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75화 (275/404)

275. 부활을 위한 와이번

“세상에….”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사하와 에밀리아가 카일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벌써 몇 시간째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그렇게 바라본다고 카일의 등이 뚫리진 않는답니다.”

보다 못한 시안느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충분하냐고요? 아니 절대 충분하지 않아요. 세상에… 와이번 나이트, 아니 용병이라고 했으니 와이번 라이더군요. 아무튼 무려 블랙 와이번이에요. 세상에 오직 한 마리만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고 알려진 희귀종이 또 한 마리 나타났는데 놀라지 않을 수 있나요.”

사하의 말에 시안느와 이엘이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죠?”

두 사람의 어색한 표정에 사하가 물었다.

“그건…”

“설마… 카데인 제국, 아이젠 공작가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바로 그 와이번인가요? 베인 자작이 미친 듯이 찾아다닌다는, 조카를 죽인 범인이… 카일?”

사하가 놀란 얼굴로 카일을 돌아보았다.

“아니에요. 모종의 일로 오크랜드에 갔을 때 조우했던 블랙 와이번이 그날 저녁 찾아와 카일과 맹약을 맺은 거예요.”

“오너가 있는 와이번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 오너가 사망했다는 말이겠지요. 이런 경우 와이번은 이전 맹약자보다 강한 새로운 오너를 찾게 됩니다. 보통 그 첫 번째 대상은 맹약자를 죽인 바로 그 당사자고요.”

사하의 시선이 다시 카일에게로 향했다. 이번엔 사하뿐 아니라 이엘과 시안느의 시선까지 카일의 등에 꽂혔다.

“말해봐요. 당신이 블랙 와이번 기사단의 단장을 죽였나요?”

사하가 은근히 카일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당신, 베인 자작이라고 아나요?”

“모릅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그 사람 지금도 당신을 찾고 있을 텐데요?”

“도대체 베인 자작이 누군데 절 찾는단 말입니까?”

“그는 아이젠 공작가의 숨은 기사단 고스트의 수장이자 공작의 배다른 동생이죠.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자, 상급 엑스퍼트를 넘어선 실력자에 검술이 워낙 독특해 최상급 기사들도 함부로 대적하려 들지 않는 자예요. 저도 고스트의 수장이 베인 자작이란 사실을 최근에 알았을 정도죠.”

정확히는 최근 있었던 10호와 베인 자작의 결투 덕분이었다.

“대단한 자… 인가 보군요.”

“맞아요. 대단한 자죠. 아이젠 공작가가 최고의 성세를 누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자의 존재 때문이라 알려질 정도죠. 아! 당신과 서로 스치듯 만났을 수도 있어요.”

사하의 말에 카일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사하를 바라보았다.

“전 왕국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만?”

“베인 자작이 왕국에 왔었다면?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말이죠.”

사하의 말에 카일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베인 자작이 왕국에 왔었단 말입니까?”

“그래요. 아킨스 자작가를 멸문시킨 의문의 와이번들, 기억하겠죠.”

“물론입니다. 그들을 피하려 크레센트 숲으로 갔으니까요.”

“바로 그 와이번들을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고스트의 수장 베인 자작이죠. 아마도 당신을 원수처럼 생각할 거예요. 당신 때문에 아끼던 조카와 수하를 잃었으니까요.”

사하의 말에 카일보다 먼저 이엘이 옆으로 다가왔다.

“설령 카일의 손에 그들이 죽었다고 해도 그건 그들이 먼저 카일, 아니 우릴 핍박했기 때문이에요. 절대 카일의 잘못이 아니란 말이죠.”

“제가 언제 카일의 잘못이라고 했나요? 그저 베인 자작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했죠.”

사하가 웃으며 카일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자 이엘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카일이 사하를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분명 와이번에 오르기 전 말씀 드렸던 것 같습니다만, 비행 중엔 제 옆으로 오시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칫, 저만 온 건 아니잖아요.”

