진 카일과 길을 되돌아 상단으로 돌아가는 마크의 모습을 안절부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라보다, 비터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빌어먹을, 젠장!”

한동안 욕설을 내뱉던 비터가 황급히 마크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힐끔 바라본 카일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어렸다.

스아악-

허리에서부터 시작된 은빛 반원이 오크를 사선으로 갈랐다.

철컥-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스으윽-

쓰러진 오크의 목에서 검을 뽑아 든 카일이 검을 휘둘려 녹빛 핏물을 털어내자 오크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은은하게 일어난 살기에 본능적으로 카일이 자신들의 천적임은 눈치챈 것이다.

“도망치기엔 늦었다.”

카일이 뒤로 물러나는 오크를 향해 검을 내려그었다. 커다란 도끼를 들어 카일의 검을 막아가던 오크의 손목이 잘려 나가며 커다란 도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크아악-”

잘려 나간 손목에 비명을 지르던 오크의 머리 위로 카일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

푸화악-

오크의 머리를 갈라버린 카일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도끼를 피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찌이익-

도끼가 카일의 레더 아머를 스쳐며 흔적을 남겼다.

“…빠르군.”

클럽이나 조잡한 낱붙이로 만든 글레이브를 사용하던 오크만 상대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속도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럼 반성하는 의미에서… 속도를 조금 올려 볼까?”

* * *

“헉헉, 젠장.”

거친 숨을 내뿜은 비터가 욕설을 내뱉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크윽.”

“빌… 당신한테 욕한 건 아니요.”

겨우 욕설을 참아낸 비터가 뒤를 바짝 따르는 마크를 돌아봤다.

“녀석, 정말 괜찮을까?”

“괜찮을 거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칠 테니 걱정할 것 없다.”

“그렇지? 하긴 엑스퍼트 정도 되면 오크에게 죽을 일은 없겠지.”

비터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힘을 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마크가 아덱을 부축해 걸었으나, 상처가 벌어져 지금은 비터가 아덱을 업고 있었다. 위험이 닥쳤을 때 엑스퍼트인 마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잠깐!”

한참을 앞서 달리던 마크가 황급히 비터를 붙잡았다.

“왜?”

“들어봐!”

“이건….”

“그래, 벌써 전투가 시작됐다.”

스르릉-

검을 뽑아 든 마크가 조심스럽게 숲을 헤치는 순간, 마차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오크를 볼 수가 있었다.

“와-”

“쏴라-”

짐마차 위에 올라 있던 상단 일꾼들이 토일의 명에 따라 일제히 석궁을 발사했다. 비록 대여섯 발에 불과했지만, 석궁의 강력한 위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날아간 짧은 화살은 선두에서 달려드는 오크의 심장과 머리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취익-”

“크어억-”

선두에서 달리던 오크들이 쓰러지며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자, 마차 앞을 막아서고 있던 코퍼가 혼란에 휩싸인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으아악-”

“공격해-”

코퍼를 선두로, 양측으로 코퍼 용병대의 버크와 부단장 야튜가 날개를 형성하며 오크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 뒤를 하급 용병들이 뒤따랐다.

스각-

가장 선두에서 푸른 빛 오러 소드를 휘두르며 종횡무진 오크 무리를 베어 넘기는 코퍼의 모습은 가히 전신이라 불릴 만큼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코퍼의 뒤를 따르는 하급 용병들도 오크를 향해 겁 없이 달려들며 전열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이거 좋지 않군.”

“무슨… 뜻인가?”

비터에게 업혀있던 아덱이 물었다.

“엑스퍼트라고 오러가 무한한 건 아닙니다. 저런 식으로 오러 소드를 남발했다간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럼 왜 저러는 거야?”

“너라면, 사방에서 수백 마리 오크들이 달려들면 저런 상황에서 어쩔 거냐?”

“당연히….”

“도망치겠지.”

“뭐야!”

“그럼, 아니냐?”

“일단 상황을 지켜보다가….”

“도망치겠지.”

“…너!”

비터가 화가 난 얼굴로 마크를 노려봤다.

“잠깐, 그래서 어쩌겠다는 겁니까?”

아덱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일단 합류해야죠.”

“맞아, 합류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장난처럼 말하던 마크와 비터가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전황을 주시하며 말했다.

“가자.”

마크가 앞장서 나가자 비터가 바짝 따라붙었다.

“…그런데, 이거 합류했다가 다 같이 죽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뭐!”

