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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278화 (278/404)

278. 새로운 가문(1)

”부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펠론 자작이 급히 부관을 불렀다.

꽝!

“자작님!”

펠론 자작의 고함에 부관이 검을 반쯤 뽑아들곤 황급히 달려 들어왔다.

“파일런을 당장 데려오게!”

파일런은 펠론이 이끄는 와이번 나이트의 부단장으로, 펠론이 명목상 단장이라면 실질적인 지휘관이 바로 파일런 부단장이었다.

“부단장님께선 지금 편대를 이끌고 국경 주변을 수색 정찰하고 계십니다.”

“또 직접 정찰을 나갔단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부관의 말에 펠론 자작이 얼굴을 찌푸렸다. 파일런은 병력통솔이나 전투에 능한 유능한 지휘관이었다. 기사들이나 병사들과 함께 훈련하며 직접 전투나 정찰에 참여하길 마다하지 않는, 기사단 내에서도 존경받는 야전형 지휘관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작은 전투나 국지 전투에는 유능할지 몰라도 대규모 전투나 동시다발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국지전을 감당하기엔 전투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아직은 부족했다. 펠론 자작이 그에게 직접적인 전투나 정찰을 금하고 주변에서 보내온 정보를 취합하게 한 것도 여러 곳에서 전해지는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 예측하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함이었다.

“휴… 어쩔 수 없지. 이 시간 이후 모든 수색을 중지하고 전원 이곳으로 복귀하라 전하게.”

“모두… 말입니까?”

“그래, 전원! 특히 파일런은 도착하는 즉시 내가 있는 이곳으로 곧장 달려오라 전하게!”

“아, 알겠습니다.”

펠론 자작의 말에 부관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달려 나가고, 얼마 후 부단장 파일런이 자작을 찾아왔다.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또 직접 정찰을 나갔다고 들었는데… 제법 빨리 왔군.”

“…복귀중이었습니다. 송구합니다.”

파일런이 자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휴! 지금은 급히 물어볼 것이 있으니 자네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하지.”

“알겠습니다.”

펠론 자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탁에 놓인 지도를 바라보았다. 투르공국의 지형과 마을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기록한 지도로 정교한 군사지도라고 보긴 어렵지만, 주변 마을의 위치나 중요지형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수색 범위를 밀수선이 정박할 수 있는 강과 국경 일대로 조금씩 넓히고 있네.”

“그렇습니다만 아직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네. 만약 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곳을 빠져나갔다면 지금까지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하지만 습지를 빠져나갈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배가 아니라도 그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있네. 그가 맹약자라면 말이야.”

“그럴 리가… 분명 몸에선 아공간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아공간석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탈출 과정에서 다시 돌려받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더구나 그의 숨겨진 신분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레드 와이번의 오너일 가능성도 있네.”

“레드… 설마!”

“아직 정확한 건 아니라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단 말이지.”

펠론 자작의 말에 파일런이 심각한 얼굴로 잠시 지도를 확인하더니 결국 고개를 저었다.

“만약 맹약자가 틀림없다면 지금까지의 정책과 수색은 무의미합니다.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이는 백작가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 절대 추적을 포기할 수 없어. 당시 와이번들이 에일 영지로 몰려들던 상황이니 도주로는 북쪽, 투르 공국이 분명하네. 이번엔 녀석들의 최초 착륙지를 중심으로 새롭게 수색 범위를 결정할 생각이네.”

펠론 자작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고심하던 파이런이 입을 열었다.

“레드 와이번과 골드 와이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속도와 지구력입니다. 골드 와이번은 속도가 빠를지 몰라도 지구력이 약해 장시간 비행은 어렵습니다. 반대로 레드는 골드에 비해 속도는 떨어져도 오랜 시간 비행이 가능하죠. 그러니 와이번의 종류에 따라 최초 착륙지가 달라질 겁니다.”

“만약 골드라면 예상 착륙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골드 와이번이 비행할 수 있는 최대시간은 대략 반나절, 저희와 하루 정도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 범위가 제법 넓군.”

