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57화 (257/404)

257. 도문트 용병대(2)

타다닥-

붉은 불꽃이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며 스스로의 영역을 더욱 넓혔다.

“마법? 지금 그런 것이 과연 중요할까?”

“뭐?”

“어차피 너희들, 모두 죽을 텐데?”

“지금 여기엔 용병만 해도 30명이 넘는다. 고작 아티팩트 하나로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고프가 굳은 얼굴로 한 걸음 더 나섰다. 아무리 고서클 마법이 인챈트 된 대단한 아티팩트라 해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고작해야 서너 번. 결국 마법에 의한 희생은 있을지 몰라도 30명이 넘는 용병 모두를 죽일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군!”

카일이 고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고프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한마디에 동요하던 용병들이 차츰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을 뿐이었다. 그만큼 고프에 대한 부하들의 신뢰가 깊다는 뜻이었다.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기회?”

“여길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 대신 내 사람 하나를 잃었으니 그만한 보상은 해야겠지?”

고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안느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카일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오히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프를 바라보았다.

“멍청한 제안이군.”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마다할 생각인가?”

“서른 명이 넘는 기마 용병을 뒤에 두고 도망을 가란 말인가?”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절대 뒤를 쫓지 않겠다. 남은 부하들과 무사히 빠져나가게 해주겠다.”

“하하, 강도단에게도 명예라는 것이 있나?”

“강… 도단!”

카일의 말에 고프는 물론 용병들 모두 충격을 받은 듯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비록 검은 여우라는 정보조직에 속해있긴 했지만, 정보나 암살이 아닌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하는 전혀 다른 성격의 조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 대부분이 하급기사나 기사 가문 출신이었다. 물론 크루트 용병대처럼 지휘부 일부를 제외한 현지 용병들을 중심으로 용병대를 구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문트 용병대의 경우 대부분 제국에 위해가 되는 상단이나 귀족 가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주를 이루기에 전원이 충성심뿐만 아니라 실력도 높은 제국 기사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오랜 시간 용병으로, 때로는 강도로 위장해 귀족이나 상단을 습격하다 보니 어느덧 변하고 말았다. 기사로서의 긍지와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던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거리낌 없이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강도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문트 용병대, 전원이 충성심 높은 기사들로 이루어진 동부 최강의 타격대라 하더니… 이런 짓을 하고도 아직도 스스로 기사라 착각하고 있었나?”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어떻게 우리에 대해 알고 있지?”

고프가 사납게 노려보며 묻자 카일이 그를 비웃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어떻게 알아냈을까?”

“놈,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어차피 죽일 거 아니었나? 물론 힘들겠지만!”

장난스런 카일의 대답에 고프의 얼굴이 더없이 붉게 달아올랐다. 드디어 그도 인내에 한계를 느낀 것이다.

“놈을 사로잡아라! 직접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고프의 외침에 용병들이 검을 뽑아 들고는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와라!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부터 머리를 박살 내주마!”

카일이 조여오는 포위망에 급히 소리치며, 시안느의 손을 잡고 용병들이 다가온 만큼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결국 마차에 막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되자 그의 얼굴에도 잠시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놈! 이젠 끝이다.”

다가오던 용병 하나가 곧장 카일을 향해 뛰어올라 검을 내리쳐왔다. 하지만 정작 카일을 향한 치명적인 일격은 머리 위가 아니라 측면을 노리고 소리 없이 달려든 검이었다.

타앙-

탕-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울린 두 발의 폭음과 함께 카일에게 달려들었던 두 용병이 바닥에 처박혔다. 처음 죽었던 용병과 마찬가지로 모두 머리가 터져 처참한 모습이었다.

“너!”

“말하지 않았나? 먼저 달려드는 놈부터 머리가 터져 죽을 거라고?”

카일의 얼굴에 가득했던 난처함이나 당혹스러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그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치듯 양손을 들어 능숙하게 용병들을 겨냥했다.

