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38화 (138/404)

138.익힐 수 없는 검1

“카일!”

잠시 망설이던 비터는 마음을 정했는지 카일에게 곧장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설마 아직 승부를 보고 싶은 건가?”

카일은 이미 그들이 왜 왔는지 짐작하고 있었지만, 모른척하며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막상 비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카일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 있었다.

“너와 단둘이 정식으로 대련을 해보고 싶다.”

“지금… 나와 대련을 하고 싶다는 건가? 조금 전 머리를 다쳐 기억이 사라졌나?”

카일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두 사람이 합공을 펼쳤어도 빈손인 카일을 상대할 수 없었던 게 방금 상황이었는데, 이젠 비터 단독으로 카일과 대련을 펼치겠다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대련은 너에게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다. 단 오러를 배제한 순수한 검술 대련을 하고 싶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오히려 더 비참하게 깨지겠지! 널 힘으로도 검술로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부탁한다. 나와 대련을 해다오.”

비터의 말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크의 얼굴이 잠시 찌푸려 졌지만 결국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제가 대신하죠!”

카일이 비터의 제안에 잠시 고민에 잠기자, 대화를 들었는지 세인이 다가와 말했다.

“실력을 높이기 위한 대련이라면 카일보다는 제가 더 좋을 거예요. 본인도 알겠지만 카일과 대련을 하기에는 실력 차가 너무 많이 나요.”

세인의 말에 비터가 고개를 저었다.

“충고는 고맙습니다. 하지만 전 실력을 높이려 대련을 부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

“좋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다.”

카일의 말에 비터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마크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비터의 팔을 잡았다.

“이번 대련… 정말 해야겠어? 이건 중요한 문제야.”

“어차피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건… 하지만….”

“걱정 마. 카일이라면… 어쩌면….”

비터가 카일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시작할까?”

카일이 당장이라도 검을 뽑으려는지 검집을 잡았다.

“이번… 대련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고 싶다.”

“어떤 대단한 검술을 선보이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다. 따라와라! 마침 적당한 곳이 있다.”

“저도 가겠어요.”

세인이 재빨리 달려와 카일의 옆에 섰다.

“저도 따라가면 안 되나요?”

“안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카일의 말에 비터가 난처한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이번… 대련은 누구도….”

“지금 가는 곳은 세인 경의 도움을 받아 수련하는 곳이다. 대련이 끝나면 계속 남아 수련을 해야 하니 세인 경은 데려가겠다.”

카일의 말에 세인이 기뻐하며 당찬 표정으로 비터를 노려보았다.

“들었죠. 어쩌실 건가요?”

“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터! 이건….”

“괜찮아! 마크.”

“하지만….”

비터가 마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좋다. 결정이 났으면 그만 가지!”

카일이 앞장서서 숲으로 들어가지 세인이 카일의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대련이라니 수상해요. 혹 실력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닙니다. 분명 소드 유저가 맞습니다. 엑스퍼트를 목전에 두긴 했지만, 여기서 갑자기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왜 갑자기 대련을 요청했을까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카일이 뒤를 따라오는 비터와 마크를 힐끔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갑자기 왜이라는 거야.”

마크가 비터를 보며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

“휴….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왜 저 녀석이야! 저 녀석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을 찾아가면 되잖아.”

“다른 사람은 찾아봤자 소용이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자가 아니라면 말이야.”

“알아! 무려 5년을 찾아 헤맸으니…. 하지만 저 녀석이라고 다를 것 같아?.”

“저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비터가 앞서 걸어가는 카일의 등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저 녀석은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녀석이야 저런 녀석의 시선으로 본다면 뭔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세상?”

“소위 천재들의 세상 말이야.”

비터의 말에 마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일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

“그 어리다는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너도 보았잖아.”

“정말 저 녀석이라면 가능할까?”

“그를 제외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 녀석처럼 검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위 천재라는 사람들이야. 이제 와 다른 사람을 찾기도 힘들지만, 그들이 우리 같은 용병을 만나주기나 할까?”

비터의 말에 마크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카일을 따라 숲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그동안 세인과 카일이 수련을 하던 작은 공터가 드러났다.

“숲 안쪽에 이런 곳이 있었군.”

비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비록 넓지는 않지만,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제법 아늑한 공간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지. 누군가 이곳에서 화전을 일군 것 같지만 이미 오랜 시간 방치되며 버려진 곳 같다.”

카일이 공터 한쪽에 놓여 있는 평평한 바위로 다가가 가져온 수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허리에서 검을 검집 채 꺼내 세인에게 내밀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리지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세인이 웃으며 말했다. 세인이 카일의 검으로 수련을 시작한 건 처음 대련을 한 이후부터였다. 마기와 섞인 오러의 흡착력을 이용해 태극검을 수련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검과 검이 붙어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도가 떨어지는 세인의 검이 마찰에 갈려 나가는 문제가 생기고 만 것이다. 때문에 이후 수련부터는 카일의 검을 들고 수련을 시작했다.

