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09화 (309/404)

외전 - 43. 미완성 제련법

“평범한 사람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군요.”

“하지만 스승님께서도 이 정도만 말씀해 주셨습니다.”

벨의 말에 카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타론 아저씨도 딱 그 정도만 알려주셨죠. 하지만 재료의 특성도 파악하지 못하고 과연 제대로 된 검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직접 알아봐야겠죠.”

“무슨 말씀인진 알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재료의 특성을 세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좋은 검은 고합금강으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벨의 물음에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좋은 검엔 고합금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검 전체를 모두 고합금강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게 무슨…?”

카일의 말에 벨이 말끝을 흐렸다. 합금은 철과 여러 특수금속을 섞어 만들지만, 그중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수십 배는 비싼 미스릴의 함유량에 따라 고합금강과 저합금강을 나눈다. 그런 만큼 고합금강으로 검을 제작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카일의 말대로 저합금강과 고합금강을 조합해 검을 만들 수만 있다면 엄청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미스릴 함유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저합금강은 강도가 낮고 부드러우며 늘어나는 성질이 강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무른 금속이니 저급하다고들 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특성엔 관심이 없죠.”

“중요한 특성이라니요?”

벨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바로 충격을 잘 흡수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스릴 함량이 적은 검일수록 부러지기보단 휘어지는 경향이 강하죠.”

카일의 말에 깊이 고심하던 벨이 결국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둔해서 그런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합금강이 충격을 잘 흡수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검을 제련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혹시 시중에 판매되는 고합금강의 가장 큰 단점이 어떤 건지 아십니까?”

“단점이… 있습니까?”

벨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는 고합금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세트 마을 같은 작고 외진 마을에선 고합금검을 사용할 만큼 부유한 자경단도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마법 화로가 없는 대장간까지 찾아올 이유도 없었다.

“고합금강은 미스릴 함량이 높을수록 질기고 잘 부러지지 않죠, 하지만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싸고 녹는점도 높아 제련이 어렵죠. 그래서 시중에 유통되는 고합금검들은 미스릴 함량을 최대한 줄여 가격은 물론 녹는점까지 낮춘 것들입니다. 정확히는 고합금강이라기보단 중합금강이라고 보면 좋을 겁니다.”

“그럼 타론 님께서 만드는 합금도 그럼…?”

“제 기준에선… 네, 중합금강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중합금강이란 말은 없으니 그냥 통칭 고합금강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카일의 말에 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마다 사용하는 특수금속이나 미스릴 비율이 다르고 특성에도 차이가 있지만, 합금강의 강도와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미스릴이 얼마나 많이 함유되어 있는가였다.

“…그렇다면 미스릴 함량이 줄었으니 강도가 떨어지겠군요.”

“고합금과 중합금 사이에 약간의 강도 차이는 있지만 크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는데… 그건 중합금강으로 검을 만들면 고합금검에 비해 충격에 약합니다.”

“고합금과 저합금을 조합해 검을 만들겠다는 말이 그럼…?”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만든 제련법은, 강도는 약하지만 충격에 강하고 유연한 저합금과, 강도는 강하지만 충격에 약한 중합금강을 합쳐 고합금강에 버금가는 검을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죠. 혹시 유추할 수 있겠습니까?”

카일의 물음에 벨이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스릴 함량이 다르니 녹는 온도가 다릅니다. 아마도 두 금속을 접합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녹는 온도가 다르니 접합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제련법의 가장 큰 단점이자 제가 미완의 제련법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마법화로가 있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카일 님은 마법 화로가 없이도 검을 제련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은 어렵지만… 전 가능하죠.”

벨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린 카일이 커다란 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따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모루 위에 올려진 합금이 강한 힘과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일그러졌다.

“아!”

잠시 잊고 있었다. 카일의 뛰어난 망치질과 강인한 힘이라면 마법 화로 없이도 이질적인 두 합금을 강제로 접합시키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벨은 당황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았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카일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법 집중력이 좋군.’

벨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카일이 다시 망치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따앙-

땅-

카일의 망치질이 이어질수록 서서히 검의 모양이 잡히기 시작했다. 카일은 검신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검을 사용하는데 이질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도 있지만, 가드와 손잡이를 새롭게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휴-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겠군.”

열처리까지 마친 검을 살피며 카일이 미소를 지었다. 여기저기 망치로 내려쳐 울퉁불퉁한 흔적이 남았지만,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벨이 웃으며 카일에게서 검을 받았다. 그리고는 대장간 한쪽에 놓인 원형의 커다란 돌 앞에 멈춰 섰다.

덜컹-

벨이 한쪽에 매달린 밧줄을 당기자 작은 소성이 울리며 커다란 원형 맷돌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역시… 수차를 이용한 것이군.”

“단번에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수차를 이용해 숫돌을 회전시킨 겁니다. 화로 옆엔 수차를 이용한 망치도 있습니다. 수차가 작다 보니 보통 무른 금속을 가공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저도 보긴 했습니다만, 이걸 누가 만든 겁니까?”

