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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42화 (142/404)

142.피스트 워리어1

피스트 워리어는 무기를 쓰지 않는 전사계열의 맨손 격투가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무기를 든 상대와 근접전을 벌여야 하는 맨손 격투가에게는 필연적으로 큰 용기와 담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엑스퍼트가 아닌 전사라는 뜻을 가진 워리어라 불렀다.

“하하, 이제 알겠느냐?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를.”

중년 사내의 말에 루트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사내의 경지는 루트와 비슷했다. 이제 워리어 중급에 올라섰다는 말이었다.

맨손 격투술은 무기술에 비해 익히기는 어려워도, 일단 오러를 발현할 수 있는 초급 단계를 넘어서면 같은 실력의 엑스퍼트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흥! 피스트 워리어라도 다 같은 피스트 워리어는 아니지!”

루트가 냉소적인 얼굴로 사내를 노려보며 검을 고쳐잡았다.

피스트 워리어는 오러가 몸 안에 쌓이기 전까지는 너무 약할 뿐 아니라 대규모 전투처럼 다수를 상대하거나 몬스터 토벌에는 적합하지 않아 익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피스트 워리어라 불리며 가끔 세상에 나오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어설프게 권술을 배웠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곤 했다.

“내가 어설픈 권술을 흉내 내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거야 붙어보면 알겠지!”

“하하! 좋아, 마음에 드는군! 널 먼저 쓰러트린 다음 조세츠 자작을 데려가겠다.”

가면을 쓴 사내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가득 맺혔다.

“마음 놓고 싸워라! 널 쓰러트리기 전엔 절대 조세츠 자작을 건드리지 않겠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크크 싸움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지, 특히 네놈 같은 기사 나부랭이들을 밟아줄 때는 더욱더 즐겁다고나 할까?”

사내가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쉽진 않을 거다.”

“두고 보면 알겠지! 먼저 공격해라! 내가 공격을 시작하면 넌 기회가 없을 테니 말이야.”

“사양하지 않겠다.”

루트가 신중히 검을 들어 올려 천천히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내는 그런 루트를 바라만 보며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기다려….”

사내가 따분한 듯 말을 내뱉는 순간, 느릿느릿 주변을 맴돌던 루트가 순식간에 달려들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위잉-

루트이 검이 사내의 머리를 횡으로 날려버릴 듯 섬뜩한 소리를 일으키며 빠르게 다가왔다. 루트가 지금껏 느릿느릿 사내의 주변을 돌며 시간을 끈 것은 바로 이 한 수를 위해서였다.

사람의 눈은 느리게 움직이는 사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느린 동작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 순간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면 느림에 적응한 눈은 빠른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사물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루트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이용해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공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허리를 가볍게 숙이는 것만으로 루트의 공격을 너무 쉽게 피해 버렸다.

“이런 단순한 공격을 내가 피하지….”

퍽-

사내가 비틀거리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사내가 루트의 검을 피하는 순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검을 잡은 루트의 손이 빠르게 아래로 떨어지며 사내의 등을 가격한 것이다.

“큭-!”

“받은 것은 돌려주겠다.”

사내의 눈가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제법이구나! 지금껏 무시한 걸 사과하지! 보답으로 단번에 머리를 터트려 주겠다.”

“보답 한번 잔인하군.”

“아! 다른 것도 있다. 원한다면 심장을 터트려 주마.”

사내가 발을 굴려 빠르게 달려들며 루트의 가슴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휘둘렀다.

따앙-

또다시 맑은 금속음이 울리며 루트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그사이 사내는 물러나는 루트에게 따라붙었다. 그리고는 왼쪽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며 루트의 턱을 노렸다.

‘빠… 빠르다!’

루트는 사내의 주먹을 고개를 틀어 피하며 거리를 벌리기 위해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검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루트가 물러난 만큼 사내가 빠르게 따라붙으며 거리를 더욱 좁혀 루트를 압박했다.

“재밌군, 재밌어! 내 주먹을 이 정도까지 피한 사람은 네놈이 처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속도를 조금 더 올려 볼까?”

바짝 다가선 사내의 작은 목소리가 루트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속도를… 올려!’

순간 사내의 주먹이 루트의 바로 눈앞에 와 있었다.

“헉-!”

루트가 급히 고개를 비틀었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했는지 주먹이 지나간 곳을 따라 피부가 길게 찢어지며 가는 핏물이 새어 나왔다.

“이런, 또 피했군!”

사내가 비웃음을 흘리듯 말했다.

‘이래서는 당하고 만다.’

아무리 대단한 명검이라도 사용하지 못하면 나무막대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루트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검을 아래로 내린 다음 몸 안쪽으로 빠짝 당겨 가드와 검 손잡이로 빠르게 다가오는 주먹을 쳐내거나 피했다.

“호오! 공격은 포기하고 오직 방어만 하겠다는 건가?”

루트의 방법은 검을 하단으로 세워 중심에 두고 날아오는 주먹을 효율적으로 쳐내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사내의 주먹이 빨라도 짧은 거리에서 움직이는 루트의 검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다만 검을 하단으로 세우고 검 손잡이로 방어를 해야 하기에 루트가 공격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누가 방어만 한다고 했지?”

사내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루트의 검이 위로 들렸다가 사선으로 비스듬히 떨어져 내렸다.

루트의 목표는 정확히 사내의 허벅지였다.

“헛!”

