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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276화 (276/404)

276. 평범하게...(1)

“수고했어, 시카니스.”

-언제든 너의 부름은 기쁘게 받겠다. 하지만 한가지 말해두마! 절대 호수로 다가가지 마라! 호수에서 느껴지는 존재는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강한 존재?”

-지난번 보았던 드레이크 종과 비슷한 기운이다.-

시카니스의 말에 카일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지만, 곧 안정을 찾았다. 화이트 우드 습지의 드레이크들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대부분 물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물가로 나가지만 않으면 호수를 통해 이 섬으로 들어올 사람은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마워, 시카니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오래간만에 넓은 창공을 날아보고 싶다.-

시카니스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하늘 위로 날아오르더니 곧 새까만 밤하늘 위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카일은 시카니스를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아공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호수를 통해 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해도 카일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접근하는 것은 가능했다. 시카니스를 풀어 놓으면 하늘에서 누군가 접근하기 전 미리 몸을 피할 수 있다는 정점도 있었다.

“와이번이 어디로 가는 거죠.”

“당분간 호수 주변을 날며 저희를 지켜줄 겁니다. 그리고 되도록 호수 주변으론 가지 않도록 하세요.”

“드레이크 때문이라면 저도 알고 있어요.”

“드레이크… 당신도 호수에 드레이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군요.”

“지난번 말하지 않았나요? 우리 선조가 오크랜드에서 오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일을 말이죠.”

사하의 말대로 그녀의 선조들은 가문을 멸망시킨 오크들이 다시 왕국을 넘보지 못하게 많은 일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크의 숫자를 지속적으로 줄여줄 강대한 존재들을 오크랜드에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통곡의 협곡을 지키는 문지기 붉은 트롤, 하늘의 살육자 가고일, 그리고 습지의 암살자 드레이크까지 모두 그녀의 선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오크랜드에 정착시킨 괴물들이었다.

“드레이크는 이곳 죽음의 호수에 살고 있던 녀석들을 옮겨 놓은 거예요. 하지만 이곳에 있는 녀석들과 오크랜드에 있는 녀석들이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네?”

“물론 습성이나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단 한 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어요.”

“다르다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카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 사냥을 하려는지 수면을 낮게 날아가던 시카니스가 갑자기 날개를 들어 급작스럽게 수직으로 상승했다.

푸화아악-

크아악-

순간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나더니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시카니스를 따라 뛰어오른 후 거대한 입을 벌렸다. 물 밖으로 드러난 몸집만 해도 블랙 와이번 시카니스를 상회하는 크기였다.

“보셨죠. 결정적으로 호수에 사는 드레이크는 무지막지하게 커요. 대신 장점도 있어요. 저 큰 몸집 덕분에 절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죠.”

“아!”

사하가 길게 자란 이름 모를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다시 평화를 찾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와본 적이 있나요?”

“아니, 처음이에요. 다만 오래전 가문이 멸문하고 살아남은 선조께서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은 보았어요. 평생 이곳에서의 삶이 가장 행복했다고, 적어도 이곳에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정말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고 하더군요”

사하의 말에 시안느는 물론 이엘과 에밀까지 가라앉은 눈으로 평화로운 섬과 호수를 바라보았다.

“짝!”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카일이 힘껏 손을 부딪쳐 무겁게 내려앉은 기분을 날려버렸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도 이곳에서 평범하게 살아보죠.”

“평범하게?”

“그렇습니다. 평범하게!”

카일이 등에서 대검을 풀어내 바닥을 깊게 파냈다. 그리곤 허리에서 풀어낸 검을 구덩이에 던져넣었다.

“이런 섬에선 검은 필요 없겠죠.”

카일의 말에 에밀도 들고 있던 새하얀 지팡이를 들고 짧게 기도를 올리더니 조심스럽게 구덩이 안에 내려놓았다.

“뭐, 에밀까지 내려놓았으니 나도 좋아!”

