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25화 (225/404)

225.신비의 미스티늄(2)

“카일이다.”

가장 먼저 카일을 발견한 비터가 기쁨에 환호하더니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내부의 오러를 모두 소진했음에도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억지로 버티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대장이 왔구나!”

밀런 역시 기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뒤이어 코퍼 용병대의 대원들도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긴장이 풀어지며 피로감이 한순간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코퍼와 루트만이 검을 의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왔구나.”

허공이 갈라지며 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큰 상처를 입었는지 입가로 연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제가 왔으니 그만 쉬십시오.”

카일의 말에 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툴린에게로 다가갔다.

“…미스티늄을 사용한 겁니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녀석들부터 막아야 했다.”

“세인 경과 시안느 경은 어떻습니까?”

“부상이 좀 심하긴 하지만 걱정 마라. 이게 있지 않느냐!”

툴린이 작은 유리병을 들어 올렸다.

마법사의 포션의 부작용을 해결한 최상급 포션이었다.

“다행이군요.”

고개를 끄덕인 카일이 고개를 돌려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제이콥 용병대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쓰러지거나 부상 당한 용병의 숫자가 최소 20여 명은 넘어 보였지만, 그래도 아직 30명 정도의 용병들이 멀쩡히 남아 대치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상황을 주시하던 제이콥이 갑자기 바닥 위로 쓰러지는 용병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러 소드를 마구 뿜어내며 용병들을 밀어붙이던 녀석들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버렸으니, 제이콥으로서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지금의 분위기였다.

제이콥과 격렬하게 검격을 주고받았던 두 여인은 물론 엑스퍼트들까지 쓰러지고 숨어있던 암살자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승기는 제이콥 용병대에게 기울었어야 했다. 비록 부상은 당했지만 제이콥이 직접 나선 이상 마라스를 잡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마라스 용병대의 긴장감은 차분하게 풀어지고 안정된 반면, 제이콥 용병대원들은 갑자기 묘한 흥분을 내비치는 적들 탓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였다. 언덕 위로 거구의 사내와 용병 길드의 루이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누구냐!”

상황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오히려 제이콥 용병대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었다.

제이콥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용병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왔다.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원인을 제공한 자를 무너트려야만 했다.

제이콥의 외침에 마침 고개를 돌려 이들을 살펴보던 카일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이콥 대장은 상급에 근접했어요.”

루이즈가 급히 카일의 팔을 잡았지만 카일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루이즈의 팔을 가볍게 뿌리치고 두 진형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다들 어서 카일을 말려봐요.”

루이즈가 다급히 소리를 쳤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툴린은 여전히 부상을 당한 시안느와 세인을 살피고 있었고 다른 용병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남은 사람은 시안느 옆에 앉아 있는 여인, 이엘 뿐이었다.

루이즈가 급히 이엘에게 달려갔다.

“당신, 카일과 함께 온 일행이잖아요. 어서 카일을 말려봐요.”

루이즈의 말에 이엘이 고개를 들었다.

“걱정 말아요. 카일은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제이콥은 상급에 근접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어쩜 이리 태평하죠? 당신들 모두 카일의 동료가 아닌가요?”

루이즈가 분통이 터지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엘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이콥이란 사람이 상급에 근접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그러니 당장…!”

“그러니 카일은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상급에 근접했단 말은 결국 상급 엑스퍼트는 아니란 말이잖아요. 그러니 상급 엑스퍼트인 카일을 이길 수는 없을 거예요.”

“지금… 무슨 말을…!”

루이즈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며칠 뒤면 성인이 될 카일이 벌써 상급 엑스퍼트라니. 루이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돌아서 걸어 가는 카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보다, 카일에게 관심이 있다면 접어두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까지 끼워줄 자리는 없을 것 같군요.”

갑작스런 이엘의 말에 루이즈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아, 아니… 난 그저….”

당황해하는 루이즈를 잠시 돌아보던 이엘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제이콥과 마주 선 카일을 바라보았다.

* * *

“당신이 제이콥입니까?”

“그렇다. 내가 바로 제이콥 용병대의 대장, 제이콥이다. 그런 넌 누구냐!”

“글쎄요. 아마도 마라스 용병대가 왕성에 온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뭐라!”

“그보다 통합을 원한다고 들었는데… 상당히 과격한 방법을 동원했군요.”

“말을 듣지 않으니 힘을 보여줘야지!”

“힘으로 굴복시키겠단 말이군요.”

“약자가 강자를 따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좋은 생각이군요.”

카일이 제이콥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무슨 소리냐!”

“당신의 방식 말입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란 말입니다. 당신만 꺾으면 제이콥 용병대를 얼마든지 차지할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카일의 뜻은 명백했다.

제이콥 당신의 방식대로 용병대를 가지겠다!

카일이 말에 제이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린놈이 죽으려 환장을 했구나!”

분노한 제이콥이 손에 들린 검을 치켜올렸다.

퍽-

“컥-!”

제이콥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언제 움직였는지 카일이 제이콥에게 바짝 다가서 주먹을 날린 것이다.

