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납치
“아가씨!”
“빨리 세인 경을 쫓아가요!”
“네?”
이엘과 세인이 상점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밖으로 나온 시안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급해요! 이야기는 나중에 할 테니 지금은 세인 경을 쫓아가세요. 단! 은밀하게 뒤를 쫓아야 해요.”
“은밀하게요?”
“그래요! 어서 가요. 이렇게 머뭇거리다간 세인 경을 놓칠 거예요.”
“하지만… 제가 가면… 아가씨께서는…!”
“걱정 말아요. 전 곧장 여관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불러올게요! 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시안느가 이엘의 재촉에 급히 세인의 뒤를 쫓았다. 비록 세인이 먼저 달려갔다고 해도 안내를 하는 사람은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거리가 제법 벌어져 있었지만 시안느가 마음먹고 쫓기 시작하자 빠른 속도로 거리가 줄어들었다.
* * *
“어디까지 가는 거니!”
세인이 앞서 달려가는 소년을 불렀다.
하지만 소년은 세인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그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가며 빠르게 나아갔다.
“휴…. 할 수 없지.”
세인은 고개를 저으며 소년의 뒤를 무작정 쫓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걸음을 멈춘 곳은 높은 담과 벽으로 둘러싸인 막다른 골목이었다.
“…여긴?”
세인이 사방이 막한 골목을 둘러보며 소년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앞에 서 있던 소년은 어느새 반대편으로 돌아 낯선 사내의 옆에 서 있었다.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소년이 밀런의 옆에서 자신 있게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함정?”
세인이 믿을 수 없는지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던 슬픈 얼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엔 한껏 비틀어진 웃음을 짓는 사악한 소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크크, 좋아! 지난번 영지병에게 꼰지른 건 용서해 주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세인의 모습에, 밀런이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했다. 밀런의 말에 안도한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드디어 악마 같은 밀런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겠습니다.”
소년이 서둘러 밀런의 곁에서 떨어지려는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리려 했다.
“누구 마음대로?”
“…네?”
“누가 돌아가라고 했지? 아직 내 용무는 끝나지 않았는데?”
밀런이 돌아서려는 소년의 멱살을 재빨리 틀어쥐었다.
“컥-!”
“네놈이 받은 보상금, 날 밀고하고 받았으니 다시 돌려줘야겠지? 나한테 말이야.”
“그건…!”
소년이 당황한 표정으로 밀런을 바라보았다. 설마 보상금까지 노릴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왜? 주기 싫은가?”
“…커억!”
소년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밀런을 바라보았다. 그때 받은 보상금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밀런은 소년의 사정 같은 건 봐줄 생각이 없었다. 더욱 강하게 소년의 숨통을 조이며 압박했다. 소년이 밀런의 손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나이 어린 소년이 소드유저인 밀런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손으로 밀런의 팔을 붙잡고 독기어린 눈으로 저항하던 소년이 결국 힘이 다했는지 고통스러운 얼굴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 넌 여기서 잠시 기다려!”
밀런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소년을 바닥에 던지듯 내팽개치고는 곧장 세인을 향해 허리에 꽂혀있는 나이프를 던졌다.
쉬익-
땅-
밀런과 소년이 사이 좋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막다른 골목을 빠져나오려던 세인은 가볍게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나이프를 걷어냈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밀런을 노려보았다.
“크크, 미안하지만 아가씬 잠시 여기에 남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밀런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세인의 전신을 훑어봤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큭큭! 정말, 아깝군요. 며칠만 더 일찍 만났다면 조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아쉽지만 영주님의 명 때문에 어쩔 수 없군요.”
밀런이 정말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주? 아킨스 자작이 시킨 건가요?”
“뭐…. 비밀로 하란 명 같은 건 듣지 못했으니…. 그렇습니다.”
“왜… 날 납치하려는 거죠?”
“저야 모르지요. 저도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
밀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쉽진 않을 거예요. 날 데려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테니까요.”
세인이 밀런의 얼굴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밀런이 급히 손을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아아! 미안하지만 전 아가씨의 상대가 아닙니다. 소드 유저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아가씨를 상대하겠습니까?”
밀런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자! 이 정도면 제가 할 일은 끝난 것 같습니다만?”
“영악한 놈…!”
밀런의 말이 끝나는 순간 루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소드유저가 엑스퍼트를 납치하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안 돼는 일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밀런이 웃으며 루트가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났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절 쫓아오시면 저 아가씨를 놓칠 겁니다. 그럼 영지가 아주 곤란해질 텐데요?”
밀런의 말대로 영주가 이번 일의 배후란 사실이 밝혀진 이상 세인을 여기서 놓칠 수는 없었다.
“…일부러 영주님이 시킨 일이라 밝힌 건가?”
“저도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요. 루트 경께서 저 아가씨를 잡을 동안 전 이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밀런이 루트의 눈치를 살피며 쓰러져 있는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애초에 밀런은 세인을 상대할 수도, 자신을 감시하는 루트의 시선을 피해 도망칠 수도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이 도망치더라도 루트가 쫓아오지 못할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보니 네놈 목적은 처음부터 그 아이였군.”
