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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238화 (238/404)

238.동부로(4)

이른 새벽녘,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넓은 분지 위로 거대한 블랙 와이번과 두 마리의 골드 와이번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고생하셨어요. 세인 경.”

이엘이 세인에게 미소지었다. 그러다 그녀의 표정이 곧 우울하게 변해 버렸다.

카일과 혼인을 결심한 이후, 이엘은 왕성에 도착하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하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왕성에 도착하고 나니 카일은 용병대를 창단하고 새롭게 주류사업까지 펼치느라 대화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제 아침, 카일은 그녀를 백작 가문 데려다주겠다는 통보 아닌 통보를 남겼다.

하지만 이엘은 오히려 이번에야말로 카일과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고백할 기회라 생각했다. 왕성에서 동부 그린넨 백작 가문까지 가려면 빠른 마차를 달려도 이십여 일은 충분히 걸릴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 좁은 마차 안에서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분명 기회가 찾아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런 이엘의 계획은 그제 저녁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3마리의 와이번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더구나 카일이 코퍼 용병대와 함께 움직이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안느와 이엘이 세인과 새롭게 맹약을 맺은 골드 와이번에 탑승하기로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어디 불편한 곳이 있습니까? 표정이 좋지 않아요.”

초점이 잡히지 않은 우울한 눈빛으로 황량한 평원을 응시하는 이엘을 향해 카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아니에요. 잠시 피곤해서….”

당황한 이엘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카일의 시선을 피해 돌아섰다.

“죄송해요. 제가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군요.”

카일이 급히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와이번을 타고 거친 바람을 맞으며 장시간 비행하는 것은 건장한 용병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평범한 여인에 불과한 이엘에게는 더욱더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아니에요. 툴린 님께서 주신 포션을 마셨으니 곧 괜찮아질 거예요.”

카일의 걱정스런 표정에 이엘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제로 툴린은 미스티늄과 최상급 포션의 비율을 조정하고 희석해 피로와 체력을 획기적으로 회복시키는 포션을 만들어냈고, 그걸 건네받은 덕분에 이엘은 큰 피로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실 겁니다. 일단 천공 탑에서 쉬고 계십시오. 출발은 내일 아침에 하겠습니다.”

“카일 님은… 오늘도 바쁘신가요?”

“네!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엘의 얼굴이 다시 어둡게 가라앉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이엘이 용기를 내 고개를 들었다.

“카일 님!”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이엘을 바라보고 있던 카일이 고개를 돌렸다.

“멀린 님!”

카일이 멀린을 발견하곤 환하게 웃었다.

“이엘 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시안느 경과 함께 천공 탑에 먼저 돌아가 계십시오.”

“저…!”

카일이 이엘을 향해 말을 쏟아낸 후 멀린에게 서둘러 달려가 버렸다.

“아가씨…”

이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곧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아, 시안느가 걱정스럽게 불렀다.

“괘, 괜찮아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이엘이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서 있는 천공 탑을 올려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카일은 멀린과 함께 마중을 나온 터그 형제를 반갑게 마주했다.

“어떻게 지내고 계셨습니까?”

“저희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 그전에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멀린이 웃으며 카일을 이끌었다.

“중요한 겁니까?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잠시면 됩니다.”

멀린이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이끌었다. 카일은 마지못해 멀린의 뒤를 쫓았다.

“저흰 어쩌죠?”

버크가 이제 막 일행과 합류한 코퍼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원 초가로 블랙 와이번 대신 가장 후미에서 비행한 워드의 골드 와이번을 탑승하다 보니 일행과의 합류가 늦어진 것이다.

“어쩌긴, 따라가야지!”

멀어져 가는 카일의 모습에 마음이 급했는지 브린이 먼저 카일의 뒤를 쫓았다.

“쫓아가자!”

서둘러 카일의 뒤를 쫓는 브린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코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코퍼의 허락이 떨어지자 멀어져 거는 브린을 보며 망설이던 버크와 아덱이 서둘러 뒤를 쫓았다.

그 모습을 굳은 얼굴로 응시하던 코퍼가 야튜를 돌아보았다.

“넌 가지 않느냐?”

“전 형님 옆이 더 좋습니다.”

야튜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코퍼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래, 넌 언제나 의리를 목숨처럼 생각해 왔지.”

“동생들을 너무 미워하진 마십시오. 저들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야튜의 말에 코퍼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도 흔들리는가 보구나.”

“그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형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워드 님의 와이번을 타고 오신 것 아닙니까?”

야튜의 말에 코퍼가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카일이 이번 원행에 우릴 데려온 이유, 형님도 아실 겁니다.”

“알고 있다. 녀석이 직접 와이번까지 불러냈으니… 아마도 단단히 마음을 먹었겠지. 걱정 마라! 나도 오래 끌지는 않을 테니.”

코퍼는 더 이상 대화를 잇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멀어져간 일행과 합류하려는지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카일과 멀린, 그리고 터그 형제는 이미 폐허가 된 성안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멀린의 말에 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그저 폐허뿐이었다.

“여기에 뭐가 있는 겁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멀린이 터그 형제를 돌아보았다.

“시작하죠.”

“알겠습니다.”

터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형제들과 눈을 마주했다.

“전투대형!”

터그의 낮은 외침에 형제들이 재빨리 이 열로 늘어서며 품 안에서 짧은 막대기를 꺼냈다.

철컥-

낮은 소성과 함께 짧은 막대가 쭉 늘어났다.

“저건!”

