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96화 (196/404)

196.주인의 정체2

“이런!”

갑작스러운 외침과 함께 머리통만 한 검붉은 구체가 크루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당황한 크루트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날아든 구체를 반으로 갈랐다.

꽈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크루트가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크윽!”

짧은 신음을 흘린 크루트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검붉은 구체와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충격파가 전신을 때려왔다. 상급 엑스퍼트인 크루트가 막지 못할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게 날아든 공격이라 미처 대비를 못해 피해를 본 것이었다.

“마법사인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크루트가 고개를 돌려 공격이 날아든 곳을 바라보았다.

왜소한 체구에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붉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큭, 마법사가 가드도 없이 검사에게 다가오다니, 이제 보니 미친놈이구나!”

크루트가 검은 로브를 향해 살기를 피워 올렸다.

마법사, 특히 고서클 마법사는 전투에 앞서 가장 먼저 죽여야 하는 제1순위의 척살 대상자다. 이 때문에 전투에 나서는 마법사는 항상 자신을 보호해줄 가드가 옆에 있어야 했다.

한데 지금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는 자신을 보호해줄 가드도 없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채 오히려 크루트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풋!”

크루트의 외침에 검은 로브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서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깊게 눌러쓴 후드를 천천히 벗었다.

푸른 머릿결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운 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멍청하군요. 왜 가드가 없을 거라 생각하나요?”

이미 목소리를 통해 마법사의 정체가 여인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마법사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던 크루트가 급히 고개를 흔들며 여인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무, 무슨 뜻이냐!”

밝게 웃음을 짓는 아름다운 여자 마법사의 모습에 또다시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은 크루트가 사납게 물었다.

“저기 있잖아요? 제 가드.”

마법사의 가늘고 아름다운 손가락이 한쪽에서 상황을 주시하며 방관하고 있던 카일을 향했다.

“나… 말입니까?”

갑작스러운 여 마법사의 말에 당황한 카일이 되물었다.

“어머, 설마! 저 흉악스러운 검에 제 목이 잘려 나가도 좋다는 말인가요? 전 당신을 도왔는데….”

그녀의 슬픈 표정에 카일의 마음이 한순간 흔들렸다.

그때였다.

그동안 단단하게 굳어 있던 아랫배에서 한줄기 청량한 기운이 빠져나와 전신을 휘돌아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도움을 받았으니 가드 역할은 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난은 사절입니다.”

얼굴을 찌푸린 카일의 말에 마법사가 놀란 듯 카일을 바라보았다.

“대단해요. 단번에 매혹을 깨다니? 당신 정말 흥미로운걸요.”

“대답을 듣고 싶군요.”

카일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정확한 답을 듣지 않는 이상 마법사의 말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칫! 마법사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아는군요. 좋아요. 가드로 있는 이상 당신에게 해가 되는 마법은 사용하지 않겠어요.”

“좋습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크루트가 먼저 여마법사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흥! 죽어라.”

“이런!”

잠시 크루트의 존재를 잊고 있던 카일이 급히 앞을 막아서려 했지만, 이미 크루트의 검은 그녀의 목을 베어갔다.

“블링크!”

짧은 영창과 함께 여인이 모습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지더니 카일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헉!”

카일이 깜짝 놀라 주춤 물러났다.

“칫! 약속과 동시에 목이 달아날 뻔했군요.”

“아! 미안합니다.”

카일이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다. 순간 하늘 위로 뛰어오른 크루트가 단번에 카일과 여마법사를 동시에 베어버리려는 듯 검을 내려그었다.

“이런!”

당황한 카일이 미처 대비도 하기 전 크루트의 검이 날아들자, 그녀가 급히 카일의 손을 잡았다.

“블링크!”

꽈광-

웅축된 오러소드가 대지위에 작열하며 커디란 흔적을 남겼다.

“이런 쥐새끼 같은!”

