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88화 (188/404)

188.지식의 거래

“…확실히 놀랍긴 하지.”

용병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툴린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카일의 라이플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툴린은 당장이라도 마법적 한계를 뛰어넘은 카일의 라이플을 뜯어 보고 적용된 마법을 파헤쳐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툴린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미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돌변한 툴린이 자신을 바라보자 멀린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자네…. 나랑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아주 중요하게 물어볼 것이 있는데?”

“전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만….”

“허허! 자네에게도 결코 나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 어떤가?”

툴린은 지금 멀린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필요한 지식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지식을 교환하거나 그에 합당한 대가를 주고 거래를 하기도 했다.

“휴…. 죄송합니다만 마법 라이플에 관해 물어보실 거라면 전 할 말이 없습니다.”

“난 자네처럼 아트팩트를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투 마법사도 아니야. 그저 마나와 마법진을 연구하는 실험실 속 마법사일 뿐이네! 자네의 지식이 날 통해 세상에 알려질 일도 없어! 굳이 감출 이유가 있겠나? 원한다면 마나의 맹세도 하겠네!”

툴린의 말 속에 담긴 간절함이 멀린에게까지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것도 아닌 것에 대해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툴린 님이 말씀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럼 거래를 받아들이겠나? 아마도 대단한 비전이 적용되어 있을 테니 나도 나만의 비전을 자네에게 공개하겠네”

툴린이 밝아진 얼굴로 멀린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멀린의 답은 툴린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쉽지만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사실은 없습니다.”

“허허, 자네 정말…!”

툴린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를 높였다.

“다시 말씀드리지요.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사실은 없습니다.”

멀린이 툴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툴린은 멀린의 말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자네가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렇습니다. 제가 제안을 받아 들인다고 해도 해줄 말이없습니다.”

“…혹시 저거… 자네가 만든게 아닌가?”

툴린이 카일의 무릎에 넣인 라이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거래 받아들이시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카일이 눈을 뜨며 말했다.

“괜찮으냐!”

툴린이 급히 카일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다행히 오러가 안정을 찾았습니다.”

카일이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청백색의 오러가 손을 뒤덮었지만, 중급 엑스퍼트라고 하기엔 더욱 선명하고 뚜렷해 보였다.

“이… 건?”

“마기와 신성력을 무리하게 받아들인 게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마나로드뿐 아니라 마나 플라워까지 더 넓고 단단해졌어요. 오러도 이전보단 늘었고요.”

카일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만약 상극의 오러를 한계 이상까지 받아들였다면 마나로드와 마나플라워는 버티지 못하고 갈가리 찢기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받아들인 마기와 신성력은 찢어진 마나로드와 마나 플라워를 복구시키고 찢어놓기를 반복하며 스스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내부를 더욱 단단하고 질기게 만들어 놓았다.

“그럼 마기와 신성력은 어찌 되었느냐? 그것도 해결된 것이냐?”

“아닙니다. 아직 가슴과 아랫배에 얼어붙어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풀 방법이 없네요.”

카일이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만약 굳게 얼어붙은 두 마나 플라워를 풀어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상급의 경지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쉬워할 것 없다. 두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보다 뜻하지 않게 멀린 님과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지식의 거래 말이냐?”

“마법사들간 이런 거래가 자주 일어납니까?”

“자주는 아니다만 비슷한 실력을 갖춘 마법사나 세력 간에는 종종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거대 마탑의 경우라면 거래보다는 강탈을 선호하지!”

“강탈…. 이전에 멀린 님께 들었던 말이군요.”

“마법사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 그 때문에 나처럼 신분을 감추고 실험에만 몰두하는 마법사들도 종종 있지.”

툴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도 한동안 마탑의 추적을 피해 여기저길 떠돌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 조세츠 자작과의 인연도 그때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멀린 님께 제안한 지식의 거래…. 아직도 유효한가요?”

“…비밀만 알 수 있다면 거래야 얼마든지 할 수 있긴 하다만…. 과연 멀린이 그 라이플에 담긴 지식을 알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겠지.”

툴린이 멀린을 보며 말했다. 멀린이 라이플을 만들지 않았다는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정황상 분명 카일의 손에 들린 라이플은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이 분명했다.

“멀린 님! 거래를 받아 들이십시오.”

“…하지만!”

“필요하시면 라이플까지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저… 정말이냐!”

“물론입니다. 어떻습니까? 지식의 거래에 응하시겠습니까?”

카일이 웃으며 손에 들린 라이플을 내밀었다. 라이플만 있다면 굳이 멀린에게 자식을 청하지 않아도 툴린의 실력이라면 마법진이든 각인이든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응해야지! 좋다.”

멀린이 거절하기도 전에 툴린이 재빨리 대답했다.

“하지만 이 라이플에는….”