“놈! 아티팩트가 하나가 아니었구나!”

“왜, 하나만 있다고 생각했지?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뭐!”

카일의 말에 고프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맞다. 카일 스스로 아티팩트가 하나라 말한 적은 없었다. 그저 당연히 하나만 있을 거라 스스로 판단했을 뿐이었다.

카일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용병을 향해 손가락을 활짝 펼쳤다.

“보시다시피 손가락은 열 개다. 그러니 열 명이 달려들어도 똑같이 머리를 박살 낼 수 있지.”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느냐!”

아무리 대단한 성능을 갖췄다 해도 열 개가 넘는 아티팩트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물론 얼마든지 시험해 봐도 좋다. 어때, 한번 시험해 보겠느냐?”

카일이 양손을 활짝 펼쳐 용병들을 겨냥하며 말했다.

“못할 거라 생각하나?”

“과연 할 수 있을까?”

카일이 도발하듯 말했다.

“놈!”

“잠시만!”

“설마! 저놈 말을 믿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런 대단한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먼저 공격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야 당연히 횟수 제한 때문이겠지? 무분별하게 사용했다간 시간을 끌지도 못하고 금방 당하고 말 테니 말이야.”

“그렇다고 하기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한 건 저 녀석입니다. 헌데 오히려 부대장님을 도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마치…”

“우리보다 저 녀석이 시간에 쫓기는 것 같단 말이군.”

“그렇습니다.”

“음….”

고프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었다.

“이유를 알아냈나?”

“아직, 한가지 의심은 가지만 정확하진 않습니다.”

“의심?”

“모닥불입니다.”

“모닥불?”

고프가 마차를 중심으로 피워 놓은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커다란 모닥불만 십여 개입니다. 기습에 대비해 피워 놓은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

“너무 많단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죽은 녀석들이 쓰러진 곳을 보십시오.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안쪽입니다.”

“하지만 저 녀석을 잡으려면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야 하니, 당연한 것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의심만 할 뿐 확답을 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고프가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녀석은 계속해서 자신을 놀리듯 도발하며 공격을 유도하고 있었고, 실제로 부하를 셋이나 잃었다. 물론 아티팩트의 존재를 알려 공격을 저지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정말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저 녀석 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란 말이군.”

“어쩌실 생각입니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써야겠지.”

고프가 품 안에서 복잡하고 정교한 문양이 빽빽하게 새겨진 스크롤 한 장을 꺼냈다.

“이걸 여기서 쓰게 될 줄 몰랐군.”

고프가 아쉬운 듯 스크롤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카일을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네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고프가 마치 다짐을 하듯 말하며 과감하게 스크롤을 찢었다. 순간 밝은 금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고프를 중심으로 황금빛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카일이 자신은 물론 마차까지 완벽하게 감싼 마법진을 보며 놀란 듯 물었다.

“안티 매직이 걸린 고대 마법 스크롤이다. 6서클 이하 내외부의 모든 마법 공격을 무효화시키지.”

“그렇다 해도 스크롤인 이상 지속시간은 짧을 텐데?”

“적어도 널 죽일 정도의 시간은 충분하겠지!”

고프가 차갑게 말하며 카일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갑자기 카일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돌연 크게 소리쳤다.

“지금이다.”

삐이익-

카일의 외침과 함께 날카로운 새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곧이어 마법진 안에 있던 용병 하나가 머리가 터져나갔다.

탕-

퍼억-

“이럴 수가! 어떻게…!”

고프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머리가 터져 죽은 용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려 6서클 안티 매직 마법진을 뚫고 머리를 정확히 박살 냈다. 결국 녀석이 사용한 아티팩트에는 6서클 마법보다 높은 서클의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단 소리였다. 물론 카일이 만든 라이플에는 고작해야 1서클 익스프로전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을 뿐이었다. 다만 라이플은 마법을 직접 투사하는 것이 아닌, 마법의 힘으로 탄환을 밀어내 물리적인 타격을 주는 원리라 안티 매직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던 것이다. 고프를 충격에 몰아넣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타앙-

타당-

갑자기 좌우 사방에서 폭음이 일어나며 용병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피하십시오!”

