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300화 (300/404)

외전 - 34. 오크마을(2)

“걱정 마세요. 오늘 이후 더 이상 오크 마을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자신만만하구나! 하지만 3백이 넘는 오크다. 아무리 너와 내가 함께 한다고 해도 토벌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보일은 상급 엑스퍼트다. 마음만 먹으면 치고 빠지는 전술로 혼자서도 오크 마을 공격할 수는 있지만, 그건 오크들을 쫓아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소드 엑스퍼트인 카일이 함께 있다고 해도 3백이 넘는 오크들을 모두 상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라이플의 위력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죠? 이번에 확실히 보여드리죠.”

카일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협곡을 가로질러 오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바위산을 올랐다.

“이곳이에요.”

카일이 자리 잡은 곳은 외부로 커다란 바위가 툭 튀어나와 오크 마을 전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크구나, 오크의 숫자도 적지 않아.”

“지난번 왔을 때보다 오크의 숫자가 늘어난 것 같아요.”

“떠돌이 오크들 일부를 받아들인 모양인데… 이 정도 세력이라면 병력을 끌고 오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카일이 바닥에 넓은 가죽 한 장을 깐 뒤, 등에 메고 있던 가죽집에서 라이플과 탄환이 든 주머니를 꺼냈다. 대략 30발 정도의 탄환이 든 가죽 주머니였다.

“이제부턴 아버지께서 절 지켜 주셔야 해요.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걱정 마라!”

보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일은 숨을 고르며 총신에 붙은 가늠좌를 바라보았다.

오크 마을은 조잡하고 엉성한 가지나 진흙을 엮어 만들었는데 생각 외로 새끼와 암컷 오크의 숫자가 지난번보다 훨씬 많았다. 대신 수컷 오크들은 마을 외곽을 지키거나 사냥을 떠난 건지 상대적으로 숫자가 조금 줄어 있었다.

탕-

호흡을 가라앉힌 뒤, 카일의 라이플에서 낮은 폭음과 함께 첫발이 발사되었다.

퍼억-

마을 외곽, 홀로 떨어져 있던 오크 전사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몬스터 특유의 녹빛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철컥-

부드럽게 볼트를 당긴 카일이 신속히 두 번째 탄을 장전해 발사했다. 초탄에 맞아 쓰러진 오크를 발견한 또 다른 오크가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탕-

퍽-

달려가던 오크 전사가 피를 뿌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럴 수가…!”

한발씩 신중하게 발사되는 라이플의 탄환에 오크들이 쓰러져가자, 보일의 얼굴이 놀라움을 넘어 경악으로 번졌다. 카일이 만든 라이플이라는 마법 무구는 그가 알고 있는 마법적 상식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마법의 발현 거리는 2백 미터를 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카일은 그런 상식에서 벗어나 3백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리에서 오크를 사냥하고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하다니….”

“놀랄 것 없어요. 마법 발현 거리가 늘어난 건 아니니까요.”

“그건 무슨 뜻이냐?”

“마법은 라이플 안에서 탄환을 밀어내는 역할만 해요. 일종의 추진력만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되죠. 실제 오크를 죽인 건 마법이 아니라 탄환이에요.”

“아! 탄환이 활이라면 익스플로젼 마법은 활이란 말이구나!”

“정확해요. 마법의 힘을 물리력으로 바꾼 거죠.”

실제로 마법은 발현되는 일정한 한계 안에서의 위력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단지 마법의 놀라운 힘만 보았지, 그 마법을 다른 힘으로 바꾸어 사용하겠단 생각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됐어요. 이 정도면 마을에 남은 오크 전사의 숫자가 제법 줄었을 거예요. 지금 바로 마을로 들어가죠.”

카일이 황급히 라이플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 가르쳐 주려 온 것이 아니냐?”

보일이 자신의 등 뒤에 메어놓은 산탄총을 툭 치며 물었다.

“그건 제가 가진 라이플과는 사용 방법이 달라요. 일단 내려가서 가르쳐 드리죠.”

카일이 보일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라이플의 사용법을 알려주겠다며 사냥을 나와선 카일 본인만 신나게 라이플을 쏘아대곤 오크 마을로 들어가려 하자 보일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던 것이다.

“내려가서?”

“일단 따라오세요.”