크루트가 얼굴을 찌푸리며 곧장 하늘로 높게 뛰어올랐다.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노려 공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거기냐!”

카일과 여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크루트가 다시 한번 땅을 박차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방심은 한 번으로 족하다.”

카일이 달려드는 크루트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콰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열 걸음이나 밀려나더니 겨우 멈춰선 카일과는 달리, 크루트는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곧장 카일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이놈, 죽어라!”

강력한 기운이 깃든 오러소드가 미처 대비할 사이도 없이 카일을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카일이 당황한듯 주춤 물러나려 할 때, 여 마법사의 낭랑한 외침과 함께 강렬한 기운이 카일의 머리를 스치며 뻗어갔다.

“파이어볼!”

“…젠장!”

피할 사이도 없이 달려드는 검붉은 구체를 향해 크루트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꽈아앙-

또다시 일어난 강력한 충격파에 크루트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이놈! 가만히 두지 않…!”

충격파에 밀려난 크루트가 고개를 드는 순간, 카일의 검이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꽈앙-

“크윽!”

가슴에서 올라오는 핏덩이를 억지로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난 크루트가 카일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카일 역시 여섯 걸음이나 밀려났다가 다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괴물같은 놈!”

크루트가 고개를 숙여 주먹을 쥐었다 피며 아릿하게 아려오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충격과 압력이 점점 가중되며 조금씩 손바닥에서 감각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만큼 카일의 검격이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벽을… 뛰어넘고 있는 것인가!”

크루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카일은 여마법사가 나타나기 전 이미 피를 토할 정도로 깊은 내상을 입었다.

아무리 마법사의 도움을 받았어도 상급 엑스퍼트의 강력한 오러소드를 정면에서 연달아 막아내기에는 불가능한 몸 상태였다. 그러나 카일은 벌써 몇 번째 크루트의 오러소드를 막아낸 것을 넘어 대결이 이어질수록 더더욱 강력한 오러소드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시작해 보죠.”

카일이 크루트를 향해 검을 들어올렸다. 순간 카일의 검 위로 진한 청회색빛 오러 소드가 솟아남과 함께 은은한 청백색의 빛이 전신을 휘감았다. 놀랍게도 전투로 인해 생긴 자잘한 작은 상처들이 천천히 치유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네놈! 성기사였나?”

크루트가 놀란 듯 물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사는 오직 신을 모시는 성기사 뿐이었다. 물론 사제나 신관처럼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지만, 고위 성기사일수록 카일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상처 정도는 순식간에 치료하는 것은 물론 죽지만 않는다면 어떤 중상을 입어도 빠르게 치료할 수 있었다.

“전 신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성기사가 될 생각도 없습니다.”

카일이 얼마 전 경험한 기분 나쁜 기억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큭! 상관없다. 그놈들도 결국 모가지가 잘리면 죽으니까.”

크루트가 다시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올려 카일을 공격하려 할 때였다.

“크아악!”

“아악.”

“살려줘!”

비명과 고함이 평원을 가득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크루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을 땐 칠흑같이 어두운 풀 플레이트 갑주를 입은 기사가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용병단을 학살하고 있었다.

“외곽을 포위해!”

“차륜전이다. 조장들과 분대장들이 나서서 시간을 끌어라!”

“석궁병! 자유사격이다. 틈이 보이면 지체 말고 쏴라!”

흑기사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수 많은 용병들이 속절없이 쓰러지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젠트가 용병들을 빠르게 지휘하며 포위망을 구축하는 한편 직접 검을 들고 흑기사에게 달려들었다.

화르륵-

막 젠트가 한껏 끌어 올린 오러소드를 흑기사의 등에 박아넣으려는 순간, 흑기사의 거대한 검에서 암흑 같은 오러블레이드가 솟아올랐다.

“오, 오러블레이드! 소드마스터다. 모두 피해!”

젠트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면서도 오히려 흑기사의 등을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우우웅-

하지만 흑기사의 행동은 더 빠르고 민첩했다.