“어허! 이미 카일의 제안을 내가 받아들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이냐! 거래는 이미 성립되었다.”

툴린이 재빨리 멀린의 말을 막았다.

“분명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그럼! 분명 약속하지, 내가 가진 비전의 마법 중 하나를 반드시 멀린에게 전해주겠네!”

“마법사는 언어에 언령이 깃들어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툴린 님을 믿고 라이플을 맡기겠습니다.”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라이플을 내밀었다.

“분해 방법은 멀린 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설마! 분해까지 된단 말이냐? 놀랍도록 정교한 아티팩트구나!”

툴린이 라이플을 소중히 감싸며 멀린을 돌아보았다.

“가자! 당장 이 마법무구의 비밀을 알고 싶구나!”

툴린은 카일의 생각이 바뀔까 두려워 급히 뒤로 멀어져 갔다.

“카일 님! 저 라이플에 새겨진 마법이라고는 고작해야 스쿠프에 새긴 각인이 전부입니다.”

“제가 언제 마법에 대해 알려준다고 했나요?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카일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분명 지식의 거래에 응한다고….”

“그렇습니다. 전 분명 지식을 거래했습니다. 마법이 아니라….”

“아!”

“지식은 마법만을 뜻하지 않죠. 라이플에 적용된 기계학도 분명 지식이죠.”

카일의 말에 멀린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카일을 바라보았다.

“제가 멀린 님께 해드릴 건 이런 것뿐이군요. 부디 툴린님께 원하는 지식을 얻길 바랄게요.”

“설마… 절 위해.”

“아직 멀린 님께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번엔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카일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 멀린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지금껏 누군도 자신을 이처럼 생각해 준 사람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주군!”

멀린이 깊게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어서 가보세요. 툴린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내십시오.”

“하하! 걱정 마십시오.”

멀린이 웃으며 툴린이 사라진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좋은 가신에 좋은 주군인가?”

“그저 같이 가는 동행자이자 친구라는 말이 더 좋군요.”

“흠… 그것도 나름 괜찮군!”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낸 워드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몸은 어떠냐?”

“괜찮습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경지를 넘은 건가?”

“완전하게 뛰어넘은 건 아닙니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까요.”

“대… 단하군! 성년도 되지 않았는데….”

워드의 말에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풀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도 실력이라고들 하지!”

워드가 카일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정찰은 어땠습니까?”

“알고 있었나?’

“두 눈을 감고 있어도 주변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친구가 있어 모를 수가 없더군요.”

“그렇겠지 와이번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보다 일이 좀 어렵게 된 것 같다.”

이리저리 몸을 풀던 카일이 고개를 돌렸다.

“주변이 포위 되었다.”

“포위라면….”

와이번 나이트의 숫자라고 해보았자 고작 열 명 남짓이었다. 그중 둘은 카일의 저격으로 목숨을 잃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여덟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인원은 대략 6명, 모두 와이번의 탐지 반경 내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와이번까지 모두 소환해 놓아 발견하긴 어렵지 않았다.”

“여길 빠져나가려는 순간 공격하겠다는 노골적인 경고로군요.”

와이번이 소환되었다면 탐지거리는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6마리의 와이번이 숲을 감시하는 이상 분지를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저들이 시간을 끄는 이유가 뭘까요. 아킨스 자작령의 일이 곧 왕국 전역에 알려지면 저들도 위험해 처할 텐데요?”

“몸을 피할 자신이 있거나 반드시 척살해야 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겠지!”

워드가 카일을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

“부담스러운 시선이군요.”

“마법무구…. 와이번 오너들에게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거다. 공중에서든 지상에서든 말이다. 이미 저들은 그 위험성과 효용성을 모두 보았다. 쉽게 포기하진 않을 거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저들도 직접 숲으로 들어오진 못할 겁니다. 숲 안으로 들어오면 오히려 우리가 더 유리하죠. 차라리 여기서 버티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겠군요.”

카일의 말대로 이곳에는 두 명의 마법사와 6명의 엑스퍼트, 그리고 다수의 소드유저가 있었다. 와이번만 아니라면 전력상으론 적보단 유리했다.

“그건 그렇지가 않아요.”

이엘과 시안느가 카일의 옆으로 다가왔다.

“세인 경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부르지 않았어요.”

“와이번과 맹약을 맺었으니 한동안은 서로 대화를 하며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보다… 조금 전 하신 말, 계속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곳 지형은 산과 강 덕분에 성을 쌓으면 아마도 천혜의 요새가 될 거예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지형의 특성상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고립된 지형이란 말이죠.”

“들어오기도 힘들지만 반대로 나가기도 힘들단 말이군요.”

“그만큼 외부의 시선을 피하기엔 이곳만 한 곳이 없다는 말이죠. 더구나 포위한 상태로 시간을 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어쩌면 증원군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죠.”

“증원군이라! 확실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군!”

워드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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