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08화 (308/404)

외전 - 42. 대장장이 노인(2)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렇게는 모양을 잡을 수 없으니, 일단 접은 후 괴 형태로 만들었다가 길게 늘일 생각입니다.”

“여긴… 검에서도 가장 합금 비율이 높고 강한 곳이네, 이걸 접는 것도 어렵지만, 다시 길게 늘이는 건… 마법 화로나 청화를 피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야. 설마 자네가 청화를 피울 수 있단 말인가?”

“청화라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카일이 피식 웃으며 커다란 망치를 들었다. 망치는 자루까지 쇳물을 부어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자루 끝엔 부드러운 가죽까지 세심히 감아 놓을 정도로 잘 만든 망치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할 생각인가? 괜히 그러다 다칠 수도 있다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카일의 말에 노인이 집게를 들어 부러진 검을 단단히 잡았다.

“그럼 시작합니다.”

카일이 망치를 높게 치켜들었다가 단번에 붉게 달아오른 부러진 검편을 향해 내려쳤다.

따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뜨거운 불똥이 날아올랐다.

“이…럴 수가!”

카일이 망치를 들어 올리자, 부러진 검편에 제법 선명한 망치 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흠… 생각보다 강도가 세군요. 조금 더 강하게 쳐보겠습니다.”

다시 망치를 높게 든 카일이 부러진 검을 향해 힘껏 내려치고는, 생겨난 강력한 반탄력을 부드럽게 받아 다시 망치를 들어 올렸다가 재차 내리쳤다.

따앙-

땅-

따앙-

“허허, 타론이 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노인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튀어나왔다. 저런 망치질은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과 스스로의 노력을 통한 어떤 깨달음이 필요했다.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카일의 망치질에 따라 점점 변해가는 합금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치이익-

뜨거운 수증기가 대장간 안을 가득 메웠다. 부러진 검편을 접은 뒤 길게 늘어트리는 작업은 카일의 강인한 신체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수십 번을 달구고 수백 번을 내려치길 반복해서야 겨우 검편을 원하는 길이로 늘어트릴 수 있었다.

“자넨 정말 타고난 대장장이야!”

굵은 땀방울을 닦아낸 노인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몇 시간 동안 검편을 잡아주고 풀무질을 하느라 노인 역시 상당히 지쳐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하시죠.”

“아무래도 그래야만 할 것 같네, 늦었지만 식사도 해야 하고 말이야.”

노인이 허리를 두드리고는 두꺼운 가죽 천을 걷으며 대장간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오셨습니까?”

화톳불을 피운 채 커다란 평상에 앉아 있던 비터와 마크가 황급히 일어났다. 두 사람은 카일이 검을 만들기 시작하고 얼마 후 밖으로 나와 버렸다. 처음 몇 번은 카일의 신들린 망치질에 감탄했지만 시끄러운 망치질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벌써 밤이 깊었군.”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평상에 털썩 주저앉아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스프가 식긴 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할 겁니다.”

“허허, 내 집에 왔으니 이 늙은이가 대접해야 하는데…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저 때문에 고생을 하시는데, 이 정도는 당연히 제가 준비해야죠.”

두 사람은 벌써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검을 수리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비터가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해 음식을 준비해온 것이다.

“음식이… 과하구만.”

“검을 완성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해서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누가 다 먹겠어요?”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를 겨우 식힌 카일이 평상에 털썩 주저앉더니 비터가 내려놓은 바구니에서 보리빵 하나를 꺼내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래도 부족한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것도 그러네요.”

카일이 피식 웃었다.

“그보다 검은 언제 완성되는 거냐?”

“어려운 작업은 모두 끝났으니 날이 밝기 전 완성될 겁니다.”

“아직 부러진 검은 손도 대지 않았다. 정말 날이 밝기 전 완성할 수 있겠느냐?”

“고 합금된 검편을 늘리는 게 가장 어려운 공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모양만 잡으면 되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허허, 이런 방식의 제련법은 처음이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검을 만들려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어려운 방법이긴 하지만 제법 괜찮은 물건이 나올 겁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어떤 검이 나올지 정말 궁금하군.”

대충 배를 채우던 노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쉬었다가 가시죠?”

“이만하면 배도 채웠고 충분히 쉬었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피로감 가득한 노인의 얼굴을 보며 카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늙었어도 이 정도로 쓰러지진 않을테니 걱정 말게.”

“흠….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겠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대장간 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비터가 미소를 지었다.

“대단히 열심이군.”

“그러게 말이야! 연륜이 깊을수록 대장장이들은 고집과 자존심이 강해진다고 하던데, 저 영감님은 좀 다른 것 같군.”

이미 수십 년을 대장장이로 살아온 노인이 아무런 불만도 없이 나이 어린 카일의 말에 따라 검을 수리하고 있으니 대륙을 떠돌며 만나온 다른 대장장이들과는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는 없었다.

“다르다기보단… 원하는 것이 있어서일 겁니다.”

“원하는 것?”

비터가 급히 고개를 돌려 카일을 찾았지만, 카일은 이미 대장간 안으로 들어선 뒤였다.

“왔는가?”

카일이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 노인이 풀무질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부러진 검 사이에 길게 홈을 만들 겁니다.

“홈이라면… 설마!”

“맞습니다. 반나절 동안 길게 늘인 검편을 사이에 끼워 넣을 겁니다.”

“이런 방식은 처음이네, 이것이 정말 타론이 검을 만드는 방식인가?”

