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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259화 (259/404)

259. 추격대(2)

땅-

땅-

붉은 노을빛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 무렵, 카일은 죽은 도문트 용병대에게서 회수한 무기를 들고 터그와 함께 에일 영지의 자랑인 대장장이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날이 저물어가는데도 여긴 활기가 넘치는군요.”

귀를 때리는 시끄러운 망치질 소리와 골목 안을 가득 메운 뜨거운 수증기에 터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금속을 다루려면 먼저 불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낮보단 밤이 유리하죠.”

“밤에 보는 불과 낮에 보는 불이 다르단 말입니까?”

“아니, 불꽃은 모두 똑같지만, 어둠 속에서만이 그 진가를 알 수 있지요.”

카일의 설명에도 이해를 하지 못했는지 터그가 고개를 저었다.

“흥,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는 있나 보구나! 제법 불에 대해 아는 척하는 걸 보니 말이다.”

어디선가 들려온 걸걸한 목소리에 카일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온몸이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인 노인이 불이 꺼진 화로 옆에 앉아 카일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쪽 손을 다쳤는지 하얀 천으로 손목을 감고 있었다.

“제게 하신 말입니까?”

카일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럼 너 말고 여기 다른 녀석이 있느냐? 네 녀석처럼 불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녀석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나불거리지!”

노인이 화가 난 듯 소리쳤다. 그러자 골목 안을 시끄럽게 울리던 망치질 소리가 뚝 그치고 대장장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일과 노인에게로 향했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들 같으니라고, 누가 망치질을 쉬라고 했느냐!”

노인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라리자 카일과 노인을 바라보던 대장장이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곤 열심히 망치질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보통 노인네는 아닌 것 같았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말로만 떠드는 녀석으로 보이십니까?”

“그럼, 아니란 말이냐!”

“글쎄요. 불 피우는 것쯤이야 별로 어려울 것 같진 않습니다만?”

카일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라? 감히…!”

“믿지 못하시겠다면 내기를 한 번을 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기?”

“그렇습니다. 제가 지면 이걸 드리지요.”

카일과 터그가 들고 있던 자루를 내려놓았다.

“검이 든 자루입니다.”

“이제 보니 검을 팔러온 놈이구나!”

노인이 한심하다는 듯 자루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 살피더니 카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이걸 내어 주겠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대신 제가 이기면…”

“이걸 사달라는 말이냐? 좋다. 개당 2골드를 주마!”

노인의 말에 터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용병들이 가진 무기를 탈탈 털어온 덕분에 대략 30자루가 넘는 검을 들고 왔으니, 60골드 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카일은 오히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됩니다. 2골드라니요?”

“뭐라! 주위에 아무 대장간이나 들어가 보거라! 그걸로 2골드를 받을 수 있는지.”

“이건 검을 파는 게 아닙니다. 내기를 하는 것이지. 제가 검을 내어 놓았으니, 노인장도 그만한 가치의 것을 내아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카일의 말에 이번엔 노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날더러 4골드나 주고 이 따위 검을 사란말이냐?”

“그야 제가 이겼을 때 이야가죠. 제가 지면 이 검들은 모두 노인장의 것입니다만, 굳이 질것 같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일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검이 담긴 자루를 들고 일어나 몸을 돌렸다.

“이런 망할 녀석 같으니라고! 좋다. 개당 4골드! 대신 내기 방법은 내가 정한다. 하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카인이 당당하게 나오자 노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노인이 한쪽에 놓여있는 청동색 금속을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불에 대해 자신하고 있으니 이걸 녹여 검을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검을 만드는 것까지도 내기에 포함되는 겁니까?”

“아니다. 넌 그저 이걸 녹일 화로만 준비하면 된다. 검을 만들어 줄 녀석은 따로 있으니. 어떠냐! 해 보겠느냐?”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청동색의 금속은 노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낸 합금이었다. 불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절대 녹일 수 없었다. 이 합금을 녹여 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 대장간 골목에도 몇 없었다.

“좋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카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보아하니 검을 다루는 기사나 용병쯤 되어 보이는데, 정말 불을 다뤄보겠다는 것이냐”

“걱정 마십시오.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좋다. 정 원하면 그렇게 하마! 그럼 일단 검을 만들 사람을….”

“필요 없습니다. 검도 제가 만들어 보죠.”

“뭐라!”

카일이 노인장의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 화로 앞으로 다가가자, 노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흥, 두고 보자. 얼마나 잘하는지!”

노인장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일이 신중하게 숯에 불을 붙이며 능숙하게 풀무질을 시작했다. 바삐 일하던 대장장이들이 하나둘씩 주변으로 몰려들더니 어느새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떨 것 같으냐? 저 어린 녀석이 저걸 녹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어림도 없지. 마법 화로도 아니고, 일반화로에서 저걸 어떻게 녹이나, 불가능해!”

“하지만 보라고. 풀무질을 한두 번 해본 녀석이 아니야, 저 정도면 웬만한 숙련공도 못 따라갈 걸. 난 녀석이 녹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좋아! 그럼 우리 내기할까?”

“좋다. 난 못 녹인다에 걸지.”

“그래도 덩치를 보라구. 힘 하나는 끝내줄 것 같은데? 난 녀석이 녹인다에 건다.”

“하하! 나도.”

주변으로 몰려든 대장장이들이 하나둘 자기들끼리 내기를 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모든 사람의 시선이 굵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풀무질을 하는 카일에게로 행했다. 그가 열심히 숯을 밀어 넣으며 풀무질을 했지만, 화로 위에 올려놓은 청동색 금속은 전혀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떠냐! 이만하면 내기는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노인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카일은 노인장의 말엔 대꾸도 하지 않고 풀무질에 열중했다.