사하가 이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카일.”

“아닙니다.”

카일이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사하를 돌아보았다.

“전 이엘과 시안느 경에겐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습니다만?”

“당신!”

카일의 말에 화가 난 사하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일은 단호한 얼굴이었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흥! 두고 봐요.”

사하가 화가 난 듯 고개를 획 돌리며 뒤로 물러나자 굳어있던 이엘의 얼굴에 기분 좋은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마법 각인 덕분에 맞바람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엘은 견디기 힘들 겁니다. 제 뒤쪽에 앉아 계시면 좀 편할 겁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카일이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있는 사람 모두 각자의 기운으로 바람과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큰 무리 없이 편안한 비행을 즐기고 있었지만, 이엘은 평범한 소녀로 약간의 검술을 배운 게 전부였다. 이런 바람과 추위에 장시간 노출되면 자칫 큰 병에 걸릴 수 있어 카일이 조금 더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불만인지 사하가 미간을 잠시 일그러뜨렸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당신, 블랙 와이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사하의 말에 카일이 힐끔 뒤를 돌아보더니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저 남들이 아는 정도일 겁니다.”

“그럼 블랙 와이번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모르는군요.”

“글쎄요. 블랙 와이번의 오너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당신 말대로 블랙 와이번의 오너는 현재 세상에 단 한 명뿐이고, 그가 바로 카일인데 말이죠.”

이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사하가 고개를 저으며 카일을 향해 말했다.

“어때요? 궁금하지 않나요? 절 당신 옆에 앉게 해주면 알려주죠.”

사하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요, 전 궁금해요.”

그때 사하의 옆에 있던 에밀리아가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평생 신에 대한 믿음만을 배우고 익힌 그녀에겐 지금 일어난 모든 일과 이야기들이 그저 신기하고 새로울 뿐이었다.

“정말… 요? 아주 중요한 내용인데도…?”

“사하! 전 궁금해요. 네, 이야기 해주세요.”

에밀리아가 사하의 앞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며 자신을 어필했다.

“시카니스는 저와 맹약을 맺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중요한 일이라면 저에게도 분명 알려 줬을 겁니다.”

“와! 이 블랙 와이번의 이름이 시카니스인가요?”

에밀리아가 이번엔 카일에게 물었지만, 그는 에밀리아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지 그녀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만약 와이번 스스로도 모르는 일이라면요? 어때요, 궁금하지 않나요?”

“와이번도 모르는 일이라면 굳이 제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카일이 잠시 사하를 힐끔 바라보더니 다시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안 궁금해요?”

“전, 궁금해요. 아주 궁금하단 말이에요.”

“안 궁금합니다.”

카일의 단호한 말에 사하가 화가난 듯 당장이라도 분통을 터트리며 고함을 치려다 결국 시무룩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 나 지금 누구랑 말한 거지…!”

고개를 숙인 사하와 카일을 번갈아 돌아보던 에밀리아 역시 긴 한숨을 내쉬며 축 처진 어깨로 고개를 숙였다.

“저, 사하… 이렇게 하면 어때요.”

카일과 사하의 공방을 지켜보던 이엘이 사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요.”

이엘의 물음에도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사하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일의 옆자린 아니지만 제 옆에 앉는 건 어때요.”

“당신… 옆에요?”

사하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이엘을 바라보았다 카일의 등 뒤에 바짝 다가와 앉아 있는 이엘의 모습이 눈에 잡혔다.

“제가 이렇게 옆으로 이동하면 한사람 정도는 더 앉을 수 있어요.”

이엘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사하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카일의 옆으로 가려던 것도 이엘은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자신에겐 차갑게 대하는 카일을 놀려주려던 것이지 이엘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이엘 역시 겉으론 관심이 없는 듯 보였지만 누구보다 블랙 와이번의 이야기가 궁금할 카일을 위해 대신 사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흠, 에밀리아도 원하고… 당신도 그렇게 부탁을 한다면… 좋아요. 이야기를 해주죠.”