화로 안에서 부러진 검을 꺼내려던 카일이 노인을 돌아봤다.

“전 타론 아저씨의 방식으로 검을 만든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만?”

“그럼… 이것들을 모두 타론에게서 배운 게 아니란 말이냐?”

“망치질이나 검 제작법은 배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타론 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은 마법 화로의 고온에서만 가능한 방법이라 이곳에선 사용할 수 없습니다만.”

“그걸 왜 이제야…!”

노인이 버럭 소리를 치려다 카일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가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제가 타론 아저씨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게 문제가 됩니까?”

“그건… 아니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카일은 단 한 번도 타론의 방식으로 검을 제작하겠다며 노인과 약속한 적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 절 도와주실 겁니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더는 자넬 돕진 못할 것 같군.”

“알겠습니다. 마무리는 제가 하지요.”

“그럼… 이만 가보겠네.”

노인이 카일의 시선을 피해 서둘러 대장간 밖으로 나가버렸다.

“무슨 일이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친절하게 다가왔던 노인이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아무런 말도 없이 두 사람을 지나쳐 버리자, 비터와 마크가 황급히 대장간으로 달려 들어왔다.

“글쎄요? 아마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해 화가 난 모양입니다.”

“그럼 이젠 어쩌지? 검을 만들려면 저 노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니야?”

“앞서 말했듯 어려운 공정은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정말… 괜찮겠나?”

“혼자서도 여러 번 검을 만든 적이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카일이 담담히 말하며 부러진 검을 모루 위에 올렸다. 그리곤 손망치를 힘껏 내려쳤다.

따앙-

땅-

마치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노인이 자리를 비웠지만 카일의 망치질엔 작은 망설임도 없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마크가 비터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우린 이만 나가는 게 좋겠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 있어봤자 방해만 될 뿐이다. 가자!”

마크의 말에 마지 못해 비터가 뒤로 물러났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라. 큰 도움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밖에서 기다리겠다.”

“네! 필요하면 부르겠습니다.”

카일의 말에 비터가 고개를 저으며 마크에게 이끌려 천천히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일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벽 한쪽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언제까지 지켜볼 생각입니까?”

“헉-!”

“도망갈 생각이면 붙잡진 않겠습니다.”

카일이 태연히 말하며 화로에서 꺼낸 부러진 검을 두들겼다.

땅-

따앙-

무거운 침묵 속, 카일이 내려치는 망치질 소리만이 어두운 대장간을 한동안 울리고 있었다.

철컥-

그때였다. 낮은 마찰음과 함께 굳게 닫혀있던 벽 사이로 작은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조심스럽게 다가온 사내가 물었다. 화로의 불빛이 앳된 얼굴에서 일렁였다.

“저 망치, 최근까지 사용한 흔적이 있더군요. 아무리 봐도 노인이 쓰기엔 벅차 보이지 않습니까?”

“고작 망치 하나 때문에….”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죠. 망치도 그렇고, 화로와 모루 사이 간격도 한 사람이 썼다기엔 너무 넓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대장간에서 만든 물건들에 미세한 차이가 있더군요.”

“그것까지 알아볼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사내가 바닥에 놓인 망치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강한 힘을 가진 용병이었다. 싸워서 이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요행으로 이긴다 해도 밖에서 기다리는 두 용병을 상대할 방법이 사내에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입니까?”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다면 믿겠습니까?”

“저흰 당신이 가진 기술을 훔쳐 배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단 말입니까?”

“어차피 참관 허락은 제가 했습니다. 그러니 꼭 훔쳐 배웠다고는 할 수 없죠, 그리고 정작 원하는 기술은 얻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당신이 사용한 방법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내의 말에 갑자기 카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따라하기도 힘들 테니 말입니다.”

“따라 하기 힘들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요.”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쉽지 않을 텐데요.”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어차피 정상적인 방법으로 배운 것이 아니었으니 제대로 된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제가 쓰는 방법, 믿을 수 있습니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결과는 곧 확인할 수 있겠죠.”

사내의 시선이 화로 안에서 붉게 달아오른 부러진 검을 바라보았다.

“그럼 좀 도와주시죠.”

“제가 말입니까?”

“결과를 빨리 확인하고 싶지 않습니까? 절 도와주면 어떤 검이 탄생할지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카일의 말에 사내가 잠시 망설였다. 카일 어떤 의도에서 이런 제안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직접 검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할까요? 전 샤론 마을의 카일입니다.”

“아! 전 세트 마을 카트 대장장이의 제자 벨이라 합니다.”

“좋습니다. 벨, 그럼 시작해 볼까요.”

카일의 말에 벨이 밝아진 얼굴로 집게를 들어 붉게 달아오른 부러진 검을 꺼냈다.

“보면 알겠지만 부러진 검, 그러니까 저합금강 사이에 앞서 길게 늘인 고합금강을 끼워났습니다. 이제 이걸 두들겨 검 형태로 만들 겁니다.”

카일의 말이 사내가 의아한 얼굴로 카일을 보았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그래야 다음 공정을 이어가기 쉬울 겁니다.”

“그럼… 왜 이런 방식으로 검을 접합하는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음, 아주 핵심적인 질문이군요.”

카일이 벨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뭐, 제가 질문을 허락했으니… 답해 드리기 이전에 저합금강과 고합금강의 특징은 알고 있습니까?”

“저합금강은 무르고, 고합금강은 단단하고 질기다고만 알고 있어요.”

벨의 말에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벨의 대답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합금에 관한 단순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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