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11화 (311/404)

외전 - 45. 용병길드

아일론 상단은 계획대로 마을 한 곳을 더 돌아본 후 사흘이 지나서야 영주성에 도착했다. 샤론 마을에서 시간을 지체하고도 계획보다 하루 일찍 영주성에 도착한 것이다.

“드디어 돌아왔군!”

비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일론 상회와 계약한 건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일론 상회의 계약이 처음이라고 했지, 이곳 다핸 남작성이 처음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어… 그것도 그렇군요.”

잠시 당황한 카일의 표정에 마크와 비터가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거 어쩐지 통쾌한데?”

“그러게. 지난번 당했던 복수를 제대로 하는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군.”

비터와 마크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수록 카일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곧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 두 분의 기분을 잘 알겠군요. 좋습니다. 패배를 인정하죠.”

“이거 너무 쉬운데?”

“어쩐지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셨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해야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이죠.”

“다음이라니?….”

마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카일은 아무 말 없이 여관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 * *

“저기가 바로 용병 길드다.”

카일은 다음 날 일찍 마크와 비터의 안내를 받으며 용병 길드로 향했다. 용병 길드는 내성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아무래도 무력을 가진 거친 용병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귀족들이 머무는 내성이나 중심부에서는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비터가 가리킨 용병 길드 건물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주변엔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무기를 손질할 수 있는 공방과 잡화점이 늘어서 있었고, 말들을 쉽게 사고팔 수 있는 마시장까지 작게나마 갖춰져 제법 큰 상권을 이루고 있었다.

“혹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이곳에서 사면 된다. 모두 용병 길드와 연계된 상점들이라 용병패만 가지고 있으면 조금 싸게 구매할 수 있다.”

비터는 주변을 둘러보는 카일을 끌고는 곧장 용병 길드로 향했다.

딸랑-

길드의 정문이 열리며, 문에 달린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에릴!”

길드 안으로 들어선 비터가 접수대 앞에 자리한 여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법 친분이 두터워 보였다.

“비터, 마크? 오늘 저녁에나 도착할 줄 알았는데요?”

“도착은 어제 늦게 했다. 일정이 생각보다 줄어들어서 말이야.”

“그렇다고 하루나 빨리 도착해요? 상행이 좋지 않았나 보군요?”

“아니, 그 반대다. 가진 물건 대부분을 다 팔았거든. 그보다, 이번에 용병이 되겠다고 온 카일이다. 용병등록 좀 도와줘.”

마크의 말에 에릴이 카일을 천천히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라니요? 용병등록이야 원래 제 일인데요. 근데, 체격은 큰데 나이가 상당히 어려 보이는군요.”

“올해 열여덟입니다.”

”열여덟이요…? 상당히 어리군요.”

에릴이 이체를 띤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추천인이 있나요? 원한다면 옆에 있는 비터나 마크가 추천인 될 수도 있는데요.”

용병등록을 할 때 추천인이 있고 없고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추천인은 일종의 신원 보증인이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용병이 잠적하거나 도주할 경우 바로 추천인이 책임을 져야 했기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추천인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카일은 추천인이 필요 없다. 녀석의 아버지가 바로 붉은 트롤이거든.”

비터의 말에 에릴은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셔론 마을 보일 대장님의 아들이었군요. 혹시 대장님의 소개장이 있나요? 비타와 마크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길드 안에서도 절차가 있어서요.”

카일이 품 안 깊숙이 넣어둔 양피지를 꺼내 에릴에게 건냈다. 양피지를 건네받은 에릴은 한동안 내용을 살핀 뒤, 양피지 끝에 찍혀있는 푸른 용병패 인장을 알 수 없는 글자와 도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반질반질한 검은 돌 위에 올려놓았다. 곧 검은색 돌에서 희미한 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B급 용병 보일, 확인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에밀이 새로운 양피지를 꺼내 서신에 적힌 카일의 나이와 출생지, 그리고 카일의 외모와 키를 간략하게 적었다. 그리고는 보일의 소개장과 함께 가죽끈으로 묶어 카일에게 건넸다.

