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55화 (155/404)

155.레드스톤 전투1

“막아!”

카일이 난간을 밟고 1층으로 뛰어내렸다. 1층에 남아 있던 기사들은 미쳐 대비도 하지 못하고 카일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쉬익-

“커억-!”

“으악!”

카일이 휘두르는 검격에 기사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무작정 공격하지 말고 진형을 갖추란 말이야!”

카일을 쫓아 2층으로 올랐던 콘트 부관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1층 역시 부서진 식탁과 의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진형을 갖춘 상태에서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훈련받은 대로 포위해! 절대 놓쳐선 안 돼.”

분노에 찬 부관이 검을 빼 들고 난간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렸지만, 카일은 이미 식당 입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온 뒤였다.

“여기예요!”

카일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작은 체구의 인영이 빠르게 말을 몰아 다가왔다.

성 밖으로 먼저 나갔을 거라 생각했던 이엘이 떠나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요!”

이엘의 다급한 외침에 카일이 발을 굴려 말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쫓아라!”

뒤를 쫓아 밖으로 달려 나온 콘트가 소리쳤지만, 이미 카일을 태운 말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젠장! 말! 말을 가져오너라! 반드시 놈을 잡아야 한다.”

콘트의 외침에 기사들이 서둘러 말에 올라 카일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이 말은 뭡니까?”

카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밖으로 나왔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카일과 핀크 단장에게 쏠려 있더러고요. 그래서 밖에 매여 있던 말 한 마리를 몰래 타고 나왔죠.”

이엘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떨리는 목소리만 보아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단… 하군요.”

카일이 감탄한 듯 이엘을 바라보았다. 밖으로 나온 짧은 순간에 주변을 살펴 말을 훔칠 생각을 한 것도 대담하지만, 직접 실행까지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놀리지 말아요. 지금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단 말이에요.”

이엘이 다급한 와중에도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묶여있던 말이 상당히 좋은 말이라 다행이에요. 아니었으면 기사들에게 금방 따라잡혔을 거예요.”

이엘이 달리는 말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일과 이엘이 타고 달리는 말은 기사단장 핀크의 말이었다.

핀크가 쓰러지고 카일과 로하스의 대결이 시작되며 혼란에 빠지자 그 틈을 노려 이엘이 훔쳐 타고 온 것이다.

두두두-

“잡아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쫓아라!”

카일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말을 달려 뒤를 쫓고 있었지만, 말의 역량 때문인지 아니면 이엘의 기마술이 뛰어난 것인지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성문이에요!”

이엘의 앞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성문 주변에서 병사들이 간단한 검문을 하며 용병이나 영지민들을 통행시키고 있었다. 대부분 성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에 대한 검문이 이루어질 뿐, 나가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성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직 이번 일이 여기까지 알려진 건 아닌 것 같았다.

“멈춰라!”

성루 위에 올라선 수문장 랄프가 크게 소리쳤다. 갑자기 성 안쪽에서 말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자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로 급히 앞을 막아선 것이다.

“계속 달리십시오.”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뚫고 나가야죠.”

카일이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갑자기 카일이 검을 뽑아 들자, 성문 앞을 막아선 병사들이 당황한 듯 주춤 물러났다.

설마 검을 뽑아 저항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막아라!”

“성문을 닫아라!”

그때 뒤따라 추격해오던 기사들이 급박하게 소리쳤다.

“이런! 어서 성문을 닫아라! 궁병들은 화살을 쏴라!”

성벽 위에 올라 있던 수문장이 뒤에서 달려오는 기사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급히 소리쳤다.

쉬익쉬익-

수문장 랄프의 명이 떨어지자 성벽 위에 올라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따당-

따다당-

머리 위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자, 카일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화살을 쳐냈다. 중첩되는 오러의 잔상이 마치 커다란 막을 형성한 듯했다.

“성문이 닫히고 있어요!”

“계속 달리십시오.”

카일이 성문을 힐끔 바라보며 다시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그으응-

거대한 성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서둘러라! 더 달라붙으란 말이다.”

더디게만 닫히는 성문을 초조하게 바라보던 랄프가 급히 소리쳤다.

“으합!”

그때, 카일이 말 위에서 훌쩍 뛰어올라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더니, 성문 앞을 막아선 창병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스악-

떨어지는 카일을 향해 찔러 들어오던 창들이 오러소드에 우수수 잘려나갔다.