낮게 자세를 잡은 흑기사가 왼발을 축으로 돌며 횡으로 검을 뻗었다.

강력한 오러블레이드의 회전 반경에 자리 잡은 용병들의 몸이 상하로 분리되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투둑투투둑-

“크어허억.”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핏물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젠트가 멀리 자신을 향해 다급히 달려오는 크루트를 보며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도, 도망 가…. 대, 장.”

힘겹게 입을 열어 소리쳤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단어엔 이미 힘이 없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젠트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손을 바라보았다. 붉은 피로 범벅이 되었던 자신의 손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다 못해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숨이 끊어지기 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쭈글쭈글 말라버린 자신의 손뿐이었다.

“이놈!”

크루트가 죽은 젠트와 용병들을 보며 분노한 얼굴로 흑기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앙-

강력한 오러소드와 흑기사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커다란 충격파와 함께 크루트의 신형이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퍼억-

“크윽-.”

신음을 흘린 크루트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다 바닥에 다시 쓰러졌다.

“과… 과연 소드마스터.”

“주, 죽어라!”

흑기사의 어눌한 목소리와는 달리 엄청난 기운이 맺힌 거검이 크루트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큭, 이렇게 끝이군. 젠트… 곧 따라가마.”

크루트가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듯 방어를 포기한 채 바짝 말라버린 젠트의 시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콰아앙!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흑기사의 검을 막아선 카일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뒹굴다가 멈춰 섰다.

“더 강해졌군. 퉤!”

카일이 가슴에서 올라온 핏덩이를 토해냈다.

카일의 전신으로 순백의 기운이 다시 퍼져나오며 온몸을 뒤덮었다.

“시, 신성력! 죽인다…!”

흑기사의 검에서 피어오른 강력한 오러블레이드가 카일에게로 곧장 날아들었다.

“멈춰!”

카일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암흑의 오러블레이드가 멈춰섰다.

“시, 신성력…. 모두 죽여야 한다.”

흑기사의 어눌한 말속에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너의 주인 사하의 명이다. 물러나라!”

“주인에게 복종한다.”

마법사 사하의 외침에 흑기사가 검을 거두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하가 카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 암흑마법사였군!”

“인사가 늦었군요. 전 사하 랜브란트랍니다. 당신의 말대로 마왕을 모시는 사제이자 암흑마법사죠.”

사하가 아름답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카일!”

이엘이 큰소리로 카일을 부르며 달려왔다. 뒤이어 엄청난 전투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한곳에서 기회만 살피던 코퍼를 비롯한 사람들이 달려와 카일을 보호하듯 옆에 자리를 잡았다.

“당신!”

“오랜만이군요. 각인의 회색 마법사.”

가장 먼저 사하의 정체를 알아본 멀린이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걱정 말아요. 난 당신들의 적이 아니니까요.”

사하가 마치 산책을 나온 듯 뒷짐을 지고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뒤늦게 성벽에서 내려온 터그 일행이 급히 사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 땅의 정당한 계승자이자 주인께 인사 올립니다.”

“흠! 수고했어, 터그. 명을 아주 잘 이행했구나.”

“감사합니다.”

터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보다, 반가운 얼굴이 있으니 먼저 인사를 해야겠지?”

사하가 밝게 웃으며 천천히 이엘의 앞으로 다가섰다.

“멈춰!”

지금껏 이엘의 뒤에 서 호위를 하던 시안느가 급히 앞을 막아섰다.

“아가씨께 용건이 있다면 먼저 나에게 말해라!”

싸늘한 얼굴로 시안느가 사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하는 오히려 밝게 미소를 지으며 앞을 막아선 시안느의 얼굴 여기저기를 신기한 듯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냐!”

시안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정말 보고 싶었어.”

시안느에게 한 걸음 다가선 사하가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같은 운명을 쥐고 태어난 나의 자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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