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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77화 (177/404)

177.멸문

이엘은 곧장 말을 타고 돌아와 재빨리 여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큰일 났어요. 지금 세인 경이….”

급히 소리치며 안으로 달려 들어간 이엘이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엘이 사람들을 헤치며 죽은 듯이 바닥에 누운 카일에게 다가갔다.

“전… 괜찮습니다.”

시체처럼 눈을 감고 있던 카일이 천천히 눈을 떴다.

“어떻게 된 것이냐?”

카일의 옆에 앉아있던 툴린이 급히 물었지만, 카일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카일은 흉부에 위치한 마나 플라워를 개화하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상급 엑스퍼트에 진입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상황은 최악으로 변했다. 갑자기 가슴 쪽으로 몰아넣었던 마기와 신성력이 마나 플라워를 벗어나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역류가 멈췄지만, 가슴과 아랫배에 위치한 마나 플라워가 딱딱하게 굳으며 더 이상 오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상급 엑스퍼트에 올랐지만 정작 사용할 수 있는 오러는 중급 엑스퍼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더구나 연속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마기와 신성력이 역류하며 오러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하루 이상은 안정을 취해야만 오러를 사용할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성질이 다른 마나를 흡수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성질이 다른 마나라면….”

툴린이 눈을 크게 뜨고는 카일을 바라보았다. 마나라고 돌려 말하긴 했지만 신성력과 마기를 뜻한다는 사실을 툴린이 모를 리 없었다.

“심각한… 것이냐?”

“일단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툴린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카일을 살폈지만,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으냐?”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그나마 다행이구나! 일단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툴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관 안으로 브린이 급히 달려 들어왔다.

“큰일, 큰일 났습니다. 와이번들이 떼로 몰려와 영주 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뭐!”

사람들이 당황한 얼굴로 급히 달려나갔다.

“…세상에!”

“도대체 누가!”

사람들이 영주 성을 공격하는 와이번들을 바라보며 당황한 듯 소리쳤다.

“저, 저 녀석들….”

“트라발트 공작령을 공격한 놈들 같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 맹약을 맺은 와이번 나이트가 저들 무리 중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툴린의 옆으로 달려온 조세츠 자작이 다급히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틀렸어! 저길 보게. 와이번들이 성문 상공을 선회하고 있어! 밖으로 나갔다간 죽음을 면치 못할 거야!”

“그렇다고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트라발트 공작성 절반을 날려버린 놈들입니다. 아킨스 자작령 정도는 와이번 만으로도 반나절 안에 파괴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상단의 부 단주와 이야기해 보게! 어차피 저들과 같이 움직여야 할 것 아닌가?”

“알겠습니다!”

조세츠 자작이 루트와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며 상단 일꾼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토일에게로 달려갔다.

“자넨 어쩔 생각인가?”

툴린이 고개를 돌려 포라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난 신을 모시는 신관이네! 신관이 신전을 버리고 어딜 가겠나!”

“하지만 폭격이라도 떨어지면 신전도 무사하지 못해! 트라발트 공작령의 신전도 반이나 부서졌다고 하지 않았나!”

툴린의 걱정 어린 시선에 포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신전을 비워 둘 순 없어! 저 안엔 포션을 만드느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신관도 여럿 있네. 그들을 버려두고 신전을 떠날 수는 없지!”

“하지만….”

“자넨 카일을 도와줘야 하니 어서 움직이게.”

“흠… 정말 같이 가지 않을 생각인가?”

툴린의 말에 포라스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다면 다시 볼 수 있겠지. 그때까지 카일을 잘 도와주게!”

“휴… 알겠네! 자네의 뜻이 정 그렇다면 말릴 수야 없지.”

툴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라스는 툴린을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리며 신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꽝-

시안느의 방패에 밀려난 루트가 얼굴을 찌푸렸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짧은 검과 작은 방패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기사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특히 몸을 방패에 밀착시키며 폭발적으로 부딪혀 오는 차징은 여인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차앙-

“젠장, 이년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자세를 낮춘 시안느가 미끄러지듯 품 안쪽으로 파고며 짧은 검을 찔러 넣었다. 용병기사가 깜짝 놀라 다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나 시안느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무릎을 축 삼아 몸을 회전하며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앙-

푸른 오러로 물든 짧은 검이 회전하는 몸을 따라 반원을 그리며 용병기사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붉은 핏물이 검을 따라 허공으로 점점이 비산하며, 용병기사의 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시안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릎을 튕기며 그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목을 관통한 검이 삐죽이 튀어나왔다. 시안느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검을 뽑았다.

