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75화 (175/404)

175.개화

“뭐냐!”

“으음-.”

마왕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마기의 양에 기겁하며 카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신 역시 당황한 듯 카일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카일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을 뿐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허공에 떠 있던 마기와 신성력까지 내부로 급격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카카! 신성력과 마기를 동시에 흡수하다니! 절대…. 절대 널 포기하지 않겠다. 네 녀석의 비밀을 풀어 반드시 중간계를 넘어 천계를 굴복시키고 말겠다.”

마기가 사라질수록 희미해지는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카일을 탐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악-

마치 불빛이 꺼지듯, 마왕의 눈동자가 사라져 버렸다.

여신은 사라져가는 마왕에게서 눈을 돌려 카일을 바라보았다.

“이계의 힘을 가진 아이야! 너의 힘이야 말로 잊혀진 신들의 권위를 이 땅에서 부활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힘! 부디 신의 뜻에 따라 신의 검이 되어라!”

여신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쩌억-

여신의 힘이 사라지는 순간, 여신상에 굵은 금이 가며 파괴되기 시작했다.

“으음-.”

카일의 손을 잡고 있던 포라스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괜찮나?”

툴린이 급히 다가와 포러스를 부축했다.

“나는… 괜찮아. 그나저나 카일… 저 아이는….”

포라스가 안타까운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여신과 마왕이 카일이란 아이를 노리고 있다. 그는 대지의 여신을 모시는 신관으로 여신의 뜻에 따라야 하는 사명이 있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여신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더구나 심판자로 변한 카일이 여신의 뜻에 따라 대륙을 피로 물들이게 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암흑기사로 변한 카일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카일을… 죽어야 하네.”

포라스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카일을 죽이라니!”

“…마왕과 여신이 저 아이를 세상을 파괴하려는 도구로 사용하려 하네! 저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여신과 마왕 모두 저 아이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자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알아!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이건 인간의 수많은 생명이 달린 일이야.”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잘못도 없는 카일을 죽일 수는 없어! 더구나 카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마왕과 여신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걸 잊지 말게!”

툴린의 말에 포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마법진에 앉아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카일을 바라보았다.

“…휴, 모르겠군! 이성은 분명 저 아이가 세상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신관으로서… 아무 죄도 없는 카일의 목숨을 논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군.”

툴린은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인 포라스를 위로하듯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걱정 말게. 카일은 잘 이겨낼 테니.”

“…그래야만 할 거야. 인간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그나저나… 카일은 왜 깨어나지 않는 거지?”

“글쎄?”

툴린과 포러스가 카일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런!”

툴린이 급히 카일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문제?”

포러스 역시 카일을 살피다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왜 이러는지 알겠나?”

“어쩌면… 이곳에서의 마지막이 저 아이의 운명인지도 모르겠군.”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해.”

“조금 전 저 아이는 마기와 신성력을 동시에 흡수했다. 그 양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포라스의 말에 툴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원래 카일이 가자고 있던 기운에 두 배, 아니, 어쩌면 세 배가 넘는 기운을 단번에 흡수했다. 그뿐일까? 지금도 마법진에서는 끊임없이 마나를 토해내고 있다.”

마법진에서 발생한 마나는 마치 인력에 끌리듯 카일의 몸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카일은 감당할 수 없는 마나의 폭주로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방법… 방법이 없는 건가? 당장 마법진을 제거하면….”

“이미 마법진과 카일은 연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법진이 파괴되면 그 충격 역시 카일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포라스의 말이 아니라도 마나에 대해 누구보다 정통한 툴린이 카일의 상태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포라스에게 묻는 것은 그만큼 당황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 대로 죽는 모습을 지켜보란 말이냐!”

“지금으로서는 카일 스스로 이 위기를 넘기는 방법밖에는 대책이 없다.”

“하아…. 이럴 수가! 아래서는 안 되는데….”

툴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적어도 여신은 카일의 죽음만은 바라지 않을 테니 말이다.