“으악-”

오러소드에 창이 잘려나가자 잔뜩 겁을 먹은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창을 버리고 주춤 물러났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이 녀석들아!”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랄프가 고함을 쳤지만, 병사들이 엑스퍼트를 당해낼 방법은 없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카일이 성문을 밀고 있는 병사들 향해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카일의 오러소드가 두터운 성문 위로 깊고 긴 상처를 남겼다.

나무 파편을 피해 물러났던 병사들이 성문에 깊게 새겨진 거대한 상흔을 보며 겁에 질려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으헉!”

“도, 도망쳐!”

병사들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며 카일과 거리를 벌렸다.

“가요!”

이엘이 크게 소리쳤다. 성문 앞에서 잠시 지체하는 동안 기사들이 바짝 뒤를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카일이 재빨리 말 위에 오르자, 이엘이 서둘러 말을 재촉해 성을 빠져 나갔다.

“이런 멍청한! 뭘 멍하니 있는 거냐! 활을 쏴라!”

성벽 위에 올라서 있던 랄프가 다급히 궁병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미 성 밖을 빠져나간 카일과 이엘은 숲으로 사라진 뒤였다.

* * *

꽝-

거칠게 문이 열리며 아킨스 자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주먹을 말아쥔 아킨스 자작이 침상에 누워있는 핀크를 보며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전날 새벽부터 은근한 숯불에 기름을 발라 통째로 구운 새끼돼지를 막 시식하려던 중이기 때문이었다.

“자작님…. 오셨습니까?”

핀크의 옆을 지키고 있던 기사 랜트와 하얀 사제복을 입은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작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포라스 님께서 오셨군요.”

아킨스 자작이 노인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대지의 여신 레아를 모시는 노신관 이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영주님.”

“미안하구려…. 지금은 반갑게 맞이할 상황은 아니니….”

“이해합니다.”

“…핀크 경은 지금 어떻소?”

“아주 강한 오러가 몸 안으로 침투한 것 같습니다. 내부가 엉망입니다.”

“그럼…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자작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아킨스 자작가가 남부를 대표하는 귀족 가문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두 명의 중급 엑스퍼트가 이끄는 강력한 기사단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습니다. 가슴뼈만 치료한다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다만… 다시 오러를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폐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닙니다. 일반인과 다르지 않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부가 엉망이 되면서 오러를 더 이상 쌓을 수 없게 되었을 뿐입니다.”

포라스가 일그러지는 자작의 얼굴을 보면서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신성력으로 치료를 받으면 이삼일이면 자리에서 일어날 겁니다.”

“휴…. 잘 부탁… 드리겠소.”

자작이 마지못해 포라스를 향해 부탁했다. 자작의 입장에서는 폐인이 된 핀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용병인 그를 데려온 이유도 중급 엑스퍼트란 이유 단 한 가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핀크는 지금도 자신의 기사였다. 그를 치료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도 주군인 자작에게 있는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포러스가 돌아가자, 아킨스 자작이 허탈하게 핀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허…. 기사가 오러를 쌓을 수 없다면 그것이 바로 폐인이 아닌가!”

자작이 고개를 흔들며 랜트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밀런이란 자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밀런? 요즘 용병들과 문제를 일으킨다는 그자 말인가?”

아킨스 자작이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자작 역시 밀런이 영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지켜만 본 것은, 밀런이 영지민 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작 처리를 해야 했는데…. 그럼 고작 용병 따위에게 중급 엑스퍼트인 핀크가 당했단 말이냐?”

“처음 용병과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중간에 다른 자가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자? 설마 갑자기 켈토 단장이라도 나타나 핀크를 쓰러트렸단 말이냐?”

“…가면을 써 정확한 신분은 확인할 순 없지만, 핀크 단장보다 큰 체구에 주먹을 썼다고 하니 켈토 단장은 아닙니다.”

“…주먹으로 핀크를 폐인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아킨스 자작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주먹만으로 중급 엑스퍼트인 핀크를 쓰러트렸다면 분명 보통 실력자가 아닐 것이다.

“그렇습니다. 비록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 두 번의 공격만으로 핀크 단장을 쓰러트릴 정도로 대단한 강자라 합니다.”

“그자가… 설마, 피스트 워리어란 말이냐!”