촤아악-

검에 묻은 핏물을 털어낸 시안느가 세인이 있는 곳을 살폈다.

“저쪽도 곧 끝날 것 같은데… 계속할 건가요?”

시안느가 한쪽에 멍하니 서 있는 루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러나면… 보내 줄 텐가?”

“그럴 수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루트는 납치사건의 배후에 아킨스 자작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줄 중요한 열쇠다. 당장 죽이기보단 아킨스 자작을 압박할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어떻게 하겠어요?”

시안느가 위협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재촉했다.

“항복… 하겠다.”

“잘 생각했어요. 어차피 자작이 몸값을 지불하면 곧 풀려 날 거예요, 굳이 여기서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죠.”

루트의 검을 받아든 시안느가 대충 허리에 찔러 넣으며 말했다.

“따로 신변은 구속하진 않겠어요. 설마 도망가진 않겠죠?”

“기사의 명예를 걸고 도망가진 않겠다.”

“좋아요.”

시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윽!”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세인을 공격하던 용병기사가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끝났군요.”

시안느가 미소를 지으며 세인에게 다가갔다.

“글쎄요. 아직 할 일이 남은 것 같은데요?”

세인이 고개를 돌려 골목 안쪽에 처박혀 있는 밀런을 바라보았다.

“이런, 개새끼 님께서 왜 이러고 있는 거죠?”

“배신의 대가라고 할까요?”

세인이 싸늘하게 밀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처음 시안느가 난입할 때만 해도 밀런은 살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라운 실력으로 용병기사들을 압도하는 시안느와 세인을 보며 밀런은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밀런은 세인을 이곳까지 유인한 장본인이었다.

용병기사라는 공통의 적이 있어 잠시 손을 잡았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두 사람은 적이었다.

‘용병기사들이 사라지면….’

여기까지 생각한 밀런은 기회를 틈타 세인을 향해 나이프를 던졌다.

땅-

“무슨 짓이냐!”

“생각해보니까.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면 결국 손해는 나만 보겠더군!”

밀런이 웃음을 지으며 허리에서 나이프를 뽑았다.

“개새끼!”

세인이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밀런을 노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밀런이 그런 세인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아쉽군. 정말 아쉬워!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차지하고 말았을 텐데…. 아쉬워!”

밀런이 고개를 저었다. 순간 세인이 크게 뒷걸음치며 빠르게 물러나더니 몸을 돌려 밀런을 향해 쇄도했다.

“이런!”

한순간 세인을 놓친 용병기사가 다급히 뒤를 쫓았지만 이미 세인은 밀런의 앞까지 다가간 뒤였다.

쉬익-

따당-

당황한 밀런이 나이프를 연속해서 던졌지만 세인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검을 휘둘러 나이프를 쳐냈다.

그리고는 가볍게 몸을 반 바퀴 회전하며 밀런의 가슴을 향해 발을 뻗었다.

퍼억-

“크억!”

가슴을 얻어맞은 밀런이 뒤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고는 기절해 버렸다.

* * *

기습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또한 잔혹했다.

열 마리의 와이번 중 두 마리는 성문을 향했고, 나머지 와이번 중에서도 아킨스 자작의 내성을 직접 공격한 와이번은 단 두 마리에 불과했다.

그 두 마리의 와이번이 쏘아 보낸 화염의 스피어는 아킨스 자작의 내성을 불바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악!”

“사람 살려!”

“불이야!”

강력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이 번져나갔다. 내성을 지키던 영지 병은 물론 수십 명의 하인과 하녀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번져가는 불길을 끄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진입한다.”

거대한 레드 와이번에 올라선 사내가 혼란에 빠진 영주 성을 보고는 황금빛 사슬을 손에 쥐고 곧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차르륵-

거친 마찰음과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린 사내가 가볍게 성벽 위로 올라섰다.

그 뒤를 따라 와이번 나이트들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모두 죽여라!”

“명!”

와이번 나이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악!”

“적습이다.”

“막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사들이 영주성 내부로 진입하려는 와이번 나이트들의 앞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정통기사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용병기사들이었다. 그나마도 갑작스런 기습과 빠르게 번져가는 화마로 인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보니 내성이 뚫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헉헉! 랜트 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어디까지 진입했지?”

“2차 방어선을 돌파했습니다. 워낙 실력 차이가 커 직접 검을 들고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 정도로 실력 차이가 심한가?”

