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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46화 (146/404)

146.사라진 혈족3

서서히 날이 저물어가는 늦은 저녁, 중년의 기사가 작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익숙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기사에게 작달막한 체구의 식당 주인이 급히 달려가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아이쿠! 프란 기사단장님 오셨습니까?”

“잘 있었나? 요즘은 바빠 잘 오지도 못했군.”

프란이 반갑게 사내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희야 늘 똑같습니다요. 오늘도 늘 드시던 걸로 하시겠습니까?”

“그래 주게!”

“예! 그럼 먼저 브랜디부터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요. 마침 좋은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사내가 서둘러 브랜디 한 병을 가지고 나왔다.

“오! 밤의 숨결이 들어왔군!”

프란의 얼굴이 밝아지며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밤의 숨결은 서북부 헤리스 지방에서 생산된 세스 와인을 숙성시킨 오크통에 오드비를 함께 넣어 만든 브랜디였다. 입안을 얼얼하게 할 정도로 높은 도수를 자랑하지만, 특유의 진하고 풍성한 쉐이향을 즐길 수 있는 귀한 브랜디였다.

“어제 상단이 들어와 몇 병 들여 놓았습니다요.”

“이런, 이 좋은 술을 고작 몇 병만 들여놓았단 말인가?”

프란이 아쉬운 얼굴로 술병을 들어 올렸다.

“아휴, 이것도 어렵사리 구한 겁니다요. 마침 친분이 있는 상단주라 사정사정해서 구했습니다.”

사내가 밤의 숨결을 음미하는 프란을 보며 열변을 토했다.

“알겠네! 알았어! 자네의 고생은 내 잊지 않겠네, 하지만 남은 술은 절대 다른 이에게 팔면 안 되는 거 알지?”

“아이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저 단장님께서 자주만 찾아 주십쇼.”

사내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비록 작은 식당에 불과하지만, 영지의 치안병들이 이곳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프린 기사단장의 단골집이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요즘 요상한 일이 일어난다지요?”

사내가 조심스럽게 비어있는 술잔에 브랜디를 따르며 물었다.

“요상한 일?”

프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소식이라니?”

“그게… 저도 오가는 상인들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라….”

식당 주인이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아무리 프란 기사단장과 친분이 있다고 해도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좋지 않은 이야기를 전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어허!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보게!”

“그것이… 요즘 기사들을 죽이고 다니는 자가 있다고…. 그저 상인들이나 용병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인데…. 사실인지는 알지 못합니다요.”

“그런 이야기가 떠돌고 있단 말인가?”

중년 기사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아마도 근거 없이 떠도는 이야기는 아닐 거요.”

그때였다. 구석진 저리에서 낡은 피풍의를 두른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프란 기사단장님이십니까?”

“자넨… 누군가?”

프란 기사단장 역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절 꺾으시면 자연스럽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사내가 얕게 미소를 지으며 프란에게 다가왔다.

“지금… 나와 결투를 벌이자는 건가?”

프란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는 서부에 위치한 마란트 백작 가문의 3대 기사단장 중 하나로, 백작 가문에 몸을 담고 십수 년만에 기사단장까지 올랐을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상급 엑스퍼트에 근접한 실력을 가진 그는 평소에도 손에서 검을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만큼 자부심도 대단했다. 헌데 듣도 보도 못한 자가 찾아와 갑자기 결투를 신청하니 그로서는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결투! 바로 그것입니다.”

“허허! 이제 보니 사람을 웃기는 광대가 아니면 미친 자구나! 썩 물러가라!”

프란이 실소를 흘리며 브랜디가 가득 담긴 술잔을 들었다.

쨍-

순간 무엇인가가 날아와 프란의 손에 들려있던 술잔을 박살 내더니 돌벽에 깊이 박혀 들었다.

“…금화?”

프란이 잔뜩 굳어진 얼굴로 돌벽에 깊숙이 박힌 금화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금은 기본적으로 무른 성질을 가지고 있어 쉽게 돌벽에 박아넣을 수 없다. 그런데도 금화를 던져 돌벽에 박아 넣었다면 상대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란 소리였다.

순간 프란은 조금 전 식당 주인의 말이 떠올랐다.

“네놈이… 기사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놈이냐!”

“그것도 날 이기고 들으시오.”

스릉-

사내가 들고 있던 낡은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그러나 드러난 검신은 생각과는 달리 선명한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높은 미스릴이 함유된 강도 높은 합금검이란 뜻이었다.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창-

프란은 급히 검을 뽑아 다가오는 검격을 걷어냈다. 허나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마치 허공을 베어버린 듯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속셈이지?”

“검도 뽑지 않은 자를 공격할 생각은 없소. 이야기했듯 내가 원하는 건 정당한 결투요.”

사내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좋다. 네놈을 단번에 꺾어 이번 일의 배후를 찾겠다. 하앗!”

프란의 검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 * *

세인이 깨어난 건 하늘이 완전히 어둠 속에 잠겼을 때였다.

“죄… 송해요.”

세인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카일이 믿고 맡긴 검을 잃어 버렸다. 단 한 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실수였다. 아니, 어쩌면 두 사람이 카일과 피를 나눈 혈족이란 생각에 그들에 대한 경계심이 옅어졌을 수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시안느가 세인에게 물었다. 세인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슬픈 눈으로 말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에요. 카일은 두 사람에게 혼원장을 알려주곤 급히 떠났어요. 전 그냥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두 사람을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마크란 사람이 공격해 왔어요.”

“마크? 비터랑 함께 다니던 그 사람 말인가요?”

