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12화 (312/404)

외전 - 46. 천공의 나이트

카일은 두 사람의 놀란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천공의 나이트나 와이번 나이트에 대해선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직접 보셨습니까? 어떤 종이죠? 골드, 레드, 블랙, 설마 설원의 파괴자는 아니겠죠?”

비터가 흥분한 듯 물었다. 마크 역시 눈을 빛내며 고투슨을 바라보았다.

“허… 보긴 뭘 봐, 이거 안 보여?”

고투슨이 가리킨 곳엔 낡은 가죽들이 한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안장만 가져와서는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해서, 낡은 안장에서 가죽을 뜯어냈다.”

“이게 모두 안장에서 떼어낸 가죽이란 말입니까?”

“보면 모르겠느냐? 그걸 하나하나 떼어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고투슨이 낡은 가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비터와 마크는 고투슨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낡은 가죽이 쌓인 테이블로 달려가 조각난 가죽과 안장을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무튼 용병이란 녀석들은…. 어찌 하는 행동이 다들 똑같은 거냐?”

고투슨이 한심한 얼굴로 마크와 비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멍하니 두 사람을 지켜보던 카일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갑자기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다.

“자네도 검이나 복장을 보면 용병인 건 알겠는데… 허허! 뭔가, 그 조잡한 가죽 갑옷은? 형태도 특이하고?”

고투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카일에게 다가가 레더 아머 이곳저곳을 한동안 직접 만져 보더니, 황당한 얼굴로 카일을 올려 보았다.

“자네… 완전 괴물이군.”

“네?”

“이 무거운 걸 입고도 멀쩡히 걸어 다니니 하는 말 아닌가?”

“하하! 그게… 익숙해지면 그렇게 무겁진 않습니다.”

카일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완전히 오크 가죽을 통짜로 뒤집어썼군. 도대체 가죽을 몇 장이나 겹친 건가?”

“넉 장 정도 됩니다. 제가 있던 곳이 워낙 험한 곳이라….”

“어디 오크 랜드라도 들어갔다 왔나?”

“네?!”

카일이 당황한 얼굴로 고투슨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오크 랜드를 수시로 들락거렸음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가죽에 남은 흔적 말이다. 대부분이 오크나 몬스터들이 남긴 것이군.”

“그걸 어떻게….”

“가죽만 만져 온 지 수십 년이야! 그만한 것쯤 한 번 만져 보면 다 알 수 있다.”

고투슨이 피식 웃으며 내친김에 카일이 메고 있는 커다란 가방까지 흥미로운 얼굴로 살폈다.

“그나마 가방은 조금 실용적으로 만들긴 했다만, 마감이 아주 조잡하군, 그냥 가죽끈으로 기워놓은 수준이야.”

직접 만든 레더 아머와 가죽가방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던 카일은 계속 이어지는 노인의 혹평에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음.”

고투슨이 뭔가를 가늠하며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있어 보거라!”

고투슨이 안쪽으로 사라지더니, 커다란 가죽가방과 갈색의 레더 아머 한 벌을 가지고 나와 테이블에 올렸다.

“20실버만 주게.”

“네?”

“이 레더 아머와 가방을 20실버에 주겠단 말이네, 물론 자네가 지금 입고 있는 가죽 갑옷과 가방을 교환하는 조건일세.”

“그건….”

“그 무거운 걸 계속 입고 다닐 게 아니라면 지금 바꾸는 게 좋을 거다. 그나마 자네가 입은 가죽 재질이 좋아 공임비만 받고 넘기는 것이니 말이야! 어떤가, 바꾸겠나?”

고투슨의 말에 잠시 고심하던 카일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의 레더 아머는 오크랜드를 오갈 때 사용하기 위해 방어력을 높이는 것에만 주력한 것이었다. 가죽을 여러 겹 겹친 탓에 오랫동안 입고 있기는 힘든 갑옷이었다.

하지만 이제 용병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레더 아머를 일상복처럼 입어야 했다. 무겁고 조잡한 갑옷을 계속해서 입을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카일이 품 안에서 20실버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클클, 결정이 빠르구나!”

“갑주는 마을을 떠날 때부터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마을?”

“전 샤론 마을 출신입니다.”

“샤론 마을이라면… 설마?”

고투슨이 눈을 크게 뜨곤 카일을 바라보았다.

“오크랜드를 생각하셨다면… 맞습니다.”

“역시 가죽 재질이 좋다고 했더니… 샤론 마을 출신이구나!”

고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메고 있던 가방과 함께 레더 아머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쿵-

가죽 갑옷이 얼마나 무거운지, 테이블이 큰 소리를 내며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비터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저걸 입고 날 밀어붙였었단 말이지!”

