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03화 (303/404)

외전 - 37. 대련(2)

“이거 검신이 너무 얇아 한방에 부러지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

비터가 카일의 검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괜히 검이 부러졌다간 물어줘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검신이 부러져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 말이죠. 그러니 비터님도 절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터는 카일의 말에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마치 자신 정도는 이런 얇은 검으로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대련 중 일어난 작은 사고 정도론 당연히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이지. 어때, 먼저 들어 올 테냐?”

비터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카일에게 손짓했다. 아무리 승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용병이라도 열 살이나 어린 카일을 상대로 대련에서 선공을 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카일이 곧장 비터를 향해 검을 찔러갔다.

“뭐야?”

비터가 다가오는 카일의 검을 보며 당황한 듯 주춤 뒤로 물러났다. 비록 카일의 나이가 어리다고는 해도 커다란 덩치에 붉은 트롤, 보일의 검술을 전수받았다면 쉽지 않은 대련이 될 터였다. 그러나 내심 긴장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펼쳐친 카일의 검술은 어린아이도 피할 정도로 단순하고 느렸다.

“빌어먹을, 설마… 날 놀리려는 것이냐!”

비터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치며 그러쥔 검을 횡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다가오는 카일의 검을 걷어내고 드러난 가슴을 향해 분노의 주먹을 날려줄 생각이었다. 생각 같아선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코퍼 대장은 물론 상단주와 용병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카일을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비터의 생각은 곧 이어진 낮은 마찰음에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스르릉~

카일의 검을 쳐내려던, 아니 걷어내려던 순간. 검을 쥔 카일의 손목이 둥글게 회전하며 횡으로 쳐오는 비터의 검을 부드럽게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곤 오히려 활짝 열려 버린 비터의 가슴을 향해, 카일의 검이 또다시 느릿하게 다가왔다.

“헉!”

대경한 비터가 황급히 뒷걸음치다 급격히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카일의 검을 피했다. 하지만 카일의 검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꿔 집요하게 비터의 뒤를 쫓았다.

“…저 녀석, 왜 저러는 거죠?”

한쪽에서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던 버크가 코퍼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비터는 저런 느리고 단순한 찌르기에 고전할 정도로 실력이 낮지 않았다.

“너라면 어떠냐? 저 녀석의 찌르기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저런 단순한 찌르기를 못 피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버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단순하다?”

코퍼가 한심한 얼굴로 버크를 바라보았다.

“…아닙니까?”

“다시 잘 보거라! 녀석의 찌르기가 단순한지.”

코퍼의 말에 버크는 물론 주변에 앉아 있던 코퍼 용병대의 대원들도 눈을 크게 뜨고 카일의 동작을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알아보겠느냐?”

코퍼가 눈을 빛내며 버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다시 봐도 단순한데요.”

버크가 코퍼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휴~ 너희들은 어떠냐?”

대원들이 하나둘 코퍼의 시선을 피했다.

“검을 쓰는 녀석들이 그리 보는 눈이 없어서야….”

코퍼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보통의 찌르기는 허리를 중심으로 팔와 어깨를 최대한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튕겨 나가듯 검을 찌르는 방식이다. 물론 여기에 하체의 탄성을 더하면 더 빠르고 강력한 찌르기를 펼칠 수 있겠지.”

코퍼가 마치 검을 찌르듯 손을 곧게 펴 앞으로 내질렀다.

“그 정도는 검을 쓰는 자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아는 것 아닙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브린이 물었다.

“맞다. 가장 기본이지, 헌데 카일, 저 녀석의 찌르기를 보거라! 녀석의 찌르기가 마치 처음 검을 잡은 어린아이의 찌르기보다 더 느리지 않으냐. 그 말은….”

“상체를 전혀 움직이지… 않는군요.”

“정확하다. 녀석은 처음부터 상체를 움직이지 않고 검을 곧게 뻗은 채 검을 썼다. 처음 찌르기 동작 이후론 큰 변화가 없어. 단지… 부드럽고 자유로운 스탭과 가벼운 손목의 스냅만으로 비터 녀석을 압박하고 있는 거다.”

