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56화 (256/404)

256. 도문트 용병대(1)

삐익-

낮고 짧게 끊어지는 새소리가 조용한 숲속을 가득 메웠다.

경계를 위해 매복한 터그 형제들이 누군가의 접근을 알리려 보내는 경고성 신호였다.

“무장한 자입니다. 인원은 대략 서른 명, 전원이 말을 탔습니다.”

카일의 옆에서 형제들이 보내온 신호를 해석한 터그가 급히 말했다.

“북쪽에서 내려온 병력이라면 용병들이겠군.”

“백작가로 향하는 지원병력일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터그 형제 중 둘째인 이소프가 말했다.

“지원병력이라면, 숲 안쪽까지 들어와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용병들이라면 우리의 정체가 발각될 염려는 없고.”

잔뜩 굳어 있던 터그는 물론 같이 이야기를 듣던 이소프와 로닌의 얼굴까지 서서히 풀어졌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카일의 얼굴엔 차츰 긴장감이 쌓였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차라리 기사단이었다면 통행 패로 의심을 피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럼 용병들은 다르단 말씀입니까?”

“우린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숲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와 야영지를 만들었다. 단순히 휴식을 취하려는 생각이라면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가 있겠나? 더구나 용병들은 무력을 가진 이익집단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도적이나 강도로 돌변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지. 특히 이렇게 인적이 드문 숲 안에선 말이다.”

“지금… 도적이라고 하셨습니까?”

잠시 풀어졌던 터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럼… 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로닌이 다급히 물었다.

“모두 말을 탄 용병들이다. 그들을 상대로 마차를 타고 도주하긴 힘들다. 거기다 이곳 숲속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나무가 많아 마차를 타고 도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럴 수야 없지!”

카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더니 터그를 돌아보았다.

“최대한 모닥불을 넓고 많이 피우게”

“갑자기 모닥불은 왜?”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말해주지.”

급히 터그와 남은 형제들에게 지시를 내린 카일이 쓰러진 나무까지 직접 끌고 와 마차를 중심으로 모닥불을 피우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놈들이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터그가 급히 달려와 말했다.

“외곽에 있는 형제들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잘됐군! 로닌, 이소프”

카일이 이소프와 막내 로닌을 불렀다.

“네!”

“말씀하십시오.”

“너희 둘은 뒤쪽 바위 위로 올라가라!”

“알겠습니다.”

이소프는 카일의 말에 일체의 의문도 갖지 않고는 로닌을 돌아보았다.

“가자, 로닌.”

“네!”

카일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이소프와 로닌을 바라보자 터그가 카일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어쩌긴! 알려줘야지, 우릴 건드리면 어떻게 되지를.”

카일이 고개를 들어 횃불을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긴 행렬을 바라보았다.

* * *

“왜 그러십니까? 부단장님!”

“기분 나쁜 새소리군.”

불빛을 향해 다가가던 부단장 고프가 얼굴을 찌푸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그야 이만한 인원이 갑자기 숲에 들어왔으니 새들도 놀란 것 아니겠습니까?”

“쯧, 그런게 아니야! 이렇게 생각이 없어서야.”

“네?”

“놀란 새들이 자신을 놀래킨 행렬을 쫓아다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부단장의 말에 뒤를 따르던 용병들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부단장의 말대로 낯선 자들 때문에 놀랐다면 멀리 도망가거나 오히려 정체를 감추려 숨을 죽이지 용병대를 쫓아다니며 울어대진 않을 것이다.

“이 주변에 우릴 감시하며 따르는 자들이 있다. 어둠을 틈타 기습할 수 있으니 행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최대한 간격을 좁혀라.”

“알겠습니다.”

고프의 명에 말을 탄 용병들의 간격이 순식간에 좁히며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단단한 행렬을 이루고 불빛을 향해 점점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마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고프는 또 한 번 어쩔 수 없이 용병대를 멈춰 세워야 했다.

“무슨 뜻이지?”

고프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차를 중심으로 십여 곳에 피워놓은 모닥불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저곳만은 대낮처럼 밝아 보였다.

“우리가 와주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글쎄? 인적없는 숲에 갑자기 나타난 30명의 용병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한데? 외곽에서부터 따라온 자들과 신호를 주고받았다면 오히려 위기를 느껴야 정상이 아닌가?”

고프가 마차 주변을 살피며 고심하듯 말했다. 위기를 느꼈다면 급히 몸을 숨기거나 도주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가끔 자만에 빠지거나 실력에 도취된 귀족과 상단들이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봤자 도망친 자들과 마찬가지로 용병대에 잡혀 모두 참혹하게 죽임을 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며 자신들을 온전히 드러낸 채 용병대를 기다리는 자들은 고프로서도 처음이었다.

“함정 같은 걸 만들어 놓은 걸까?”

“모닥불을 피우기도 시간이 모자랐을 겁니다. 함정이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보단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가지?”

“하나는 상급 이상의 대단한 실력자가 있을 가능성입니다. 그런 자가 저곳에 있다면 용병대가 온다고 해도 겁낼 이유가 전혀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저기로 들어갔다간 역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희박하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 그럼 두 번짼?”

“허세를 부리는 겁니다?”

“허세?”

“그렇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상대로 하여금 오히려 경계심을 고취시키는 겁니다.”

“허세라면… 충분히 성공했군요. 우리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걸 보면 말입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고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불 가에 앉아 모닥불을 뒤적이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다소 먼 거리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건장한 사내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어디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얼굴이나 볼까?”

고프가 히죽 웃으며 천천히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정확히는 모닥불 가에 홀로 앉아 있는 카일을 향해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맞은편에 앉았다.

