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27화 (227/404)

227.마라스 용병단(2)

마크와 비터가 앞서 걸어가는 카일의 등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불같이 화를 낼 거란 생각과는 달리 카일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 인간, 설마 우릴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려는 거 아니야?’

카일의 침묵한 채 점점 인적이 드문 숲속으로 들어서자 마크가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다 비터를 향해 입을 뻥긋거렸다.

‘그, 그럴 리가?’

비터가 마크의 생각을 애써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그 역시도 가슴 깊숙히 올라오는 불안감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우뚝-

퍽-

“헉-”

마크가 깜짝놀라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갑자기 카일이 멈춰서는 바람에 카일의 등에 머리가 부딪치고 만것이다.

카일이 고개를 돌려 마크와 비터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 그게… 우리도 용병들을 데려오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마, 맞다. 수, 숫자가 좀… 아니 아주 많기는 하지만….”

“조용! 쓸데 없는 소린 집어치워!”

“헙!”

“헉”

카일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두 사람이 급히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엉망이군!”

카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마크와 비터를 바라보았다.

“분명 말했다. 하루도 빠지지 말고 혼원장을 수련하라고 말이다.”

카일의 말에 고개를 푹 숙였던 마크와 비터가 휙- 소리가 날 정도로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카일을 올려봤다.

“화가난 게… 후, 훈련 때문에…!”

“당연한 것 아닌가? 벌써 엑스퍼트에 올랐어야 할 녀석들이 아직도 제자리에 멈춰있는데 그럼 칭찬을 해야 한단 말인가?”

카일이 두 사람을 노려보자 마크와 비터가 카일의 눈을 피해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카일의 말대로 북부를 거처 왕도까지 돌아오는 동안 이동 중이니 어쩔 수 없다는 둥 제이콥 용병단의 압박 때문이라는 둥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한동안 훈련을 게을리한 건 사실이라 카일의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지만… 녀석이란 말은 좀… 그래도 내가 형인데”

비터가 카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지만 카일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카일은 한심한 눈빛으로 비터와 마크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 그럼 우릴 왜 여기로 데려온 것이냐?”

“가문의 검술을 논하는 자리다. 설마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말을 하란 말인가?”

“거, 검술!”

카일이 반문하자 두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익힐 수 없었던 가문의 검술을 넘어 새로운 검술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카일의 선언에 두 사람의 얼굴이 도로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당장 검술을 전해줄 수는 없다.”

“아니! 왜…?”

“그걸 내게 물으면 뭐라 답해야 하지? 당사자가 이유를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카일이 사납게 노려보며 말하자 마크가 황급히 카일의 시선을 피했다.

“가문의 검술을 익히려면 혼원장을 꾸준히 익혀 몸에 걸리는 부하를 줄여야 한다.”

“그런….”

“왜? 새로운 검술을 익힐 생각에 혼원장은 익힐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한 건가?”

카일의 말에 마크와 비터 두 사람이 흠칫 몸을 떨었다. 카일의 말대로 새로운 검술을 익힐 생각에 혼원장을 등한시했기 때문이었다.

카일은 두 사람의 흔들리는 눈빛에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가문에 복수하고 누이를 지키겠다는 녀석들이… 한심하군.”

“미, 미안하다. 앞으로는 열심히 익히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고개를 숙인 마크와 비터의 모습에 카일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비록 혼원장을 등한시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름 기초가 탄탄해 새로운 검술을 곧바로 가르쳐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카일이 이렇게 두 사람을 몰아붙인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좋다. 마라스 용병대를 데려왔으니… 너희도 노력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겠지.”

카일은 고개를 숙인 채 처분을 기다리는 마크와 비터를 한동안 내려보다가 마지못해 알려준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엑스퍼트에 올랐다면 이따위 고민도 하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선택하겠다.”

“차… 선책?”

마크가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너희 두 사람의 경지를 엑스퍼트로 끌어올리겠다.”

“서, 설마 인위적으로 엑스퍼트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냐!”

“소드 유저의 끝자락에 올랐다면 가능하다.”

“마, 말도 안 돼!”

뜻하지 않은 카일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요하진 않겠지만 일단 엑스퍼트에 오른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검술을 전수해 줄 수 있다. 선택은 두 사람의 몫이다.”

카일이 담담하게 두 사람을 내려보며 말했다.

“저, 정말 인위적으로 경지를 끌어올릴수 있단 말이냐?”

“승낙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엑스퍼트로 경지를 끌어올려주겠다. 물론 인위적인 방법이라 약간의 고통은 따르겠지만 경지를 단번에 넘어서는 것이니 그 정도 부작용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카일의 말에 비터와 마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드 유저는 몸안의 오러를 활성화시켜 보다 빠르고 강한 힘을 사용하는 자. 엑스퍼트는 본격적으로 검에 유형화된 오러 소드를 형성할 수 있는 자. 단 한 단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오러 소드를 펼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엄청나다.

단적으로 제이콥 용병대의 소드 유저들을 단번에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미스티늄이란 마나포션을 이용해 강제로 오러 소드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하겠다.”

“나도 마찬가지다. 엑스퍼트에 오를 수 있다면 고통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단호하게 말하는 마크와 비터에 카일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했다. 그럼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일단 자리에 편하게 앉아라!”