“정확해.”

마크가 직접 옆에서 확인시켜주자 비터가 얼굴을 붉히며 마크를 노려보았다.

“네가 엑스퍼트에 올랐다고 나와 다를 것 같아?”

“난 처음부터 카일 같은 강자와 대결 같은 걸 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너처럼 패할 일도 없을 거다.”

“이익…! 패하지는 않았어!”

“맞다. 패한 것 같은 무승부라고 해주지.”

“…빌어먹을.”

비터가 화가 난 얼굴로 마크를 사납게 노려봤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마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예전의 마크가 아니다. 그는 경지를 넘어 엑스퍼트에 올랐다. 비터로서는 더 이상 마크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비터와 마크의 사이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카일은 노인이 건넨 레더 아머를 입었다.

“확실히 가볍군요.”

“저런 무식한 방법으로 만들지 않았으니 당연하지!”

“하하… 그렇군요.”

카일이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왜, 불편하냐?”

“아무래도 맞춤형 갑옷이 아니다 보니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카일의 말에 고투슨이 직접 가죽끈 몇 개를 풀어 이리저리 조절하더니, 갑옷은 곧 몸에 딱 들어맞았다.

“어떤가?”

“…신기하군요. 이젠 아주 편합니다.”

“당연하지! 이 갑주는 가죽을 부위별로 재단한 뒤 가죽끈으로 엮어 만들었거든. 덕분에 가볍고 편할 뿐 아니라 원하는 부위만 따로 방어력을 높일 수 있다네.”

“레더 아머에 가죽끈이 있었습니까? 아무리 봐도 보이진 않습니다만.”

“외부에 가죽을 새롭게 덧댔으니 겉에선 보이진 않는다.”

“확실히 대단하군요.”

“대단할 것까지야….”

카일의 낮은 탄성에 고투슨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카일은 내친김에 가방에 든 물건까지 코튼슨에게 받은 새로운 가방 안으로 옮겨 담았다.

* * *

가죽 공방에서 나온 카일 일행은 상점을 돌며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황혼의 들녘으로 돌아왔다. 여관은 대부분의 방이 3인 1실이었는데, 마크와 카일, 비터가 같은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상단에서는 도자기와 옹기의 지속적인 거래를 위해 카일에게는 고급객실을 구해주려 하였으나, 카일은 비터, 마크와 함께 객실을 이용하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마크를 향해 카일이 물었다.

“뭔가?”

“그… 공방에서 이야기한 것 말입니다.”

“공방?”

“예. 천공의 나이트란 말에 상당히 놀라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 눈을 감고 있던 비터가 눈을 번쩍 뜨곤 일어나 카일을 바라보았다.

“뭐야, 천공의 나이트를 모르는 거야? 천공의 나이트, 다른 말로 와이번 나이트라고. 와이번을 타고 다니는 기사를 말한다.”

“와이번요?”

“그래! 와이번, 전설 속 드래곤의 아종이자 마법 생물.”

와이번을 떠올리는 듯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상에 빠진 비터를 대신해 마크가 와이번 나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와이번은 보통 색깔로 구분하는데, 대륙을 중심으로 동부의 골드, 서부의 레드, 남부의 블랙, 그리고 설원의 파괴자 북부의 화이트가 있다. 이렇게 사는 지역이 틀린 만큼 그 능력도 각각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크기도 제각각이지.”

마크의 말에 그동안 감상에 빠져 있던 비터가 카일에게 바짝 다가와 말을 이었다.

“맞아! 일단 골드라는 놈은 몸길이가 대략 7~8미터인데, 와이번 중 가장 작고 빠르면서도 흔한 녀석이지”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와이번이고 말이야.”

“나도 딱 한 번 본적이 있는데… 황금빛 아름다운 동체가 아직도 선하다.”

“그럼 다른 녀석들은 어떻습니까?”

“블랙은 20미터까지 자라는 대형종인데, 속도가 느린 대신 힘과 지구력이 좋아 가장 오랫동안 하늘을 날 수 있지.”

“호오…….”

카일이 감탄하자, 마크는 신이 나 설명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레드는 15미터 정도의 중형종인데, 속도와 힘, 지구력이 고르게 발달했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와이번이라면 단연 레드 와이번이라고 할 수 있지.”

카일이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설원의 파괴자라고 했던가요? 화이트 말입니다.”

“화이트 와이번, 북쪽에선 그 녀석을 설원의 파괴자라 부른다. 와이번 중 단연 최강이라 할 수 있다.”

비터의 말을 마크가 이어받았다.

