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65화 (165/404)

165.운수 좋은 날5

“여기서 말입니까?”

카일이 당황한 표정으로 루트를 바라보았다.

“이만한 곳도 없지 않겠나? 바닥도 단단하고 공간도 넓을 뿐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도 상단 사람들 뿐이니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차피 할 거라면 뒤로 미룰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루트의 말에 카일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휴….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렇게 하지요.”

“하하! 잘 생각했네! 그럼 식사를 마친 후에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카일에게 확답을 받아낸 루트가 밝은 얼굴로 뒤돌아 갔다.

“아무래도 수상한데요?”

카일의 옆으로 다가온 이엘이 눈을 가늘게 뜨곤 조세츠 자작과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루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바닥에 남겨진 발자국을 신중하게 들여다보더군요. 아마도 절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럼 큰일 아닌가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대련을 거절하는 게 어떨까요.”

“안 돼요. 그럼 더 의심을 살 거예요.”

이엘의 말에 옆으로 다가온 세인이 고개를 저었다.

“세인 경의 말이 맞아요. 대련을 거절하는 순간 카일을 의심할 거예요.”

“하지만 대련하게 된다면 카일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잖아요.”

“걱정 마십시오. 절대 정체가 드러날 일은 없을 겁니다.”

이엘의 걱정 어린 표정에 카일이 태연하게 말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물론입니다. 이번 대련으로 마음속에 남아있던 의심까지 모두 사라질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 * *

저녁 식사로는 야채와 절인 소고기를 듬뿍 넣은 스튜, 따끈한 보리빵과 맥주가 나왔다. 모두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허! 내 평생 이렇게 큰 고기덩어리가 들어간 스튜는 처음 먹어본다.”

브린이 스튜에서 건져올린 커다란 고기덩어리를 보며 말했다.

“고기뿐이냐? 남아 있는 식재료를 아예 다 때려 넣은 것 같다.”

“당연하지. 여기 있던 투숙객들이 다 떠나면서 식자재가 그대로 남았잖아? 어차피 버릴 거 우리한텐 인심 쓴 거지.”

“아! 거참 말 많네! 건더기가 많으면 좋지 무슨 불만이 그리 많아?”

아덱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브린과 버크를 노려보았다.

“아니, 불평이 아니라… 좋다는 거지.”

“그럼!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스튜는 처음이란 말이야. 이런걸 언제 또 먹어보겠어.”

버크와 브린이 급히 변명했지만, 아덱이 날카롭게 쏘아보자 급히 고개를 숙여 스튜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덱이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돌려 코퍼를 바라보았다.

“대장이 보기에 누가 이길 것 같아?”

“흠… 글쎄? 루트 경의 실력을 정확히 모르니…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중급 엑스퍼트에 오른 정통기사잖아. 아무래도 카일이 어렵지 않을까?”

“무슨 소리. 넌 흑기사와 싸우던 카일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정교하면서도 그렇게 빠른 검술은 내 평생 처음 봤다.”

버크가 지난날 카일의 검술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야 기사들의 정통 검술을 못봤으니까 그렇지. 아무리 카일이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그 근본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용병검술이야.”

“무슨 소리야? 카일은 이제 고작 17살이야. 넌 저 나이에 중급 엑스퍼트가 된 정통기사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이미 카일의 검술은 정통 기사 가문의 검술을 넘어섰단 말이야!”

버크가 고함을 치듯 브린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던 사람들 모두가 브린과 버크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카일과 루트의 대련이 성사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두 사람의 승패에 모아져 있었고 의견도 분분했다. 그러던 중 두 용병이 승패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자, 자연스럽게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는 없었다.

“이 멍청이들, 둘 다 앉지 못해!”

조금 전까지 스튜를 먹으며 친분을 과시하던 브린과 버크가 또다시 말싸움을 시작하자 코퍼가 잔뜩 화난 음성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두 사람의 음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코퍼 용병대에 집중되었고, 그중에는 카일과 그 일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코퍼 용병대는 아직 카일과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카일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코퍼 입장에서는 이대로 카일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라 숨죽이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멍청이 두 녀석이 앞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카일의 관심을 제대로 끌어 버린 것이다.

“내가… 이런 멍청한 녀석들을 데리고 다녔다니…!”

코퍼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장이 왜 저러는 거야?”

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덱을 바라보았다.

“너… 정말 대장이 왜 그러는지 몰라서 묻는 거냐?”

아덱이 한심한 표정으로 버크를 바라보았다.

“…글쎄? 왜 저러지? 넌 아냐?”

버크가 옆에 있는 브린을 돌아보며 말했지만 이미 브린은 사라진 뒤였다.

“어… 이 녀석 어디로 간거야!”

“쯧! 녀석은 벌써 도망쳤다.”

“네?”