“하하. 무슨 말씀인지…?”
밀런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아니라고 할텐가?”
“아닙니다.”
밀런이 단호하게 말했다.
“뭐….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넌 여기서 도망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설마, 절 쫓아올 생각입니까?”
밀런이 당황한 듯 주춤 뒤로 물러났다.
“왜 내가 널 쫓을 거라 생각한 거지? 이미 넌 내 손안에 있는데?”
루트가 밀런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순간, 루트의 손짓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골목 안쪽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평범한 가죽 갑옷을 입었지만, 이들이 평범한 용병이 아니라는 사실은 밀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2 기사단!”
“상대는 엑스퍼트 기사다. 상처 없이 데려가려면 이 정도 준비는 해야겠지?”
루트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밀런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인은 엑스퍼트 기사다. 소드유저인 밀런이 이길 수 없는 상대란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밀런을 내세워 세인을 납치하려 했던 건 아킨스 자작이 관여했단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 저 아이와 너만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번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이익!”
바닥에 쓰러져있는 소년을 보며 밀런이 입술을 깨물었다.
밀런이 처음부터 노린 사람은 세인이 아니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소년, 정확히는 소년이 받은 보상금이었다. 이미 핀크 단장은 폐인이 되었고, 부하들은 모두 죽었다. 밀런도 영지에 남아 있다간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떠나고 싶어도 수중에 가진 것 하나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소년이 받은 보상금이었다. 어차피 자신을 고발해 받은 배신의 대가였다. 밀런으로서는 거리낌 없이 빼앗을 수 있는 돈이었다.
“이제 알겠냐? 넌 처음부터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몸이었다.”
루트의 말에 밀런의 얼굴에 독기가 어렸다. 그도 오랜 세월 용병으로 떠돌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겨왔다. 이렇게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젠장! 죽더라도 쉽게 죽지는 않겠다.”
“오호, 발악이라도 해볼 생각인가?”
“발악? 큭큭!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먼저 공격하는 새끼에게 한 칼 정도 먹일 실력은 될 거다. 어때, 먼저 들어와 보겠나?”
밀런이 독기 어린 표정으로 검과 나이프를 양손에 쥐었다.
“어이! 루트, 언제까지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거야! 일단 여자부터 잡자.”
“그래! 지금쯤이면 여자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조세츠 자작에게까지 알려졌을 거야! 시간이 없다.”
골목 안쪽에서 빠져나온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루트의 곁으로 다가왔다. 루트까지 5명 모두 엑스퍼트에 오른 기사들이었다.
“아가씨! 순순히 우릴 따라가는 게 좋을 거야. 뭐, 여인의 몸으로 엑스퍼트에 오른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크크, 엑스퍼트라고 다 같은 엑스퍼트는 아니지!”
“어때? 진정한 엑스퍼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가르쳐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아! 물론 비전을 전수해 주는 만큼 적절한 대가도 필요하겠지? 크크크.”
기사들이 저마다 음흉한 눈길로 세인의 전신을 훑어보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세인이 엑스퍼트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저 이제 갓 엑스퍼트에 입문한 정도에 불과 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녀의 얇은 검과 왜소한 체격은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애송이로 보기에 충분했다.
“…대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세인이 가볍게 땅을 밀어내며 앞으로 튕겨 나갔다.
쉬익-
앞으로 빠르게 뻗어나간 세인의 검이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사의 흉부를 뚫고 심장에 박혀 들었다.
“커억-!”
“대가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세인이 쓰러지는 사내를 보며 중얼거리다가 급히 뒤로 고개를 젖혔다. 그러자 머리 위로 날카로운 검이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세인은 뒤로 연달아 세 걸음 물러나며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렸다.
꽝-
검과 검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기운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젠장! 완숙한 초급 엑스퍼트야!”
세인의 검격에 뒤로 밀려난 기사가 소리쳤다. 세인은 소리친 기사를 바짝 따라붙으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단순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검격이었다.
꽝-
막 세인의 검이 기사의 허리를 가르려는 순간, 뒤에서 달려온 기사 하나가 빠르게 몸을 부딪쳐왔다.
“헉-!”
깜짝 놀란 세인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쉴 틈을 주지 마!”
“구석으로 몰아! 공간을 주면 안 돼!”
기사들이 좌우로 움직이며 세인을 골목 안쪽으로 밀어붙였다. 세인의 검술은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정교하고 빠른 속도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체격이 왜소하고 힘이 부족한 세인에게 좁은 골목 안에서 거칠게 몸을 부딪치며 다수의 엑스퍼트를 상대하는 것은 불리했다.
쉬익-
푹-
세인의 뒤쪽에서 빠르게 날아온 나이프 하나가 세인을 향해 몸통 박치기를 날리려던 기사의 어깨에 박혔다.
“크윽! 젠장, 밀런 이 개 같은 자식! 날 공격해!”
