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97화 (외전) (297/404)

외전 - 31. 아일론 상회(1)

[30화에서 이어집니다.]

아일론 상회는 변방의 영지를 다니며 생필품 또는 식량이나 소량의 무기를 판매하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거래 품목은 몬스터의 부산물이었다. 특히 오크 랜드와 인접한 다핸 남작령, 그 중 남작령 최남단에 위치한 사론 마을은 매달 수십 장이 넘는 오크 가죽과 부산물을 거래하는 몇 안 되는 중요 거래처 중 하나였다. 그런 곳이 이 년 전부터 다른 마을 서너 곳은 돌아야 나올 정도로 오크 가죽과 부산물 수량이 부쩍 늘면서 최근 들어 아일론 상단 최고의 거래처로 급부상했다.

“토일, 남은 스크롤이 몇 장인가?”

“지난 오크 침입 이후 마을마다 스크롤 판매가 늘 거란 생각으로 조금 많이 준비했더니 제법 남았습니다. 대략 40장 정도는 될 것 같군요.”

“음… 조금 많이 남았군.”

“상단주님! 사론 마을에서 과연 이렇게 많은 스크롤을 사려고 할까요? 이전에도 제법 많은 양을 매입한 걸로 아는데….”

“보일 대장이 되도록 많이 가져다 달라고 했으니 자경단이 매입하지 않아도 보일, 그 친구가 대신 구매해 줄 거야! 그나저나 이전에 알아본 건 어찌 되었나?”

“예! 일단 중급 마나석은 어떻게 구할 수는 있었지만, 마법사를 알아보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중급 마나석이면 최소 2서클 이상의 마법진은 인챈트 시켜야 할 텐데, 그 정도면 최소 4서클에서 5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구해야겠군.”

“네, 4서클만 되어도 대부분이 영지 소속이거나 마탑에 귀속된 자라 귀족이 아니라면 만나기도 어려운 데다가, 친분이 없다면 폐쇄적인 마법사들이 쉽게 만나주지도 않을 겁니다. 설령 만난다 해도 상당한 골드를 요구 겁니다.”

“그러니 마법 무구의 가격이 비싼 것 아니겠나…. 할 수 없지, 일단 보일 대장을 만나보고 결정은 그 친구에게 맡기도록 하지!”

아일론 상회가 샤론 마을에 도착한 건 영주 성을 떠난 지 나흘이 지나서였다.

“이게… 대체!”

상단을 이끌고 마을로 들어선 마티슨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셨군요, 상단주님.”

마티슨에게 다가간 보일이 웃으며 맞이했다.

“이게… 정말 이번에 잡은 오크들이란 말인가?”

마을 회관 옆, 공용 창고에서 오크 가죽과 부산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 거래하던 것의 배는 거뜬히 넘어갈 정도로 엄청난 물량이었다.

“오크만 대략 삼백여 마리, 잡다한 가죽까지 포함하면 가죽만 5백여 장은 충분히 넘을 겁니다. 혹, 지급할 대금이 부족하다면, 다음번 방문에 정산해 주셔도 무방합니다.”

“허허, 그런 소리 말게, 우리 아일론 상단이 비록 작긴 하지만, 이 정도 수량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네.”

마티슨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네. 아일론 상단을 그만큼 믿고 있다는 말이니 오히려 고마워해야겠지.”

보일의 사과에 마티슨이 고개를 저었다. 보편적으로 이런 깊은 오지 마을과의 거래에는 현물을 통한 물물거래가 기본이었고, 부수적으로 물건에 대한 골드가 지급될 뿐 외상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간혹 물건만 가져가고 대금 지급을 미루었다가 이후 거래를 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렇게 거래를 끊는다고 해도 오지 마을에서 상단을 찾아 영지를 벗어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영주에게 하소연했다간 오히려 누락된 물품만큼의 과도한 세금과 처벌까지 감수해야만 했기에 아예 찾길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상단이 거래를 끊으면 부족한 생필품과 부산물 판매를 위해 직접 영지까지 운송하는 불편을 감당해야 했다. 때문에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상단이나 상회가 아니라면 외상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가 마티슨 님을 믿지 못한다면 누굴 믿겠습니까?”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더 고맙군. 헌데 정말 이걸 다 마을에서 잡은 것인가?”

“마을에서 잡았다고 보긴 어렵겠군요.”

”그럼…설마 마을에 영지 기사단이라도 다녀간 건 아닌가?”

