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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70화 (170/404)

170.운수 좋은 날10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요?”

이엘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문 앞을 서성였다.

“글쎄요?”

“자작님과 여기 주인이 카일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세인 경은 카일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잖아요. 혹 짐작 가는 일은 없나요?”

“…제가 카일 님에 대해 아는 건 모두 일상적인 평범한 것들 뿐인 걸요.”

세인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세인은 오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카일이 무려 와이번, 그것도 무려 블랙와이번의 오너라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이 놀라운 사실을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엘과 시안느는 물론 워드까지도…

“카일이야 다핸 남작령을 떠난 적 없고, 어머니는 샤론 마을 사람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자작님이 아는 사람은 보일 대장일 거예요.”

시안느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음, 가능성이 가장 높기는 하겠군요.”

이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가져다 댔다.

“음… 역시!”

이엘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들리나요? 아가씨?”

시안느가 이엘의 옆으로 다가서자 모든 시선이 문 앞에 귀를 대고 서 있는 이엘에게로 향했다.

“안 들려요.”

이엘이 실망한 듯 고개를 흔들며 벽에 기대어 섰다.

“실망하셨어요?”

시안느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실망했다기 보단 그냥 궁금해서요. 조세츠 자작이란 사람은 사교계에서도 좀 신비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신비한 사람요?”

“자작은 젊은 시절 왕실 하급 관리였어요. 대략 15년 전 젊은 나이에 왕실을 떠났죠. 당시만 해도 자작은 사교계에 알려진 게 없었어요.”

이엘이 조세츠 자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세인과 워드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왕실을 떠난 1년 뒤, 귀족사회에서 자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되었죠.”

“무슨 놀랄만한 일이 있었나 보군요. 사교계에 이름을 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세인이 이엘을 보며 물었다.

“왕실을 떠난 자작이 갑자기 보석을 매입하기 시작했거든요.”

“보석 매입이 사교계에 알려질 만큼 놀랄 일인가요?”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으니까요.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수량과 물건이었거든요.”

“재력가로 알려진 자작에게 보석 정도야….”

“조세츠 자작의 영지는 안정적인 영지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재력을 과시할 정도로 부유하진 않아요. 재력가로 알려진 것도 보석을 매입하면서부터죠.”

“그럼 보석을 매입한 자금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두 가지 설이 있어요. 하나는 왕실에서 비밀리에 보석을 매입했을 가능성이죠.”

“왕실이 굳이 비밀리에 보석을 매입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직영 상단을 통하면 얼마든지 매입할 수 있잖아요.”

“보석을 단순히 보석으로만 본다면 그렇겠죠.”

“그럼… 보석이 아니라면….”

“아공간석. 왕실이 비밀리에 다수의 와이번 나이트를 육성 중이란 소문이 돌았어요.”

시안느가 이엘을 대신해 말했다.

“맞아요. 때문에 귀족들이 왕실을 상당히 경계했죠. 왕실이 비밀리에 와이번 나이트를 육성 중이라면 그 이유는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일 테니까요.”

“확실히… 아공간석 때문이라면 이유로서는 충분하군요.”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로는, 자작이 영지에서 보물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보석을 수집할 때를 전후해 고대 유물들이 암시장을 통해 다량으로 유통되었거든요.”

“비슷한 시기라면 가능성이 없진 않네요. 보석이라면 부피는 작고 가치는 높아 보관성이 좋으니까요.”

“맞아요. 모두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죠. 하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모두 베일에 싸여있죠.”

“확실히 비밀이 많은 사람이군요. 자작은….”

“그렇죠. 그런 자작이 카일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잖아요.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요.”

이엘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낡은 문으로 향했다.

딸랑-

그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카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돌아가겠습니다.”

심각하게 굳어진 얼굴로 카일이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카일이 저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요?”

“흠…. 이래선 물어볼 수도 없겠는데요.”

이엘이 투덜거리면서도 빠르게 걸음을 옮겨 카일의 옆으로 다가갔다.

“무슨 대화를 나눈 거예요? 안 좋은 일인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이야기해줄 수 없는 건가요?”

이엘이 카일에게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카일이 걸음을 멈춰 세우고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일의 입으로 향했다.

“휴….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대화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카일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저자들이다.”

어두운 그들이 드리운 골목 안, 초췌한 눈동자로 카일의 일행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저… 자가 중급 엑스퍼트란 말입니까?”

“그렇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입에서 지독한 악취와 술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저런 자를 상대할 수는….”

“저 사내를 상대하라는 게 아니다. 목표는 옆에서 걷고 있는 여인이다. 알겠나?”

건장한 사내가 말했다.

‘젠장! 옆에서 걷고 있는 여인만 3명인데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거야!’

초췌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여인들을 자세히 살폈다.

“정, 정확히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뭐!”

건장한 사내가 눈을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이런 멍청한 놈!”

“죄, 죄송합니다.”

사내가 급히 고개를 푹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쯧! 오른쪽에 있는 여인이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다. 그녀는 엑스퍼트급의 기사다. 명심해!”

“아, 알겠습니다.”

소리를 지른 사내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품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바닥으로 던졌다.