퍽퍽-

연달아 날아든 빠른 주먹질에 제이콥이 주춤 뒤로 물러났지만, 카일은 바짝 따라붙으며 오히려 제이콥의 목을 틀어줬다.

“커억-!”

몇 대 두들겨 맞고 목이 졸린 제이콥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지만, 카일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는지 다시금 제이콥의 얼굴로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퍼억-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이 몰려오며 제이콥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퍼억-

“굴복하면 그만두지!”

카일이 제이콥을 바짝 당겨 속삭였다.

“그, 그럴수는….”

퍼억-

제이콥의 얼굴에 또다시 카일의 주먹이 작렬했다.

“괜찮아! 맞다 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

카일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주먹을 날렸다.

제이콥은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며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때마다 교묘하게 발목을 걷어차여 중심이 흐트러졌다.

“대, 대장!”

제이콥이 속절없이 무너져가자 데르크를 비롯한 제이콥 용병대원들이 다급하게 달려와 카일을 포위했다.

퍼억-

그러자 카일은 더욱 강하게 제이콥의 목을 틀어쥐고는 주먹을 날렸다.

“물러나라!”

“당장 대장을 내려놓아라!”

“다시 한번 말한다. 물러나라!”

카일이 싸늘하게 경고했지만, 용병들은 오히려 더욱 바짝 카일에게 다가섰다.

“흥! 말을 안 듣는다면 할 수 없지!”

퍽퍽퍽-

카일이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악-!”

결국 제이콥이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카일은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는지 더욱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이놈! 멈추지 못할까!”

보다 못한 데리크가 카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을 피하는 순간을 노려 제이콥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멍청한 놈이군.”

카일은 데르크에게 마주 달려들며 제이콥을 휘둘렀다.

“아, 안돼!”

데르크가 급히 검을 거두며 물러나자 오히려 카일이 더욱 바짝 다가서며 또다시 제이콥을 휘둘렀다.

“…이런!”

데르크가 급히 몸을 피하며 물러나려 했지만 카일을 피할 수는 없었다.

퍼억-

“으악-”

“커헉!”

제이콥과 데르크가 동시에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카일은 바닥에 쓰러진 데르크를 향해 다시 한번 제이콥을 휘둘렀다.

뿌드득

“크아악-!”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데르크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용병들이 주춤 물러났다. 전의를 상실한 탓에 기회를 보아 도주하려는 것이다.

“도망가면 죽는다.”

카일이 물러나는 용병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순간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용병들이 그 자리에서 굳은 듯 멈춰 섰다.

카일이 한차례 용병들을 노려보자 용병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시작하지!”

카일이 주먹을 들어 다시 제이콥을 두들겼다.

“굴복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소리쳐라! 그럼 멈추겠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싶다면… 그냥 맞아 죽어라!”

카일의 말에 묵묵히 주먹을 얻어맞던 제이콥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는 용병이 되고부터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남들보다 한발 앞서 전장에 뛰어들었고 가장 마지막에 빠져나왔다. 덕분에 빠르게 지금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웠다.

이건 전투도 아니다. 검격을 나누다 정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먹질에 맞아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 것이다.

아무리 자존심이 세고 의지가 강한 제이콥이라도 이대로 고통 속에서 맞아 죽을 수는 없었다.

“그, 그만!”

“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퍽-

강한 주먹이 복부를 강타했다. 충격이 오장육부를 뒤흔들 정도로 강해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구, 굴복하겠… 다.”

“주인한테 말이 짧군!”

퍼억-

다시 한번 강력한 일격이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구, 굴복… 하겠습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카일이 주변을 둘러싼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서 있는군!”

카일의 낮은 외침에 제이콥이 일그러진 얼굴로 용병대를 바라보았다.

“구, 굴복하겠습니다.”

용병들이 하나둘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카일이 돌아서자 루이즈가 놀란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제이콥 용병대, 그중에서도 제이콥의 강한 의지력은 용병 세계에서도 유명했다. 그런 제이콥이 카일에게 스스로 굴복해 고개를 숙였다. 왕성의 용병계가 뒤흔들릴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마크!”

카일의 짧은 외침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마크가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마라스 대장을 만나고 싶은데?”

“아, 알았다.”

마크가 황급히 마라스에게 달려갔다.

“저들도 함께 치료해 주십시오.”

“칫, 이거 남은 포션을 몽땅 써야겠군.”

툴린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져 있는 데르크에게 다가가선 그의 입에 붉은 마법사의 포션을 흘려 넣었다.

“크아아악-!”

순간 데르크가 눈을 번쩍 뜨더니 붉게 충혈된 눈으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흠… 확실히 농도가 강하면 고통이 심하군.”

툴린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손에 들린 붉은 포션을 살피다 비참하게 쓰러진 제이콥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난 괘, 괜찮다.”

제이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고는, 곧 힘을 다했는지 바닥에 다시 쓰러졌다.

“괜찮아! 고통은 잠시뿐, 설마 카일의 주먹질보다 아프겠어.”

툴린이 데르크에게 사용한 붉은 포션을 품 안에서 꺼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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