물론 진짜로 기사단이 이곳에 와서 오크를 청소하고 갔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기사들이나 영주가 잡은 오크를 그냥 놓고 갈 일도 없을뿐더러, 그랬다간 오히려 잡은 오크의 가죽을 벗기고 기사들을 대접하느라 마을에 남은 식량이 거덜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번에 새로 전진 요새를 건립했습니다. 영지병도 따로 지원받은 덕분에 사냥이 좀 더 쉬워졌을 뿐입니다. 아마 이 정도 수량은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겁니다.”

“허! 영주께서 영지병까지… 설마 자네, 영주께 몸을 의탁하기로 한 건가?”

“…사정이 있어, 천인장의 직책을 받았습니다.”

“천인장이라… 역시 작위를 거절한 건가?”

“전 마을을 떠날 생각도, 영주에게 매여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하긴, 자네 같은 사람이 이런 작은 영지에 머물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

마티슨은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을 회관 앞에 쌓인 물품 정리가 끝났는지 토일이 다가와 마티슨에게 커다란 양피지를 내밀었다.

“오크 가죽이 총 303장에 래빗 가죽이 30장, 그리고 잡다한 동물 가죽이 대략 250여 장 정도 됩니다. 여기서… 자경대 몫으로 오크 가죽이 55장 마을 공용으로 38장과 잡다한 동물 가죽, 그리고 영지병 몫으로 오크 가죽 60장이 배정되었습니다. 남은 오크 가죽 150장과 래빗 30장은 모두 보일 자경 대장 몫이라고 합니다.”

“자네가 저걸 다 잡았단 말인가? 더구나 래빗을 30마리나 잡다니!”

래빗은 몸길이가 80센티에 달하는 설치류로 육질이 담백하고 맛이 좋았다. 하지만 래빗의 진정한 가치는 몸통보다도 더 길고 아름다운 붉은 꼬리로, 귀부인들이 가장 선호하고 아끼는 귀한 고급 털가죽 중 하나였다. 하지만 워낙 깊은 산속에서나 살아, 녀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설령 발견한다 해도 빠르고 영리할 뿐 아니라 경계심도 상당히 강해 사냥으로 잡기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간혹 덫에 걸리는 녀석이 있긴 하지만 아일론 상단이 한 해 동안 남부를 꼬박 돌아도 20마리 이상은 구하기 힘들 정도로 귀한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을 지금 30마리나 잡았다니 마티슨으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 래빗을 30마리나 잡아놓고 단순히 운이라 치부하는 건가? 그러지 말고 말해보게, 래빗을 사냥할 방법을 찾은 건가?”

마티슨이 은근하게 물었다, 만약 래빗 가죽을 대량으로 매입하게 된다면 앞으로 몬스터 부산물과 가죽 시장에서 아일론 상회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카일이 절벽 한쪽에 서식하는 녀석의 소굴을 발견한 덕분에 어렵지 않게 사냥한 겁니다.”

래빗 사냥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간혹 지금처럼 수십 마리의 래빗이 거래되기도 한다. 바로 녀석들이 집단으로 서식하는 소굴을 발견했을 경우다. 워낙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은 아니니 마티슨으로선 믿을 수밖에는 없었다, 물론 래빗은 카일이 라이플을 이용해 원거리 저격으로 사냥한 녀석들이지만 그렇다고 마티슨에게 순순히 밝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허 참,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마티슨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마을과 자경단의 몫으로 넘긴 가죽들은 필요한 생필품으로 교환해 드리고 영지병에게 지급될 것들은 모두 골드로 지급했습니다.”

“그럼 이제 보일 대장 것만 남은 것인가?”

“그렇습니다.”

토일에게 받은 양피지를 살핀 마티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온 물량 대부분을 판매하고, 추가 매입까지 했으니 이번 상행은 아일론 상단으로서도 제법 큰 이득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거래가 끝나지 않았다.

“금액으로는 얼마나 됩니까?”

“일단 오크 가죽 대부분 상태가 좋아 장당 30실버, 그리고 래빗 가죽은… 대부분 성체에 꼬리가 깨끗하고 털과 가죽 상태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최근 거래 시세가 올라 1골드면… 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토일은 슬쩍 마티슨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왕도에서 거래되는 래빗 가죽 한 장의 가격은 일반적으로 4골드 50실버에서 60실버 사이였지만, 최근 수요가 늘면서 5골드에 육박했다. 아일론 상단 입장에선 평소 매입가격인 70실버에서 80실버에 매입할 수도 있었으나, 오랜 거래 거래처인 보일과의 관계를 생각해 토일이 1골드까지 가격을 높여 거래를 제안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토일이 혹시나 자신이 가격을 너무 부른 건 아닌지 마티슨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다행히 마티슨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상당히… 높군요.”