마크와 비터가 바닥에 편안하게 앉자 카일은 먼저 비터의 등 뒤에 앉았다.

인위적으로 소드 유저를 엑스퍼트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양발에 직접 압축된 마나를 주입해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켜야 하지만, 지금 카일이 하려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시작한다. 고통이 있더라도 입을 열어선 안돼!”

“걱정마라!”

입을 굳게 다문 비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깊게 호흡을 들여 마셨다가 내뱉으며 천천히 몸안에 잠들어있는 암흑마기를 끌어 올렸다. 이 방법은 모트 자작과의 결투 과정을 복귀하다가 떠오른 방법이었다. 암흑마기는 상급 엑스퍼트인 모트 자작의 강력한 오러에도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마나로드를 파괴할 정도로 강맹했다. 만약 이 암흑마기를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운영해 인위적으로 막힌 마나로드를 뚫고 손과 발의 마나로드를 연결한다면 분명 엑스퍼트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 첫 시험 대상자는 다름 아닌 비터였다.

“흡!”

카일이 비터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순간 진득하면서도 강맹한 기운이 비터의 마나로드 사이를 파고들었다. 다행히 미스티늄을 사용한지 얼마되지 않아 체내에 오러가 거의 남지 않았고, 암흑마기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마나로드를 찢어발기듯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마나로드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억지로 비명을 참은 비터가 식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그나마 오러가 남아 있지 않아 오러의 충돌이 미약함에도 비터가 느끼는 고통은 대단했다.

카일은 비터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암흑마기를 컨트롤 하는 데만 집중하며 더욱 세심하게 마기를 조율해 마나로드를 뚫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양발에 위치한 마나로드를 향해 마기를 집중했다.

꽝-

마치 폭음이 터지듯 비터의 양발이 들썩였다. 카일의 얼굴이 찌푸려져 있었다. 첫 도전이 실패 한 것이다.

카일은 더욱 세심하고 가늘게 마기를 조절한 다음 다시 한번 강하게 마기를 돌진시켰다.

꽝-

비터의 양발이 또다시 높이 들렸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쩌억-

그와 동시에 마치 유리 조각이 부서져 나가는 듯 닫혀 있던 마나로드가 열리며 그사이를 암흑마기가 파고들었다.

‘됐다.’

카일은 재빨리 신성력을 끌어올려 마기를 밀어내는 동시에 마기로 인해 거칠고 광폭하게 찢어지고 파괴된 마나로드를 복구하며 신성력을 주입해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켰다.

파괴를 목적으로 한 암흑마기 보다는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의 신성력이 마나 플라워를 개화시키는 데 더 적합하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카일의 신성력을 받아들인 마나 플라워는 곧 새하얀 꽃을 피우며 드디어 스스로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카일은 천천히 비터의 몸에서 손을 뗐다.

“성공… 한 건가?”

마크가 재빨리 카일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물론!”

카일이 웃으며 기절한 듯 잠들어있는 비터를 내려다보았다.

“저기….”

“응?”

카일이 고개를 돌리자 마크가 카일의 옆으로 다가와 어색하게 웃었다.

“난 이미 준비됐다.”

마크의 말에 카일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 * *

꽝-

닫혀 있던 문이 떨어져 나갈 듯 활짝 열리며 당황한 용병 하나가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뭐야!”

얼마 전 어렵게 구한 흑갈색 빛 옹기 찻잔을 들어 올리던 테일런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시간만은 다른 누구도 방해해선 안 되는 오직 그만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테이런이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참으며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칫 화를 참지 못해 어렵게 구한 찻잔을 부수진 않을까 염려에서였다.

“얼마나 큰일이기에 내 티 타임을 방해했는지 나도 궁금하군, 일츠.”

테일론의 날카로운 눈빛에 그제야 일츠는 자신이 테일론의 티 타임을 방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움찔 몸을 떨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제이콥 용병대가 마라스 용병대를 기습한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그 녀석을 부추긴 게 난데 당연한 것 아닌가? 설마 제이콥이 마라스 용병대를 먹었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일로 내 티 타임을 방해한 건 아니겠지?”

“그, 그럴리가요.”

“그럼?”

테일런이 그제야 일츠를 바라보며 관심을 보였다.

“놀랍게도 마라스 용병대가 이겼습니다. 무려 십여 명의 엑스퍼트들이 나타나 단번에 제이콥 용병대를 굴복시켰다고 합니다.”

“뭐라!”

와장창-

테일런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탁자 위에 올려놓았단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스 용병대에 엑스퍼트라니!”

“분명합니다. 제이콥 용병대에 붙여 놓았던 녀석들이 직접 확인했다고 합니다. 분명 누군가 마라스 용병대를 도운 게 틀림없습니다. 나타난 엑스퍼트들이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감히! 도대체 누가 마라스 용병대를 도왔단 말인가!”

분노에 찬 테일런의 외침과 함께 그를 중심으로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대… 장!”

일츠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힘겹게 테일런을 불렀다.

“빌어먹을!”

분노를 겨우 억누른 테일런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일츠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캐시언 백작을 만나야겠다. 곧장 백작에게 연락을 넣어라!”

“아, 알겠습니다. 대장”

일츠가 황급히 달려 나가자, 테일런이 그제야 산산이 부서진 찻잔을 발견했는지 일그러진 얼굴로 한동안 멍하니 부서진 찻잔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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