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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279화 (279/404)

279. 새로운 가문(2)

모든 것을 파괴할 듯 맹렬하게 치닫는 암흑마기가 머릿속으로 진입하려는 순간이었다. 카일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황금빛 기운이 일어나 암흑마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크윽-”

머릿속을 울리는 강렬한 충격를 이기지 못하고 카일이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카일!”

시안느가 깜짝 놀라 카일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사하가 급히 시안느의 앞을 막아섰다.

“멈춰!”

“무슨 짓이야! 당장 나와!”

시안느가 양팔을 뻗어 앞을 막아선 사하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언니야말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지금 몸을 건드렸다간 자칫 마나가 역류할 수 있어!”

“아!”

사하를 밀어내려던 시안느의 손이 허공에서 뚝 멈췄다. 시안느 역시 오러를 다루는 기사다. 그녀 역시 마나 연공을 방해 받을 경우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카일이 쓰러지는 모습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느껴봐! 주변에 집적된 마나들이 흩어지지 않고 카일의 몸 안으로 흡수되고 있어! 이미 동결되었던 마나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단 뜻이야!”

“그럼…!”

“맞아! 카일은 오러를 회복할 방법을 찾은 거야! 그러니 지금은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어!”

사하의 말에 시안느는 결국 카일에게 다가가는 걸 포기할 수밖에는 없었다.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걱정스러운 표정의 시안느를 사하가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느끼지 못했지만, 암흑 마법사인 사하만큼은 카일의 머리 주변으로 몰려드는 암흑마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폭주하기 시작한 암흑마기가 머리로 몰려들었다면 더 이상 막을 방법은 없었다. 곧 암흑마기는 뇌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 카일은 더 이상 이전에 그들이 알던 그가 아닌,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오래전 흑기사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런 사하의 생각과는 달리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죽은 듯이 앉아 있는 카일의 머릿속은 오히려 평온했다.

‘기운이 커졌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황금빛 기운은 처음 암흑마기와의 충돌 이후 오히려 기운의 크기가 크게 늘어나며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꽝-

또 한 번의 충돌과 함께 앉아 있던 카일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암흑마기가 주춤 뒤로 물러나는 순간 마기의 뒤를 맹렬하게 쫓아오던 신성력이 황금빛 기운과 충돌한 것이다. 하지만 암흑마기와 균형을 이루던 신성력이 이전보다 더 커진 황금빛 기운을 이길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번 충돌로 황금빛 기운이 급속도로 증식하더니 이젠 역으로 밀고 내려오며 신성력과 암흑마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잡아먹고… 있다.’

암흑마기와 신성력이 지나온 마나 로드를 따라 황금빛 기운이 역으로 밀고 내려오며 주변에 남아있던 모든 기운을 거침없이 잡아먹기 시작했다.

웅웅-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카일의 몸이 허공으로 서서히 떠오르며 황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와 몸을 감쌌다.

“아!”

“설마!”

시안느는 물론 사하까지도 깜짝 놀라 카일에게 한 발 더 다가섰다. 지금 카일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것인지 그녀들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죠? 카일이 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사하와 시안느가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

시안느가 바위굴에서 빠져나와 멍하니 허공에 떠오른 카일을 바라보는 이엘과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눈을 비비는 에밀을 돌아보았다.

“어, 어떻게 된 일이죠.”

이엘이 당황한 얼굴로 카일을 향해 다가가려 하자 시안느가 황급히 이엘의 팔을 잡았다.

“가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 카일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맞았어요. 절대 방해해선 안 됩니다.”

“중요한… 순간?”

“아가씨, 혹시 바디체인지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시안느의 말에 이엘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단어가 스치듯 지나갔다.

“소드… 마스터!”

“네. 소드 마스터가 지고한 경지에 오르기 전 오러를 받아들일 가장 이상적인 신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바디체인지라고 하죠. 지금 카일이 겪고 있는 일입니다.”

시안느의 말이 끝나는 순간 카일의 몸를 감싸고 있던 황금빛 기운이 더욱 진해지며 그가 입고 있던 옷들이 모두 바스러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단단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근육들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헙!”

사하가 급히 얼굴을 돌렸다.

“으음”

시안느 역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기사로서 이야기로만 들었던 경지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꿋꿋하게 허공에 떠오른 카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엘 역시 실오라기 하나 없는 카일의 모습에 깜짝 놀라 손바닥으로 급히 얼굴을 가렸다. 다만 에밀만이 언제 졸았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카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드득-

카일의 몸에서 뼈가 어긋나는 섬뜻한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합니다.”

시안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 떠 있던 카일에게서 서서히 변화가 시작되었다.

황금빛 기운이 마기와 신성력을 잡아먹으며 서서히 몸을 잠식해 들어갈수록 비틀어지고 어긋난 뼈들이 정교하게 다시 제자리를 찾으며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했다. 커다란 근육들은 조밀하고 질기게 압축되었고, 마나 로드는 더욱 넓게 확장되었다. 마지막으로 몸 안에 자리한 6개의 마나플라워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화려한 꽃을 피우더니 곧 영롱한 일곱 개의 황금빛 열매를 맺으며 카일의 몸을 완전히 점령하고 주변에 집적된 마나를 끊임없이 끌어당겼다. 더 이상 카일의 몸 어디에서도 신성력이나 암흑마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금빛 기운이 두 기운과 더불어 순수한 오러까지도 모두 잠식해 버리면서 카일의 몸 안에 남은 건 황금빛 기운뿐 있었다.

“카일!”

