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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54화 (154/404)

154.우선권2

“저들을 빼낼 건가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군요. 저들에게 알아볼 것도 있고….”

“우린 상단과 함께 다시 아킨스 영지로 돌아와야 해요. 여기서 분란을 만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이엘의 걱정스런 말에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신분을 감출 방법이 있습니다.”

“단순히 얼굴을 가린다고 해도 카일의 큰 체구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할 거예요.”

카일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큰 체구를 가지고 있어, 상단과 함께 영지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걸 감안하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인가요?”

“그것이… 아무래도 기사단장인 핀크와 로하스를 제압하고 빠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카일의 말에 이엘이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중급 엑스퍼트예요. 정말 모두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엘이 귀족가의 영애로서 기사들에 대한 지식이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문외한은 아니었다. 고위 귀족가의 영애로서 수많은 파티와 티타임에 참석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듣고 나눈 이야기가 많았다. 그중에는 기사들의 대련이나 결투에 관한 이야기도 있기 마련이었다.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어요.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것이 훨씬 어렵고 힘들다고….”

“두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면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한 명씩 상대한다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카일은 정말… 대단하군요.”

“대단할 것까지야….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아무래도 이엘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먼저 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저… 혼자 말인가요?”

이엘이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카일의 말대로 이곳에 남아 있다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엘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먼저 성 밖으로 나가 있을게요.”

“죄송합니다. 끝까지 지켜드려야 하는데, 설마 로하스 단장까지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녜요. 오히려 로하스 단장까지 나타났으니 우리에겐 잘된 일이에요.”

“네?”

“만약 두 기사단장과 충돌이 일어난다면, 제압하지 말고 차라리 죽여버리세요.”

이엘이 작은 입에선 단호하면서도 잔인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금… 두 사람을 죽이란 말입니까?”

“죽이는 게 가장 좋지만, 어렵다면 최소한 다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상은 입혀야 해요.”

“제압도 가능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카일이 이엘의 말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두 기사단장을 제압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네?”

“제압당했던 두 기사단장이 무사히 풀려난다고 해서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것 같나요?”

“그렇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게 있을까요? 신분만 완벽하게 감춘다면 저들도 절 잡을 수는 없을 겁니다. 더구나 아킨스 자작령에도 오래 머물지 않을 겁니다.”

“아마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남부 전역에서 카일을 찾으려 할 거란 말이에요. 아니, 카일과 비슷한 체구를 가진 자라면 일단 잡고 볼 거예요.”

“남부… 전역에서 말입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엘의 말에 카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부에서 아킨스 자작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대단해요. 아킨스 자작이 직접 각 영지에 도움을 청한다면, 남부에서 거부할 영지는 없을 거예요.”

“상당히… 귀찮아지겠군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카일은 도착하는 영지마다 의심을 받고 검문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카일의 말에 이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킨스 자작에 대해선 예전에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좋지 않은 이야긴가 보군요.”

카일이 이엘의 찌푸려진 표정을 보며 물었다.

“음…. 아버지께선 아킨스 자작을 욕심 많은 돼지라고 불렀지만, 한편으론 상황판단이 빠르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수완가라 했어요.”

“상당히 호평했군요.”

“맞아요. 그의 꿈은 남부 영지를 아우르는 대영주가 되는 거예요.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 하셨죠.”

“이번 일이 그에겐 기회가 될 거란 말인가요.”

“영지의 두 기사단장이 공격을 받았어요. 기사단을 외부로 파견할 충분한 명분을 갖춘 셈이죠. 남부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좋은 기회를 그가 놓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영지를 가진 영주 입장에서는 반발이 심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명분이 있다고 해도 무장한 기사들이 영지로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할 영주는 없었다.

“아킨스 자작령의 두 기사단장을 상대할 사람이 남부에 얼마나 있을 것 같나요?”

“그야….”

“없어요. 있다면 다핸 남작령이 유일하겠지만, 다핸 남작가는 남부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해 다른 영지들과 연계가 어려워요. 결국 자작가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는 말이죠.”

이엘이 눈썹을 찡그리더니 말을 이었다.

“자작은 이번 기회를 살려 남부를 확실하게 자신의 발아래 두려 할 거예요. 카일을 잡든 잡지 못하든 말이에요.”

“자작가에 그만한 전력이 있었다면 왜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겁니까?”

“명분이 없었으니까요. 명분도 없이 기사단을 움직여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간, 왕실 이전에 귀족회의에서도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테니까요.”

“제가 기사단장을 제압하는 순간, 아킨스 자작의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라는 말이군요. 그럼 두 기시단장을 죽이란 말도….”

“족쇄가 풀린 호랑이라도 이빨이 빠지면 늑대에게도 사냥당할 수 있으니 몸을 사려야겠죠.”

두 기사단장이 모두 죽어버리거나 회생할 수 없는 중상을 입는다면 다른 영지들이 아킨스 자작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명분만 있다면 얼마든지 잡아먹을 수 있는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아킨스 자작의 입장에서는 분쟁을 최소화하고 남은 기사단을 최대한 아껴 영지를 보호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되면 아킨스 자작은 더 이상 카일에 대한 추격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 *

“처음부터 날… 노리고 있었나?”

로하스의 당황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카일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카일이 가볍게 발을 굴려 로하스에게로 뛰어들며 검을 내려그었다.

까앙-

로하스가 뒤로 물러나면서도 사선으로 검을 찔러 들어왔다.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그리며 카일의 사각을 절묘하게 파고들어 왔다.

