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새로운 연공법
파코는 카일의 말을 충실히 이행했다.
심장 주위를 맴돌며 뭉쳐있던 기운을 한순간 전신으로 흩어 버렸다.
마치 공기 중으로 품어낸 입김이 사방으로 퍼지듯 심장에 뭉쳐있던 기운들이 전신으로 흩어졌다.
다행히 카일의 생각처럼 마나는 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고 전신으로 퍼졌다가, 이슬이 맺히듯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바로 목 아래, 빗장뼈 안쪽에 위치한 마나 포인트 였다.
“컥-!”
갑자기 파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답답한 숨을 토해냈다. 전신으로 퍼져 나갔던 기운이 한곳에 자리를 잡자 흩어졌던 마나가 맹렬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흐름을 살피던 카일이 깜짝 놀라며 급히 오러를 움직여 모여드는 마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마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쿨럭…!”
파코가 격하게 기침하며 검붉은 피를 토하자 툴린이 깜짝 놀라 카일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마나 포인트로 모여드는 마나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큰일이…?”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파코의 얼굴이 점점 편안하게 바뀌어 있었다.
카일이 다시 어깨를 통해 조심스럽게 오러를 밀어 넣어 파코의 내부를 살폈다.
“어?”
카일이 깜짝 놀라 감았던 눈을 뜨고는 흥미로운 듯 습관처럼 볼을 쓰다듬으며 파코를 바라보았다.
“뭐지? 왜 녀석이 갑자기 안정을 찾은 것이냐?”
흥미로운 얼굴의 카일을 보며 궁금증이 폭발한 툴린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카일의 팔을 붙들었다.
“개화를 했습니다.”
“개화?”
카일이 파코의 목 아래쪽을 가리켰다.
“이 위치의 마나 포인트를 개화시킨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개화라기보단 진화가 정확할 것 같군요. 아무튼, 과도한 마나가 몰려들면서 닫혔던 마나 포인트가 넓고 커졌어요.”
그 말에 툴린이 생각을 정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흠, 비정상적인 상황이구나. 어쩔 생각이냐? 계속 이대로 진행할 생각이냐?”
“일단 파코의 의견부터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카일의 말에 툴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파코?”
카일의 부름에 파코가 눈을 뜨곤 자세를 바로 했다.
“이야기는 들었겠죠?”
“네.”
“결정은 파코가 직접 하는 게 좋겠어요. 물론 지금 멈춘다고 해도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을 거라 장담하죠. 오히려 지금 열어 놓은 마나 포인트 덕분에 체력이나 건강은 전보다 나아졌을 겁니다.”
“계속하면… 그러니까 이 연공법을 모두 익히면 어떻게 되나요?”
“밤의 숨결은 총 8가지의 동작으로, 모두 양팔에 위치한 마나 포인트를 연결하는 것이 목적이죠. 성공한다면 소드 유저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소… 소드 유저!”
파코가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오러를 신체로 퍼트려 일반인보다 더 강한 힘과 내구력을 가진 존재, 달리 오러 유저라 불리며 본격적으로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단계다.
보통 C급 용병 정도가 여기에 해당하지만 파코처럼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히지 못한 최하급 용병에겐 꿈과 같은 경지였다.
“하겠습니다.”
“다만 진행 과정이 처음부터 예상을 빗나갔어요. 자칫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어요.”
“그래도…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십시오.”
파코의 단호한 음성에 카일이 툴린을 돌아보았다.
“이상 현상이긴 하지만,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니라 생각한다.”
“좋습니다. 그럼 계속해 보죠.”
파코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 동작을 취했다. 소드 유저가 되겠다는 욕심에 계속하겠다곤 했지만 막상 다시 실험을 진행하려니 긴장감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강제로라도 마나를 제어해 외부로 배출시킬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파코가 고개를 숙이자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마나의 급격한 움직임을 미리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미스티늄입니다.”
카일이 옅은 보랏빛 액체가 담긴 작은 병을 내밀자 파코가 잠시 망설이듯 미스티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흔들리는 마음을 털어내려는 것처럼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단호한 눈빛으로 단번에 미스티늄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방법은 동일합니다. 심장에 모여든 마나를 흩어 놓으면 됩니다.”
카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심장을 감싸던 마나가 전신으로 흩어지더니 다시금 양쪽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인력이 발생하듯 목 아래쪽과 양쪽 어깨에서 동시에 뻗어 나온 실낱같은 가느다란 기운이 마나로드를 따라 하나로 이어지더니 점점 통로를 넓히기 시작했다.
“어떠냐?”
굵은 땀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파코를 보고 툴린이 물었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마지막 양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마나로드까지 연결되자, 파코는 손바닥의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카일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이 연공법, 아무래도 소드 유저를 빠르게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처음엔 과도한 마나의 집중으로 이상 현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여기 목 아래쪽 마나 포인트를 키우는 것이 이 연공법의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일이 목 아래 마나 포인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곳을 빠르게 연 덕분에 보다 쉽게 두 팔을 이어주는, 단순하지만 안정적이고 완벽한 마나로드가 만들어졌습니다. 덕분에 인위적인 마나의 움직임에도 큰 부작용이 없었던 겁니다.”
“안정적인 마나로드라면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
“안정적이고 완벽하단 말은 달리 말하면 더 이상 확장이 불가능… 아니 불필요하단 말입니다.”
“…?”
툴린이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일이 보다 자세히 설명을 이었다.
