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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261화 (261/404)

261. 추격대(4)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 전 벨하크가 에일 남작의 부탁으로 왕실에 진상할 검을 만들면서 그가 만든 독특한 합금 검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자 수많은 기사 가문이나 용병들이 찾아와 그에게 검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벨하크는 자신이 만든 검을 함부로 남에게 전하지 않았다. 검을 사용할 사람의 검술이나 신체적 특성까지 하나하나 확인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성향까지 파악하고 나서야 검을 만들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했다.

도문트는 바로 이 마지막 단계에서 벨하크에게 거절당했다. 본능적으로 감춰져 있는 그의 음흉함을 벨하크가 알아채고 검의 제작을 거절한 것이다. 하지만 도문트는 벌써 몇 년째 포기하지 않고 지겹도록 벨하크를 찾아와 검을 만들어 달라 요구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점점 더 강압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정말 손을 다친 것이 맞나?”

“내가 거짓을 말하고 있단 말이냐?”

자신을 노려보며 은은한 살기를 흘리는 도문트를 향해 벨하크 역시 지지 않고 외쳤다. 그는 자신만의 원칙과 신념 하나로 지금껏 수많은 고위 귀족들을 상대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고작 용병 따위에게 겁을 먹고 거짓을 말하며 신념을 저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내게 검을 만들어 주기 싫어 변명을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너 따위를 겁내 거짓을 말할 것 같으냐? 어림없는 소리. 손을 다쳤든 아니든 넌 내 검을 들 자격이 없다. 그러니 썩 물러가라!”

“천한 대장장이 따위가 감히!”

도문트와 함께 왔던 용병 하나가 벨하크의 말에 발끈해 소리쳤다.

“천한 대장장이? 흥, 난 왕실로부터 정식으로 왕실 기사 작위를 받았단 사실을 모르나?”

벨하트가 자신을 모독한 용병을 노려보며 외쳤다. 왕실에 진상한 검을 높이 평가한 국왕이 그에게 왕실 명예 기사 작위를 하사 한 것이다. 물론 아무런 권한도 지위도 없는 그저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 흥, 고작 하찮은 명예직 따위가 널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용병이 사납게 일갈하며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자 벨하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껏 강압적으로 윽박지르긴 했지만 검을 뽑아 든 건 처음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검부터 뽑아 들다니, 용병이 아니라 강도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일이 벨하크의 앞을 막아섰다.

“용병인 것 같은데 다치기 싫으면 그만 꺼져라!”

“위기에 빠진 스승을 버려두고 떠나는 제자는 없다.”

카일의 말에 검을 겨누고 있던 용병의 팔을 도문트가 붙잡았다.

“스승? 네 녀석이 벨하크의 제자란 말이냐?”

“제자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벨하크의 대장간에서 망치를 잡을 수 있겠나?”

“조금 전 망치질 소리의 주인이 본인이란 말인가?”

“그렇다.”

“내가 알기론 벨하크에겐 제자가 없을 텐데.”

도문트가 카일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큭, 참 멍청한 질문이군.”

카일이 실소를 흘렸다.

“뭐라?”

“왜 내가 너에게 벨하크의 제자임을 인정받아야 하지? 내가 인정받아야 할 분은 벨하크 스승님뿐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승님!”

카일이 벨하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그렇다. 넌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자랑스런 제자가 분명하다.”

밸하크가 카일의 말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라지만, 카일 스스로가 자신을 스승이라 불러준 것만 해도 그에겐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벨하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문트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지금껏 벨하크를 설득하고자 정성을 들인 건 가족은 물론 제자 하나 없는 그를 제어할 수단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게 숨겨진 제자가 있단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좀 더 쉽게 밸 하크에게서 검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대 장인이라 추앙받는 벨 하크의 제자가 용병이라니 의외군.”

“그래서 잘못된 것이 있나?”

“아니, 아니다. 오히려 잘됐다고 할 수 있지, 어떤가? 나의 용병대에 들어오지 않겠나? 난 도문트 용병대를 이끌고 있는 단장 도문트다.”

“미안하지만, 이미 소속된 용병대가 있어서 말이야.”

“용병대?”

“난 왕성에 거점을 둔 아이언 용병대 소속의 용병이다.”

“아이언… 용병대!”

카일의 말에 도문트의 얼굴이 찌푸려 졌다. 그도 최근 왕성에서 일어난 용병 전투의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중형 용병대인 제이콥 용병대를 흡수한 마라스 용병대가 새롭게 아이언 용병대를 창단했다는 소식은 제법 유명했다. 더구나 그곳의 단장이 정식계승 귀족으로 최근 떠오르기 시작한 3왕자파와 계약을 맺었단 소식은 용병대에서도 제법 유명했다.

“이제 보니 제법 대단한 용병대 소속이었군.”

“아이언 용병대의 소문이 동부까지 전해진 줄은 몰랐군.”

“제이콥 용병대를 무너트린 일화는 제법 유명하지.”

“그런가?”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콥 용병대가 마라스 용병대에 패한 사실은 왕성에서도 제법 유명한 일화였다.

“아쉽군, 자네 같은 용병이 벌써 소속된 용병대가 있다니 말이야. 그래도 혹 생각이 바뀐다면 프림로즈라는 여관으로 날 찾아오게. 원한다면 중급 검술까지 전수해 줄 용의가 있으니 말이야.”