보일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사실 왕도로 가져가면 이보다 몇 배는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 하지만 왕도까지의 운송도 문제거니와 래빗 가죽을 비싼 값에 거래하려면 따로 마법적인 가공이 필요해 추가 비용을 고려, 1골드만 책정했으니 이해해주게.”

“아닙니다. 1골드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럼, 거래를 하겠나?”

“물론입니다.”

“잘 생각했네.”

마티슨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반적인 래빗 가죽의 거래라면 토일의 가격책정엔 큰 잘못이 없었다. 단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을 뿐이다. 왕도에서 거래되는 래빗 가죽 한 장은 최근 가격급등으로 5골드에 거래된다. 귀한 가죽이긴 하지만 가죽 한 장으로 만들 수 있는 물품엔 한계가 있었다. 보통 가죽 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 20마리에서 30마리 이상의 래빗 가죽을 모아야 하기 한 벌의 가죽 코트 제작에 보통 1년 이상이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래빗 가죽 코트의 거래 가격은 최소 300골드 이상이다. 그러니 마티슨으로선 이번 거래로 마법가공비와 코트 제작비를 제외하고도 수 십배의 이익을 본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럼 총금액이… 오크 가죽이 450실버, 45골드에, 래빗 가죽 30골드, 총 75골드입니다.”

보통 4인 가정의 한 달 생활비가 5골드 이하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금액이었다.

보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티슨을 바라보았다.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실까요! 마침 부탁드릴 것도 있습니다.”

“어쩐 일인가? 자네가 날 초대까지 하다니, 이상하단 말이야?”

마티슨의 과장된 표현에 보일이 고개를 젓고는 앞서 걸어가 버렸다.

“어허! 이 사람 그렇다고 혼자서 가나, 같이 가세!”

마티슨이 보일의 뒤를 급히 따르며 토일을 돌아봤다.

“토일 자네는 물품 정리하고 회관에서 기다리고 있게.”

“알겠습니다.”

허둥지둥 보일을 따라 한참을 걸어서야 마티슨은 보일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일!”

보일의 부름에 뒷마당에서 검술 수련 중이던 카일이 걸어 나왔다.

“인사드리거라! 이분은 아일론 상회의 상단주이신 마티슨 님 이시다.”

“카일입니다.”

카일이 정중하게 마티슨을 향해 인사했다. 카일과 아일론 상단주인 마키슨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검술수련에 매진했고, 최근엔 단독정찰로 오크랜드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아일론 상단과 마주칠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허허,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한다더니 여기, 거인이 한 명 더 있었군.”

카일이 정중하게 인사에 마티슨이 놀란 얼굴로 카일과 보일을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올해 18세가 되면서 키는 이미 190을 넘었고, 오랜 검술 수련 때문인지 날렵한 체구가 상대적으로 보일보다 작고 왜소해 보였다. 하지만 아직 성장기인 카일의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보일보다 더 크게 자랄 것은 자명해 보였다.

보일과 마티슨이 식탁에 앉자 카일은 미리 준비해 둔 찻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은 뒤 작은 화로 위에서 무쇠 주전자를 들었다, 최근 기온이 점점 내려가 항시 따듯한 차를 끓일 수 있게 만든 숯 화로였다.

카일은 찻잔 세 개를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린 뒤 숯처럼 새카만 작은 조각을 넣고 따뜻한 물을 부었다.

“차로 버섯이라는 겁니다! 땅속에서 자라는 버섯인데 평범한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고 간혹 래빗들이 버섯을 먹기 위해 땅을 팔 때나 찾을 수 있는 귀한 버섯입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카일은 마티슨과 보일에게 찻잔을 건넨 뒤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마티슨은 차를 마시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에 든 찻잔을 살피고만 있었다.

“이보게 보일! 이건 어디서 난 건가?”

마티슨이 손에 든 찻잔을 보일에게 내밀며 물었다. 마티슨의 물음에 보일은 무슨 소리냐는 듯 마티슨을 보며 되물었다.

“조금 전 말했듯 차로 버섯이라고….”

“아니! 이 찻잔 말일세, 어디서 난 건가?”

마티슨이 손에 든 찻잔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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