카일이 보일을 지나쳐 빠르게 산을 내려가자, 보일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카일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카일과 보일이 오크 마을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마을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무려 30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갑작스럽게 죽어버리자 오크들이 큰 혼란에 빠지고 만 것이다.

“라이플을 주세요.”

카일이 손을 내밀었다.

“지금 말이냐?”

“네.”

보일이 라이플을 꺼내 카일에게 넘겼다.

철컥-

카일이 총열을 꺾은 뒤 총열 각각에 탄환을 하나씩 장전했다.

“확실히 앞서 본 것과는 사용 방법이 전혀 다르구나!”

보일이 호기심 어림 표정으로 카일의 손에 들린 라이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격의 기본은 여기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는 거예요. 그래야 탄환이 발사되었을 때 라이플의 반동을 무리 없이 받아 낼 수 있죠.”

쿠와악-

그때 마을에서 달려 나온 두 마리 오크들이 앞서 서 있는 카일을 발견하곤 맹렬하게 돌진했다.

타앙-

카일이 들고 있던 라이플에서 커다란 폭음과 함께 불꽃이 일었다.

퍼버벅-

달려 나오던 오크의 몸이 순식간에 걸레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오크가 당황한 듯 주춤 멈춰 섰으나, 그렇다고 카일이 오크를 살려줄 리 없었다.

타앙-

퍼버벅-

“대단… 하구나!”

보일이 쓰러진 오크들을 살피며 놀란 듯 중얼거렸다.

“사거리가 줄어든 만큼 근접거리에서의 파괴력은 대단하죠. 하지만 이걸 사용하면 온전한 가죽을 얻긴 힘들 거예요.”

“가죽이야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보일이 환하게 웃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제가 몇 번 더 보여드릴게요. 그런 다음엔 실전에서 직접 사용해 보는 게 좋겠어요.”

카일의 말에 보일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사용법은 충분히 봤다. 걱정 말거라!”

“생각보다 쉽지 않을 텐데, 정말 하실 수 있겠어요?”

“얼마든지!”

보일의 말에 결국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라이플을 건넸다.

“사용하실 때 조심하세요. 라이플을 잘못 사용하면 적뿐 아니라 자신도 다칠 수 있으니까요.”

“알겠다.”

카일의 말에 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이플을 건네받았다. 순간 지금까지 온화했던 보일의 모습은 사라지고 노련한 용병으로 돌아왔다.

“북쪽은 절벽이고 동쪽은 지형이 험난하니 정면과 남쪽만 틀어막으면 토벌할 수 있을 거다. 내가 정면으로 갈 테니 남쪽으로 돌아오거라.”

“조심하세요. 오크들이 정면 쪽으로 몰릴 거예요.”

“걱정 말거라! 아비가 상급 엑스퍼트인 걸 벌써 잊었느냐. 오크 정돈 얼마든지 몰려와도 상대할 수 있다.”

보일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드리며 곧장 탄환을 장전한 뒤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카일이 빠르게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보일의 공격에 밀려 남쪽으로 오크들이 탈출하기 전 길목을 막아야만 했다.

“휴, 다행히 늦지 않았나 보군.”

카일이 마을 외곽을 돌아 남쪽으로 내려왔을 땐 이미 마을 안쪽에서 폭음과 오크들의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정문 쪽에서 나타난 인간이 무차별적인 살육을 시작하자 오크들이 모두 그곳으로 몰려가면서 상대적으로 남쪽 길목엔 오크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취익- 인간… 이다.”

마을 안으로 막 들어선 순간 오크 전사 하나가 커다란 클럽을 손에 쥐곤 괴성을 지르며 카일을 향해 달려왔다.

“좋아! 그럼 나도 시작해 볼까!”

빠르게 달려오는 오크를 향해 마주 달려드는 순간 갑자기 측면에서 뛰어오른 오크 한 마리가 카일의 머리를 향해 낡은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취익~ 죽어라! 인간.”

“헉!”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날아든 공격에 깜짝 놀란 카일이 급히 몸을 비틀었다.

찌이익-

아무리 낡았어도 날이 달린 글레이브가 어깨를 스치자 레더아머를 길게 갈랐다. 조금만 늦었다면 지금쯤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후웅-

카일이 돌아서는 순간 측면에서 거대한 클럽이 날아들었다.

“젠장!”