“그런데 아직 설원의 파괴자와 맹약을 맺은 사람이 있단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아직 맹약자가 없다는 뜻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지.”

“맞아! 일단 레드 와이번만 되어도 국가나 영지에선 최대한 비밀로 하거든, 그런데 설원의 파괴자 정도면 전략무기나 마찬가지니 맹약자가 있어도 비밀일 수밖에는 없지.”

“화이트 와이번이 그렇게 강한가요?”

카일은 전략무기로까지 거론되는 화이트 와이번이 어떤 와이번인지 궁금했다.

“화이트 와이번은 대형종인 블랙 와이번보다 훨씬 크다. 와이번 중 가장 긴 날개를 가지고 북부의 혹한과 폭풍우를 견디며 살아가는데, 당연히 지구력과 힘은 물론 속도까지 엄청나지. 이 녀석들은 개체수도 부족한데 포악하기까지 해서, 북부 설원으로 향한 기사들이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화이트 와이번은 설원의 파괴자라 불린다.”

“아까 맹약자라 하셨는데…. 와이번 나이트가 되려면 맹약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카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와이번이란 존재가 흥미롭고 신기하기만 했다. 카일의 물음에 비터가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물을 따라 마른 목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와이번과는 맹약을 맺어야 한다. 둥지로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맹약자를 잃은 와이번이 있다면 계약을 맺을 수 있지. 운이 좋아야겠지만 말이야.”

“사육은… 불가능한 건가요?”

“오래전 일부 왕국에서 화이트 와이번의 알을 훔쳐 사육하려 한 적이 있었다. 헌데 알에서 와이번 새끼가 태어나고 첫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십수 마리의 화이트 와이번이 나타나더니 왕궁을 무너트린 뒤 새끼를 데리고 날아가 버렸다. 그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와이번에 대한 사육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 맹약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맹약석이 있어야 한다. 맹약석은 와이번의 색깔과 같은 색의 보석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골드는 토파즈, 레드는 루비, 블랙은 흑진주를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투명한 보석은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가능하면 같은 색의 보석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와이번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모양이야.”

마크는 품에서 수정 하나를 꺼내 카일에게 내밀었다. 표면에는 기하학적인 도형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바로 맹약석이다. 특정한 마법진을 보석에 새겨 맹약석을 만드는데, 와이번과 맹약을 맺을 경우 자유롭게 와이번을 소환할 수 있지.”

“와이번이 보석 안으로 들어간단 말인가요?”

카일의 물음에 이번에는 비터도 품에서 수정을 꺼냈다.

“오래전 마도시대 던전에서 발견한 마법이라는 것 외에는 나도 모른다. 이야기로는 보석 안에 아공간을 만든다고 하더군.”

카일은 비터와 마크의 손에 들린 맹약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맹약석을 왜 가지고 있는 거죠?”

카일의 말에 비터가 웃으며 수정을 탁자 위에 놓았다.

“아까 말했다시피, 맹약자가 죽게 된다면 맹약석이 깨지면서 와이번이 풀려난다. 이렇게 풀려난 와이번은 하루 동안 또 다른 맹약자를 찾기 시작하는데, 그때를 대비해서 무속성 맹약석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비터의 말에 마크가 보충해서 말했다.

“단! 맹약을 맺기 위해선 최소 초급 엑스퍼드 이상의 실력자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

“초급 엑스퍼트라면…. 용병 중에도 와이번과 맹약을 맺은 사람이 있겠군요?”

“우린 그들을 천공의 라이더나 와이번 라이더라고 부른다.”

“천공의 라이더….”

“일단 천공의 라이더만 된다면 길드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지.”

“…어떤 대우를 받는 겁니까?”

“용병길드에서 특별관리에 들어간다. S급 용병패를 주고, 최대한 외부에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게 보호해주지.”

비터의 말에 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보호라니요? 누가 그들을 공격한단 말인가요.”

“힘없는 용병이 맹약을 맺은 와이번이다. 당연히 와이번을 노리는 사냥꾼이 있기 마련이지.”

“사냥꾼요?”

“기사 녀석들 말이다.”

“아…!”

“길드는 그들로부터 라이더를 보호하고 있다. 목표는 기사단을 상대할 정도의 용병단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길드에서 모집한 라이더의 숫자도 상당하겠군요.”

“그렇게 많지도 않아. 길드에서 소속된 라이더는 왕국에 대략 20명 정도가 있다고 들었다.”

“생각보다… 적군요.”

“최근 몇 년간 전쟁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긴 하군요.”

용병이 와이번과 맹약을 맺을 기회는 전쟁에서 기존의 맹약자가 사망했을 때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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