“용병들은 기사들과 영지병이 막아 줄거다. 일이 끝나면 충분한 보상과 함께 새로운 신분도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감,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나 보군. 밀런! 너에게 최선이란 없다. 오직 성공 아니면 죽음뿐이다. 알겠나?”

사내가 살기 어린 눈으로 밀런을 보며 말했다.

“알… 겠습니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흥! 쓰레기 같은 녀석!”

사내가 비웃음 가득한 눈으로 밀런을 내려다 보다가 천천히 어두운 골목길 안으로 사라졌다.

“…루트이 개 같은 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놈이!”

밀런이 분통을 터트리며 사내가 사라진 어둠을 노려보았다. 녀석은 핀크를 대신해 밀런으로부터 상납금을 받아 핀크 단장에게 전달하던 용병 출신의 말단기사였다. 항상 밀런을 형님이라 부르며 아부하던 녀석이 단 며칠 만에 밀런을 쓰레기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 그나저나… 이젠 어쩌지?”

밀런이 바닥에 떨어진 묵직한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이번 일은 아킨스 자작이 직접 내린 명이었다. 거절하는 순간 죽음 목숨이었다. 물론 살아서 영주성을 빠져나온다고 해도 결국 용병들 손에 잡혀 죽을 것이다.

밀런에게는 영주의 명을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아니지! 일이 끝나면 영주가 날 가만히 둘리가 없지!”

이번 일이 드러난다면 다핸 남작은 물론 당장 눈앞에서 걸어가는 덩치 큰 사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날 찢어 죽일 거야…!”

상대는 중급 엑스퍼트다.

누구보다 중급 엑스퍼트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밀런에게, 이번 일은 그냥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을 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 운에 맡길 수밖에”

밀런이 손에 들린 주머니를 강하게 움켜쥐곤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흠…. 어딜 가는 거지?”

밀런이 골목길 안으로 사라지자, 골목길 모퉁이에서 조금 전 사라졌던 루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루트의 임무는 밀런이 도망칠 것에 대비해 감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는 순간 밀런의 목을 잘라 입을 막는 것이다.

“흠…. 일단 따라 가봐야겠군!”

루트가 밀런이 사라진 골목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 *

밀런이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빈민가 외각에 자리 잡은 낡은 집 앞이었다. 밀런은 조심스럽게 집주변을 살피더니 낡은 문을 부수고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아악!”

갑작스러운 비명과 함께 나이 어린 소년이 문밖으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밀런…!”

“날 배신하고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아!”

밀런이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소년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두 손을 비벼댔다. 하지만 밀런은 인정사정없이 소년의 뺨을 때렸다.

짝-

소년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소년은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밀런의 바지를 붙잡고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요. 제발!”

“뭐든지 다 한단 말이지!”

밀런이 관심을 보이자 소년의 눈에 빛이 맴돌았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이다.

“네네! 뭐든 다 할게요. 살려만 주세요.”

“좋아! 일단 살려는 주겠다. 하지만 또 한 번 배신하면 그땐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네네 알겠어요. 절대 배신하지 않을게요.”

소년이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였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루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루트가 비록 용병으로 떠돌며 나쁜 일도 많이 했지만 적어도 나이 어린 아이들을 때리거나 괴롭힌 적은 없었다

“쓰레기 같은 놈! 넌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 * *

카일은 식단 한쪽 벽면에 기대어 앉고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고민이 많은가 보군.”

카일의 앞으로 루트가 다가왔다.

“제게 할 말이 있으십니까?”

“툴린님께서 이걸 전해주라고 하더군.”

루트가 손에 들고 있던 레더 아머를 내밀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을 띠는 가죽을 세심하게 가공해 만든 갑옷이었다.

“이건 툴린 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갑옷이네. 다른 곳에선 구할 수 없는 특별한 갑옷이라고 하더군.”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까?”

“꼭 다시 찾아 달라는 말씀은 있었네! 찾아오면 이 레더 아머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하셨어.”

루트의 말에 카일이 레더 아머를 받아들었다.

“오러의 비밀을 알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마법사가 아니라도 자네의 특이한 오러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

루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절 싫어하신 것 아닙니까?”

“자네가 영주님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싫어할 이유가 없다네. 어찌 되었든 자넨 나와 영주님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니까!”

“…어젠 죄송했습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해는 하지만 용납은 할 수 없는 일이야. 다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네! 자네가 비록 나와 영주님을 구해주었다 해도, 영주님은 나의 주군이자 아버님 같은 분이니 말이야. 그분을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알겠습니다.”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진 말게! 아무리 피한다고 해도, 운명이라면 결정의 순간은 다시 돌아올 거야.”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저 시간만 조금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네”

“그럴 수도….”

“조금 조언을 하자면… 결정은 빠르면서도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절대 후회는 하지 말게.”

루트의 조언에 카일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저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은 왕도에 도착한 이후에 하겠습니다. 이야기만 듣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그렇게 하게! 자작님께는 내가 말씀을 드리겠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공방에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군요. 툴린 님과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습니다.”

카일이 레더아머를 집어 들고는 천천히 식당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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