“쯧, 틀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큭큭, 보라고. 아무리 힘이 좋으면 뭐 하나! 저건 절대 일반화로에선 녹일 수 없단 말이야.”

“젠장, 돈만 날렸군.”

대장장이들이 투덜거리며 하나둘씩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갑자기 카일이 풀무질을 멈추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패배를 인정하려는 것이냐?”

노인장의 물음에 카일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요. 이제부터 시작인데요.”

카일이 웃으며 대장장이들을 바라보았다.

“풀무질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내가 도와주겠네!”

조금 전 카일에게 돈을 걸었던 사내가 달려 나왔다.

“노인장! 이 정도 도움은 괜찮겠죠.”

“흥, 이런 거로 속 좁게 굴 내가 아니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걸 보여줄지 궁금하구나!”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을 때, 터그가 황급히 사람들을 비집고 달려왔다.

“헉헉, 말씀하신 걸 가져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카일이 웃으며 터그가 가져온 물건을 한 아름 안았다.

“놈! 지… 금 뭘 하려는 거냐!”

노인이 깜짝 놀라 카일을 향해 소리쳤다.

“노인장!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카일이 웃으며 안고 있던걸 화로에 집어넣었다.

화르륵-

“풀무질! 어서요.”

갑작스런 카일의 행동에 당황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던 대장장이가 깜짝 놀라며 재빨리 풀무질을 시작했다. 곧 커졌던 불꽃이 점점 줄어들며 푸른 불꽃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청… 화!”

강력한 열기를 뿜어내는 푸른 청화에 대장장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일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신중히 불꽃을 바라보더니 화로에서 더없이 붉게 달아오른 합금강을 꺼냈다.

깡-

깡-

“녹았다.”

“세상에, 마법 화로도 아닌 일반 화로에서 청괴를 녹이다니…”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대장장이들이 카일의 망치질 소리에 취한 듯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깡앙-

깡앙-

깡-

카일은 순식간에 청괴를 늘이고 형태를 잡더니 곧 망치를 내려놓았다. 따로 담금질이 필요 없는 합금강이기에, 밀집을 태워 순간적으로 온도를 1,000도까지 높이고 금속을 녹인다면, 검을 만드는 것쯤은 카일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싼 대장장이들 눈에는 그의 실력이 수십 년 동안 대장간을 운영한 장인의 솜씨 못지않게 보였다.

“검을 갈고 한번 더 다듬어 곧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풀무질을 맡았던 대장장이가 정중히 다가와 두 손으로 검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검을 만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대장장이가 검을 소중히 받아 뒤로 물러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대장장이들이 검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이것 보라고, 두께와 폭이 이렇게 일정할 수가 있다니….”

“망치질 솜씨가 가히 신의 경지야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장장이들이 연신 탄성을 터트리며 카일이 만든 검을 돌아보기 바빴다.

“이놈! 대체 정체가 뭐냐!”

“그냥 지나가던 기사 놈이라 생각하십시오.”

“뭐라!”

카일의 말에 노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주십시오. 120골드입니다.”

“빌어먹을, 도둑놈 같으니라고!”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지금 만들어 드린 검만 해도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할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야…!”

노인은 카일의 말에 반박하려다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저만한 검이라면 카일의 말대로 상당한 골드를 벌어줄 것이다.

“젠장!”

할 말이 없어진 노인이 품 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통째로 카일에게 던졌다.

“옜다, 이놈아! 당장 먹고 꺼져라!”

“감사합니다.”

카일이 히죽 웃으며 주머니를 터그에게 내밀었다.

“잘 간직하세요.”

“걱정 마십시오.”

터그가 웃으며 품 안에 주머니를 밀어 넣었다.

“뭘 하느냐! 돈을 받았으면 썩 꺼지지 않고.”

“노인장, 이왕 화로에 불을 지폈으니 대장간 좀 빌려 씁시다.”

“뭐라!”

노인이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른 얼굴로 당장이라도 카일을 향해 달려들 듯 주먹을 말아쥐었다.

“어차피 손을 다쳐 화로도 못 쓰지 않습니까?”

카일은 노인을 보며 한차례 씩 웃더니 등 뒤에 메고 있던 대검을 모루 위로 올려놓았다.

땅-

모루와 부딪힌 검에서 청명하고 맑은 음이 흘러나오자 붉게 달아올랐던 노인의 두 눈이 더없이 커졌다. 노인이 급히 카일에게 달려왔다.

“이놈…! 이 검 어디서 났느냐!”

“오다 주웠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노인이 황당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카일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고프가 폭발에 휘말릴 때 검을 주운 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찌하려는 거냐!”

“낡은 검집과 손잡이를 손볼 생각입니다. 무게중심도 틀려서 좀 다듬을 생각입니다.”

“…차라리 이걸 내게 팔아라! 원하는 만큼 골드를 주마!”

“안 됩니다. 이 정도 무게와 강도를 가진 검은 찾기 힘듭니다. 저도 꼭 필요한 검이라서요.”

“합금강은 얼마든지 주마! 너 정도면 이걸 수리할 동안 원하는 검을 충분히 만들 것 아니냐!”

“안 됩니다. 전 이 검이 꼭 필요합니다.”

카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검집에서 검을 뽑아 본격적으로 수리를 시작했다.

“저… 저런! 저게 어떤 물건인데…!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노인이 카일의 옆에서 분통을 터뜨리든 말든, 카일은 세심하게 검 손잡이의 매듭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카일은 펠론 자작의 추적대가 자신과 이엘을 잡고자 에일 남작령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단 걸 꿈에도 상상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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