“고마워요. 사하… 사하라고 불러도 되나요. 나이도 서로 비슷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세요. 저도 이엘이라 부를게요.”

“저요, 전, 에밀리아! 대지의 여신을 모시는 성녀예요.”

사하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언제 쳐졌냐는 듯 환하게 밝아진 에밀리아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칫, 굳이 성녀라는 말을 붙여야 하나? 그냥 에밀리아라고 말하면 될걸…!”

사하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신분을 드러내면 에일리아와 사하는 절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사하의 뜻을 알아채고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해요. 습관이라서….”

“괜찮아요. 에밀리아, 아니 에밀, 에밀이라도 불러도 되죠?”

“물론이에요. 이엘….”

이엘의 미소에 에밀도 화답하듯 환하게 웃었다.

“자! 이제 이야기 해주세요. 블랙 와이번에게 어떤 비밀이 있어요?”

에밀이 사하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 물었다.

“흠… 일단 와이번의 종류엔 골드와 레드, 그리고 화이트와 블랙이 있어요. 이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나요?”

“그야 몸집이나 색상, 그리고 비행에 따른 능력에 차이가 있겠죠.”

“그건 일반적인 이야기일 뿐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정말 중요한 건 이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에요.”

“그야 드래곤이 인간을 멸족시키려 할 때, 드래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디언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어요.”

“그건 일부만 맞고 일부는 틀린 이야기예요.”

“네? 다른 이유도 있단 말인가요?”

이엘의 말에 사하가 힐끔 카일을 돌아보았지만, 여전히 카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용인전쟁에서 가디언이었던 와이번은 단 두 종류뿐이었어요. 바로 골드 와이번과 레드 와이번.”

“네? 그럼 블랙 와이번과 화이트 와이번은 전쟁 이후에 만들어졌단 말인가요?”

에밀이 깜짝놀라 물었다. 아니 에밀 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놀라고 있었다.

“마왕을 물리친 드래곤들은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어요. 수많은 드래곤이 죽음에 이르고 결국 멸족의 위기가 다가오자, 드래곤 로드가 새로운 부활을 꿈꾸며 죽은 동족들의 살과 피로 만든 것이 바로 블랙 와이번과 화이트 와이번이죠.”

“부활을 위해 탄생한 와이번….”

“맞아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부활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드래곤이 사라진 지도 벌써 수백 년이 흘렀으니까요.”

사하가 부드럽게 시카니스의 비늘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언제든 블랙 와이번을 통해 드래곤이 부활할 수 있겠군요.”

“흠… 글쎄요. 수백 년 전 드래곤이 남겨놓은 어떤 매개와 만나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연 그 매개가 아직도 온전히 남아 있을까요?”

“마법이 있잖아요. 수백 년 전 던전에서도 온전한 마법 물품이 발굴되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드래곤이 부활하기 위한 매개는 아마도 지식과 기억을 저장한 리치의 라이프 베슬과 비슷한 물건일 거예요. 리치의 생명력과 기억을 저장한 라이프 베슬은 지속적으로 마나를 공급해 활성 상태를 유지해야만 하죠. 그렇지 않으면 결국 라이프 베슬의 기능이 정지하고 말아요;.”

“결국 지금까지 온전히 매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마나 공급이 있어야 한단 말이군요.”

“맞아요. 마법진 역시 아무런 관리 없이 수백 년을 버티기는 힘들거든요.”

사하의 말에 이엘의 얼굴에 어렸던 걱정이 서서히 사라졌다.

“다행이군요.”

“사실, 저도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에요. 그저 오래전 선조들이 남긴 기록에서 읽은 것뿐이니까요.”

사하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앞에 섬이 있어 착륙할 겁니다.”

카일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바다같이 넓게 펼쳐진 호수 중앙에 타원형을 이루는 커다란 섬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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