황금빛 기운이 모두 사라지고 카일의 몸이 서서히 바닥에 내려서자 가장 먼저 이엘과 시안느가 카일을 향해 달려갔다. 사하와 에밀 역시 서둘러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당황한 에밀이 소리쳤다. 카일의 몸에서 느껴지던 강렬한 신성력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사하 역시 에밀의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암흑마기가 곧 뇌를 점령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갑자기 나타난 황금빛 기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확인을 해야 해!”

사하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카일의 몸에서 암흑마기의 잔재가 모두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앞서 빠르게 달려가던 시안느와 이엘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당황한 듯 황급히 돌아서며 뒤를 쫓는 사하와 에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머, 멈춰!”

당황한 시안느가 황급히 그녀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암흑마기와 신성력의 존재를 서둘러 확인해야 하는 그녀들이 시안느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당황한 듯 허둥지둥 아무렇게나 내뻗은 가벼운 손길을 피하지 못할 사하와 에밀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그녀를 피해 좌우로 스쳐 지나며 쓰러져있는 카일에게 달려갔다.

“…카일?”

사하가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은 카일을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기절한 것 같아요.”

“신체가 급격히 변화했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사하의 말에 에밀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먼저 확인할 건가요?”

에밀 역시 그녀가 카일에게 서둘러 달려온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혹시라도 그녀가 카일에게 손을 쓰진 않을까 경계했다. 지금처럼 무방비 상태의 카일이라면 얼마든지 암흑마기를 새롭게 주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하 역시 에밀의 신성력을 경계하고 있었다.

“함께하죠.”

“좋아요.”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며 죽은 듯 누워있는 카일의 좌우에 앉았다.

“피부가… 저보다 좋아진 것 같아요.”

에밀이 조심스럽게 카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사제나 성녀는 신성력 덕분에 신체의 재생력이 강하다. 이는 달리 신체의 노화를 억제하고 언제나 맑고 깨끗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강력한 오러가 몸 안에 남아있던 노폐물이 모두 태워버린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여기 보면 팔에 남아있던 상처도 모두 사라졌어요. 피부 역시 새롭게 재생, 아니 재구성되었단 뜻이죠.”

사하 역시 카일의 팔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마법 지팡이만 있었다면 어딘가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을 암흑마기의 존재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겠지만, 지팡이가 없는 지금은 이렇게 직접 접촉을 해야 했다. 에밀 역시 사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신중하게 카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근육도 달라졌어요. 어깨와 가슴 근육들이 모두 크게 줄어들었군요. 이것도 몸이 재구성된 덕분일까요?”

“근육뿐 아니죠.”

이엘과 마찬가지로 가슴 근육을 매만진 사하의 손이 가슴을 지나 갈비뼈로 향했다. 암흑마법사인 사하는 변종 오크나 키메라를 직접 제작할 정도로 신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 에밀 역시 치료에 특화된 성녀란 신분 덕분에 사하 못지않게 신체에 해박했다.

“골격까지도 모두 바뀌었어요. 근육은 더욱 고밀도로 압축되었고 틀어진 골격이 바로잡혔어요. 물론 뼈 역시 더욱 단단해졌고요.”

“맞아요. 처음 봤을 땐 그저 커 보이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날렵해졌다고 할까요.”

에밀의 손이 미끄러지듯 카일의 탄탄한 복근으로 향했다. 사하 역시 에밀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듯 경쟁적으로 아래로 향했다.

“어디까지 내려갈 건가요.”

갑작스럽게 들려온 시안느의 싸늘한 목소리에 그녀들의 시선이 자신들의 팔을 따라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펄럭-

그때였다. 갑자기 날아든 피풍의가 그녀들의 시선을 가렸다. 시안느가 입고 있던 피풍의로 급히 카일의 몸을 가린 것이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죠?”

시안느의 말에 그제야 사하와 에밀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제야 두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또렷하게 인식한 것이다.

“기절한 사람, 그것도 벌거벗은 사내의 몸을 여인인 두 사람이 마구 주물럭대다니. 이번일… 어떻게 책임질 거죠!”

시안느로서는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두 사람의 손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시안느가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을 급히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무슨 변명을 하려는지 한번 들어보죠. 사하, 그리고 에밀 양.”

시안느가 두 사람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 게… 화, 확인할 게 있었을 뿐이에요.”

“맞아요. 확인! 저, 저도… 마찬가지예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는 듯 사하와 에밀이 급히 시안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안느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은 건 확인했나요?”

“물론…!”

“당연히…”

시안느의 말에 사하와 에밀의 시선의 자연스럽게 쓰러져진 카일에게로 향하더니 점점 아래로….

“어딜 보는 거야!”

“헉!”

“꺄…!”

사하와 에밀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나중에 확인할게요.”

“저도…!”

급히 뒤돌아섰던 사하와 에밀은 시안느의 말에 다시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그냥 가면 어떡해?”

“네?”

“설마, 우리 둘만으로 기절한 사람을 바위굴까지 옮기란 말인가요?”

“그건… 아니에요.”

사하와 에밀이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다시 카일에게로 다가갔다. 아직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만큼 서둘러 카일을 동굴 안쪽으로 옮겨야만 했다. 하지만 그 시각 아이스 랜드 북쪽 차갑고 어두운 거대한 공동 안 뿌옇게 피어오른 수증기 사이로 죽은 듯 잠들어 있던 거대한 그림자의 눈꺼풀이 서서히 들어 올려지며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거대한 몸체를 서서히 몸을 일으킨 존재가 고개를 들어 남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크으윽, 드디어 녀석에게 심어놓은 기운이 열매를 맺었구나!”

한차례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던 거대 그림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거대 공동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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