* * *

‘…젠장!’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니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마나도 문제지만 고밀도로 압축한 신성력과 마기의 양이 너무 많아 감당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방법은 오직 하나! 흉부의 정중앙에 위치한 마나플라워를 개화시켜야만 한다.’

지금껏 수없이 도전했지만 개화시킬 수 없었던 가슴 위 마나플라워만 개화시킬 수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고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잖아!’

카일은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고 내부를 관조했다.

마기와 신성력이 내부를 종횡무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새로 유입된 마나들도 오러로 변화하면서 몸 전체에 과부화가 걸리고 있었다. 마치 터지기 일보 직전의 풍선처럼 이미 마나플라워와 마나로드는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마기와 신성력 덕분이었다.

두 기운이 벌어지고 찢어지는 마나로드를 빠르게 치료하고 복구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휴…. 시작한다.’

카일이 마음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며 태극 형태로 회전하는 마기와 신성력을 곧장 가슴 쪽 마나플라워로 돌진시켰다.

과앙-

마치 거대한 종이 울리듯, 커다란 충격과 함께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귀에서는 반복적인 이명이 울렸다.

“커억-!”

“카일!”

카일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답답함에 핏덩이를 토해냈다.

깜짝 놀란 툴린과 포라스가 다가왔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카일이 다시 한번 압축시킨 신성력과 마나를 가슴 쪽 마나플라워와 충돌시켰다.

과앙-

“크윽-.”

카일은 내부에서 올라오는 충격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마나플라워를 두드렸다. 하지만 마나플라워는 튼튼한 방어막을 친 듯 꼼짝도 하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왜! 왜 안 되는 거지!’

카일은 절규하듯 외쳤다. 카일의 내부에는 엄청난 양의 신성력과 마기가 혼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러 역시 폭주하듯 내부를 질주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 기운은 상급 엑스퍼트에 오른 보일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그런데도 마나플라워를 개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개화?’

개화란 꽃이 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식물이 양분을 먹고 자라 꽃을 피워내듯, 마나플라워 역시 오러를 양분으로 해서 꽃을 피운다.

즉 처음부터 카일의 접근 방식이 잘못된 것이다.

어쩌면 카일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이다. 기사나 용병들은 카일과 같은 개념 자체가 없다. 그저 오랫동안 수련을 하면 자연적으로 오러가 쌓이고, 오러유저가 되고, 엑스퍼트가 된다. 카일처럼 오러를 인위적으로 수련하지도, 통제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카일과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상급 엑스퍼트에 오른 보일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다시 시작한다.’

카일은 다시 마기와 신성력을 움직였다. 당장 카일이 움직일 수 있는 기운은 아랫배에 있는 마기와 신성력뿐이다. 나머지 기운들은 이미 카일의 통제를 벗어나 날뛰고 있어 당장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랫배에 위치한 기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카일의 의지에 따라 마나플라워에 접근한 마기와 신성력이 이전과 달리 마나플라워 전체를 살며시 감싸기 시작했다.

‘된다…!’

카일은 환호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제하며 내부를 자세히 살폈다. 신성력과 마기가 마나플라워를 감싸는 순간, 마치 양분을 흡수하듯 신성력과 마기가 순식간에 마나플라워 안으로 스며들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

카일은 깨달았다.

지금까지 상급에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인위적인 오러의 통제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카일이 오러를 통제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카일은 벌써 상급에 올랐을 것이다.

인위적인 오러의 통제는 오러를 더욱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지만, 반대로 마나플라워로 향하는 오러까지 통제해 버렸다. 씨앗에 물과 양분을 주고 발아를 시켜 꽃을 피워야 하지만 스스로 양분이라는 오러를 차단한 상태에서 단단한 껍질에 쌓여있는 씨앗을 관문이란 생각으로 무작정 두들기고 있었던 것이다.

카일은 마치 마른 대지에 물을 붓듯 아랫배에 압축시킨 마기와 신성력을 끊임없이 밀어 넣었다.

‘엄청… 나군.’

