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모트 자작(4)
“이놈!”
모트 자작이 뒤로 밀려나는 카일을 바짝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꽈앙-
카일이 모트 자작의 검을 힘겹게 받아내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지만, 곧장 몸을 바로 하며 모트 자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꽝-
모트 자작이 카일의 검을 가볍게 밀어냈다.
“놈! 내 검을 두 번이나 받아내다니.”
모트 자작이 분노한 듯 카일을 노려보았다.
모트 자작은 패도적인 대검을 이용해 상대의 검을 부숴버리는 소드 브레이커로 유명한 기사였다. 그런 만큼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카일의 검 역시 부서져 나갔어야 마땅했다.
“칫, 보통 검이 아니구나!”
모트 자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일의 손에 들린 검으로 행했다.
“아주 특별한 분께서 직접 만들어 선물해 주신 검이죠.”
카일의 검은 드워프 족장인 파르트가 강철에 대한 제련법을 알려준 카일에게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드워프제 고강도 합금검이었다.
처음 카일은 자신이 직접 만든 강철검을 그대로 사용하려 했지만 형편없는 검을 들고 다니게 할 수 없다며, 파르트가 반강제로 떠안겨준 검이었다. 카일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강철검의 길이와 무게까지 정확하게 일치시켜, 오래전 만들어둔 검을 새로 다듬어 만든 검이었다.
“큭, 결국 날 상대로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검 때문이란 말이군.”
“글쎄요.”
카일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흥, 상관없다. 아무리 천하의 명검이라 해도 네놈이 날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모트 자작이 곧장 하늘로 뛰어오르며 검을 내려쳤다. 순간 카일의 오른쪽 허리에서부터 시작된 한줄기 빠른 빛살이 모트 자작의 심장을 향해 뻗어나갔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모트 자작이 공중에서 급히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카일의 검은 그대로 모트 자작의 검에 직격했다.
꽈앙-
“크윽.”
강력한 충돌음과 함께 불안정한 자세로 카일의 검격을 받아낸 모트 자작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다행히 가까스로 바닥에 착지한 모트 자작을 향해 카일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마주 달려들며 격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자세가 무너진 모트 자작은 연신 뒤로 밀려나며 겨우 카일의 검격을 막아낼 수밖에는 없었다.
“이럴 수가…! 모트 자작이 밀려나다니.”
펠론 자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모트 자작을 밀어붙이는 카일을 바라보았다.
처음 카일과 모트 자작의 결투가 성사되자 펠론 자작은 언제든 결투에 끼어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며 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모트 자작의 검격을 받아낼 수 있다.’
펠론 자작이 왼손 검지에 끼워진 암녹빛 보석이 박한 반지를 쓰다듬었다. 오래전 암시장을 통해 거금을 들여 구입한 반지로, 오러의 기운을 배 이상 증폭시켜주는 희귀 아티팩트였다. 사용하면 반지가 파괴되는 일회성 아티팩트지만, 단 한 번, 모트 자작의 검격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단 결투를 멈출 수만 있다면 이후부터는 검이 아닌 그린넨 백작가문의 힘으로 모트 자작을 압박해 카일을 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카일이 모트 자작을 거칠게 몰아붙이며 승기를 잡아가는 듯했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는 이미 피와 살을 먹고 살아갈 수밖에없는 맹수예요.”
“확실히 대단하군, 어린 나이에 모트 자작을 저만큼이나 밀어붙이다니, 녀석의 실력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구나.”
“그럼 아버지께 잘 말씀해 주세요.”
“함께 백작가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냐?”
“네, 카일과 왕도로 올라갔다가 동부로 돌아가겠어요.”
이엘의 말에 펠론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인장 반지까지 가지고 있는 걸 보니 곧장 왕도로 올라가 남작위를 인정받는 게 먼저겠지. 좋다! 백작님껜 내가 잘 말씀드리마.”
“감사해요. 작은아버지!”
“아니다. 가문의 숙원을 이룰 수만 있다면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물론 그전에 카일부터 구해야겠지.”
