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22화 (222/404)

222.용병길드(2)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오너라!”

집무실 안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카일이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의 중년 사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입니다.”

카일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창밖을 내려다보던 사내가 천천히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반갑네! 길드장 한센이라 하네. 날 만나고 싶었다지?”

“그, 그렇습니다.”

고개를 들어 한센을 바라보던 카일의 얼굴에 잠시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자리에 앉겠나?”

“가, 감사합니다.”

“하하, 많이 당황스러운가 보군.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겠지?”

“…그렇습니다.”

카일이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오랜 경험으로 실력을 쌓은 이름있는 용병이 현역에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길드장의 자리에 올랐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한센은 용병은커녕 검 한번 잡아보지 않았을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자네 같은 표정을 짓더군. 용병도 아닌 자가 길드장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분명 놀랄만한 일이지.”

한센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길드를 관리하는 일은 검술 실력이나 높은 경지와는 관계없이 관리와 운영의 문제라네. 용병과 의뢰주들, 귀족가를 상대로 계약을 주관하는 일엔 용병보단 나처럼 행정 일을 전문으로 배운 사람이 더 필요하지.”

“그렇군요.”

“이해가 빠른 친구로군. 그나저나 자네가 황금빛 용병패를 가지고 왔다던데, 사실인가?”

“여기 있습니다.”

카일이 용병패를 꺼내 한센에게 내밀었다.

“크루트… 용병대의 것이군.”

용병패를 받아든 길드장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렇습니다. 크루트 님의 부탁을 받고 용병대의 가족들에게 의뢰금을 전해주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카일이 품 안에서 보석이든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크루트의 말대로 카일의 몫 절반을 뺀 나머지 보석이었다.

탁자 위의 주머니를 무거운 눈으로 바라보던 한센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용병대 전원이 전멸했단 건가?”

“…그렇습니다.”

“허… 결국 그리되었군.”

한센이 고개를 저었다.

“녀석의 곁에 있었나?”

“마지막을 지켜보았습니다.”

“편안히 갔나?”

“그렇습니다. 그가 길드장님에게 남긴 말이 있습니다.”

“네게 말인가?”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묻어둔 밤의 숨결은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다… 라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밤의… 숨결?”

“그렇습니다.”

카일의 말에 한센이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한참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넨 나와 잠시 갈 데가 있네.”

“네?”

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길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크루트 그 녀석, 자네에게 남겨주고 싶은 물건이 있었던 것 같네.”

“제게… 말입니까?”

“일단 따라오게.”

한센이 급히 집무실을 벗어나 아래층으로 향했다.

“길드장님?”

“루이스, 잠시 나갔다 오겠다.”

한센이 루이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나섰다.

카일 역시 자신을 기다리는 일행에게 기다리란 눈짓을 보내며 황급히 한센의 뒤를 따랐다.

“지금 어딜 가시는 겁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한센은 카일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대답도 하지 않고 한참을 앞서 걷다가 멈춰 섰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년에 묻어둔 밤의 숨결은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다. 라는 말을 전해 달랐지? 맞나?”

“그렇습니다.”

“그것이 문제야.”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난 술을 마시지 않아. 크루트 역시 잘 알고 있다네, 그렇다면 밤의 숨결의 주인은 누굴 지칭하는 말이겠나?”

“설마… 저란 말씀입니까?”

카일이 깜짝 놀라 물었다.

“네가 아니라면 결국 자넬 뜻하는 말이겠지? 아마도 크루트는 마지막 이 한마디를 네게 전하기 위해 자넬 내게 보냈을 거야.”

“하, 하지만 크루트 님과 전 가까운 사이가 아닙니다. 솔직히 이번 부탁도 크루트 님께 상당한 대가를 받고 온 겁니다.”

“곧 죽을 사람에게 재물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그보단 자넬 내세워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었겠지.”

한센의 말에 카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크루트가 비록 흑기사와의 결투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고 해도 카일 역시 크루트의 적이었다. 만일 그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이 복수라면 지금 카일이 걸어가는 이 길은 어쩌면 죽음의 길일 수 있었다.

하지만 피를 원한다기에 한센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했다. 검술도 익히지 않은 한센이 의심을 살만한 충고까지 하면서 직접 목숨을 걸고 카일을 함정에 빠트릴 리도 없었다.

길드장도 이용당하는 걸까?

어쩌면 길드장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크루트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 왔네!”

잠시 상념에 젖어 있던 카일의 귓가로 길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왕립중앙은행이라네. 작년 크루트가 이곳에 비밀함 하나를 만들었나네. 작년에 묻어두었다던 건 바로 이 비밀함을 뜻하는 것이겠지.”

한센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고급스런 정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왕립중앙은행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비밀함을 확인하러 왔네.”

“아! 비밀함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따라오시지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한센과 카일을 지하로 안내했다.

“대단히 화려하군요.”

“당연하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고위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 그리고 크루트 같은 중대형 용병대장들이니까.”

“하나같이 부유한 사람들이군요.”

“그만큼 이곳이 안전하다는 방증이지. 마법 결계로 이중 삼중 보호받는 곳이니 값비싼 물건일수록 집안보단 이곳이 훨씬 안전해.”

“그렇군요.”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입니다.”

정복을 입은 사내가 멈춰 선 곳은 기하학적인 문양의 마법진이 그려진 원형 지하광장으로, 중앙의 커다란 마법진을 중심으로 작은 방 십여 개가 사방에 만들어져 있었다.