사내가 깜짝 놀라 검을 피해 황급히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방심하고 있던 사내로서는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루트의 공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내와의 거리가 벌어지는 순간 루트의 검이 사내를 따라붙었다.

사내가 검을 피해 다시 물러나며 동시에 말아쥔 주먹으로 검을 때려 왔다. 하지만 루트는 손목을 돌려 주먹을 피했다.

“젠장!”

사내가 깜짝 놀라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사내의 공격은 대부분 상대의 검을 강하게 쳐내며 생긴 틈을 파고들어 초근접전으로 상대가 손을 쓸 틈도 없이 박살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루트가 검을 쳐내려는 사내의 주먹을 피해 계속 찔러 들어오자 사내로선 검을 피해 물러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팔이 길다고 해도 찔러 들어오는 검보다 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흥! 네놈의 수법은 이미 간파했다. 이젠 내 차례다. 단번에 끝내주마!”

루트가 더욱 빠르게 사내를 따라붙으며 손목을 가볍게 흔들었다. 마치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처럼 부드럽고 가벼웠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찔러 들어가던 검이 순식간에 분화하며 사내의 전신을 노렸다.

이제 곧 사내의 전신이 루트의 검에 난자될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놈!”

사내가 크게 고함을 지르며 분화되어 다가오는 검을 피해 뒷걸음질을 치더니 가볍게 바닥을 차며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발이 허공으로 떠올라 다가오는 검을 향해 연달아 날아들었다.

-따당-

-땅-

곧 맑은 금속음이 연이어 올리더니 루트의 검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 위로 치솟았다. 순간, 사내의 뒤차기가 정확히 루트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쾅-

큰 충격음과 함께 루트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날아든 발차기라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하고 가슴을 얻어맞은 것이다.

-푸확-

바닥을 뒹굴다 간신히 몸을 세운 루트가 다시 한번 피를 토해내며 사납게 사내를 노려보았다.

“주먹만… 쓰는 놈이 아니었구나!”

“피스트 워리어는 전신격투사를 말한다. 내가 주먹만 쓸 거라 생각한 네놈이 멍청한 것 아닌가?”

사내의 말에 루트가 입술을 깨물며 뒤를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진 자신을 부축하러 달려오려는 조세츠 자작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대결이 시작된 이상 어떻게 해서든 복면 사내를 이기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루트가 검을 바닥에 박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내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일어날 힘이 있나 보군!”

사내가 놀라운 듯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루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미 상당한 충격을 받은 이상 루트와 더 이상 대결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용기는 가상하다만 이젠 그만 끝내야겠다. 약속대로 심장을 터트려 죽여주마”

사내가 비틀거리며 일어난 루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이대로… 쉽게 죽을 순… 없다.”

루트가 비틀거리면서도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큰 내상을 입은 상태라 검을 휘두르는 루트의 동작은 어설프기만 했다.

사내는 루트가 휘두르는 검을 몇 번 쳐내더니 곧장 왼손을 뻗어 루트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잘 가라!”

사내의 오른손 주먹이 뒤로 당겨졌다. 목표는 루트의 심장.

단번에 심장을 터트려 죽일 생각인 것이다.

-쉬익-

하지만 그때였다. 무언가가 엄청난 빠르기로 사내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대로 루트를 향해 주먹을 내려치는 순간 사내도 무사치 못할 거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사내는 루트를 놓아두곤 급히 주먹의 방향을 바꿔 날아드는 물체를 후려쳤다.

꽝-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휘감으며 사내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누구냐!”

사내의 외침과 함께 조세츠 남작을 포위하고 있던 십여 명의 사내들이 곧장 숲으로 뛰어들었다.

-창-

-차앙-

곧이어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 * *

“어쩌지?”

“일단 지켜본다.”

“저러다 죽으면 큰일이다.”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에 숨은 두 명의 복면인이 공터에서 일어나는 대결을 보며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너도 알겠지만, 저자는 중요한 자다. 여기서 죽으면 곤란해.”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명은 그저 지켜보는 거다. 우린 개입해선 안 돼.”

“우린 이미 개입했다. 잊었나? 흔적을 조작해 추격자를 따돌린걸?”

“암중에 도움을 주는 건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도움을 주려면 모습을 드러내야 해.”

두 사람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서로 팽팽하게 평행선만 달리고 있었다.

“젠장! 그럼 넌 빠져, 나라도 나설 테니”

복면인 중 하나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남은 한 명이 급히 팔을 붙잡았다.

“난 동의할 수 없다.”

“동의를 구하는 것 같아?”

두 사람이 서로의 팔을 붙잡고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두 사람을 향해 무엇인가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헉- 피해!”

깜짝 놀란 두 사람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순간 빠르게 날아든 물체가 두 사람을 스치듯 지나가며 막 루트를 죽이려는 사내에게로 날아갔다.

-꽝-

“누구냐!”

사내의 외침과 함께 한쪽에 물러서 있던 십여 명의 사내들이 곧장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두 복면인의 눈빛에는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누군가 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누군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전에 두 사람을 향해 공격해 오는 적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창-

검을 뽑아든 복면 사내가 동료를 보며 소리쳤다.

“이젠 우리 일이니 싸워도 되겠지?”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그러지.”

짧은 대답을 마친 사내가 어둠 속에서 뛰쳐나가며 검은 가면을 쓴 사내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고개를 흔들며 바라보던 또 다른 복면 사내가 뒤따라 어둠 속에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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