아랫배에 압축시켜 놓은 신성력과 마기가 모두 가슴 쪽 마나플라워로 사라져갔지만, 아직도 개화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아직 마기와 신성력은 넘쳐나고 있었다.

카일은 아랫배로 모여드는 마기와 신성력을 또다시 압축시켜 가슴 쪽 마나플라워로 보내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마나플라워 주변으로 가는 실금이 일어나며 꽃봉오리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부에서 폭주할 것처럼 날뛰던 마기와 신성력이 빠르게 가슴 쪽 마나플라워로 모두 흡수되며 완전히 개화되었다.

신성력과 마기가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내부에 가득 차 있던 오러가 차지했다.

* * *

“저 여자들이에요?”

골목길 한쪽 모퉁이에선 밀런이 광장으로 들어서는 세 여인을 살폈다.

이들은 여행에 필요한 식량을 비롯해 각종 물품을 매입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오는 길이었다.

“그래! 좌측 끝에서 걸어가는 여인이다.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 할 수 있겠지?”

“그, 그럼요…. 헤헤! 당연하죠. 제가 언제 실수한 것 보셨어요?”

소년이 웃음을 흘리며 밀런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빨리 갔다 와!”

“예!”

소년이 밀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여인들을 살폈다.

‘으으…. 밀런이 왜 아직도 살아 있지? 분명 용병 아저씨들이 죽일 거라고 했는데….’

소년이 밀런을 자신 있게 신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반드시 죽어 보복할 수 없을 거라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용병 아저씨들에게 알리는 건데….’

소년은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당시만 해도 보상금이 탐났고, 용병들은 믿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 직접 신고를 했던 것이다.

“휴… 어쩔 수 없지! 어떻게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소년이 광장을 뺑 돌아 막 상점 앞에 멈춰선 세 여인에게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말소리까지 들려올 정도로 가까워지자 소년은 기회를 노리듯 가늘게 뜬 눈으로 세 여인, 정확히는 좌측에서 말을 끌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살폈다.

“카일은 어디로 간 걸까요? 분명 공방으로 간다고 했는데….”

“그 노인이 마법사라고 했잖아요. 어디 실험실이라도 따로 있는 것 아닐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시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 그나저나 이걸 언제 다 사죠?”

“천천히 돌아봐야죠. 공작령으로 가기는 틀렸으니 아마도 곧장 조세츠 자작령으로 갈 거예요. 일정이 늘어났으니 여행 동안 필요한 게 많을 거예요.”

“…그럼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 식료품점이겠죠!”

“맞아요. 다른 건 다 참아도 먹는 것만큼은 못 참겠어요.”

“그건… 그래요.”

시안느의 말에 세인은 물론 이엘까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 여인은 곧장 식료품과 곡물을 파는 상점 앞에 섰다.

이엘과 시안느가 먼저 상점 안으로 들어갔고, 세인은 난간에 막 말 고삐를 묶을 때였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년이 달려와 세인의 팔을 잡았다.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나이 어린 소년이 눈물이 가득 고인 커다란 눈으로 세인을 올려다보며 사정을 했다.

“무슨 일이니?”

“누나가… 나쁜 사람들이 누나를 끌고 가려 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처량한 목소리로 말하는 소년은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 여기저기가 부어올라 있었다.

“세상에…. 아이를 때리다니, 가만두지 않겠어!”

세인의 분노한 목소리에 고개를 숙여 울먹이던 소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무슨 일이에요? 안 들어올 거예요?”

막 소년을 따라가려던 세인을 상점 밖으로 고개를 내민 이엘이 불렀다.

“아! 죄송해요. 전 잠시 급한 일이 있어 가야 할 것 같아요.”

세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 이엘이 소년의 얼굴을 보며 눈을 빛냈다.

“…알겠어요. 걱정 말고 다녀와요. 우리가 알아서 물품을 사고 있을 테니 말이에요.”

“그럼….”

세인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재촉하는 소년을 보며 말했다.

“가자!”

세인이 소년의 뒤를 따라 급히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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