사하 역시 들고 있던 붉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구덩이에 넣었다.

“그럼 제가 마지막이군요.”

시안느가 웃으며 그녀 역시 방패와 검을 풀러 내 구덩이에 던져 넣으려 했다.

“잠깐!”

“네?”

“방패는 잠시 보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쓸 데가 있을 것 같군요.”

카일의 말에 시안느가 의아한 듯 카일을 바라보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구덩이 아래에 내려놓았다.

“그럼 땅에 묻겠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까진 여길 파내지 않을 겁니다.”

“잠깐, 저도 여기에 묻을 것이 있어요.”

막 땅을 메우려 하자 이엘이 카일을 막으며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구덩이에 넣었다.

“여러분들이 각자의 능력을 땅에 묻었으니 저도 제가 가진 능력을 땅에 묻겠어요.”

이엘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엘의 주머니로 향했지만, 선뜻 뭐가 들어있는지 묻지는 못했다.

“보석이에요. 가문의 비밀창고에서 가치가 높은 최상급만 골라 가자고 나왔죠. 이게 지금 제가 가진 최고의 능력이에요.”

그린넨 백작가의 비밀창고, 그중 가장 값진 보석이라면 그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흠, 암흑 상단의 단주로서, 혹 팔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하겠어요.”

“고마운 말이지만, 제가 팔 곳은 정해져 있어요.”

“그만한 가치를 지닌 보석이라면 살 곳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왕실, 아니면 공작가? 글쎄요?”

“그곳 말고도 한곳을 알고 있죠.”

이엘이 생긋 웃으며 말하자 사하가 놀라고 당황한 얼굴로 이엘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불가능하진 않잖아요?”

“세상에… 이엘, 당신은 정말…!”

두 사람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에밀이 분통을 터트렸다.

“뭐예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또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길 할 건가요?”

에밀의 말에 카일과 시안느 역시 두 사람을 바라보자 사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금 이엘이 보석을 팔려는 곳이 어딘지 아나요?”

“흠… 왕실도 아니고 공작가라면 더더욱 아니라고 했으니… 글쎄요? 생각나는 곳이 없군요.”

“아니 아직 한곳이 있어요. 그만한 재력을 가진 곳.”

“어디죠, 그곳이?”

“바로 그린넨 백작가죠. 지금 그녀는 가문의 비밀창고에서 훔쳐 온 보석을 가문에 되팔려 하고 있어요.”

사하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엘에게로 향했다.

“정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 가문에서 훔친 보석을 가문에 되팔다니… 도저히 저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군요.”

“아가씨…!”

“말했잖아요? 전 이미 가문에서 떠났다고. 가문이 날 배신했으니 그 대가는 받아야죠.”

이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쉽지 않을 겁니다. 백작 역시 호락호락하게 보석을 사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반드시 살 거예요.”

사하가 고개를 흔들며 자연스럽게 이엘의 주머니에 시선을 주었다.

“저 주머니 안 보석엔 어떤 비밀이 있겠죠. 백작가가 반드시 감춰야만 하는 비밀 말이죠. 그 비밀을 막기 위해서라도 백작은 반드시 보석을 사야 해요.”

“역시 사하는 똑똑하군요.”

“똑똑하다기보단 경험이죠. 암흑 상단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일을 겪으니까요. 그래도 궁금하긴 하군요. 당신이 어떻게 보석을 가문에 팔아치울지 말이죠.”

“물론 참관하셔도 좋아요.”

“참관이라… 좋아요. 10%”

“너무 많아요. 5%”

“이 몸이 그래도 암흑 상단의 단주인데, 체면은 차려야죠. 8%”

“보통 이런 일에는 지연이 따르기 마련이죠. 안 그런가요, 사하? 6%”

“쯧, 이제 보니 당신이 암흑 상단을 운영해야겠군요. 좋아요. 친분을 맺었으니 어쩔 수 없죠. 6%, 더는 안돼요.”

“고마워요.”