“시작해 볼까?”

카일이 준비를 끝내고 공터 안쪽에 섰다.

“그전에… 어려운 부탁을 들어줘 고맙다.”

“천만에. 그냥 무슨 이유로 이 말도 안 되는 대련을 요청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유는 대련이 끝나고 알려주겠다.”

“좋아! 일단 시작하지.”

카일이 검을 뽑았다. 은백색의 검신이 모습을 보이자 비터와 마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일의 검으로 향했다.

“역시 보통… 검이 아니군. 검의 형태도 특이하고.”

비터가 카일의 손에 들린 환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가진 검이 이것밖에는 없어서 말이야.”

비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세인이 들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하지만 형태만 다를 뿐 두 검이 서로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비터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미 흑기사와의 전투에서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급한 건 이쪽이니까.”

비터가 고개를 흔들며 허리에서 송곳 같은 검을 뽑아 들었다.

“미안하지만… 선공하겠다.”

비터의 검이 카일을 향했다.

“얼마든지!”

카일이 환도를 두 손으로 잡고 하단으로 향했다.

“특이한 동작이군.”

“계속 대화를 나눌 생각인가?”

“그렇군. 쓸데없는 질문이군. 부딪혀보면 알 것을. 차앗!”

비터가 낮게 중얼거리며 힘찬 기합과 함께 곧장 검을 찔러 왔다. 그러자 카일의 환도가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창-

검이 부딪히며 맑은 쇳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차릉-

비터는 빠르게 검을 움직이며 검술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찌르기 위주의 강력한 검술이었다. 소드 유저에 불과한 용병 비터가 익힐 수 있는 검술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다양한 검식이었다.

차르릉-

카일은 비터가 마음껏 공격할 수 있도록 방어에 집중했다. 하지만 대련이 이어질수록, 카일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그와 함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세인 역시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저, 저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세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금 벌어진 일이 꿈만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카일은 묵묵히 굳은 얼굴로 비터의 공격을 받아내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쩡-

그때, 카일의 검과 비터의 검이 강하게 부딪혔다.

그와 함께 카일의 검술이 바뀌었다. 세인도 처음 보는 검술로, 반원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검술은 빠르고 세련되었으며, 춤처럼 부드럽지만 검식 하나하나에 강력한 힘이 담겨있었다.

땅-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질적인 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단 몇 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카일의 검을 막은 비터의 검이 검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뚝 부러져 나갔다.

“더 해야 하나?”

카일이 냉정하게 비터를 노려보며 물었다.

“아… 아니다.”

“그럼 이제 이유를 들어볼까?”

부러진 자신의 검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터에게 카일이 냉정하게 말했다. 오리알 두께의, 검보다는 단단한 봉에 가까운 합금검이 여기저기 깎여 나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더 이상 무기라고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익! 굳이 검을 부러트릴 필요는 없잖아!”

마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검을 바라보고 있는 비터에게 달려와 분노한 얼굴로 카일을 노려보았다.

그사이 세인도 달려와 카일의 옆에 섰다. 그런데 둘을 바라보는 세인의 얼굴에는 살기가 짙게 어려있었다. 하지만 부러진 검에 시선을 둔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카일이 세인을 향해 고개를 저었기에 두 사람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세인의 얼굴에 머물렀던 살기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아니야, 마크.”

비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마크를 보며 말했다.

“어쩌면 카일이라면 정말 가능할지 몰라.”

비터는 부러진 검을 수습한 후 카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방금 본 검술은 우리 가문의 검술이다.”

비터의 말에 세인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뭐라 소리치려 했지만, 카일이 다시 손을 들어 세인을 막았다.

“그래서?”

“검식은 정확히 30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전반부 20식을 아무리 익히려 해도 익힐 수가 없다. 몇 명이 억지로 익혀보았지만 모두 신체가 견디지 못해 폐인이 되고 말았다.”

비터의 말에 세인이 카일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카일의 얼굴은 굳어있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문의 검술을 가문의 사람이 익힐 수 없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굳게 닫혀있던 카일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사실 이 검술은 우리 가문의 검술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 가문의 검술이 아니기도 하다.”

“말장난을 할 생각인가?”

“사실이다. 우리 가문은 제국 동부의 남작 가문이다.”

비터의 말에 세인이 눈을 크게 뜨며 경계하듯 마크와 비터를 바라보았다.

“그대들이 제국 귀족이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첩자는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저와 마크는 사람을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사람이요?”

“그렇습니다. 이 검술을 전해준 사람을 찾아 왕국으로 왔습니다.”

비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군.”

카일이 비터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 난 반드시 그자를 찾아 5년 이내에 검술을 복원해 가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벌써 5년이나 왕국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곳 남부까지 왔다. 하지만….”

비터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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