“뒷문으로 나가면 심사장이 있을 거예요. 이걸 가지고 심사만 받으면 돼요.”

“비터와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녀오너라! 심사장은 당사지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

“다녀와라! 너라면 별 어려움이 없을 거다. 카일.”

마크는 비터와 함께 벽면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카일은 양피지를 받아 들고는 심사장으로 갔다.

심사장은 건물 중앙에 자리한 중정으로, 외부에서는 볼 수 없게 사방을 막아놓은 구조였다. 카일이 심사장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자 앞쪽 건물에서 문이 열리며 40대의 장한이 걸어 나왔다.

“심사를 받으러 온 건가?”

“그렇습니다.”

“흠…. 용병 심사는 오랜만이군, 좋아! 서류를 한번 볼까?”

사내가 카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든 양피지를 건넸다.

“어디 보자…. 용병 가족?”

사내는 카일의 신상을 보며 중얼거리다 뒷장을 넘겨 양피지를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흠…. 이제 보니 붉은 트롤 보일 대장의 아들이었군. 이거 반가운걸. 나는 바르토라 한다. 한때 보일 대장과 함께한 적이 있었지.”

“죄송해요. 아버지께선 용병 때의 일은 잘 이야기하지 않으세요.”

“죄송할 것까지야…. 일단 서신에는 오러를 발현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사실이냐?”

“네.”

“의외로 심사를 간단히 끝낼 수 있겠군. 한번 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바르토의 말에 카일이 즉시 검을 뽑았다.

“오늘 여러 번 날 놀라게 하는군, 이런 형태와 재질의 검은 처음인데 말이야.”

바르토가 카일의 검을 보며 놀랍다는 듯 감탄을 터트렸다.

‘이거… 위험한데?’

점점 탐욕으로 물들어 가는 바르토의 눈빛을 보며, 카일의 얼굴도 덩달아 점점 싸늘하게 굳어졌다.

‘어쩔 수 없지.’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오러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백색의 오러가 검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초급 엑스퍼트….”

카일의 검을 잠식한 강렬한 오러에 바르토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러를 발현하는 단계, 즉 소드 유저 정도로만 생각했던 카일이 벌써 엑스퍼트에 올랐을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 나이가 몇이지?”

“열여덟입니다.”

카일의 말에 바르토가 눈을 크게 뜨곤 카일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역시 보일의 아들답군…. 아니, 벌써 엑스퍼트에 올랐으니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군!”

바르토가 아쉬운 얼굴로 카일의 검을 잠시 바라보더니 카일에게 양피지를 돌려줬다.

“이걸 에릴에게 가져다주면 된다. 용병이 된 걸 축하한다. 카일! 보일의 보증과 오러 소드까지 발현하는 소드 엑스퍼트니 C급 용병패가 발급될 거다.”

“따로 대련이나 검술을 시험하진 않습니까?”

“넌 오러 소드를 발현하는 엑스퍼트인데 굳이 검술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느냐?”

바르토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용병이 되었다면 나중에 용병 가문을 만들어 봐라! 네 뛰어난 자질과 보일 대장의 검술이 더해지면 분명 이름에 남을 만한 새로운 용병 가문을 만들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용병 가문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럼 가보거라!”

바르토를 향해 고개를 숙인 카일이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 에릴에게 양피지를 건네주었다.

“소드 엑스퍼트였군요. 어린 나이에 대단해요.”

“감사합니다.”

에릴이 양피지를 말아서 가죽끈으로 묶으며 말을 이었다.

“용병패를 만드는 비용은 50실버, 당장 돈이 없다면 용병 일을 하며 천천히 갚아도 돼요. 참고로 용병패는 마법 물품이라 가격이 비싼 거예요. 용병 길드에선 단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줘요.”

“의심하진 않습니다.”

“다행이군요. 가끔 무식한 용병들이 의심하거든요.”

에릴의 사나운 눈빛에 비터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용병패는 내일 찾으러 오면 돼요.”

“50실버는 용병패를 찾으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해요.”

“그럼….”