“비밀함을 확인하기 위해선 상급 용병패, 인장 반지, 또는 저희 왕립은행에서 발급한 동화가 필요합니다.”

“용병패로 하겠네.”

한센이 크루트의 용병패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사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용병패를 앞에 놓인 수정구 위에 올렸다.

웅웅-

그러자 수정구에서 일어난 은은한 빛과 함께 광장 중앙에 그려진 마법진 위로 작은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관함은 방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내가 보관함을 건네자 한센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네. 여기서 기다릴 테니 확인해보게.”

“하지만, 제가….”

카일이 난처한 얼굴로 보관함을 받았다.

“물건은 챙겨 나오게. 오늘 이후 크루트의 용병패는 파기될 테니 말이야. 필요하다면 이곳에 보관함을 대여해 옮겨 놓는 것도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카일이 마지못해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바위를 통째로 파내 만든 작은 굴 형태였다. 은은한 마법 등과 작은 탁자, 의자, 그리고 물건을 담아갈 수 있는 작은 가죽 주머니를 제외하면 내부에 아무것도 없었다.

카일은 보관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보관함을 열었다.

“밤의… 숨결?”

보관함에서 약간의 골드와 보석을 비롯한 여러 물건이 나왔지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밤의 숨결이란 제목을 가진 낡고 작은 책자였다.

크루트가 말한 밤의 숨결은 서북부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브랜디가 아닌 이 책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카일은 조심스럽게 낡은 책자를 들어 살폈다.

“마나… 연공법?”

책장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반쪽짜리 마나 연공법이지만

만약 크루트가 밤의 숨결이란 마나 연공법으로 상급의 경지를 밟았다면 이 마나 연공법의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카일이 조심스럽게 밤의 숨결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보관함에 든 또 다른 책자를 들어 올렸다.

크루트 용병검술이란 제목의 책자로 고급검술이라기보다는 기본적인 검술을 조합해 용병들이 쉽게 배울 수 있게 만든 미완성 검술이었다. 아마도 크루트가 용병대에 전수할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검술인 듯했다.

어쩌면 크루트는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검술과 마나 연공법이 사장될 것을 우려해 카일에게 넘겨주려 했는지도 몰랐다.

카일은 일단 두 책자를 품 안에 밀어 넣은 뒤 보관함에 든 물건들을 대충 가죽 주머니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주머니 안을 살폈다.

“이건?”

카일이 주머니 안에서 낯익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작은 점들이 기하학적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손바닥만 한 은판이었다.

카일은 급히 레더아머 안쪽 주머니를 뒤졌다.

“찾았다.”

카일이 주머니에서 작은 동화와 함께 손바닥만 한 은판을 꺼냈다. 예전 보틀러의 몸에서 발견한 은판과 동화로, 마을을 떠나기 전 레더아머 안쪽 깊숙이 감춰뒀던 물건이었다.

“똑같다.”

보틀러의 은판과 크루트의 은판은 크기와 형태는 물론 점의 위치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검은 여우 소속의 두 사람이 같은 형태의 은판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었다면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은판의 비밀을 푸는 순간 검은 여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카일은 두 개의 은판을 다시 레더아머 깊숙이 감춘 뒤 비어버린 보관함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물건은 모두 챙겼느냐?”

“네!”

카일의 말에 한센이 고개를 돌려 보관함을 받아든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보관함은 폐쇄해 주게”

“보관함을 폐쇄하시려면 일단 정산을 하셔야 합니다. 정산은 1층에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부탁하네”

한센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빈 보관함을 들고 1층으로 안내했다.

“손님께서 보관함의 폐쇄를 요청하셨습니다. 매개체는 용병패입니다.”

사내가 마법사에게 보관함을 건넸다.

“용병패를 저에게 주시겠습니까?”

“여기 있네.”

손에 든 용병패를 보관함 위에 올린 마법사가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하자, 보관함에 새겨진 마법진이 희미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여기 있습니다. 정산금액은 30골드입니다.”

사내의 말에 카일이 재빨리 품 안에서 보석하나를 꺼냈다.

“상급 루비군요. 최소 50골드 이상을 받을 수 있는 물건입니다. 경매를 통해선 그보다 더 받으실 수 있죠. 시간이 걸리겠지만 경매를 통해 처분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잘됐군. 이것도 함께 경매로 처분해 주겠나?”

한센이 품 안에서 카일이 건넨 보석 주머니를 꺼냈다.

“이정도 양이면 대략 열흘은 걸립니다. 수수료 낙찰가의 3%입니다.”

“알아서 처분한 뒤 용병 길드로 연락을 주게. 루비 하나는 자네의 몫일세!”

“저, 정말이십니까?”

사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조금 전 상급 루비의 가격을 50골드라 말한 것은 최대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최저가를 부른 것뿐,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가격은 대략 55~66골드이며, 심지어 경매로 거래한다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정도면 사내의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물론 자네도 그만한 노력은 해야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아내겠습니다.”

“하하, 고맙네. 그러고 보니 자네의 이름도 모르는구만.”

“이런, 송구합니다. 제 이름은 페이튼입니다. 혹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면 절 찾아주십시오.”

“페이튼, 기억하고 있겠네.”

한센이 90도로 고개를 숙인 페이튼의 어깨를 두들기며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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