비터가 마크를 향해 소리쳤다가 깜짝 놀라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크 무리를 뚫고 상단과 합류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칫 발각이라도 된다면 오히려 오크들에게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서가던 마크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비터를 돌아봤다.

“아! 그게….”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주의를 끌 테니 포위망이 옅어지면 상단과 합류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아무래도 코퍼 대장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용병들이 동요할 거다.”

마크의 말대로 전신처럼 전장을 휘젓고 다니던 코퍼의 검에선 오러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 코퍼가 쓰러진다면 그동안 버티고 있던 하급 용병들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도망치며 그동안 겨우 유지하던 진형이 무너질 수밖에는 없었다.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 용병들이 도망치지 않고 오크들을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어쩔 생각이냐!”

비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마크가 엑스퍼트에 올랐다고 해도 고작해야 초급에 불과했다. 마크가 나선다고 전황을 바꾸기는 힘들어 보였다.

“날 내려놓고 가시오. 둘이 함께 간다면 분명 포위망을 돌파할 거요.”

“놈들이 후퇴할 곳은 이 길뿐입니다. 이곳에 내려놓았다간 당신도 무사하진 못할 겁니다.”

“나 하나 때문에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고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이곳에 내려놓을 수는 없죠.”

“하지만….”

“이미 결정했습니다.”

마크가 단호히 말하며 비터롤 돌아봤다.

“살아서 다시 보자!”

“마크!”

비터가 깜짝 놀라 마크를 붙잡으려 했지만, 마크는 이미 검을 뽑아 들곤 숲에서 뛰쳐나가 배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비터가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오크 무리로 파고드는 마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앞쪽을 주시하던 오크들은 갑자기 후위를 공격당하자 당황한 듯 괴성을 지르며 마크를 향해 돌아섰다. 결국, 오크 무리는 서로 뒤엉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비터가 급히 가죽끈을 꺼내 아덱과 자신을 동여냈다.

“꽉 잡아요! 곧장 돌파할 테니!”

“아… 알겠다.”

아덱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얼굴로 검을 뽑아 든 비터가 황급히 숲에서 뛰쳐나와 자신을 향해 돌아서는 오크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위잉-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뻗어나간 비터의 검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오크의 목을 관통했다.

“크르륵-”

피거품을 토해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비터를 바라보던 오크가 커다란 도끼를 떨어트리곤 무릎을 꿇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절명한 것이다.

“당신도… 엑스퍼트였나?”

아덱이 놀란 눈으로 비터를 보며 물었다. 오크의 가죽은 기본적으로 질기고 두꺼워서 소드유저 정도면 급소를 찔러 죽일 수는 있어도 관통상을 입히긴 극히 힘들다. 하지만 그다지 힘쓰지 않은 듯 보였던 비터의 검이 부드럽게 오크를 관통했으니 아덱이 오해를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은 상단과 합류하는 게 먼저요.”

비터가 대충 말을 돌리며 오크의 목에서 검을 뽑아냈다.

“흠집 하나… 없군.”

비터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리며 눈꼬리가 살짝 휘어졌다. 비터가 눈을 빛내며 앞을 가로막는 오크를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가볼까?”

* * *

“휴, 저곳이군.”

구릉 위에 올라선 카일이 낮게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향했다. 마차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달려드는 오크 무리를 상대로 악전고투를 벌이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좋지는 않군.”

마차를 둘러싼 병사들 앞에서 미스릴 합금으로 보강된 코트형 가죽 갑옷을 입은 두 기사가 종횡무진, 다가오는 오크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몰려드는 오크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더구나 마차를 보호해야 하는 기사들로서는 마차 주변을 떠날 수 없어 오크들을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기사들이 마차에서 멀어지면 오크 무리는 지체없이 빈 곳을 파고들어 병사들을 도륙하고 마차를 직접 공격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두 기사 모두 완숙한 엑스퍼트로 공격을 그런대로 막아내고는 있지만, 방어만으론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원진을 이루며 마차를 둘러싸고 힘겹게 버티는 십여 명의 병사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분명 어딘가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을 것 같은데….”

카일이 주변을 살피며 얼굴을 찌푸렸다. 오크들의 행동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오크들보다 조직적이다. 조금 전 마주했던 오크들도 무기만 금속제를 사용했을 뿐 전체적인 움직임은 야생의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마차를 공격하는 오크들은 정확히 기사들을 상대하며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결코 평범함 움직임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오크를 조정한다고 의심할 만한 자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쉬익-

낮게 중얼거리던 카일이 급히 몸을 비틀었다.

텅-

카일의 옆으로 깃까지 새까만 화살 한 대가 바닥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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