“모두 선명한 소드 오러를 구사하는 실력자들입니다. 그나마 기사단에 남아 있던 엑스퍼트들도 루트의 부탁으로 모두 내성을 빠져나간 상태라 당장 저들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항복을 해야 한다는 말이군!”

집무실 한쪽에 앉아 불타는 내성을 바라보고 있던 아킨스 자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항복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지?”

아킨스 자작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지금까지 그가 편안하게 집무실에 앉아있었던 것은 귀족의 권위 덕분이었다.

아무리 국가 간 전쟁이라도 항복한 귀족은 죽이지 않는다.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작이 아직까지 영지에 남아 있었던 이유도 몸값만 지불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놈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주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있습니다. 귀족들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항복했는데도 모두 죽였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마도 내성에 남아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죽었을 겁니다.”

“소영주, 소영주는 어떻게 되었나!”

“그것이….”

“뭘 꾸물거리는 거냐! 소영주는 어디 있단 말이냐!”

아킨스 자작이 버럭 고함을 치며 물었다.

“…소영주께선 몸값을 지불하겠다며 가장 먼저 항복하셨습니다. 하지만 적 기사는 소영주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을….”

“그만…!”

아킨스 자작이 손을 들어 기사의 말을 막았다. 더 듣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송구합니다.”

“허! 어떻게 이런 일이.”

아킨스 자작이 허탈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주군!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일단 내성을 빠져나간 뒤 은밀하게 영지를 벗어나 트라발트 공작령에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분명 와이번 나이트 들을 보내줄 겁니다.”

랜트가 급히 자작에게 다가가 말했다. 분명 트라발트 공작이라면 전력을 기울여 와이번 나이트를 보내 줄 것이다. 하지만 아킨스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가? 혹 내성을 빠져나간다 해도, 영지를 벗어나기는 불가능할 거야! 와이번이 하늘을 날고 있는 이상 잡히는 건 시간 문제겠지!”

“…일단 내성을 벗어나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랜트의 말에도 아킨스 자작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서랍 안쪽에서 고급스런 유리병을 꺼내 서탁 위에 올려놓았다.

탁-

“밤의 숨결이지! 구하기 힘든 술이라 아껴 마시던 건데….”

자작이 술병의 마개를 열어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크으~ 이렇게 마시는 것도 괜찮군!”

“자작님!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랜트가 초조하게 아킨스 자작을 재촉했다.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난 영지를 떠날 수가 없어! 아니 정확히는 못 떠난다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네가 모르는 것 같으니 내가 설명을 해 주겠네! 영지가 공격받으면 영주는 영지를 벗어나지 못한다네! 영지를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후계자와 가족뿐이지! 만약 이를 어기면 왕실에서는 영주가 영지를 포기했다 간주하고, 영지를 왕실에 귀속시킨다네!”

“그런….”

“영지를 잃은 영주의 삶은 비참하지! 대영주를 꿈꾸던 내가 영지를 버렸단 비난을 들으며 평생 살 수는 없어, 설령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멸문을 당한다고 해도 말이야!”

아킨스 자작이 술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럼… 전 어쩌란 말입니까!”

랜트가 분노한 얼굴로 아킨스 자작을 노려보았다.

그는 운 좋게 와이번 나이트가 되었다. 기사단장들은 죽거나 폐인이 되고, 눈엣가시 같던 콘트 부관도 제1 기사단과 함께 전멸하면서 아킨스 자작령의 모든 권력이 랜트에게로 향했다.

아킨스 자작만 해도 자신이 영지를 떠날까 노심초사하며 수많은 선물과 미녀를 아낌없이 베풀어주었고, 덕분에 랜트는 부하들의 부러움도 한몸에 받았다.

와이번과 맹약을 맺은 이후 운수 좋은 날의 연속이었다.

그 모든 것이 지금 눈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꽈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집무실 문이 산산이 부서지며, 온몸을 붉은 피로 물들인 일단의 무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찾았군! 와이번 나이트.”

선두에선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랜트를 바라보았다.

차앙-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랜트가 급히 검을 뽑아 겨누며 소리쳤다. 하지만 사내는 랜트의 말은 관심도 없다는 듯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걸리적거리는 건 모두 죽여! 난 저 녀석과 깊은 대화를 나눌 테니 말이야!”

“명!”

사내의 말에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어 올린 와이번 나이트들이 걸리적거리는 아킨스 자작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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