깡-

그러나 카일의 왼팔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단검으로 로하스의 검을 튕겨냈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에 들려있던 검이 부드럽게 로하스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꽝-

충격과 함께 로하스가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 기둥에 부딪혔다.

카일의 오러소드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부착한 고합금 플레이트를 박살 내며 충격을 줬기 때문이었다.

“크윽-!”

로하스 단장이 고통을 참으며 카일을 노려보았다.

“아깝군요.”

“양손이… 아주 능숙하군…!”

“그런 편이죠!”

카일이 또다시 로하스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마치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려는 듯 카일의 검이 매섭게 짓쳐들어갔다.

창-

로하스 단장이 카일의 검을 흘리더니 몸을 굴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위로 몸을 피했다.

꽝-

나무로 만든 계단이 박살 나며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

“이젠 작전을 바꾸신 겁니까?”

카일이 계속해서 몸을 피하는 로하스 단장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곧 기사단이 올 테니 힘들게 싸울 필요는 없지 않겠나? 자신 있으면 쫓아와 보게.”

“제가 이대로 떠날 수도 있습니다만?”

“추적은 내 전문이니 걱정 말게. 곧 찾아 주겠네!”

로하스가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검을 부딪칠수록 내부로 파고드는 끈적하고 불쾌한 오러가 끊임없이 오러의 순환을 방해하며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귀찮은 건 또 싫어하니, 여기서 끝내는 게 좋겠군요.”

카일이 눈썹을 찡그리더니 무너진 계단을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쾅-

카일의 오러소드에 나무로 만든 벽들이 부서져 나갔다. 다행히 투숙객들이 이미 방을 빠져나간 덕분에, 카일은 마음 놓고 오러소드를 마음껏 뿜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무 파편들이 사방으로 뿌려지며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쾅-

쾅-

연신 몸을 피하는 로하스를 따라 닥치는 대로 주변을 박살 내며 따라붙는 카일의 행동으로, 이미 여관은 본래의 형태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져 나갔다.

“단장님!”

기사들이 1층 식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려 20명이 넘는 숫자의 기사들이었다.

“이런, 기사단이 도착했군! 어쩌겠나? 이젠 항복할 마음이 섰나?”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로하스 단장의 얼굴에 대결 이후 처음으로 미소가 어렸다. 기사단이 도착하자 그동안 가지고 있던 긴장감이 점차 사그라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녀석이라 해도, 기사단이 차륜전을 펼친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글쎄요? 아직은 제가 좀 더 유리한 것 같습니다만?”

“뭐?”

로하스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이미 기사들이 여관 안으로 진입한 상황에도 여유를 부리는 카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하스 당장은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또다시 카일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깡-

까강-

쾅-

조금 전보다 더욱더 맹렬하게 달려들던 카일은 단장을 2층 구석진 곳까지 몰아붙였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검을 망설임 없이 단장을 향해 던지는 동시에 말아진 주먹을 로하스 단장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단장이 날아든 검을 쳐내려는 순간, 카일의 주먹이 여지없이 로하스 단장의 얼굴에 작렬하고 말 것이다.

“멍청한 놈! 네 녀석이 피스트 워리어란 사실을 잊었을 것 같으냐!”

로하스 단장이 비웃음을 흘리며 왼팔에 찬 고합금 브레이서로 검을 쳐냈다. 동시에 다가오는 카일을 향해 들어 올린 검을 내리쳤다.

창-

카일의 단검이 내려치는 로하스의 검을 막았다. 카일은 안쪽으로 바짝 다가서는 동시에 오른손 주먹으로 로하스의 얼굴을 직격했다.

퍽-

강력한 카일의 일격에 로하스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단단한 외벽에 막혀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퍽-

또다시 주먹이 작렬해 로하스의 턱을 부쉈다.

“단장님!”

“이놈! 당장 그만두지 못해!”

“올라가! 빨리 올라가!”

기사들이 급히 2층으로 올라와 로하스를 구하려 했지만, 이미 계단은 반파되었을 뿐 아니라 카일이 2층을 마구잡이로 파괴한 덕분에 수많은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있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덥석-

로하스는 카일의 주먹을 연속으로 맞으면서도 놀라운 정신력으로 버텨 내더니 결국 카일의 주먹을 잡아냈다.

“…이놈!”

“대단하군요. 제 주먹을 연속으로 맞고도 정신을 잃지 않다니 말입니다.”

“내가… 쉽게 무너질 거라 생각하느냐!”

로하스가 피를 토해내면서도 분노한 얼굴로 카일을 노려보았다.

“죄송하군요.”

“뭐!”

푹-

“크윽-”

텅-

단장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오른손에 들려있던 검을 떨어트렸다. 카일이 단검으로 로하스의 검을 강하게 밀어내더니, 번개같이 움직여 팔뚝에 단검을 박아 넣은 것이다.

“이제 그만하죠. 아무래도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크윽- 안돼!”

푹푹-

로하스의 팔뚝에 박힌 단검이 뽑혀 나오더니, 어깨를 지나 심장으로 박혀 들었다.

“단장님!”

“이 개자식! 당장 멈추지 못해!”

“으아악! 죽여버리겠어!”

막 부서진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온 기사들이 로하스의 심장에 박힌 단검을 보며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아, 안돼… 돌아가…!”

로하스가 부서진 잔해를 피해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며 중얼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휴….”

카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로하스를 바닥에 눕힌 뒤 대충 단검의 피를 닦아내곤 품 안에 집어넣었다.

“일이 이렇게 끝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바닥에 떨어진 로하스와 핀크의 검을 다시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난간을 밟고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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