“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카일이 모트 자작을 밀어….”
꽈앙-
이엘의 말이 끝나기도 전,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카일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카, 카일!”
이엘이 깜짝 놀라 소리치며 달려 나가려 했지만, 펠론 자작이 급히 이엘의 손을 잡았다.
“잠깐! 아직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나설 때가 아니다. 카일을 구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기회를 잘 노려야 한다. 한번 실패하면 그 이후는 없다.”
펠론 자작이 카일에게 다가서는 모트 자작과 더불어, 당장이라도 모트 자작에게 달려갈 듯 초조하게 카일을 바라보는 조세츠 자작을 바라보았다.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감히 날!”
모트 자작이 여기저기 잘려 나간 갑옷과 더불어 가슴을 길게 가르고 지나간 상처를 내려다보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카일을 노려보았다.
카일의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 지속되자, 모트 자작이 가슴으로 날아든 빛살을 최소한의 피해를 감수하며 몸으로 받아내는 동시에 전력으로 카일의 검격을 맞받아친 것이다.
“자작! 죽이면 안 돼!”
조세츠 자작이 카일에게 다가서며 검을 높게 들어 올린 모트 자작을 향해 소리쳤다.
“젠장! 당신은 빠져, 이번 일은 네가 알아서 할 테니!”
모트 자작이 조세츠 자작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모, 모트 자작…!”
조세츠 자작이 모트 자작의 사나운 눈초리에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다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지금 모트 자작의 눈빛은, 그동안 자신을 깍듯이 대해오던 자작과는 달리 진한 살기가 맺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겁니다.”
“너…!”
모트 자작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바닥에 처박혀있던 카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화끈하군요.”
카일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미소를 지었다. 상급 엑스퍼트가 전력으로 펼친 오러소드에 공격당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라, 여기저기 부상을 당한 모트 자작과는 더욱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내 검을 맞고도 어떻게 멀쩡할 수 있지? 분명 내부가 엉망이 되었을 텐데?”
“물론 그렇죠.”
모트 자작이 방어를 최소화하며 전력을 다해 공격해 오자 카일은 피하는 대신 오히려 모든 오러를 검에 밀어 넣으며 모트 자작의 검을 받아낸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답니다.”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어 올리자, 카일의 검에 어렸던 청백색의 오러가 청회색빛으로 물들며 점점 더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너, 너… 설마!”
모트 자작이 너무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이 정도면 당신과 상대하기에 부족하진 않았군요.”
카일이 웃음을 지으며 모트 자작을 검으로 가리켰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보죠. 이번엔 좀 다를 겁니다.”
“이 괴물 같은 놈, 벌써 상급에 오른 것이냐!”
“아쉽지만 아직 완전하진 않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일의 신형이 조금 전보다 배는 빠르게 모트 자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꽝꽝-
모트 자작 역시 카일을 향해 적극적인 공세로 마주 달려들며 전력으로 검격을 휘둘렀다.
까아앙-
꽝-
거친 충격음과 함께 검격이 지속될수록 단단한 돌바닥이 부서지고 사방으로 오러의 파편들이 날아들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 귀족분들을 보호하라!”
하츠가 두 사람을 둘러쌓고 있던 란타나 기사단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상급 기사들 간의 대결은 기사들로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오러의 파편 하나하나에 강력한 기운이 담겨있어 자칫 잘못하다간 큰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호위기사단도 없이 달려온 귀족들까지 있었다. 결투도 중요하지만, 귀족들을 보호하는 것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펠론 자작 역시 하츠와 마찬가지로 기사들을 동원해 이엘과 귀족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대단하군! 이런 독특한 쌍검술은 처음 본다. 마치 서로 다른 검술을 쓰는 두 명의 기사를 상대하는 것 같군.”
“당… 신 역시 한 수… 를 숨기고 있었군요.”
카일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자 모트 자작이 더욱 사납게 카일을 내리눌렀다.