야튜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린을 찾기 전에 저길 한번 돌아봐라!”

야튜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식기를 챙겨 코퍼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버렸다.

“도대체 저기 누가 있다고….”

아무런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자, 버크가 잔뜩 화난 얼굴로 부단장 야튜가 가리킨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벽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낀 카일이 버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헉!”

버크가 창백해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도움을 청하려는 듯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버크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 * *

“눈빛만으로 용병 5명을 물리치다니 대단하군!”

“요즘 새롭게 익힌 오러 아이즈란 기술입니다. 오러를 눈으로 쏘아 보내는 거죠. 대단하지 않습니까?”

루트의 장난스러운 말에 카일이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자 루트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눈으로 오러를 쏘아 보냈다고?”

내심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카일이 워낙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루트의 마음속에 ‘정말 가능한 것 아닐까?’라는 작은 의구심이 생겨났다.

점점 굳어가는 루트의 얼굴에 카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죠.”

“뭐….”

루트가 황당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설마… 믿으신 건 아니죠?”

카일이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하… 그럴 리가…!”

루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험! 이제 충분히 쉰 것 같은데… 그만 시작할까?”

“…알겠습니다.”

카일과 루트가 식당 중앙에 자리를 잡자, 두 사람의 대결을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기 위해 사람들이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1층에는 조세츠 자작과 마티슨 부단주가 한쪽 자리를 차지했다.

“…광대가 된 기분이군요.”

카일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해다.

“용병이든 기사든 이런 식의 대결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니, 이번 기회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을 거야!”

“익숙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좋아!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루트가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원한다면 단검을 써도 좋다.”

“약속대로 무기는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괜찮겠나? 내 검은 제법 날카롭다네.”

“문제 없습니다.”

카일의 대답에 루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롱소드를 어깨 위에 걸치며 자세를 낮췄다. 그때였다. 식당 문이 열리며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입은 노인과 세 명의 기사, 그리고 성문을 통과하며 만났던 랄프 수문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멈춰라!”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검을 뽑아든 루트를 보며 두 기사가 빠르게 노인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뽑았다.

“흠… 아킨스 자작.”

조세츠 자작이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곧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아킨스 자작에게로 다가섰다.

“검을 치워라!”

아킨스 자작이 앞을 막아서는 기사들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왔다.

“하하, 오랜만이군! 조세츠 자작.”

“그렇군요. 아마 1년도 훨씬 지난 것 같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군.”

아킨스 자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중앙에 서 있는 두 사람, 정확히는 카일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수문장 랄프를 돌아보았다.

“저 녀석인가?”

“그렇습니다. 영주님.”

아킨스 자작이 카일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옆에 시립한 두 명의 기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떤가?”

“일단 커다란 체구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래?”

아킨스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서 있던 조세츠 자작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저 녀석을 보증했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카일은 분명 이튿날 저녁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 녀석이 어제 아침 우리 영지에 있을 수는 없었단 말인데….”

아킨스 자작이 카일을 힐끔 돌아보다 중앙에 함께 서 있는 루트를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루트 경이었군!”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킨스 자작님.”

루트가 자작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네.”

아킨스 자작이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루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헌데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긴 모양이야.”

“…그건.”

조세츠 자작과 루트가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잠깐의 여흥 거리에 불과합니다.”

“그 여흥, 나도 즐길 수 있을까? 마침 나도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인하고 싶은데 말이야!”

“확인…?”

“그렇네. 아주 중요한 사실이라네.”

아킨스 자작이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조세츠 자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조세츠 자작의 망설임이 길어졌다.

이번 대련은 아킨스 자작령의 두 기사단장을 패퇴시킨 사람이 카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루트가 급조해 만든 자리였다. 이번 대련은 아킨스 자작가에서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스러운 대련이었다. 따라서 외부가 아닌 식당 안에서, 상단 내부 인원만 보는 자리에서 대련을 치르려 한 것이었다.

“자네도 들었겠지만, 지난번 기사단장을 공격한 괴한이 있었네.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확한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자에겐 절대 감출 수 없는 특징이 있다네!”

“특징? 덩치가 크다는 것 말고도 다른 특징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녀석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변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그 때문에 특별히 그때 녀석을 본 기사들을 데리고 왔으니, 저 녀석의 결백은 대련만 확인한다면 곧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아킨스 자작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조세츠 자작을 바라보았다.

조세츠 자작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휴…. 알겠습니다.”

조세츠 자작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루트를 바라보았다.

“시작하게.”

“…알겠습니다.'

루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카일에게로 다가섰다.

“아무래도 아킨스 자작이 대련을 관전해야 할 것 같네.”

“상관없습니다.”

“정말 괜찮은 건가?”

“괜찮습니다.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카일이 빙그레 미소를 지르며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시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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