카일 일행은 용병 길드를 나와 곧장 가죽 공방을 향했다. 새로운 검집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비터와 마크를 따라 가죽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카일의 가슴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의 노인이 공방 한쪽에서 가죽을 만지는 게 보였다. 그 옆에는 30대 중반의 사내와 이제 십대 초반 정도의 키 작은 소년이 가죽을 정리하고 있었다.

“가게가 다른 곳보다 작아 보이지만 벌써 3대나 이어오는 가죽 장인이다.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에 부탁하는 게 좋다. 여긴 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거든.”

마크는 이곳에 비터와 자주 왔는지 공방 사람들도 이들을 쉽게 알아보았다.

“비터 아닌가?”

“저도 왔습니다.”

“허허 그래, 비터가 왔으니 마크 자네도 왔을 거라 생각했지. 오랜만이군.”

중년의 사내가 비터와 마크를 반겼다.

“보턴, 헌데 못 보던 얼굴이 있네요?”

비터가 소년에게 고개를 돌리며 묻자, 보턴이라 불리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맏아들이지! 이제 열 살이 넘었으니 가죽 일을 배우라고 몇 달 전부터 공방에 나오게 했다네.”

보턴이 제 아들을 불러 말했다.

“스턴아, 인사하거라, 아비의 친구들이다.”

소년이 카일 일행에게 다가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스턴입니다.”

“그래, 열심히 배워 할아버지만큼 뛰어난 가죽 장인이 되거라!”

마크와 비터가 인사를 받은 뒤 노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셨어요. 고투슨! 아직도 가죽을 손질하세요?”

비터가 노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네자,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내 가게에 내가 나오지 그럼 누가 나와, 이놈아!”

“아이쿠! 고함 소리만 들어도 십 년은 더 하시겠네요. 하하하!”

비터가 귀를 막으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노인 역시 웃었다.

“클클클! 헌데 너, 무기가 바뀌었구먼!”

노인이 단번에 알아보고는 비터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터가 당연하다는 듯 무기를 노인에게 건네자, 노인이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번에도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비터는 당연하다는 듯 이전에 쓰던 가죽 검집을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가죽집과 무기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대충 하루면 될 것 같다. 기존에 쓰던 걸 변형시킨 것 같군. 이건 누가 만든 거냐? 이런 식으로 검을 만들다니 대단하군.”

“영감님이 이제는 검까지 보세요?”

“내가 가죽 공방을 하면서 검집만 수천 점을 만들었다. 그 정도 보는 건 일도 아니다 이놈아! 헌데 정말 이건 어디서 만든 거냐? 이거 도턴 그 친구가 알면 바로 쫓아 올 일이다.”

비터는 웃으며 카일을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비밀입니다.”

비터가 웃으며 말하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안 가르쳐 주면 할 수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이건 검집이 완성될 때까지 감추고 다니거라. 그런데, 자네가 왔다면 마티슨 상단주도 왔겠군.”

“예! 지금 황혼의 들녘에 있어요.”

“다행이군. 보턴! 가서 마티슨에게 가죽을 사 오너라.”

“예. 아버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보턴이 아들인 스턴을 데리고 가게를 나가자, 마크가 의아한 얼굴로 노인에게 물었다.

“가죽을 가져다 쓰는 마을이 있다고 들었는데, 굳이 아일론 상회를 통해 가죽을 매입할 필요가 있나요? 가격도 훨씬 높을 겁니다.”

이곳 고투슨의 가죽 공방뿐 아니라 가죽 공방들 대부분이 가까운 마을에서 싼 가격에 직접 가죽을 매입하고 있었다. 몬스터 가죽이 풍부한 영지의 여건상 따로 상인들을 통해선 가죽을 구매하지 않았다. 상인들 역시 영주성과 가까운 마을에서 가죽을 사기보단 사론 마을처럼 오지마을을 찾아 조금 더 싼 가격에 가죽을 구매하고 생필품을 파는 것이 이익이었다.

“이번에 백작령에서 천공의 나이트들이 무려 다섯이나 왔다. 모두 안장을 새로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 해서 이번에 가지고 있던 가죽을 모두 사용하고 말았다.”

“헉! 천공의 나이트!”

“와이번 나이트!”

비터와 마크가 깜짝 놀라 동시에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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