“소드 유저는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킬 때, 손바닥에서 어깨, 넓게는 허리까지 오러 순환을 이루게 됩니다. 그보다 더 나아간 엑스퍼트는 발바닥까지 순환이 가능하고요. 이때의 오러 순환은 좌우로 달린 커다란 바퀴 두 개가 회전하는 형태를 이루죠. 그리고 중급에 이르러서야 서로 달리 움직이던 두 바퀴가 아랫배의 마나 플라워로 인해 하나로 합일하며, 불안정했던 마나로드가 안정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파코의 마나로드는 이미 안정적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목 아래쪽 마나 포인트를 통해 위아래로 움직여야 할 마나로드를 좌우로 회전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때문에 빠르게 소드 유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엑스퍼트는 될 수 없을 겁니다.”
“확장이 불가능하단 말이… 설마!”
“밤의 숨결을 익히는 순간 더 이상 소드 유저 이상의 경지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겁니다. 단, 일반적인 소드 유저보다는 강하겠죠. 인위적이긴 하지만 마나 플라워가 하나 더 있으니까요.”
카일이 씁쓸한 얼굴로 파코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쩔 생각이냐? 원래의 목적은 밤의 숨결을 용병대 전체에 전수하려는 것 아니었느냐?”
“일단 솔직하게 밝히고 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수할 생각입니다.”
“아마 용병대 전체가 연공법을 익히려 할 겁니다.”
파코가 한결 맑아진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 같은 하급용병에겐 소드 유저만 해도 꿈같은 경지입니다. 하물며 다른 소드 유저보다 더 강하다면 더할 나위 없죠.”
“그럴까요?”
“반드시 그럴 겁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게 연공법을 전수해 주셔서.”
파코가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새로운 소드 유저가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볼까요?”
카일의 말에 파코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기 때문이었다.
“쯧, 밤새 그 고생을 하고 아직도 힘이 남은 게냐?”
툴린이 혀를 차며 물러났다.
“같이 나가시지 않겠습니까?”
“일 없다. 난 그 시간에 잠이나 자련다.”
툴린이 고개를 저으며 한쪽에 놓인 침상으로 향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어서 가거라!”
카일은 파코와 함께 저택 뒤편 작은 연무장으로 향했다.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파코가 검을 뽑았다. 이제 막 검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만큼 수련을 많이 해서인지 제법 안정적인 자세였다.
“타핫!”
짧은 기합과 함께 파코의 몸이 주욱 늘어나며 카일을 향해 검을 그었다.
쉬익-.
빠르게 날아든 검을 피해 카일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자, 파코가 몸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져 볼썽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
와장창-
“크윽-!”
“흠… 일단은 천천히 시작해 보죠.”
“아, 알겠습니다.”
파코가 무안한 듯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증가한 힘을 감당하지 못해서입니다. 이번엔 천천히 속도를 올려보죠.”
카일이 검을 뽑았다.
“공격을 해보십시오.”
파코가 천천히 카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창-
창창-
“좋아요! 조금 더 속도를 올려보죠.”
“네!”
가볍게 파코의 검을 막아가던 카일이 조금씩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깡-
까강-
“무슨 일이지?”
“아침부터 누가 수련 중인가 본데?”
“어? 대장님과 파코 십인장인데?”
심상치 않은 대련에 두 사람의 주변으로 용병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약속 대련인가?”
“이야! 파코 십인장, 제법인데?”
“대장이 적당히 맞춰주고 있으니 그렇지.”
“그렇다고 해도 검속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용병들이 모여들자 잠시 당황하던 파코가 빨라지는 검속과 공격에 흔들리는 감정을 다잡으며 더욱 집중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세상에…!”
점점 빨라지는 검속에 모여있던 용병들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이젠 하급용병의 눈으로는 잔상조차 따라갈 수 없어 검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불꽃과 소리만으로 겨우 대련 중임을 확인할 정도였다.
“소드 유저?”
“글쎄… 저걸 소드 유저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새 용병들 틈에 끼어든 브린이 버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 정도면 검속이면 엑스퍼트 아닐까?”
“어제까지만 해도 하급용병에 불과했던 사람이 갑자기 엑스퍼트? 그게 가능해?”
“저기 저 녀석!”
브린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대련을 지켜보는 밀런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카일이 하루아침에 엑스퍼트로 만들어 놓았잖아!”
“저 녀석이야 다르지, 이미 소드 유저 끝자락에 걸쳐있었으니…”
브린이 부러운 듯 밀런을 응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비슷한 경지였던 녀석이 주인 하나 잘 만나 하루아침에 엑스퍼트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꽝-
그때였다.
포탄이 터지듯 강한 충격음과 함께 파코의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파코가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강력한 충격이 지속되자 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아!”
파코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검술에 너무 몰두해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마도 검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검신이 부서져 버린 검자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파코가 고개를 들어 카일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대장”
파코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카일 대장을 평생 주인으로 섬기겠습니다. 설령 제 목숨이 필요하다 해도 기쁘게 내어드릴 테니 허락해 주십시오.”
파코의 말에 카일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당황한 카일이 파코를 일으켜 급히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파코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카일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는다면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파코의 눈빛에, 카일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대장!”
파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명을 내리죠.”
“네?”
“오늘부터 연공법을 전수받길 희망하는 용병들 명단을 작성해 오세요. 할 수 있겠죠?”
“…그건!”
파코가 당황한 얼굴로 충격과 경악에 휩싸여 그를 포위하고 있는 수백의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부탁하죠. 전 할 일이 있어…!”
“대장…!”
카일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을 빠르게 벗어나 버렸다. 그리고 곧 홀로 남은 파코를 향해 수백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하하!”
파코가 어색하게 웃으며 주춤 뒤로 물러났다.
“잡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용병들이 일제히 파코를 덮쳤다.
“…젠장! 말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