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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69화 (169/404)

169.운수 좋은 날9

“마법사를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언젠가 카일이 멀린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흠…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마법을 쓰기 전 빠르게 접근해 목을 잘라버리는 것 말입니까?”

손날로 상대의 목을 날려버리는 적나라한 시늉에 멀린이 격하게 기침을 토해내며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쿨럭…!”

“괜찮으십니까?”

“흠흠… 괜찮습니다.”

깊게 숨을 들이쉰 멀린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적나라한 표현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아주 정확한 대응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가요.”

“마법사의 입장에서 한 가지 더 조언을 드린다면… 적이란 판단을 확실히 내렸다면 보는 즉시 목을 날려버리십시오.”

“…보는 즉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시간을 끌거나 대화를 나누지 마십시오. 그냥 죽이셔야 합니다.”

“대화도 나누지 말라는 겁니까?”

카일의 물음에 멀린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파지직-

멀린의 손 위로 회색빛 기운이 뭉치며 강렬하게 방전하기 시작했다.

“고 서클 마법사는 대화 중에도 마법 주문을 외울 수 있습니다. 일단 주문이 완성되면 막을 방법이 없죠. 보는 즉시 죽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멀린이 손에 어린 강렬한 기운을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며 말했다.

멀린과의 대화를 떠올린 카일이 허공에 수많은 원을 그리는 톨린을 지그시 바라보다 결국 검에서 손을 떼어냈다. 아직 이들을 확실한 적이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인 줄은 몰랐습니다.”

“마법사라… 크크, 오래전엔 그리 불린 적도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저 공방을 운영하는 늙은 노인일 뿐이지.”

툴린이 웃음을 지으며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오러란 놈은 말이야. 마나와는 달리 성질이 아주 고약해. 친화력이 없지. 상식적으로 서로 특성이 다른 오러는 한 몸에 공존할 수 없다!”

톨린이 카일을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그래서 우린 로하스 단장을 죽인 인물과 자네가 전혀 다른 사람이란 결론을 조금 전 내렸다네!”

“흠…. 아쉽군요. 오늘 여길 방문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

“…너무 쉽게 인정을 하는구나?”

“반박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믿지도 않겠지요.”

“그렇지! 난 내가 보고 들은 것만 믿으니 자네가 아무리 반박을 해도 믿을 생각이 없어.”

톨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일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 보여준 마법이 뭔지 아느냐?”

“글쎄요?”

“대기 중에 떠도는, 성질이 다른 원소 단위의 순수한 마나를 끌어낸 것이다. 기사나 용병들은 이런 마나를 몸으로 받아들여 오러로 축적하지 어떠냐? 관심이 좀 있느냐?”

“전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검사입니다만?”

“흐흐, 원소 마법을 강화해주기 위해 만든 보조적인 마법이긴 하지만 이건 마법사보단 기사나 용병에게 더 유용한 마법이다.”

“체질과 검술에 따라 원하는 마나집적진을 만들 수 있겠군요.”

카일이 놀란 눈으로 툴린을 바라보았다. 오러의 색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사람마다 다른 검술과 체질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검술과 체질에 적합한 마나 집적진 안에서 수련을 한다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성취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아주 놀라운 성취를 보일 수 있다.”

“아주 위험한 마법이군요.”

“흐흐, 그렇지!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한 마법이다. 어떠냐! 이걸 마법진으로 만들어 주겠다.”

“…제게 바라는 게 있습니까?”

카일이 툴린을 보며 물었다.

“알려다오! 어떻게 두 개의 오러가 공존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이 부탁만 들어준다면 마법진을 내주겠다.”

“흠….”

카일이 툴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톨린의 마법진은 대단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용병이나 기사는 물론 무력을 중시하는 귀족 가문에서도 탐낼만한 물건이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카일이 단호하게 말했다.

“설마… 이 마법진의 가치를 모르는 것인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다지 필요가 없는 물건입니다.”

“필요가… 없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만… 저도 잘 모릅니다. 제 몸 안에 왜 서로 상충되는 기운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물론 카일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굳이 툴린에게 밝힐 생각은 없었다.

“본인도 모르게 상충되는 오러가 공존하고 있다는 말인가?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믿든 안 믿든 상관없습니다. 저도 이해하지 못한 사실을 툴린 님께 이해시켜 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카일의 말에 툴린이 눈썹을 찡그리더니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지팡이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휴! 본인도 모르는 일을 강요할 수는 없지, 좋아! 그럼 내가 오러를 관찰할 수 있게 해 다오. 그렇게만 해 준다면 마법진을 알려 주겠다. 어떠냐? 이건 너에게 아주 유리한 조건이다.”

“흠, 아쉽지만 전 이대로 이곳을 떠나 곧장 공작령으로 갈 생각입니다. 보시다시피 비밀이 탄로 난 이상 여기 남아 있을 순 없을 것 같은데요.”

로하스를 죽인 범인이 자신이란 사실이 밝혀진 이상 카일은 더는 이곳에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 자칫 자신으로 인해 상단 사람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작령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아니 간다고 해도 성문을 쉽게 넘을 수도 없을 거야.”

“네?”

