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71화 (171/404)

171.회수

별빛마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거대한 레드 와이번과 다수의 골드 와이번이 두터운 구름을 뚫고 절벽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단장님!”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사 타스와 부러진 팔을 동여맨 릭크가 급히 달려와 부복했다.

릭크는 카일이 던진 스피어를 피하려다 와이번에서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안전끈 덕분에 추락은 면했지만, 와이번에서 떨어지며 안전끈이 팔에 감겨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오랜만이군. 타스, 릭크.”

레드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사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타스와 릭크를 바라보았다.

“앤더슨은?”

“송구합니다.”

타스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지금… 어디에 있지?”

“동굴 안쪽에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타스가 앞장서서 동굴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동굴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자 인위적으로 파낸 작은 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잘 만들었군!”

“원래 검은 여우들이 사용하던 곳을 조금 더 넓히고, 기사들이 숙소로 사용할 작은 굴을 더 팠을 뿐입니다.”

“그래도 어려웠을 텐데! 수고했다.”

“모두 앤더슨 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제가 한 일은 그저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었습니다.’

타스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돌벽의 서늘함이 더 강하게 전해져왔다.

“이곳입니다.”

타스가 멈춰선 곳에 작은 굴들이 여러 개 뚫려있었다.

“원래는 식량과 각종 부식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창고입니다.”

타스가 여러 개의 동굴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통나무를 통짜로 잘라내 만든 커다란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내는 거친 나무관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흠… 당시 상황을 듣고 싶다.”

릭크의 초췌한 얼굴이 일그러지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저 때문에… 제가 방심만 하지 않았다면….”

고개를 숙인 릭크가 말을 잇지 못했다.

“릭크! 단장님의 명이 들리지 않는 거냐?”

“…부단장님!”

“단장님께서 당시 상황을 듣고 싶다 하셨다.”

차갑게 내려보는 그의 눈동자에 붉게 달아올랐던 릭크의 얼굴도 곧 원래의 색을 찾았다.

“죄송합니다.”

“휴…. 널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을 뿐이다.”

“아, 알겠습니다. 당시… 저희 편대는 지상을 정찰하던 중 베랑 산맥으로 접근하는 일단의 기사단을 발견,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릭크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미 다수의 적 기사를 사살했고 잔당을 소탕하던 중이었습니다. 낮게 저공 비행하며 적 기사단을 향해 스피어를 던지려는 순간, 갑자기 지상으로부터 다수의 스피어가 날아들었습니다.”

“놈들이 강화 스피어를 가지고 있었나?”

“아닙니다. 저희가 공격할 때 썼던 강화 스피어를 재사용한 것 같았습니다. 헌데….”

릭크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상한 점이 있었나?”

“…스피어가 날아온 방향이 너무 절묘했습니다. 마치 제가 피할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서 던진 스피어는 마지막 한 수를 위해 와이번을 유인하려는 작업 같았습니다.”

“움직일 위치를 정확히 짐작했다면…?”

“와이번의 움직임은 변칙적이어서 맹약을 맺은 와이번이 아니라면 움직임을 파악하기도 힘듭니다.”

“…역시 스피어를 던진 녀석이 블랙 와이번을 탈취한 녀석이겠군! 타스! 분명 블랙 와이번을 보았나?”

“네! 확실합니다. 공중전 중 마법 무구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타스가 품 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제가 본 마법 무구의 형태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림을 살펴본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막대형 마법 무구로군?”

“마법이 발현되는 순간 막대의 앞쪽에서 불꽃과 함께 작은 폭음이 일었습니다.”

“불꽃과 폭음이라….”

“화염의 마탑일 가능성은 있지만, 정확한 것은 따로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법 무구의 위력은 어땠나?”

사내의 말에 타스가 상의를 벗고 커다란 흉터가 남은 어깨를 드러냈다.

“온전히 치료를 하지 않았군!”

“위력을 정확히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았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타스의 어깨를 살폈다. 살점이 거칠게 뜯겨나간 흔적이 익숙했다.

“단장님….”

“놈이… 확실하군!”

사내가 가라앉은 눈으로 타스의 상처에서 눈을 뗐다.

“이제 확인했으니 그만 치료를 받아! 기사는 언제나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 야해!”

“마법 무구에 대해 한 가지 더…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더 알아야 할 것이 남았나?”

“위력보다 더 놀라운 건 정확도입니다. 놈이 사용한 무구는 정확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았습니다. 급격한 공중 기동 중에도 공격 대부분이 제게 집중되었습니다.”

“정확도가 높다는 것은 우려되는 일이다. 하지만 고가의 위력적인 마법 무구는 발사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바로 그 점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녀석이 사용한 마법 무구는 횟수 제한이 없어 보였습니다.”

“횟수 제한이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분명 놈은 수십 번이나 연속해서 마법을 날렸습니다. 제가 부상을 당해 전장에서 이탈한 이후에도 계속해 마법 무구를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공중전 경험은 다소 부족해 보였습니다.”

타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일이었다.

“가공할 마법 무구에 블랙 와이번이라…. 큰일이군!”

사내가 어설픈 마법 무구의 그림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만약 이 마법 무구가 대량생산되어 다수의 와이번 나이트에게 지급된다면, 제국 와이번 나이트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양피지와 앤더슨의 시신을 공작가에 최우선적으로 전달하도록! 왕국이 이 같은 마법 무기로 무장하기 전 우리 제국도 그에 대응할 만한 무장이 필요하다고 전해!”

