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92화 (292/404)

292. 마왕(2)

“여기 아이언 용병대의 대장이자 이사벨라 왕녀의 후계자인 카일 드 스파더- 마일론 남작을 데려왔습니다.”

“마일론? 자네가 마일론 가문을 이었단 말인가?”

마파린 후작이 깜짝 놀라 물었다. 지금껏 이사벨라 왕녀의 후계자로만 생각했던 카일이 힐튼 남작의 뒤를 이어 마일론 남작위를 얻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남작님께서 마일론 가문의 인장을 넘겨주셨습니다.”

“허허, 그런 일을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니… 이거 서운하다고 해야 하나?”

마파린 후작이 씁쓸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대가 힐튼 남작가의 작위까지 이어받는 것인가?”

“아닙니다. 힐튼 남작가에 대해선 후작께서 결정할 일이라 하셨습니다.”

“하하, 역시 그 사람 다운 말이군. 알겠다. 이일은 이후 힐튼 남작과 상의 하겠다.”

“감사합니다.”

카일이 마파린 후작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고개를 들어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3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누님의 아들이군.”

“3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카일입니다.”

“듣던 대로군. 덩치도 상당하고 말이야.”

바디체인지를 겪으며 몸이 줄어들고 슬림해지긴 했지만 카일은 여전히 거구였다.

“왕자께선 듣던 대로 약속을 너무 쉽게 어기시는군요.”

카일의 말에 왕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귀족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을 비난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하, 조카께서 화가 단단히 났나 보군.”

“그렇습니다. 화가 아주 많이 났다고 할 수 있죠. 절 납치하려는 것도 참아가며 도와드렸는데, 이런 식으로 약속을 어기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카일 경, 말이 심하군. 여긴 귀족들이 모인 자리일세. 자중하게.”

케시언 백작이 황급히 카일을 말렸다. 설마 카일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왕자에게 불만을 토해낼 줄은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아니, 이건 심각한 문제일세.”

중립 귀족의 수장인 바이센 백작이 일어나 케시언 백작을 노려보더니 카일을 향해 물었다.

“카일 남작, 왜 왕자께서 자넬 납치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절 납치한 뒤 이를 빌미로 붉은 거미들을 장악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심엔 조세츠 자작이 있지요.”

“그게… 사실인가?”

“조세츠 자작에게 알아보십시오. 그도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왕자에게 실망한 채 영지로 돌아갔으니 말입니다.”

카일의 말에 바이센 백작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중립 귀족들의 웅성거림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우리가 누구 때문에 왕자를 지원했는데…”

“공주에 대한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허허, 누이를 배신할 정도면 우리 같은 귀족들이야 헌신짝처럼 버릴 것이 아닌가?”

중립 귀족들의 원성이 점점 커질수록 왕자의 얼굴엔 비틀어진 미소가 어렸다.

“이렇게…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인가?”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절 이용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하하,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아직 현실을 모르나 본데… 조카에게 현실을 제대로 알려줘야겠군.”

왕자가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지는 순간 두꺼운 천막 사이로 기사들이 나타나 이중 삼중으로 귀족들을 포위했다.

“왕자께서 준비를 많이 하셨군.”

마파린 후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중립 귀족들과의 마찰 정도야 그저 웃으며 지날 수는 있지만 병력 동원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후작을 비롯한 왕국 북부 귀족들까지 모두 죽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떠냐! 바로 이것이 현실이란 것이다.”

왕자의 말에 당황한 귀족들과는 달리 카일의 얼굴엔 오히려 미소가 어렸고, 펠론 자작은 왕자를 한심한 얼굴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카일 남작, 어서 피하게. 우리 중립 귀족들이 뒤를 막아주겠네.”

“감사합니다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카일이 바이센 백작의 팔을 밀어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케시언 백작의 명에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일제히 달려들려던 순간이었다. 카일이 한발을 크고 강하게 내디뎠다. 언젠가 아킨스 자작령에서 펼쳤던 진각이었다.

꽈앙-

단단한 바닥이 카일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쩌어억 갈라져 나가자 기사들이 깜짝 놀라 주춤 물러났다.

“돌아가지 않으면 죽는다.”

카일이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며 오러를 집중시켰다.

순간 엄청난 기운과 함께 황금빛 오러가 검신을 뒤덮었다.

“오러 블레이드…!”

“소드 마스터….”

귀족들은 들이 놀란 얼굴로 카일의 황금빛 오러 블레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삼왕자와 케시언 백작이었다.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두 사람에겐 소드 마스터의 등장은 절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크하하하! 드디어 찾았구나!-

머리를 뒤흔드는 엄청난 괴성과 심연을 자극하는 공포에 귀족들은 물론 왕자까지 바닥을 뒹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건…!”

카일이 황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쿠앙-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밀어닥치며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영주성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드래곤.”

하늘 위를 선회하며 마구잡이로 마법을 날려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화이트 드래곤의 위력이 경악스러웠다.

“카일!”

카일을 발견한 이엘이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왔고, 시안느와 사하, 에밀이 그녀를 뒤쫓았다.

“아이언 용병대를 찾지 못했습니까?”

카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인을 비롯한 멀린과 아이언 용병대의 간부들이 달려왔다.

“카일 님, 무사하셨군요.”

“세인 경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아이언 용병대는 이대로 열곡을 타고 철수합니다.”

“그럼 원정은…?”

“드래곤이 나타난 이상 전투는 무의미합니다. 일단 우리의 최종목표는 살아남는 것입니다.”