고프의 부관이 그를 안고 바닥으로 쓰러지더니 급히 주변을 살피다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젠장! 속았습니다. 녀석에겐 아티팩트도 없습니다.”

“뭐?”

사방에서 날아든 공격에 죽어가는 용병들 멍하게 바라보던 고프가 자신을 보호하려 필사적으로 몸을 감싸 안은 부관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미끼였습니다. 우릴 밝은 모닥불 가에 묶어둘 미끼 말입니다.”

“그럼 설마!”

고프가 아직도 밝은 빛을 뿜어내며 위상을 뽐내는 거대한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저 마법진으로 인해 어둠 속에 있던 자신들의 실체가 온전히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빌… 어먹을, 나 때문이란 말인가? 내 부하들이 죽어가는 게!”

“지금은 자책하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이제 저들의 비밀을 알았으니 마법진만 사라지면 놈들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부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을 밝히던 마법진이 서서히 힘을 잃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검을 말아쥔 고프가 사라져가는 마법진을 보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마법진이 사라지는 순간 달려나가 단칼에 카일의 목을 쳐낼 생각인 것이다.

“지금이다! 모두 죽여라!”

마법진이 사라지는 순간 고프가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살아남은 용병들 역시 고프의 뒤를 바짝 뒤따랐다.

그때였다. 갑자기 앞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오자 고프가 반사적으로 힘껏 검을 휘둘렀다.

번쩍-

순간 눈을 찌르는 엄청난 빛이 사방으로 번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악-!”

“내 눈-!”

용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순간 또다시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들었다.

탕-

탕탕-

눈을 잡고 발버둥을 치는 용병의 머리와 심장에 총탄이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그럼에도 몇몇 용병은 살아남아, 끝까지 고프의 뒤를 쫓아 카일과 시안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카일이 또다시 고프를 향해 수정구를 던졌다.

“젠장, 빛의 마법이다.”

고프가 놀라 소리치며 급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꽝!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고트의 신형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처박혔다.

위잉-

귓가를 어지럽게 맴도는 이명이 고프를 괴롭혔다. 주변은 온통 비명 소리와 죽은 용병들로 가득했다.

“헬터…! 부관, 어디 있나? 부관…!”

고프가 주저앉아 고개를 흔들며 부관을 불렀지만 위윙 거리는 이명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엉망이군!”

카일이 바닥에 주저앉아 부관을 애타게 찾는 고프에게 다가갔다.

“네놈!”

고프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카일에 분노하며 급히 검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이걸 찾나?”

카일이 폭넓은 브로드 소드를 들어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검이군! 잘 쓰도록 하지!”

“이놈, 감히… 죽여버리겠다!”

고프가 카일을 향해 죽일 듯이 소리치며 달려들려 손을 뻗었지만, 몸이 전혀 움직여지질 않았다. 이미 두 다리가 폭발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위력이 너무 강하군.”

사라진 자신의 두 다리를 발견하곤 그때서야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고프를 보며,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떨어져 있는 검집을 주워 대검을 등 뒤로 비끄러맸다.

“위험했습니다. 급히 마차 밑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폭발에 휩쓸렸을 겁니다.”

터그가 고통에 신음하는 용병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카일이 마지막에 던진 수정구는 멀린이 이엘에게 건넸던 불안정한 수정구 중 하나로 단단한 돌로 지어진 내성을 일부 무너트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력을 자랑했다.

“그래도 다친 사람 없이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지? 일단 모두 불러오게! 아무래도 여기서 자긴 틀린 것 같으니 적당히 챙겨 떠나야 할 것 같군.”

카일이 쓰러져 있는 용병들의 검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설마… 챙긴다는 게?”

“다행히 앞으로 여비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카일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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