도문트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대장! 이대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손을 다쳤다니 할 수 없지. 다음에 오는 수밖에.”

도문트가 고개를 돌려 벨하트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밸하크 님, 그럼 다음에 다시 보지요.”

“일없다.”

퉁명스럽게 대답한 벨하크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도문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한차례 돌아보더니 대장간을 빠져나가 버렸다.

“음흉하고 위험한 자다. 어쩌면 널 노릴 수 있으니 서둘러 영지를 벗어나거라.”

“저런 자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카일의 말에 벨하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넌 똑똑한 녀석이니 분명 저런 녀석의 마수에 쉽게 걸려들지 않겠지.”

이후 벨하크가 잠시 망설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도와줘서 고맙다.”

“그런 말 마십시오. 제자가 스승을 돕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카일의 말에 벨하크가 놀란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날… 스승이라 불렀느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카일이 놀란 벨하크를 보며 미소를 짓자, 벨하크의 얼굴이 곧 어두워졌다.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날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승으로 인정한 것이지 않으냐? 그러니 굳이 날 스승으로 모실 필요는 없다.”

“제가 위급한 상황이나 넘기려 거짓 스승을 모실 정도로 약하다 생각하십니까? 전 원하지 않는 일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럼… 정말 내 제자가 되겠단 말이냐?”

“분명 제 순수한 의지입니다. 물론 벨하크 님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겠죠.”

카일이 짐짓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벨하크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카일이 제자가 되는 것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은 벨하크 본인이었다.

“그, 그럴 리가! 동의한다. 동의하고 말고. 넌 이제부터 이 벨하크의 제자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라니, 오히려 내가 고맙구나! 이렇게 훌륭한 제자를 얻게 되다니.”

밸하크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꽝-

대장간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한사람이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왔다.

“대장!”

“이소프?”

“대장 큰일 났습니다. 지금 펠론 자작을 비롯한 일단의 기사들이 영지로 들어왔습니다. 일단 터그 형님께서 일행을 데리고 이곳으로 달려오시는 중입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팰론 자작이라니? 설마 우릴 추적해온 추적대란 말인가?”

카일이 깜짝 놀라 이소프에게 물었다.

“동이 틀 무렵 갑자기 영지 상공에 와이번들이 나타나 선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함을 느낀 아가씨께서 급히 저와 셋째를 남문으로 보내 감시를 지시하시고, 가져온 말과 마치를 급히 처분하셨습니다.”

“에일 영지야 국경 일대에 배치된 와이번들이 무구를 정비하기 위해 찾는 곳이긴 한데… 무슨 일이냐?”

갑작스런 사내의 등장과 더불어 굳어진 카일의 표정에 벨하크가 다가와 급히 물었다. 벨하크의 물음에 카일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절 믿으십니까?”

“넌 내 이제 나의 유일한 제자다. 스승이 제자를 믿지 않는다면 누굴 믿는단 말이냐?”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저와 일행들은 그린넨 백작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쫓기다니!”

벨하크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린넨 백작은 동부의 모든 세력을 발아래 둔 맹주였다. 그에게 쫓기고 있다면 잡히는 건 시간 문제였다.

“백작은 제가 익힌 검술을 원하고 있습니다.”

“검… 술?”

“전 상급 엑스퍼트에 오른 검사입니다.”

“상급… 엑스퍼트!”

카일의 나이는 아직 20살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도 벌써 상급 엑스퍼트라면 그가 익힌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 검술인지 대장장이인 벨하크도 능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얼마 전 백작 성에서 독을 당해 오러를 잃었거든요.”

“세상에! 백작에 네게 독을 썼단 말이냐?”

“오러를 쓰지 못하게 만드는 특수한 독이라고 하더군요.”

카일이 담담하게 말을 하자 벨하크가 어두워진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고생이… 많았겠구나”

“절 믿어주시는 겁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제자인 널 믿지 않는다면 누굴 믿겠느냐!”

“감사합니다. 스승님.”

카일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그나저나 펠론 자작이면 백작의 동생이 아니냐! 그가 영지 안으로 들어왔다면 에일 영지는 이미 포위된 것이니 마찬가지다.”

벨하크의 말에 카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신없이 검을 두들기다 보니 그만 시간을 너무 지체한 모양이었다.

“맞아요. 이미 이곳은 포위당했을 거예요.”

열린 대장간 문으로 이엘을 비롯한 터그 형제와 시안느가 차례로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한 것 같군요.”

“아니에요. 어차피 저희 모두 지쳐 있어 휴식은 반드시 필요했어요.”

이엘이 고개를 저으며 자책하는 카일을 위로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던 여분의 말과 마차를 처분했으니,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펠론 자작이 도착하면서 성을 빠져나갈 곳이 막혀버린 것이다.

“펠론 자작이 성문에서 내성으로 들어온 마차의 행방과 대장장이의 골목을 물었습니다. 아마도 곧 이곳까지 자작이 쫓아올 겁니다.”

“아무래도 도문트 용병대의 시신을 발견한 것 같아요.”

이엘의 말에 카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도문트 용병대?”

이엘과의 대화를 듣던 벨하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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