“내용을 정리해 공작가로 보내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남은 건… 앤더슨의 와이번은 어떻게 되었지?”

“대지에 추락하며 생긴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크게 다쳤을 겁니다.”

“사체가 없다면 결국 근처에 있던 누군가와 새롭게 맹약을 맺었단 말인데….”

“녀석과 동행한 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부단장의 말에 심각하게 굳은 얼굴의 사내가 타스를 바라보았다.

“최근 남부 일대에 새로운 와이번 나이트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있었나?”

“네, 이미 찾았습니다.”

“…벌써 찾았다?”

사내가 타스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10여 일 뒤, 이곳 베링 산맥과 인접한 아킨스 자작령에서 남부 최초의 와이번 나이트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릴 겁니다.”

타스가 분노한 얼굴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앤더슨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와이번이 적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더 분노하게 했다.

“…영주가 멍청한 놈인가? 아직 온전치 못한 와이번을 공개하다니….”

와이번을 상대할 방법은 오직 와이번 뿐이다. 널리 통용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강력한 와이번 나이트나 라이더에게도 위험한 순간은 있다. 바로 와이번이 맹약자를 잃고 새로운 기사나 용병을 만나 맹약을 맺은 직후다.

와이번은 맹약이 깨어지는 순간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때문에 맹약을 맺은 이후 아공간 석에서 한동안 안정기를 보내게 된다.

이 동안 와이번은 하늘을 날 수 없었고 감지 능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이때만큼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와이번이 안정될 때까지 맹약 사실을 숨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칫 와이번을 노리는 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킨스 자작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얼마 전 자작의 두 기사단장이 죽거나 폐인이 되었답니다.”

카일과 기사단장들의 결투가 많은 수의 용병 목격자에 의해 빠른 속도로 남부 일대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영향력 약화를 우려한 아킨스 자작이 서둘러 와이번 나이트의 탄생을 밝혔단 말이군!”

“그렇습니다.”

“뒷일을 감당하기 쉽지 않을 텐데? 와이번을 노리는 세력이 움직일 수도 있고….”

“아킨스 자작은 남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자입니다. 우호적인 가문도 많지만 적대적인 가문도 적지 않습니다. 와이번을 노리는 세력보단 가문의 영향력 축소가 더 우려되었을 겁니다.”

“흠… 자작의 입장에서는 영지의 무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인데….”

“그렇습니다. 실제로 기사단장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몇몇 가문이 비밀리에 회동을 가지려 했다가 아킨스 자작령에서 초대장이 도착하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타스의 말에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흠… 아킨스 자작, 혹 이걸 노린 건가?”

“네?”

“의도적으로 귀족들을 영지에 끌어들이는 것 같다는 말이야!”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시간을 더 끌었다간 와이번이 부상을 치료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아 무너질 수도 있어! 하지만 영주들이 영지로 모여들면 순간적으로 영지의 전력이 상승하지!”

“아, 호위기사!”

타스가 탄성을 터트렸다.

“맞아! 영주의 호위기사는 영지 최고의 기사들이다. 남부 전역에서 모여든 기사들이면 숫자도 적지 않겠지!”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을 와이번 나이트를 보호하는 방패로 활용하는 동시에, 남부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한다. 아킨스 자작이란 자,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군!”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고작 하급 귀족가의 기사들입니다. 지금 전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섬멸시켜 남부 귀족의 씨를 말릴 수도 있습니다.’

남부 전역에서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귀족들과 그 가족들이 몰려들 것이다. 이때 단번에 자작 성을 급습한다면, 일거에 남부 귀족들을 척결하여 크로노스 왕국에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멍청한 소리!”

타스의 말에 부단장이 눈썹을 찌푸리며 나무랐다.

“네?”

“이곳은 적지다. 남부 귀족들과 그 호위기사들을 척결할 동안 왕국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그건….”

“동부의 힌츠 자작가와 중부의 듀플레인 남작가에 대해 알고 있겠지?”

“모두 와이번을 타고 하루면 도착할 거리에 위치한 영지들 아닙니까?”

힌츠 가문과 듀플레인 가문은 모두 각각 2~3마리 이상의 와이번 나이트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부 그린넨 백작가와 중부 트라발트 공작가의 봉신 가문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킨스 자작령를 공격하는 순간 자작은 반드시 이 두 가문에 도움을 청하려 할 것이다.

“우리의 주목적은 와이번을 안정적으로 회수하는 동시에 블랙 와이번 오너의 정체를 밝히는 거다. 자작가에서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전력이 강하다고 해도 이곳에 도착한 기사의 숫자는 10명 정도가 전부다. 수많은 귀족과 호위무사를 뚫고 영주성 안에서 와이번 나이트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시간을 지체했다간 중부와 동부에서 몰려온 와이번 나이트에게 역으로 공격을 당하거나 넓게 펼쳐진 그물에 걸려들 위험도 있었다.

“우린 최소 반나절 안에 목표를 달성하고 아킨스 자작령을 떠난다.”

“그럼… 공격은 언제로 생각하십니까?”

“내일 정오.”

“새벽이 아니라… 낮에 공격을 감행한단 말입니까?”

“새벽녘에 공격하면 도주할 때쯤이면 대낮이다. 아무리 구름 사이를 비행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다. 그렇다고 어두운 밤에 공격하면 자칫 와이번 나이트의 행적을 놓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낮에 공격하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도주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

“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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