카일의 허리가 바닥에 닿을 듯 급격히 뒤로 꺾였다. 하필 몸을 피한 곳이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오크의 정면이었던 것이다. 카일이 몸을 빙글 돌아 오크에게서 멀어졌다.

“휴… 죽을 뻔했다.”

카일이 탁한 숨을 내뱉었다. 보일을 걱정해 놓곤 정작 카일 본인이 오크를 상대로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일이 자신을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오는 오크를 바라보았다. 잠깐 사이 벌써 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몰려와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스르릉-

검을 뽑아 든 카일이 다가오는 오크들을 노려보았다.

“와라!”

카일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주변을 포위한 오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가장 앞서 달려든 오크의 클럽이 카일의 검에 부드럽게 밀려나 측면에서 달려든 오크의 가슴을 때렸다.

퍼억-

“크억-”

가슴을 얻어맞은 오크가 피를 토하며 바닥을 뒹구는 사이, 클럽이 밀려나며 드러난 오크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오크들이 빠르게 다가오며 클럽을 휘둘렀다. 영악하게도 동료의 심장에 검이 깊숙이 파고드는 순간을 노려 카일을 공격해 들어온 것이다.

퍼억-

카일이 과감하게 검을 포기한 채 뒤로 물러났다.

“취익~”

카일의 손에서 무기가 사라지자 오크들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스각-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카일의 허리에서 발출된 검광이 은빛 호선을 그리며 가장 앞서 다가오는 오크의 목을 베어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오크의 머리가 바닥으로 뚝 떨어지더니 곧이어 머리가 사라진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카일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오크 속으로 뛰어들며 환도를 휘둘렀다.

스각-

커다란 돌도끼를 휘두르며 다가선 오크의 허리를 베어낸 카일이 몸을 돌려 뒤에서 달려든 오크를 클럽과 함께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곤 황급히 뒤로 두 걸음 물러나 허리를 찔러오는 날카로운 흑요석 창을 피한 뒤, 재빨리 환도를 휘둘러 창대를 잘라냈다. 동시에 오크의 심장에 박아 넣었던 검을 뽑아 뒤에서 달려드는 오크의 클럽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이어서 드러난 목을 향해 카일의 검이 정교하게 파고들었다.

“커억-”

놀라운 발도술 이후로 강력한 도격이 쏟아지는가 하면,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하고, 세밀한 검술도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카일 주변에 쓰러진 오크들은 무기째 베어지거나 심장 등의 급소를 정확히 찔려 죽은 상태였다. 서로 상반된 형태의 사체들이 널브러져, 마치 다른 형식의 검술를 익힌 두 사람이 오크를 상대한 듯 보였다.

“휴~”

카일이 탁한 숨을 토해낸 뒤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곳곳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늦었구나.”

보일이 카일을 힐끔 바라보더니 조잡한 나무와 진흙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움막으로 들어섰다.

“취익-”

“캭-”

집 안쪽에서 들려온 오크들의 고통에 찬 괴성에 카일이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불에 타지 않은 움막을 찾았다. 보일은 지금 마을을 돌아다니며 암컷이나 어린 오크들을 죽이고 움막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암컷 오크는 여섯 달이면 출산을 하기 때문에, 오크 마을 토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죽여야 할 대상은 암컷 오크였다. 어린 오크들 역시 태어난 지 4~5년만 지나면 성년 오크가 되어 마을에 큰 위협이 되기에 안타깝지만 살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산속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마을 중심부 위주로 불을 놓았고, 외곽을 돌며 불이 번지거나 살아남은 오크가 밖으로 도주하는 것을 막았다.

잠시 소강상태였던 오크 토벌은, 사냥을 떠났던 80여 마리의 오크 전사들이 마을이 불타는 모습에 황급히 돌아오면서 또다시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마을이 불타고, 새끼와 암컷이 죽임을 당한 분노에 오크들은 부나방처럼 달려들었지만, 오크들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달려들지 못하도록 불을 등지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오크를 차근차근 상대했기에 비록 80여 마리의 오크지만 큰 무리 없이 소탕할 수 있었다.

보일과 카일은 서둘러 마을로 돌아왔다. 수백에 달하는 오크들이 몰살당하며 흘린 피 냄새 덕분에 언제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몰려들지 몰라 서둘러 자리를 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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