부드득-
카일의 발이 단단한 돌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처음 카일이 청회색 오러소드를 피워올리며 모트 자작을 공격할 때까지만 해도 카일의 검이 모트 자작을 밀어붙이는 듯했다. 하지만 충돌이 점점 가중될수록 모트 자작의 검이 더욱더 강해지더니, 이젠 자작의 패력적인 기운과 압력에 카일이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중력검이라는 것이다. 검에 그래비티 마법을 인첸트시켜 놓았지. 어떠냐! 몸이 짓눌리는 느낌이, 큭큭.”
모트 자작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카일을 내리눌렀다.
“크윽.”
카일의 입술 사이로 가는 핏물이 흘러내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이제 알겠느냐! 이것이 바로 네놈이 나 모트를 기만한 대가다.”
모트 자작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더욱 강하게 카일을 내리눌렀다.
“화, 확실히… 마법검은 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카일이 모트 자작을 향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직 말할 기운이 남아 있나 보군. 역시 대단한 놈이야! 살려두면 언젠가 후환이 남겠어.”
모트 자작이 살기 어린 눈으로 카일을 노려보았다. 분명 3왕자로부터 카일을 살려 데려오란 명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살려서 데려가기에는 너무 위험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 일단 더 이상 검을 쓸 수 없게 팔부터 부러트려 주마!”
“큭! 다, 당신, 실수했다.”
“뭐?”
갑작스러운 카일의 웃음 소리에 모트 자작이 의아한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순간 자작과 검을 맞대고 있던 카일의 청회색 오러소드가 검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모트 자작이 눈동자까지 검게 물들기 시작한 카일을 바라보며 주춤 뒤로 물러나자, 카일의 왼손이 번개같이 움직여 모트 자작의 팔을 잡았다.
“헉! 이… 건!”
순간 카일의 손에서 빠져나온 암흑마기가 모트 자작의 몸 안으로 파고들며 자작의 내부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더니 급기야 마나로드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이, 이놈. 노, 놓아라!”
모트 자작이 다급히 카일의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카일은 오히려 바짝 다가서며 모트 자작을 더욱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크으윽.”
내부를 찢어발기는 고통에 모트 자작이 결국 신음을 내뱉었지만 카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강하게 모트 자작을 내리누르며 암흑마기를 모트 자작의 내부로 밀어 넣었다.
“쿨럭.”
모트 자작이 결국 격한 기침과 함께 검은 피를 쏟아냈다.
“부단장님!”
하츠와 함께 귀족들을 보호하고 있던 란타나 기사들이 급히 달려 나가려 했지만, 펠론 자작과 그린넨 백작가의 기사들이 급히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자네야말로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설마 정당한 결투를 방해하려는 것인가?”
“…그건!”
“결투를 끝내려면 두 가지 뿐이야! 패배에 승복하든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다 명예롭게 죽는 것이다. 설마 기사인 그대가 그런 사실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펠론 자작의 말에 하츠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소린 남작은 몰론 폰트 남작까지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의 지금 행동은 란타나 기사단은 물론 모트 자작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야. 그래도 대결을 방해하겠는가?”
“…아닙니다.”
“잘 생각했네.”
입술을 깨물며 펠론 자작을 한차례 노려본 하츠가 뒤로 물러나자, 펠론 자작 역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이엘의 옆으로 돌아갔다.
“큭, 통쾌하군.”
펠론 자작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왕실기사단, 그중에서도 최강을 다투는 란타나 기사단은 기사들 모두 자존심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만큼 지방에서 올라온 영지 기사들과의 부딪힘이 잦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지독한 결투광인 모트 자작 휘하의 직할대가 심했다. 펠론 자작이 하츠를 비롯한 모트 자작 휘하의 일개 기사들을 알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엘! 녀석을 반드시 가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저 녀석은 그저 그런 맹수로 남을 녀석이 아니다. 어쩌면 트라발트 공작의 뒤를 이어 왕국의 두 번째 소드마스터가 될지도 모르겠다.”
“걱정 마세요. 저 역시 카일을 누구에게도 빼앗길 생각이 없으니까요.”
이엘이 눈을 빛내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래, 너만 믿으마!”
펠론 자작이 이엘을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