“결국 왔군요.”

카일이 고개를 들어 고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허세였나?”

커다란 덩치에 비해 앳된 카일의 얼굴을 보며 고프가 미소를 지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귀족 집안의 자제인가?”

“그렇다면 뭐가 달라집니까?”

“물론 크게 다르지. 가문에 서신을 보내 몸값을 받고 풀어줄 수 있지.”

“그래서, 살려 보낸 자가 있습니까?”

카일이 모닥불을 뒤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먼 이야기처럼 말했다.

“그것이 궁금한가? 아니면 곧 자네에게 벌어질 일이 궁금한가?”

“글쎄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신과 부하들에게 벌어질 일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카일이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고프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프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으니 특별히 솔직하게 말해주지, 우리가 귀족을 잡으면 일단 가문에 보낼 서신을 쓰게 하지, 몸값과 더불어 약속장소와 시간을 적어서 말이야! 물론 우린 약속을 지킨다네. 몸값만 주변 살아서 가문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이지.”

“대단하군요. 아무리 몸값을 받았다고 해도 자신들의 얼굴을 본 자를 살려 보내다니 말입니다.”

카일이 놀란 얼굴로 고프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몸값을 받았다고 해도, 얼굴이 드러난 이상 살려서 돌려보냈다간 반드시 귀족들에게 보복을 당하고 말 것이다.

“물론 우리의 정체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약간의 제약을 걸긴 하지.”

“제약?”

고프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먼저 우릴 바라본 눈을 도려내지. 그래야 녀석을 보호하며 옮겨 다닌 장소를 알 수 없겠지, 다음으론 우리에 대해 말할 수 없게 혀를 잘라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로도 남길 수 없게 팔을 잘라버리지.”

“잔인하군요.”

“그래도 살 수는 있다네. 앞으로 자네에게 일어날 미래의 일이지. 어떤가, 이젠 겁이 좀 나나?”

“글쎄요? 제 미래를 걱정하기보단 당신과 부하들의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나와 부하들의 미래?”

“그렇습니다. 당신들 모두 이 숲에서 무사히 걸어 나가진 못할 테니 말입니다.”

카일이 살며시 검집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뒤를 쫓던 자들을 믿는 모양이군.”

“알고 있었군요.”

“이곳까지 오는 동안 새가 시끄럽게 울어대서 말이야.”

코프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새로운 신호체계를 만들어야겠군요.”

“내가 보기엔 그런 자들을 믿는 건 무모한 짓이지. 그보다 이제 이런 잡담은 그만하는 것이 어떤가? 부하들이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고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뒤에서 기다리던 용병들도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일?”

그때였다. 마차 문이 열리며 시안느가 밖에서 걸어 나왔다.

“큭큭, 이제 보니 여인들도 있었군.”

고프의 눈이 시안느를 넘어 마차 안으로 향하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당신… 누구죠.”

“나 말인가?”

고프의 시선이 시안느를 훑으며 미소를 지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우리 도른트 용병대가 누군지 아주 자세히 알려주지!”

“도른트 용병대? 당신들이 도른트 용병대란 말입니까?”

“우릴 알아?”

고프가 의아한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도른트 용병대는 대략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제법 큰 규모의 용병대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하급용병으로, 그린넨 백작가와 장기 계약을 맺고 국경에 배치되어 있어 외부엔 잘 알려지지 않은 용병대였다. 물론 이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일 뿐 실제로는 수십 명에 이르는 엑스퍼트와 소드 유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멸한 크루트 용병대처럼 검은 여우 동부지대의 타격대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당신들과는 제법 인연이 깊은 것 같아서요.”

“인연?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나?”

“그럴 리가요. 처음 만나는 겁니다. 그저 당신이 속한 조직과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을 뿐입니다.”

“조직?”

“검은 여우”

카일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고프가 얼굴을 굳히며 자연스럽게 검을 잡았다.

“네놈, 정체가 뭐냐? 설마 붉은 거미인가?”

“그런 건 절 잡고 나서 물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카일이 웃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 시안느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시안느가 단호하게 말했지만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임무는 이엘을 지키는 겁니다.”

“저들을 물리치는 것도 아가씨를 지키는 거예요.”

시안느가 물러나지 않고 대답했다.

“휴…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대신 마차로 다가오는 용병들만 처리하십시오. 절대 마차 주변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카일이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시안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언은 충분히 해두었나? 물론 그녀가 살아남아야 가문에 말을 전할 수 있을 테지만 말이야.”

스르릉-

고프가 손바닥만 한 넓이의 브로드 소드를 뽑아 살기 어린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카일은 오히려 여유롭게 손가락을 들어 고트와 용병들을 가리켰다.

“조심하시죠. 그러다 제 손가락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뭐라?”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카일이 히죽 웃으며 도발하듯 고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저, 저 녀석이!”

카일의 도발에 용병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달려들자, 카일이 정말 손가락 하나로만 용병을 죽이려는 듯 달려오는 용병을 향해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튕겼다.

“죽이면 안 돼! 녀석에게 알아…!”

탕앙-

퍼억-

고프가 달려드는 용병을 향해 급히 소리치던 순간, 낮은 폭음과 함께 카일을 향해 달려들던 용병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어떻습니까? 또 제 손가락에 죽을 사람이 있습니까?”

카일이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용병들을 가리키자 깜짝 놀란 용병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마, 마법은 쓴 것이냐!”

고프 또한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재빨리 주변을 살폈지만, 보이는 건 칠흑 같은 어둠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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