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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73화 (173/404)

173.잠식2

“뭐! 심통? 이 개 같은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개… 개 같은?!”

“그래! 너 이놈! 분명 아킨스 영지 안에서는 포션을 팔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했지 않느냐!”

“…포션!”

툴린이 포라스의 시선을 재빨리 피했다.

포션은 보통 마법사의 포션과 신전 포션으로 나뉜다. 신전의 포션과 마법사의 포션 모두 트롤의 심장에 담긴 피를 정화해 만들어진다. 신전의 포션이 신성력과 성수로 정화해 안정적이면서도 가격이 비싸다면, 마법사의 포션은 연금술과 마법적 기법을 사용해 안정성이 떨어져 저급했다. 대신 신전 포션보다 싼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골드가 부족한 하급 용병들로서는 값비싼 신전 포션보다는 저급한 마법사의 포션을 더 선호했다.

“…젠장!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용병길드장이 직접 찾아와 하급 용병이 쓸 포션을 구해 달라는데 어쩌란 말이야!”

“…길드장이?”

“그래! 나도 처음엔 거절했다. 거래를 하던 마법사와 연락이 안 된다고 핑계까지 대면서 말이야. 그랬더니 길드장이 하급 포션을 거래할 새로운 마법사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포션을 공급하기로 한 거냐?”

포라스가 다소 누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신전 포션과는 달리 마법사의 포션은 시약과 마법진에 따라 포션의 질이 현저히 달라진다.

더구나 들어가는 재료와 노력에 비해 포션의 가격이 너무 낮아, 2서클 이하의 저 서클 마법사들만이 포션을 제작하다 보니 안정성도 떨어지고 부작용도 심했다.

그러나 툴린이 만들어내는 포션은 저 서클 마법사들이 만들어내는 저급한 포션과는 달라 용병들 사이에서는 그런대로 유명했다.

아킨스 자작령의 용병길드장이 툴린을 찾아와 포션을 요청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 저급한 하급 포션보단 그래도 내가 만든 포션이 그나마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툴린은 포라스의 눈빛이 다소 누그러지자 재빨리 말을 이었다.

“포션은 일괄 길드에서 팔고, 다른 저급한 포션은 일절 영지에서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판매대상도 신전 포션을 살 수 없는 D급 이하의 하급 용병으로 한정했다. 이만하면 신전에도 피해가 없을 거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리 이야기하면 좋잖아!”

“미안하다. 요즘은 늙어서 그런지 깜빡깜빡하거든…. 그래도 물어봐야 했었는데… 지금이라도 받아들이기 힘들면 말해라! 당장 길드장에게 찾아가 전량 회수하겠다.”

툴린이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사과를 하자 포라스가 툴툴거리며 몸을 돌렸다.

“됐다! 이미 팔아넘겼으면 끝난 거지…. 있어 봐! 손님이 왔으니 차라도 내어 오겠다.”

포라스가 안으로 사라지자 툴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군! 녀석이 좀 풀어진 것 같으니….”

“포라스 님이 포션에 왜 저리 민감하신 겁니까?”

“클클, 당연한 것 아니겠냐? 신전에 헌금하는 사람, 특히 귀족들은 그리 많지 않다. 평민들이야 신을 거의 믿지 않으니… 결국 신전의 수입은 포션 판매와 귀족들을 치료하고 헌금 형식으로 받는 골드가 전부다. 당연히 포션 판매에 민감할 수밖에.”

“마법사의 포션은 어차피 신전 포션을 살 수도 없는 하급 용병들이 주로 사지 않습니까? 신전이 민감해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클클클, 그야 저급한 하급 마법사들이 만든 포션이라면 그렇겠지. 내가 직접 만든 포션의 레시피는 좀 특별하거든! 부작용이 좀 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용병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지!”

“…그렇군요. 하지만 신을 믿는 신관이 포션 판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네요. 툴린 님의 포션 판매가 불만이라면 차라리 대량으로 포션을 제작해 싸게 팔면 되지 않겠습니까?”

“신관도 사람이고, 신전도 사람이 운용하는 곳이다. 금전에 민감한 건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신전이라고 포션을 대량으로 만들고 싶지 않겠느냐?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거지.”

“…한계가 있다는 말이군요.”

“신관이 1년에 만들 수 있는 포션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포션을 만들기 위해 신성력을 사용하면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요양을 해야 한다. 그러니 포션이 비쌀 수밖에.”

“요양까지 해야 할 정도로 포션을 만드는 일이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카일이 놀란 듯 신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거야 신전에서 일절 알리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나도 포라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됐다. 그 뒤로 포션 만드는 것도 중단했지. 뭐, 대신 신성력에 대해 여러 가지 알 수 있어 좋았지만 말이다. 클클.”

툴린은 포션을 팔지 않는 조건으로 포라스의 신성력을 이용해 여러 실험을 해본 듯했다.

“넌 날 만난 걸 다행으로 알아라! 마법사 중 나만큼 신성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야!”

툴린이 웃음을 지으며 카일을 돌아보았다.

“쯧! 이제 보니 목적이 있어 신전에 온 거냐?”

커다란 트레이에 찻주전자를 가져온 포라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툴린을 노려보았다.

“…오늘 온 건 이 아이 때문이다. 이 녀석에게 문제가 좀 있다.”

“문제?”

포라스가 카일을 살펴보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

툴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툴린의 말에 포라스가 더욱 신중하게 카일을 살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건가…?”

틀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더니 굳은 얼굴로 포라스를 바라보았다.

“비밀리에 할 말이 있다.”