이엘이 환하게 웃으며 사하와 기쁘게 손을 맞잡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무슨 일이죠?”

에밀이 시안느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알 것 같나요?”

시안느가 멀뚱히 눈을 꿈뻑거리며 에밀을 내려다보았다.

“아하하! 그렇군요. 미안해요.”

에밀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일단 두 사람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으니 이건 묻겠습니다.”

카일이 흙을 꼼꼼히 덮은 뒤 마지막으로 대검을 깊게 박았다.

“평범하게 살려면 이제 뭘 해야 하죠?”

에밀의 말에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카일에게로 향했다.

“평범하게 살려면… 일단 먹어야죠. 다들 배고프지 않나요?”

카일의 말에 그녀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루 종일 하늘을 날아왔기에 그녀들이 먹은 거라고는 육포 몇 조각과 물 몇 모금이 전부였던 것이다.

꼬르륵-

에밀의 배에서 울린 천둥처럼 커다란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향하자 에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꼬르륵-

꼬르륵-

하지만 연이어 둘려온 소리에 결국 서로를 돌아보던 그녀들이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호호호!”

“하하!”

한참 동안 웃음을 짓던 그녀들의 시선이 다시 카일에게로 향했다.

“배고파요.”

“먹을걸 줘!”

“사냥을… 해야 할까요?”

“지난번처럼 숨겨 놓은 게 있는 거죠? 말로 할 때 내어놓는 게 어떻겠어요.”

그녀들이 카일에게 한 걸음씩 다가서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하하, 어… 없습니다, 없어.”

당황한 카일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지만, 그녀들은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암사자처럼 카일을 포위하며 점점 더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망가지 못해!”

“먹을 걸 줘요.”

“배고파.”

“분명 감춰둔 게 있을 거야!”

그녀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카일이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어, 없어요.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흔들자 가장 먼저 시안느가 카일의 팔을 잡았다. 뒤이어 에밀이 카일의 뒤로 돌아가 목을 잡았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던 그녀들이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힘이라면 지지 않는 카일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어딘가 먹을 게 있을 거예요.”

이엘이 카일을 덮치듯 올라타더니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쿵-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수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멋!”

“앗!”

깜짝 놀란 에밀이 카일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고 카일의 몸을 뒤지던 이엘이 카일을 껴안았다. 그사이 시안느가 단검을 뽑아 들곤 조심스럽게 바닥에 떨어진 물체로 다가갔다

파닥파닥-

시안느가 다가가는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강한 몸부림을 쳤다.

“이건… 물고기예요.”

시안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 위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갔다.

-쯧, 한심한 녀석, 밥이다. 먹어라!-

카일의 귓가로 파고드는 시카니스의 목소리에 카일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멀어져 가는 시카니스에게 말했다.

-살려줘서 고맙다, 시카니스.”

-너도 피곤하게 사는군. 부족하면 말해라! 사냥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고, 고맙다.-

카일의 말에 시카니스가 허공을 몇 번 선회하더니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둘, 이제 그만 일어나는 게 어때?”

사하가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린 채 카일을 끌어 안고 있는 이엘과 에밀을 바라보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급히 일어나 카일에게서 멀어져 갔다.

“넌 뭐 하는 거야!”

“응?”

“재료가 생겼으면 당장 먹을 걸 만들어야지! 그렇게 누워 있을 거야?”

“내가… 하라고?”

“그럼 누가 해! 난 한 번도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죄송해요. 저도… 빵은 만들어봤지만 생선은 처음이라…”

에밀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말했다.

“설마 저 두 사람을 믿는 건 아니지?”

사하가 시안느와 이엘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실력은 이미 여행을 통해 경험한 카일이었다.

“휴… 저뿐이군요.”

카일이 허탈하게 인정하더니 아직도 펄떡이는 물고기에게 다가갔다. 물고기는 이곳에 있는 다섯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처음 귀찮아하던 표정과는 달리 막상 손질을 시작하자 카일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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