“맞아요. 뭔지 모를 충격에 쓰러지는 와중에 어렴풋이 말싸움 소리가 들렸는데… 아마도 운석검을 두고 다투는 소리 같았어요.”

“역시 두 사람도 운석검을 노렸나 보군요.”

세인의 말에 시안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카일이 가지고 있는 운석검이라면 누구라도 욕심을 낼 만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비타와 마크 두 사람만은 절대 그래선 안될 일이었다.

“휴…. 정말 나쁜 사람들이군요. 카일에게 수련법까지 배워 놓고 이젠 검까지 훔쳐가다니…. 이런 놈들은 반드시 잡아 혼내줘야 해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한동안 분통을 터트리던 시안느가 이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되겠어요. 지금 바로 놈들을 쫓아가겠어요.”

시안느가 당장이라도 말을 타고 아킨스 영지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혼자 가서 어쩌려고요. 놈들을 잡을 수는 있고요?”

“어쩌긴요. 놈들을 잡아 와야지요. 둘 다 소드 유저이니 혼자 가도 충분해요.”

시안느가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이엘은 고개를 저었다.

“소드 유저라도 다 같은 소드 유저가 아니잖아요. 더구나 지난번 있었던 카일과 두 사람 사이의 대결을 생각해 봐요. 더구나 운석검까지 가지고 있어요. 정말 상대할 수 있겠어요?”

이엘의 물음에 결국 시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이엘의 말대로 혼자서는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없었다. 비록 소드 유저이긴 해도 그들은 엑스퍼트를 목전에 두었고, 운석검까지 가지고 있으니 엑스퍼트 초급인 그녀라도 완벽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이대로 두 사람을 두고 봐야 한다는 말이에요?”

“어쩔 수 없잖아요. 카일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두 사람을 제압할 수 있지만, 아직 말타기에 서툴러 쫓아갈 수가 없잖아요.”

이엘의 말에 시안느가 고개를 돌려 세인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깨어난 세인을 데리고 추적에 나설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직 휴식이 필요했다.

“그럼 워드 님뿐이군요.”

“두 사람이 모두 빠질 수는 없어요. 그럼 상단 호위에 문제가 생겨요. 지금은 강한 실력자가 아니라 일정한 구역을 책임져줄 사람이 필요해요.”

카일이 중급 엑스퍼트로 강한 전력이긴 하지만,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혼자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실력은 떨어지더라도 일정한 구역을 단단히 지켜줄 여럿이 상단에는 더 필요한 존재였다.

“그럼 정말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요?”

세인이 침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타깝지만 늦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두 사람은 쉬지 않고 말을 재촉하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빠른 말을 타고 간다고 해도 두 사람을 잡기엔 어려움이 있어요.”

아킨스 자작령까지는 지금 출발해도 다음 날 오후 늦게나 도착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빨리 말을 달린다 해도 비터와 마크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비터와 마크 두 사람이 아킨스 자작령에 오래 머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카일도 세인 경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그들이 카일을 배신할 거란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

이엘이 세인을 위로하며 말했다. 하지만 세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전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전 그냥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그래서 억지를 부려 따라왔는데… 그런데… 저 때문에 부상도 입고 이젠 검까지 잃었으니….”

“자책이 너무 심해요. 이번 일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요. 저라도 그 상황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두 사람이 세인을 위로했지만, 여전히 세인의 얼굴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카일의 목소리가 천막 밖에서 들려왔다.

“네.”

시안느의 대답에 카일이 천막으로 들어왔다. 세인은 차마 카일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곤 커다란 피풍의로 몸을 가리며 돌아누웠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일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플 것 같아 수프를 끓여 왔습니다. 제가 아주 힘들게 숲에서 토끼도 한 마리 잡아 수프에 넣었으니 맛이 아주 좋을 겁니다.”

카일이 세인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을 이었다.

“토끼란 녀석이 얼마나 빠르던지 녀석을 잡느라 다섯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카일이 엄살을 부리는 듯한 말에 이엘과 시안느가 미소를 지었다. 카일이 고작 토끼 한 마리 잡느라 넘어졌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섯 번이나 넘어졌단 말인가요?”

이엘이 놀란 척 카일을 보며 소리쳤다.

“네, 워낙 빠른 녀석이라 한참 고생을 했습니다. 나중엔 커다란 가시덩굴 속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여기저기 가시에 찔려가며 어렵게 잡은 놈입니다.”

카일이 수프를 내려놓으며 이엘과 시안느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다분히 세인을 의식해 한 말이었다.

“어머나! 설마 다친 거 아닌가요?”

“다치다 뿐입니까? 아직도 몸 여기저기 가시가 박혀 있어 아파죽겠습니다.”

“그럼 설마! 치료도 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단 말이에요? 서둘러 가시부터 빼야지…. 늦으면 상처가 곪을 텐데.”

시안느의 당혹스런 목소리가 들려오자 몰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인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세인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인의 눈앞에 카일이 웃는 얼굴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났군요.”

“카일….”

세인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설마… 거짓말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얼굴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카일이 웃으며 수프가 가득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그렇다고 전부 거짓말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녀석이 가시덤불로 들어간 건 맞습니다. 녀석을 꺼내느라 가시에도 좀 찔렸는데 어찌나 아프던지…. 보십시오.”

카일이 가시에 찔린 상처를 보이며 엄살을 부리듯 말했다. 그 모습에 세인이 잠시 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침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일은 제가 밉지 않나요? 절 구하려다 부상도 당하고 소중한 검도 잃었잖아요.”

“제가요? 그럴 리가요. 아가씨께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제가 미워하겠습니까?”

카일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 어디에도 세인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은 담겨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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