“…심각한 이야기인가?”

“그래.”

“흠… 따라와. 적당한 곳이 있다.”

포라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툴린과 카일이 급히 뒤를 따랐다. 포라스가 향한 곳은 신전 안쪽에 만들어진 작은 방으로, 안에는 작은 백옥을 깎아 정교하게 만든 대지의 여신상 하나만 놓여있는 소박한 방이었다.

“이제 말해봐. 보아하니 오래 끌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비밀은 지켜줄 수 있겠지?”

“걱정 마라.”

포라스의 말에 툴린이 카일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굳은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렸다.

스스스-

카일의 손 위로 암청색 오러가 드러났다.

웅-

포라스의 입이 떨어지기도 전, 방안에 놓여있던 신상에서 은은한 백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기!”

포라스가 급히 두 걸음 물러나 카일을 경계하며 중얼거렸다.

“암흑기사…?”

포라스의 말에 카일이 쓸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순간 카일의 손 위로 드러난 암청색 오러가 청백색의 오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여신상에 어렸던 백광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포라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카일과 툴린을 바라보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본건 마기와 섞인 오러가 맞다. 우리가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 마기를 없애기 위해서다.”

툴린은 카일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허, 듣도 보도 못한 기사로군! 암흑기사로 변해 가면서도 이성을 온전히 유지하다니!”

“어떻게, 가능할 것 같으냐?”

툴린이 포라스를 보며 물었다.

“그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야….”

“신성력을 주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더구나 마기를 없애는 일이니 적극 돕겠다. 하지만 지금 몸 안에 잠든 마기의 총량이 문제다. 신성 마법진과 신상의 도움까지 받아야 마기를 밀어낼 만한 신성력을 끌어 올 수 있는데… 과연 카일의 몸이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포라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만… 마기를 흡수하고도 전혀 반발하지 않는 마나라면… 어쩌면 신성력 역시 흡수해 몸을 보호하며 마기를 밀어낼 수도 있다.”

“클클, 나와 같은 생각이군! 어떠냐, 카일. 결정은 우리가 내릴 수 없는 일이다.”

“전 이미 결정을 내리고 왔습니다. 얼마 전 결정을 내렸다면 후회는 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어떤 결과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카일의 말에 툴린과 포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어떠냐?”

“신관으로서 마기를 없애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앞선다.”

“잘됐군!”

툴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서 푸른 가루를 꺼냈다. 포라스 역시 품 안에서 황금빛 가루를 꺼냈다.

“신성 마법진을 중심으로 외곽에 5개의 원소 마법진을 그리겠다. 카일의 오러는 순수한 혼돈의 마나와 비슷하니 도움이 될 거야.”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포라스였다. 방안에 황금빛 가루를 이용해 신성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툴린은 포라스의 마법진이 중심을 잡자 주변으로 다시 5개의 마법진을 그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신중하게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의외인 것은 포라스보다 나중에 마법진을 그린 툴린이 먼저 마법진을 완성했다는 사실이었다.

“휴…. 힘들군!”

포라스가 허리를 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수고했다.”

“수고는 무슨…. 네놈 때문에 그린 것도 아닌데….”

“쯧, 말하는 것 하곤!”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시작하자!”

포라스는 여신상을 조심스럽게 마법진 안에 놓았다.

“자넨 마법진 중앙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마기를 소멸시킨 후 받겠네.”

노신관 포라스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 툴린과 대화를 나누며 거친 말을 쏟아내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변화였다.

“저저…. 이중인격자 같으니라고….”

툴린이 중얼거리면서도 마법진 앞에 섰다.

“시작하겠다.”

툴린이 지팡이를 살짝 들어 가볍게 바닥을 내려쳤다.

투웅-

지팡이가 바닥과 부딪히는 순간, 가볍게 내려쳤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둔중한 소리가 울리며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푸른 마나가 마법진으로 스며들었다.

우웅- 우웅-

마나의 흐름에 따라 5개의 원소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주변의 마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포라스는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마나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고 앉은 카일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자세군. 불편하진 않나?”

“익숙해지면 오히려 다른 자세보다 편안합니다. 명상할 때도 좋습니다.”

“검을 쓰는 자가 명상을 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군. 나처럼 신을 모시는 신관이나 마법사만 명상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하, 자네 역시 오러 만큼이나 특이하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네!”

포라스가 카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네! 신성력이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 아마도 마기와 신성력이 충돌하며 격하게 반응을 일으킬 거야!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오러로 몸을 최대한 보호해야 할 거야.”

“걱정 마십시오.”

포라스 노신관이 카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카일의 양손을 잡았다.

신성 마법진으로 신성력의 밀도를 급격히 높인다고 해도 신성력이 몸 안으로 스며들지는 않는다. 신관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만 사람의 몸 안으로 신성력을 밀어 넣을 수 있었다.

“레아 님!”

포라스 노신관이 눈을 감고 여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신성 마법진과 여신상을 중심으로 은은한 백광이 피어오르며 막대한 신성력이 포라스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웅-

짧은 진동음과 함께 카일의 손을 잡은 포라스의 양손에서 눈부신 백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카일의 몸 안으로 농밀한 신성력이 스며들었다.

“큭-!”

카일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신성력이 카일의 몸 안으로 파고드는 순간, 몸 안에 잠들어 있던 마기가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않군.”

카일과 포라스를 바라보던 툴린이 표정을 굳혔다.

이전에 보았던 암청색 오러와는 달리,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마기가 카일의 온몸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카일의 오러를 잠식하고 있던 순수한 마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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