“그럼 비터가 검을 피하지 못하는 건 카일이란 녀석의 독특한 스탭 때문이란 말이군요.”

“그래, 팔이나 어깨가 아닌 스탭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터가 아무리 검을 피하려 방향을 전환해도 카일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거다.”

“그럼, 카일이란 녀석의 검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흠… 녀석처럼 느리고 부드러운 검술은 나 역시 처음이라, 지금으로선 딱히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어차피 답은 한가지 뿐이다.”

“네?”

“도저히 피할 수 없다면 힘으로 부숴버려야지!”

코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비터에게로 향했다. 대련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카일의 검을 피하기만 하던 비터의 눈빛이 달라진 건 그때였다. 이를 악물고는 처음으로 멈춰선 비터가 순식간에 몸을 돌려 다가오는 카일의 검을 향해 푸른 기운이 어린 송곳 같은 검을 마주 찔러 넣었다. 카일의 검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긴 했지만, 찌르기의 속도에서만큼은 자신이 느릿한 카일의 검보다 월등히 빨라 카일의 몸통을 먼저 꿰뚫을 거라 자신한 것이다. 과감하게 오러까지 사용하며 던진 승부수였다.

“위험-”

비터가 갑작스럽게 오러를 사용하자 깜짝 놀란 코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 대결은 목숨을 두고 싸우는 용병 검투가 아닌 카일의 실력과 내기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대련에 불과했다. 아무리 검술에서 밀린다고 해도 아직 어린 카일을 상대로 오러까지 사용한 것은 상당히 지나친 행동이었다. 당장 코퍼는 물론 마크까지도 깜짝 놀라 황급히 공터로 난입하려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카일의 검이 원을 그리 듯 회전하며 다가오는 비터의 검을 부드럽게 감싸더니, 그걸 천천히 오른쪽으로 밀어내며 날아오던 검격을 피했다. 덕분에 카일의 검에서 벗어난 비터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켜 횡으로 휘둘렀다.

후웅-

머리를 스치는 강력한 풍압에 카일이 황급히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비터의 공격을 피했다. 비록 오러가 담겨있진 않았다 해도 타격을 당했다면 뼈가 부러졌을 정도의 강력한 파워가 실린 매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카일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물러난 만큼 다시 다가서며 재차 공격해 들어오는 비터의 검을 이번엔 부드럽게 받아내고 흘려보냈다.

“휴~ 이봐! 언제까지 하나의 검만 사용할 거지? 이번 대결의 목적은 분명 검 두 개를 모두 사용하는 것 아니었나?”

뒤로 훌쩍 물러난 비터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시종일관 강맹한 공격을 퍼부으며 카일을 압박한 비터는 이미 대부분의 체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이와 달리 모든 공격을 최소한의 힘과 움직임으로 부드럽게 받아 흘리거나 밀어낸 카일은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상태여서 사실상 이번 대련의 승부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승부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대련의 목적은 카일이 두 개의 검을 모두 사용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비터로선 비록 대련에선 졌지만 내기에서까지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는 한데… 제가 이 검을 뽑으면 그 검, 다시 쓰긴 힘들 겁니다.”

“흥! 지금까지 너의 특이한 검술에 놀라긴 했지만, 그런 얄팍한 검에 내 검이 손상이라도 갈 것 같으냐! 어림도 없는 소리, 제대로 검이 부딪혔다면 분명 네 검이 먼저 부러졌을 거다.”

비터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카일의 특이한 검술에 밀리긴 했지만 대련 중 검과 검이 실질적으로 마주 부딪힌 적은 없었던 만큼 자신의 검이 카일의 검에 밀려 부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휴- 좋습니다. 원한다면….”