“며칠 전 공작령이 공격을 받았어! 다수의 와이번에 의한 공중폭격과 함께 무차별적인 파괴 공작이 벌어져 공작령 절반 이상이 날아갔거든!”

툴린이 태평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카일이 깜짝 놀라 물었다.

“뭐… 가장 유력한 곳은 제국이지. 하지만 이런 과격한 방법은 잘 쓰지 않아. 다른 왕국들도 가능은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지.”

“…제국.”

“가능성이 높다 뿐, 알 수는 없다. 아무튼 공작령으로 가기는 힘들다.”

“상관없습니다. 전 반드시 공작을 만나야 합니다.”

카일의 말에 툴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공작을 만난다고? 그놈을 왜 만나려는 거지?”

“알려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공작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힐튼 남작님의 서신을 가지고 있으니 쉽게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힐튼 남작은 왕국에서도 이름이 높은 검호다. 남작의 서신이 있다면 공작도 카일의 요청을 거부하지는 않을 거다.

“흠… 힐튼 남작이 샤론 마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군!”

툴린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다시 머리를 저었다.

“그래도 공작은 만날 수 없을 거다. 지금 트라발트 공작은 공작령이 아닌 왕도에 머물고 있거든.”

“왕도….”

카일이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 어쩔 수 없죠. 왕도로 바로 가는 수밖에는….”

“흠… 아주 중요한 일인가? 공작을 만나려는 이유 말이야.”

조세츠 자작이 카일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남부 하늘탑 문제 때문입니다.”

“하늘탑? 멀린 마법사가 있던 곳 아닌가?’

“남부 하늘탑이 폐쇄되어 이제 남부에선 와이번 감시가 불가능해졌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남부 하늘탑은 효용 가치가 없다는 게 왕실의 생각이다. 왕실의 입장에서는 재정만 잡아먹는 하늘탑을 굳이 유지할 생각이 없지! 마법사들도 같은 의견이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조세츠 자작의 말에 카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둥근 문양의 앰블럼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포효하는 레드 드래곤과 검…. 이건 제국 황실기사단의 엠블럼이다. 어디서 난 거냐!”

탁-

탁자 위에 놓인 앰블럼을 집어 든 툴린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크랜드에서 마주친 제국 기사들의 검에 부착된 앰블럼입니다.”

“황실기사단이… 왜!”

“황실기사단뿐 아니라 다수의 와이번 나이트들도 나타났었습니다.”

“이제 보니 힐튼 남작이 부상을 당한 이유가 바로 황실기사단 때문이었나?”

“그렇습니다.”

“그럼 블랙 와이번도….”

“우연히 얻은 겁니다.”

“허허! 이런 일이….”

조세츠 자작과 툴린이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제국 와이번 나이트가 오크랜드을 통해 남부로 진입하려 한다면 남부를 넘어 중부까지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아무래도 왕실에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국 와이번 나이트들이 오크랜드을 우회 기습한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아니… 이미 왕국은 와이번 나이트들에게 큰 피해를 입었어!”

“트라발트 공작령!”

“아무래도 이번 공격은 제국 와이번 나이트의 소행 같군! 몇 가지 의심스런 정황도 발견되었고.”

“아무래도 서둘러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연락은 내가 넣겠네!”

조세츠 자작과 툴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일이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두 분, 정체가 뭡니까?”

“우리 말인가?”

“그냥 친분이 두터운 마법사와 귀족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흠…. 그건 아무래도 여기 있는 조세츠 자작에게 듣는 게 좋겠군.”

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을 막고선 워드를 바라보았다.

“난 통신을 넣어야 하는데….”

“보내 드리십시오.”

워드가 카일의 말에 문에서 비켜섰다.

“재밌는 물건을 가지고 있던데. 검을 쓰는 자가 마법의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발전을 이룰 수 없다네”

툴린이 미소를 지으며 워드를 지나쳤다.

워드는 툴린의 말에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문을 막아섰다.

“이야기해주겠네. 다만 단둘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조세츠 자작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주군!”

“괜찮아. 카일은 절대 날 해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않나?”

“…약속하지요.”

“들었지? 잠깐 나가 있게.”

조세츠 자작이 웃음을 지으며 루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겠습니다.”

루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카일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자작님께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하는 순간 가장 먼저 저 여인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쉽진 않을 겁니다.”

루트의 협박에 카일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자작에게 다가섰다.

“이제 이곳에는 자작님과 저뿐입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음…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무래도 자네의 부친에 대한 이야기 먼저 해야 할 것 같군.”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물론! 잘 알고 있지.”

“놀랍군요. 아버지께서 자작님을 알고 계셨다니…. 제게는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긴 기억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 아무튼 처음 보일을 만난 건 제국 동부까지 함께해줄 용병을 구하면서였다. 아무래도 제국을 횡단해야 하는 일이라 실력이 뛰어난 용병을 구해야 했거든. 그때 보일을 처음 만났다.”

자작이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어진 장시간의 이야기는 카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럼… 제가!”

“그래! 이곳은 툴린 마법사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곳에 남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때문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카일이 힘겹게 대답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생각하게. 하지만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대답을 들어야 하네!”

“알겠습니다.”

카일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조세츠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고민에 빠진 얼굴로 천천히 공방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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