“생각은 제가 했지만, 만든 건 스승님께서 하셨죠.”

“이걸 직접 생각해 냈단 말입니까?”

카일이 벨을 바라보며 물었다.

“언젠가 수차를 이용해 밀을 제분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이리저리 고심하다 만든 겁니다.”

“대단하군요. 쉽진 않았을 텐데….”

카일이 수차에 관심을 보이지 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차를 만들며 제작해 놓은 설계도가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벨이 검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 가죽으로 만든 원통을 가지고 나왔다.

“수차에 필요한 부품의 크기와 부품을 그려 놓은 겁니다. 필요하시면 가져가셔도 됩니다.”

“이걸….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수차에 대해서는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려 놓기는 했지만, 사실 열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 인걸요.”

“…그럼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벨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 *

“…끝난 거냐?”

카일이 두꺼운 가죽 천을 걷고 밖으로 나오자, 대장간 앞을 서성거리던 비터가 황급히 달려왔다.

“마무리 중이니 곧 끝날 겁니다.”

“마무리 중이라니 그게 무슨…?”

비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럴 일이 있습니다.”

카일이 평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강철같은 체력이라도 종일 전력으로 망치질을 했으니 카일도 지칠 수밖에는 없었다.

“괜찮으냐?”

“좀 지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원통에서 돌돌 말린 커다란 양피지를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뭘 보는 거냐?”

“수차를 설계한 도면인데… 제법 정교하게 그려 놓았군요.”

양피지 안에는 수차의 재료와 부품 도면은 물론 수차를 이용한 다양한 방법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대단하군…. 생각보다 더 대단한 물건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마크의 물음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련법을 내어 준 게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입니다.”

카일의 말에 마크와 비터가 카일의 옆으로 다가와 도면을 확인했지만, 알 수 없는 복잡한 그림과 글자만 가득할 뿐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크와 비터의 관심이 시들해 질쯤 대장간 안에서 건장한 체구의 앳된 사내가 밖으로 나왔다.

“다 됐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벨이 카일에게 다가오자 깜짝 놀란 마크와 비터가 황급히 앞을 막았다.

“너… 누구냐!”

“대장장이 노인의 제자입니다. 이름은 벨, 절 도와 검을 만들었습니다.”

카일이 양피지를 내려놓고 벨에게 다가갔다.

“한번 볼까요?”

“여기 있습니다.”

카일이 검을 받아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검날은 제법 잘 다듬어져 있었지만, 아직 검신 중앙엔 약간의 망치 자국이 남아있었다. 이것까지 마무리 짓기엔 시간이 부족한 탓이지만, 검을 사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훌륭하군요.”

벨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아닙니다. 수고는 카일 님이 하셨지요.”

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카일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스악-

가볍게 바람을 가르며 뻗어간 검이 마당 한쪽에 세워 둔 커다란 통나무를 빠르게 스치며 지나갔다.

투둑-

커다란 통나무가 사선으로 기울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비터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카일의 검술이 뛰어난 이유도 있지만, 오러도 사용하지 않고 커다란 통나무를 단번에 잘라낼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검이란 뜻이었다.

“날이나 검신에도 이상이 없군요.”

검신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한 카일이 비터를 돌아봤다. 비터의 시선은 이미 카일의 손에 들린 검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약속한 검입니다.”

카일이 비터에게 검을 내밀자, 떨리는 손으로 비터가 검을 받아들었다.

“이게 정말 내 검이라고?”

“검신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가죽끈은 직접 다시 감으셔야 할 겁니다. 검집도 새로 맞춰야 하고요.”

카일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비터가 부드럽게 검을 쓰다듬었다.

“걱정 마라! 최고의 검집을 만들어 주겠다.”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벨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요?”

“제안이라니요?”

벨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알려드린 미완의 제련법, 이곳에서 연구하긴 힘들 겁니다.”

“그건….”

“여기선 고합금강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타론 아저씨를 통해서도 구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의 합금이 자경단에 쓰이거나 영주성으로 보내지니까요.”

카일의 말에 벨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타론과 대장장이 노인 카트가 아는 사이라고 해도, 부족한 합금강을 나눠줄 정도로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샤론 마을로 가십시오.”

“네?”

“서신을 적어 드리죠. 아버님과 타론 아저씨께 전해드리면 도와드릴 겁니다.”

카일의 말에 벨이 고심에 빠졌다. 분명 카일의 제안을 따르면 자신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주성의 빈민가를 떠돌며 살던 어린 그를 데려와 제자로 삼고 대장장이 기술까지 전수해준 카트를 떠날 수는 없었다.

“좋은 기회라는 건 알지만… 죄송합니다. 여기서 해보겠습니다.”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이곳을 떠나면 후회할 겁니다.”

벨의 말에 카일이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긴 하지만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셔서….”

“아닙니다. 저도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카일이 원통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때 마당으로 대장장이 카트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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