비터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쉰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 선공 때와 마찬가지로 비터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비터는 처음과 달리 이번엔 카일의 검을 막지 않고 오히려 카일을 향해 마주 찔러 들어갔다. 카일이 이전과 같이 자신의 검을 밀어내거나 피할 거란 생각에 비터가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터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까지 느릿하게 움직이던 카일의 신형이 비터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스르릉-

그와 동시에 들려온 낮은 마찰음, 그리곤 왼쪽 아래에서 위로 섬뜩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위기를 감지한 비터가 본능적으로 찔러가던 검을 아래로 내렸다.

까앙~

순간 일어난 강렬한 충격과 짜릿한 통증, 그리고 밤하늘 위로 울려 퍼진 금속음.

툭-

잘려 나간 비터의 검이 바닥 위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까지 카일의 검술이 부드럽고 정교했다면, 이번 검격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면서도 강력한 파워를 지닌 도격 이었다.

갑작스럽게 바뀌어버린 카일의 검술에 비터는 물론 대련을 지켜보던 용병들까지 할 말을 잃고 카일을 바라보았다.

“검이… 바뀌었다.”

침묵으로 휩싸인 공터 위로 브린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서야 용병들의 눈이 카일의 손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비터의 검을 부드럽게 밀어내던 양날 검은 사라지고, 카일의 손엔 완만하게 휘어져 올라가는 독특한 외날 검이 들려있었다.

“언제 검이 바뀐 거야!”

용병들이 카일의 손에 들린 검을 보며 당황한 듯 소리쳤다. 검이 바뀌는 순간을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비터를 향해 뛰어드는 순간 정도로 짐작할 뿐이었다.

“끝났군.”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코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코퍼의 검이 잘려 나갔으니 더 이상의 대련은 무의미했다.

“형님… 보셨습니까?”

코퍼를 향해 부단장인 야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어떠냐, 보았느냐?”

“보지 못했습니다.”

“나 역시 은빛 궤적만 확인했다.”

“오러를 사용한 것 같진 않습니다. 검술이 저 정도 실력이면 적어도 소드 유저, 어쩌면 엑스퍼트에 올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어쨌든 용병계에 대단한 천재 검사가 나타났단 말이군, 용병검술로 어린 나이에 벌써 엑스퍼트를 넘볼 정도의 실력이라 대단하군.”

“젊었을 적 알려진 붉은 트롤의 검술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거칠긴 했지만, 용병검술 중에서도 상위검술로 알려져 있었죠.”

야투의 말에 코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년 동안 아일론 상회의 호위를 맡아오며 샤론 마을을 오갔지만 코퍼와 보일은 그다지 친분을 쌓진 못했다. 붉은 트롤이란 악명을 가진, 용병계에선 제법 유명했다 알려진 인사였지만, 젊은 시절 이미 용병계를 떠났을 뿐 아니라 지금은 고작 오지마을 자경 대장이나 하고 있으니 다들 보일의 실력을 그리 높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제 확인은 다 하셨습니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내려보던 비터가 카일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에서도 대련에서도 카일에게 참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내가 졌다.”

“틀렸습니다.”

카일의 말에 비터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냐?”

“저와 대련한 이유가 승부를 보기 위해서였습니까?”

“그건….”

비터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애초 대련의 목적은 승부보다는 카일의 검술, 정확히는 형태가 서로 다른 검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내기였다.

“이번 대련은 제 검과 검술을 확인하기 위함일 뿐, 승패를 결정 짓는 대련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대련에 승자도 패자는 존재하지 않죠.”

일그러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비터가 사납게 카일을 노려보았다.

“지금… 날 동정하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카일의 말에 비터가 반 토막 난 검을 들어 올렸다.

“이것이… 내가 패했다는 증거다. 아무리 부정해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란 말이다.”

비터가 충혈된 눈으로 카일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 갓 성년에 들어선 카일에게 패했단 사실보다 그의 동정 어린 말이 비터를 더욱 괴롭게 했다.

“제가 지금 비터 님을 동정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눈앞의 부러진 검이 바로 진실이다. 이것을 보고도 내가 패하지 않았단 말이냐?”

비터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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