“물론 그전에 내렸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렇겠지. 녀석은 혼자가 아니니…. 그럼 만약, 녀석에게 레드가 있다고 가정하면 어떤가?”

“그건… 최악이라 보시면 됩니다.”

“최악…!”

“정확하진 않지만 레드는 하루 온종일 비행이 가능합니다. 골드에 비해 속도가 좀 느리긴 하지만 지구력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이틀 정도 더 날아갔을 겁니다.”

“이틀…!”

“그것 역시 최소로 잡은 겁니다. 만약 이후에도 계속 와이번을 타고 이동했다면 추적은 힘들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우린 반드시 이니엘을 데려와야 하니까.”

펠론 자작이 굳은 얼굴로 지도를 내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녀석이 레드의 오너라면 최초 착륙했을 곳은 어디라 생각하나.”

“이곳에서 이틀거리,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했다면 이곳만 한 곳이 없습니다.”

파일런이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루는, 거대한 죽음의 호수 중앙에 자리잡은 섬을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죽음의 호수 괴물로 인해 오직 하늘로만 접근이 가능한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 * *

타다닥-

“으음….”

바짝 마른 나무가 타 들어가는 모닥불 소리에 시안느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깜짝 놀란 그녀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이는 건 맹렬히 타들어 가는 커다란 통나무와 깊은 잠에 빠진 일행들의 모습이었다.

“아!”

시안느는 그때서야 어제저녁 검을 땅에 묻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더니 피식 웃음을 흘리며 길게 기지개를 폈다.

언제나 이엘을 지켜야 한다는 긴장 속에 살아가던 시안느이기에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시안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조금 전 자신이 일어난 자리를 향했다. 부들 가지를 깐 뒤 피풍의를 덮어 조악한 잠자리지만 검을 땅에 묻고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지만 접어 두어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어딜 간 거지?”

바위굴 입구에 자리를 잡았던 카일을 떠올리며 시선을 돌렸을 때에는 이미 카일이 잠들었던 곳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시안느는 대충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는 입구를 막은 갈대 단을 치우고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으으, 차가워!”

이른 새벽 따뜻한 바위굴 안과는 달리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가정 먼저 시안느의 얼굴을 때렸다. 황급히 바닥에 깔았던 피풍의를 다시 두른 시안느가 천천히 갈대 단을 비집고 밖으로 나왔다.

“와!”

바위굴을 벗어난 시안느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새벽 잔잔한 호수 위 뿌옇게 피어오른 물안개가 섬 전체를 장악하며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보다 시안느의 시선을 더욱 사로잡은 건 넓은 들판 위 두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움직이는 카일의 모습이었다.

부드럽게 뻗어낸 손을 따라 밀려 나갔던 안개가 다시 거둬들인 손에 안기려는 듯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률에 따라 춤을 추는 아름다운 연인들처럼 보였다.

“대단… 하군요.”

카일의 춤사위에 정신을 빼앗긴 시안느의 옆으로 언제 다가왔는지 사하가 다가와 있었다.

“저렇게 아름답고 강렬한 마나 연공법은 처음 봐요.”

“마나 연공법?”

시안느의 시선이 사하에게로 향했다.

“저게 마나 연공법 이라고?”

“언니는 느껴지지 않나요? 주변으로 몰려든 농밀한 마나의 기운이…. 이런 기운은 고서클 마나집적진으로도 만들어내기 힘들어요.”

사라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파지직-

그녀의 손 위로 황금빛 뇌전의 기운이 서서히 뭉쳤다가 곧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녀가 마법을 의도적으로 해체해 버린 것이다.

“지금 전개한 마법은 5서클 뇌전 마법이에요. 이걸 펼치려면 저도 꽤나 고생해야 하죠. 하지만 여기선 마나의 농도가 워낙 진해 어렵지 않아요.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낼 필요도 없이 곧장 마법이 발현돼요. 이런 마나 연공법이 있다니… 마왕이 카일을 탐낼 만하군요.”