“주먹에 오러를 발현했다고 했으니 분명 피스트 워리어가 분명할 겁니다. 지금 로하스 단장께서 놈을 붙잡고 있다고 합니다. 콘트 부관이 기사들을 이끌고 갔으니, 곧 붙잡아올 것입니다.”

“로하스 단장이 그곳에 있다고?”

아킨스 자작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작가 최고의 기사 두 명이 모두 있었는데도 핀크가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흠… 그렇단 말이지…!”

아킨스 자작이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곧 결정을 내렸는지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주군께서 직접 말입니까?”

“둘 중 누구라도 다치기 전 놈을 만나봐야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놈이 로하스 단장님을 어쩌진 못할 겁니다.”

“이런 멍청한 녀석! 로하스가 녀석을 다치게 할까 걱정이 된단 말이다. 서둘러라!”

아킨스 자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기사 랜트를 재촉했다. 이미 핀크라는 중급 엑스퍼트가 사라졌으니, 자작에겐 그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실력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핀크를 능가하는 새로운 실력자가 영지에 아직 남아 있으니 자작으로선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작이 ‘밀밭의 여인’이란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여관은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고, 로하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이게… 로하스가 죽다니.”

아킨스 자작이 충격을 받은 듯, 싸늘하게 식어 있은 로하스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핀크가 중상을 입고 폐인이 되었지만, 그는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핀크를 폐인으로 만든 카일을 설득해 영입하려 자작이 여기까지 직접 달려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로하스는 대체가 불가능한, 기사단의 핵심이었다.

“주군! 크윽….”

로하스의 시신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기사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된 것이냐….”

겨우 마음을 가다듬은 자작이 여관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관은 커다란 돌을 쌓아 외벽을 만들고, 2층과 3층에 나무로 벽과 바닥을 만든 구조였다. 때문에 돌벽 깊숙이 새겨져 있는 수많은 검흔과 부서진 잔해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당시의 대결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놈은 피스트 워리어라고 들었다. 헌데… 이 검흔들은 다 뭐지…?”

로하스 단장은 분명 강력한 기사였다. 하지만 돌벽에 생긴 검흔은 도저히 혼자 만들어냈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녀석은 피스트 워리어인 동시에 검사였습니다.”

“허…. 검사인 동시에 피스트 워리어다?”

믿을 수 없는 기사들의 말에 자작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로하스의 몸은 물론 사방에 검흔이 남았으니 믿을 수밖에는 없었다.

“헌데… 콘트가 왜 보이지 않는 것이냐. 먼저 이곳으로 오지 않았느냐?”

“콘트 부관은 로하스 단장님의 복수를 위해 놈을 쫓아갔습니다.”

“…뭐!”

아킨스 자작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복수라니! 놈이 중상을 입었느냐?”

“그것이… 아, 아닙니다. 놈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헌데도 놈을 쫓았단 말이냐! 여기 놈이 남긴 검흔을 보고도…!”

자작 역시 로하스의 죽음은 심장이 아려올 만큼 아팠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제 아킨스 자작가에는 중급 엑스퍼트가 없다. 사실상 기사단의 전력이 반 토막, 아니, 그 절반의 절반으로 약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기사단까지 피해를 본다면 그야말로 남부 제일이라 생각했던 자작가의 무력은 사실상 괴멸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남부를 지배하려던 사나운 맹수가 하루아침에 이빨이 빠지고 말았다. 여기서 기사단이란 발톱까지 빠져나간다면, 그동안 숨죽이던 영주들이 고개를 들고 사방에서 달려들려 할 것이다.

“…워낙 급하게 뒤를 쫓다 보니….”

“아무리 급해도 기사단장인 로하스와 핀크가 모두 놈에게 당했다면 기사단만으로 상대할 수 없음을 알아야지! 이젠 기사단까지 모두 죽일 작정이란 말이냐!”

아킨스 자작이 분통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당장! 당장 돌아오라 전해라!”

“제가 가겠습니다. 콘트 부관이라면 다른 이들의 말을 무시하고서라도 쫓으려 할 것입니다.”

랜트의 말대로 콘트의 성격이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사단을 이끌고 끝까지 놈들을 쫓을 것이다.

“좋다. 반드시 기사단을 무사히 데려오너라!”

“알겠습니다.”

랜트가 급히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달려나가자, 자작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로하스를 내려다보며 명을 내렸다.

“영주성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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