꽈아앙-

또다시 거대 폭발과 함께 주변이 불바다로 변했다.

“알겠습니다. 꼭 살아남겠습니다.”

“서둘러 가십시오.”

“대장께선 어쩌실 생각입니까?”

“전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반드시… 무사 하십시오.”

카일에게 고개를 숙인 뒤, 마라스와 제이콥이 황급히 달려갔다.

“마크, 비터! 넌 어쩔 거냐! 동부 영지로 돌아간다고 해도 말리진 않겠다.”

“아니, 아직 우린 배울 게 남았다. 우리도 아이언 용병대와 함께 움직인다.”

“좋다. 살아서 만나지.”

“좋습니다. 살아서 만나죠, 형님.”

카일의 말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비터가 카일의 어깨를 두들기며 황급히 아이언 용병대를 향해 달렸다.

“저 녀석은 절 찾기 위해 온 겁니다. 일단 녀석을 이곳에서 최대한 떨어트려 놓아야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겠어요.”

“놓고 가면 가만두지 않겠어.”

이엘과 사하가 카일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고, 시안느와 에밀의 눈빛도 단호했다.

“일단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먼저입니다.”

“어디로 가야할 것 같습니까?”

“드래곤을 상대하려면 한 곳뿐입니다.”

멀린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두르죠.”

카일이 황급히 시카니스를 불렀고 세인 역시 자신의 골드 와이번을 불러냈다.

-크하하, 거기 있었구나!-

시카니스가 하늘 위로 날아오르자 세상을 파괴할 듯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난사하던 화이트 드래곤 아르미스가 시카니스의 뒤를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갑니다.”

카일이 황급히 기수를 남쪽으로 잡았다. 아이언 용병대와 귀족들이 빠져나갈 유일한 탈출로를 보호하기 위해선 드래곤을 열곡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아야만 했다.

“이놈, 거기 서라!”

아르미스가 시카니스를 향해 다시금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베어리!”

“디바인 쉴드”

사하와 에밀이 황급히 보호 마법을 펼치는 사이 시카니스가 서서히 기수를 올리기 시작하며 속도를 높였다.

“감히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르미스 역시 점점 속도를 붙이며 시카니스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린넨 백작령입니다. 저곳만 지나면 곧 천공탑이 보일 겁니다.”

카일이 구름 사이로 스치듯 지나는 백작성을 뒤로하고 하루를 꼬박 날아 드디어 목적지인 크레센트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은 카일이 알던 크레센트 숲과 천공탑이 아니었다. 엄청난 숫자의 병사과 기사들이 천공탑 일대를 포위한 채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그나마 천공탑을 지키는 스톤 골렘과 장원 사람들이 공격을 막아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위태롭게만 보였다.

“저기 다핸 남작가의 깃발이에요.”

이엘의 외침에 카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성을 향했다. 성벽 위에서 맹렬히 검을 휘두르는 남작과 샤론 마을의 자경단, 그리고…

“아버지…!”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보일 역시 종횡무진 검을 휘두르며 성벽을 오르는 병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쿠아앙-

카일이 당황한 나머지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사이 화이트 드래곤 아르미스의 마법의 성벽에 작렬했다. 순간 뿌연 기운이 흘러나와 성벽을 보호했지만, 주변을 에워싼 적들까지 보호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쩌엉-

마법이 작렬한 천공탑을 중심으로 차가운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다행히 청공탑의 방어진이 마법을 막아내긴 했지만, 마법의 기운은 여전히 불안하게만 보였다.

“아무래도 외부 공격으로 천공탑에 손상이 간 것 같습니다.”

멀린이 손을 들어 천공탑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마치 거대란 괴수가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처참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방어마법이 새겨진 천공탑에 이만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왕국에서도 단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소드 마스터… 트라발트 공작!”

갑자기 등장한 드래곤으로 인해 잠시 물러나 하늘을 주시하던 트라발트 공작이 마법으로 부하들이 죽어가자 직접 드래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공탑이 부서진 이상 놈을 막을 방법이 없어요.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해요.”

이엘의 말대로 천공탑 말고는 드래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설령 소드 마스터인 카일과 공작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고서클 마법사 수십 명의 도움 없이는 드래곤을 죽일 수 없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창공을 맴도는 새하얀 드래곤을 바라보던 사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방법?”

“우리가 드래곤을 물리칠 수 없다면 드래곤을 죽일 존재를 불러내면 돼요.”

“드래곤을 죽일 존재라면… 설마!”

“맞아요. 마왕을 소환시키는 거예요. 마왕이 소환하면 드래곤은 중간계의 수호자로 반드시 마왕을 죽여야만 해요.”

“마왕이 드래곤을 죽인 다음은 어쩌죠? 마왕이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을 거예요.”

“그러니 에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사하가 에밀일 보며 말을 이었다.

“기억하나요? 지난번 카일의 머리에서 드래곤 하트를 뽑아내려 했을 때를 말이에요.”

“그때라면… 아!”

“카일이 가진 혼돈의 오러, 내가 가진 암흑마기와 당신의 신성력. 이 세 기운의 균형 속에 합일을 이루는 순간 터널이 생성될 거예요. 그걸 통해 마왕을 소환한다면 마왕의 힘을 줄일 수 있어요.”

“마왕의 힘을 줄여 중간계로 소환한 뒤 드래곤과 싸우게 만든다.”

“좋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멀린 님은 이곳에 남아 천공탑의 상태를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카일의 말에 멀린을 태운 세인의 골드 와이번이 서서히 카일에게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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