사하가 굳은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고 느렸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그에 따라 카일의 주변으로 몰려든 안개가 마치 소용돌이치듯 원을 그리며 그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카일의 얼굴 위로 굵은 땀과 고통스러운 기운이 어렸다. 마나의 농도가 진하고 길어질수록 카일에게 몰려드는 압력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으윽-!”

강철 같았던 카일의 입에서 거칠고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나가 동결되며 외부에서 밀려드는 강력한 마나의 압력을 외력과 육체적인 힘으로만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으드득-

강렬한 압력이 몸을 짓누르자 카일이 이가 부러질 듯 힘을 주며 동작을 이어나갔다.

“카일이 왜 저러는 거지?”

“마나는 곧 에너지. 힘이 한 곳에 집중되면 그만큼 강력한 압력이 몸을 짓누를 수밖에 없어. 아마도 지금 카일이 받고 있는 압력은 사람이 버틸 수 없을 만큼 강렬할 거야! 만약 압력을 견디지 못한다면… 최소 중상, 어쩌면 죽을 수도 있어.”

“설마… 카일이 죽는다는 거야?”

“압력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럼 당장 멈춰야지!”

시안느가 깜짝 놀라 카일에게 달려가려 하자 사하가 시안느의 팔을 붙잡았다.

“안돼!”

“놔!”

“지금은 언니라도 카일이 있는 곳까진 갈 수가 없어! 그리고 저길 봐! 이렇게 마나의 기운을 집약시키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카일이야!”

사하가 힘겹게 동작을 이어가는 카일을 가리켰다.

“그는 지금 동결된 마나를 깨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어. 언니가 다가가면 지금까지 카일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사하의 말에 카일에게 달려가려던 시안느가 걸음을 멈췄다.

“아!”

“조금만 더 기다려. 어쩌면 카일은… 동결된 오러를 풀어낼 방법을 찾은 건지도 몰라!”

“으아악!”

사하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카일의 고함 소리와 함께 주변을 맴돌던 강렬한 마나의 기운이 카일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막혀 있던 강력한 둑이 무너지는 듯했다. 몸 안으로 밀려오는 마나를 밀어내며 마나의 기운을 중첩시키던 카일이 한순간 그걸 다시 받아들여 동결된 마나 플라워로 밀어 넣은 것이다.

쾅-

마치 거대한 대종을 머리 위에서 울린 듯 강력한 충격이 발생하며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카일은 모여드는 농밀한 마나의 기운을 모아 다시 마나 플라워에 부딪혔다

쾅-

더욱더 강렬한 기운에 단단히 굳어있던 마나 플라워에서 오러의 조각들이 떨어져 나왔다.

“다시!”

퍽-

강렬한 충격에 코피가 터져 나와 바닥을 적셨지만, 카일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몰려드는 기운에 떨어져 나온 오러까지 충돌시켰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이 이어지며 마나 플라워를 가로막던 기운들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새로운 기운이 마나 플라워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그동안 점점 줄어들던 신성력과 암흑 마기가 미친 듯이 주변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온몸을 휘돌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까지 갇혀있던 것이 억울하다는 듯 암흑 마기는 앞을 가로막은 모든 것을 거칠게 파괴했다. 그 뒤를 맹렬하게 쫓아가는 신성력은 그 잔재를 지우며 부서지고 파괴된 곳을 새롭고 강하게 탈바꿈시켰다. 세 기운이 가슴에 위치한 마나 플라워로 뭉쳐 기운을 증폭시켰다.

“끝인가?”

카일이 내심 중얼거렸다. 막혀 있던 기운들이 모두 한꺼번에 풀어내며 그는 이미 최상급을 경지를 넘어섰다.

하지만 외부에서 밀려들던 기운이 끊임없이 마나 플라워에 몰려들더니 다시 마기를 선두로 위로 치솟기 시작했다.

“허억!”

카일이 깜짝 놀라 급히 동작을 멈추고 기운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이미 마기는 카일의 통제를 벗어나 머리로 치솟고 있었다.

“안돼!”

마기가 머리를 잠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마왕의 지배를 받는 암흑기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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