카일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터그의 손에는 화려한 장식이 섬세하게 조각된 아름다운 라이플이 들려있었다. 개머리판의 길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신축형으로, 지금껏 커다란 코트형 레더아머에 감춰져 있어 카일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탄창결합!”

터그가 짧은 외침과 함께 허리에서 쇠막대 형태의 탄창을 꺼내 라이플에 장착했다.

“전진!”

터그가 앞사람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터그 형제들이 일사불란하면서도 빠르게 폐허로 진입했다.

크아악-!

그때였다.

폐허 여기저기에 쌓여있던 돌무더기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일어났다. 골렘이었다. 지금껏 천공 탑을 방어하던 스톤 골렘에 비하면 크기도 너무 작고 움직임도 느렸다.

“제가 만든 표적용 골렘입니다. 작은 마나석에 간단한 마법진을 더해 만든 거라 그리 위협적인 골렘은 아닙니다만, 힘은 일반 성인보다 강해 일꾼으로 활용하기는 좋죠.”

타앙-!

멀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터그 형제의 라이플에서 첫 번째 탄환이 발사되었다.

퍼억-

탄환은 정확히 골렘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러자 스톤 골렘의 머리에 큼직한 구멍이 생기며 돌무더기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철컥-

첫 탄환을 발사한 터그가 재빨리 볼트를 당겨 제 장전을 하는 사이, 형제들 역시 다가오는 스톤 골렘을 향해 탄환을 발사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연속사격은 불가능해 탄환을 발사할 때마다 새롭게 장전을 해야 했지만, 탄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전속도를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전속도가 빨라졌어도 몰려드는 스톤 골렘을 감당하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대단하군요. 이만하면 라이플의 성능은 충분히 확인한 것 같습니다. 이러다 다칠 수도 있으니 그만 종료해도 될 것 같습니다.”

카일의 말에 멀린이 카일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랍니다. 조금 더 지켜보시죠.”

멀린이 웃으며 터그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터그와 형제들이 품 안에서 오리 알 정도의 둥근 수정을 꺼내더니 라이플을 향해 힘껏 내려쳤다.

퍼석-

순간 수정구에 실금이 생기며 투명했던 수정구가 점차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척탄!”

터그가 힘껏 외치며 붉게 달아오른 수정구를 스톤 골렘에게 힘껏 던졌다. 동시에 척탄에서 제외된 형제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실드.”

터그와 형제들의 앞으로 투명한 방패가 형성되었다.

꽈과광-

곧 엄청난 폭음이 연이어 울리며 사방으로 몰려들던 스톤 골렘이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전진!”

탕-

타당-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속에서 총성과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수… 류탄을 만든 겁니까?”

카일이 황당한 표정으로 멀린에게 물었다. 터그가 사용한 수류탄의 위력이 강하기는 했지만, 스크롤이 발달한 이곳에선 사실 무게만 차지하는 수류탄보다는 마법이 인챈트된 다량의 스크롤이 더 효율적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가요. 이건 단순한 수류탄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랍니다.”

멀린이 웃으며 둥근 수정을 꺼내 카일에게 내밀었다. 수정구의 중앙에 작은 마나석이 박혀 있고, 주변으로 세 가지 마법진이 교묘하게 교차하여 독특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특이하군요.”

카일의 말에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막 돌아온 터그를 돌아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터그의 말에 멀린이 웃으며 들고 있던 수정구를 내밀었다.

“카일 님이 수정구에 궁금하신 것이 많은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터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정구를 받아 들었다. 그리곤 카일과 경악에 빠져있는 코퍼 용병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터그가 경고를 남기더니 들고 있던 수정구를 라이플을 향해 힘껏 내려쳤다.

퍼석-

수정구 전체로 실금이 퍼져나갔다. 이번엔 처음 터그가 사용했던 수정구와는 달리 순백의 기운이 점차 수정구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터그가 재빨리 앞쪽으로 수정구를 던지며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카일 역시 본능적으로 터그를 따라 급히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퍽-

번쩍-

눈을 감았음에도 강렬함이 느껴질 정도로 눈 부신 빛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져 버렸다.

“으악-!”

“아악! 앞이 안 보여!”

“내 눈!”

호기심 탓에 수정구를 관찰하던 브린과 버크, 그리고 아덱이 강렬한 빛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코퍼와 야투도 순간 시력을 잃고 침착하게 눈을 감았지만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조금 지나면 시각이 다시 돌아올 겁니다. 가만히 계세요.”

멀린이 고통을 호소하는 코퍼 용병대를 보며 급히 말했다.

“섬광탄!”

카일이 탄성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맞습니다. 시카니스의 안장에 꽂혀있는 스피어를 연구하며 얻은 마법진을 새겼습니다. 워낙 강력해 지속시간이 찰나에 불과하지만 효과는 확실하죠.”

멀린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터그를 바라보았다.

“마법진이 세 개더군요.”

“잘 보셨습니다. 아직 하나가 남았죠.”

터그가 웃으며 품 안에 남아 있던 수정구을 꺼냈다. 그리고는 차츰 시력을 되찾고 있는 코퍼 용병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다시 손에 들린 수정구를 힘껏 내려쳤다.

그러자 이번에도 하얀 기운이 일어나 수정구를 감쌌다. 겨우 시력을 회복한 브린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빛이다. 피해!”

브린이 급히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것도 모자라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젠장! 또야?”

브린의 외침에 깜짝 놀란 버크와 코퍼 용병대 전체가 브린을 따라 얼굴을 보호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퍽-

그와 동시에 하늘로 던져진 수정구가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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