“병신 같은 놈! 그럼 내가 가만히 앉아서 죽을 것 같아!”
밀런이 허리에서 뽑아낸 나이프를 양손으로 뽑아 들고는 기사들을 위협했다.
“저 녀석! 당장 죽여버려!”
“큭큭, 아가씨, 잘 생각해! 적의 적은 동지라고. 그나마 내가 있어야 여길 빠져나갈 수 있어!”
밀런의 말에 세인의 눈썹을 찡그렸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미친 놈이!”
기사들이 분노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밀런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세인이 재빨리 기사들의 앞을 막아섰다.
“젠장! 저 녀석 말을 따를 생각인가? 널 여기까지 유인해온 게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저도 화는 나지만 틀린 말은 없는 것 같군요.”
“크크, 검술만 뛰어난 줄 알았는데 상황 판단도 빠르군요.”
세인의 말에 밀런이 활짝 웃으며 기사들을 조롱하듯 바라보았다. 이제 끝이라 생각했던 순간에 한 줄기 살길이 열린 것이다.
“루트! 저 녀석부터 잡아.”
루트를 제외한 남은 세 명의 기사들이 재빨리 세인에게 쇄도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세인은 달려드는 기사들을 피해 역으로 루트에게 달려들며 검을 찔러 넣었다.
“헉-.”
막 밀런에게 달려가려던 루트가 깜짝 놀라 급히 몸을 뒤로 빼며 찔러 들어오는 검을 피하는 동시에 다급히 얼굴을 틀었다.
언제 날아왔는지 나이프 한 자루가 얼굴을 스치며 벽에 부딪혔다.
땅-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피 묻은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윽-.”
로터가 얼굴에서부터 느껴지는 싸늘한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아깝군! 단번에 죽일 수 있었는데.”
“…넌 반드시 내가 죽인다.”
루트가 얼굴을 가로지른 상처에서 흐르는 핏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무서운 눈으로 밀런을 노려보았다.
“그러시든가!”
“녀석!”
루트가 당장이라도 달려들려 했지만, 루트의 앞을 기사들이 막아섰다.
“녀석이 일부러 널 도발하는 거다. 넘어가면 안 돼!”
“이런, 들킨 건가?”
밀런이 아쉬운 듯 다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슬쩍 고개를 돌린 밀런의 얼굴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젠장… 상황이 좋지 않아!’
밀런이 허리에 꽂혀있는 나이프를 바라보았다. 남은 나이프는 고작 4개, 나이프가 떨어지면 그야말로 끝이다. 상대는 실전경험이 풍부한 용병기사들이다. 아무리 경험 많은 밀런이라도 직접 검을 맞대면 단 몇 수에 목이 잘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세인의 상황이 좋은 것 같지도 않았다. 비록 상당한 경지에 올랐고 검술도 대단하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해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오히려 기사들의 합공에 밀리기까지 했다.
이대로 마냥 시간이 흘러가면 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세인이 먼저 쓰러질 것이다.
그럼 밀런 자신도 끝이었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해서든 세인을 도와 기사들을 죽여야 했다.
싸늘하게 굳은 눈으로 기사들을 노려보던 밀런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크크! 이제 살았다.”
밀런이 그늘진 어둠 속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검은 물체를 보며 소리쳤다.
꽈앙-
막 세인을 밀어붙이던 기사 하나가 포탄처럼 날아온 물체에 부딪혀 벽에 틀어박혔다.
“크윽!”
벽에 부딪힌 기사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밀런은 상황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달려들어 기사의 목에 나이프를 박아넣었다.
크르륵-
나이프가 박혀 드는 고통에 피거품을 뿜어내던 기사가 두 눈을 부릅뜨며 밀런의 목을 틀어쥐었지만, 곧 팔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저 사람… 뭐죠?”
방패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안느가 밀런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개새끼!”
세인이 밀런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욕을 날렸다.
“헉!”
시안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인을 바라보았다. 세인처럼 바르고 올곧은 여인의 작은 입에서 흘러나왔다고는 생각도 못 할 욕설이었다. 더구나 감정이 명확하게 실린 욕 한마디에 밀런에 대한 평가가 모두 함축되어 있었다.
“풋, 재밌네요. 일단 개새끼 씨는 아군인 것 같으니…. 여기 세 사람만 상대하면 되겠군요.”
시안느의 말에 밀런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이젠 상황이 바뀐 것 같군요. 어때요. 순순히 항복하는 게?”
세인이 기사들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막다른 골목 안쪽에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았지만, 이젠 기사들이 오히려 앞뒤로 포위된 상황이었다.
“젠장! 이젠 어쩔 수 없다. 죽여!”
기사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세인과 시안느를 향해 달려들었다.
따당-
시안느가 자세를 낮춰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을 방패로 능숙하기 막아 내더니 짧은 검을 휘둘렀다. 시안느는 세인과는 달리 근접술에 능하다. 이런 좁은 골목에서의 싸움은 오히려 피할 곳이 없는 상대를 밀어붙이기에 더없이 유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