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37화 (137/404)

137.장난스런 싸움

“눈이 좋다는 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보통은 관찰력과 안력을 통틀어 눈이 좋다고 하죠.”

“관찰력과 안력?”

“관찰력은 상대를 보는 눈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상대와 나의 거리감을 보는 눈, 다음은 상대의 검술을 파악하는 눈,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의 몸짓만으로 수준을 파악하는 눈입니다.”

“상대의 몸짓만으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걸음의 보폭, 손의 움직임, 더 나아가 근육의 형태에 따른 움직임을 보고 수준을 가늠하거나 검술의 특성을 파악하는 거죠.”

카일의 말이 이어질수록 이엘은 눈이 좋다는 말이 단순히 눈만 좋다는 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안력은 뭐죠?”

“안력은 상대의 검술을 보는 겁니다. 상대의 검술을 보고 예측해 미리 피하거나 먼저 공격하는 것이죠.”

“아!”

“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시고, 오늘은 처음 수련을 시작하셨으니 5분 동안만 해 보시지요.”

“알겠어요.”

“그럼 전 잠시 가보겠습니다. 손님이 왔군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이엘이 혼원장 수련을 시작하자 카일도 어색하게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흠…. 좀 늦었군요.”

“…미안하다. 하지만 너희들이 수련을 시작하기에 쉽게 다가올 수 없었다.”

사실 비터와 마크는 카일과 마주친 이후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잔뜩 기장한 상태에서 카일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카일이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여느 때처럼 수련을 시작하자 도저히 다가갈 수 없어 주변만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자! 그럼 어느 분이 죽을지 결정을 하셨습니까?”

카일이 표정을 굳히며 검집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결정이 나는 순간 단칼에 목을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 건!”

비터가 당황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카일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마크와 비터는 카일이 두 사람을 용서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카일은 그저 죽을 사람이 결정될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이다.

“아… 직 결정하지 못했다.”

절망에 빠진 듯 비터와 마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일이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언제 결정이 날 것 같습니까?”

“…내일, 내일까지 결정하겠다.”

비터가 힘겹게 말했다.

“흠… 그렇습니까? 어떻게 결정하실 겁니까?”

“무슨… 말이냐?”

“또 주먹다짐으로 결정하실 건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카일의 물음에 결국 비터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비록 내일까지 죽을 사람을 결정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내일이 되어도 두 사람 다 결정을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차라리 같이 싸우다 죽자!”

결국 참지 못한 마크가 고개를 들어 카일을 사납게 노려보며 검을 뽑았다.

“흠…. 검을 뽑으면 진짜 죽고 싶다는 말인데?”

“염병할! 어차피 죽이려 했잖아!”

마크가 카일을 향해 달려들며 소리쳤다. 용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안정적이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호오… 제법!”

카일이 다가오는 마크의 검을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서며 피했다.

“이런, 죽을 사람이 결정 난 건가?”

카일아 히죽 웃으며 가만히 서 있는 비터를 보며 말했다.

“젠장!”

비터가 결국 검을 뽑았다. 마크가 카일의 손에 죽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럴 바에야 마크의 말대로 싸우다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오…. 이러면 누굴 죽여야 하지?”

카일이 히죽 웃으며 비터의 검을 피했다.

“죽여버리겠어!”

마크가 카일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이미 방어는 포기했는지 방어는 전혀신경 쓰지 않고 오직 공격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마크와 달리 비터는 신중하게 검을 피하는 카일을 보며 기습적으로 검을 찔러왔다. 제법 안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마크가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을 한다면 비터는 카일이 마크를 공격할 타이밍을 재빨리 파악해 기습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저돌적인 공격과 기습적인 공격을 조합한 일종의 합격술이라 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합격술인데?”

“아무리 중급 엑스퍼트라도 쉽게 우릴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비터가 카일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주변을 돌며 소리쳤다.

하지만 카일은 아직 검도 뽑지 않고 두 손만으로 마크의 저돌적인 공격을 피하거나 검면을 쳐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카일이 일방적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았다.

“비터와 마크로는 카일을 이기긴 틀렸다.”

언제 몰려들었는지 용병들과 상단 일꾼들이 멀리서 세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코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카일이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데!”

브린이 흥분한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칫! 멍청한 녀석.”

“뭐야!”

“잘 봐라! 녀석의 얼굴을, 저게 다급하게 밀려나는 얼굴이냐?”

코퍼의 옆에 선 버크가 카일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카일의 얼굴은 비터와 마크에게 연신 밀려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은은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밀려나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브린은 버크의 말에도 지지 않고 말했다. 지금 두 사람 손에 카일이 죽는다면 코퍼 용병대의 걱정거리가 완전 사라지는 것이니 정말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널 멍청이라 부르는 거야! 저 녀석 아직 검도 뽑지 않았잖아!”

“저렇게 저돌적으로 공격하면 누구라도 쉽게 검을 뽑지 못할걸”

“하지만 카일은 뽑을 수 있다.”

브린의 말에 버크가 아닌 아덱이 다가와 말했다.

“너도 기억하고 있겠지? 트롤을 단칼에 베어버린 카일의 발검술을?”

“아…!”

아덱의 말에 브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덱의 말대로 그때 그 기억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이 익힌 빠른 검술이라면 얼마든지 검을 뽑고도 남아! 저 녀석은 그냥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야.”

아덱이 심각한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크와 비터의 합격술은 오랫동안 함께해온 만큼 정교하게 잘 짜여 있어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카일은 두 사람의 공격을 검도 뽑지 않고 여유롭게 받아내고 있었다. 그만큼 카일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반증이었다.

“어!”

그때였다. 그동안 마크의 검을 막거나 피하기만 하던 카일의 동작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마크가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카일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머리를 향해 내려치려는 마크의 손을 덥썩 잡아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마크를 잡아당겼다.

“헉!“

내려치는 힘에 더해 카일이 잡아 당겨져 버리자 마크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주르륵 카일을 향해 딸려왔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비터가 급히 황급히 마크를 구하기 위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카일의 등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쉬익-

바람을 가르며 카일의 등을 향해 날아가던 검이 중간에 막혔다.

땅-

카일이 곧장 몸을 돌려 마크의 손에 들린 검을 움직여 비터의 검을 쳐냈다.

“놔, 놔라!”

카일의 손에 붙잡힌 마크가 당황한 듯 발버둥을 쳤지만, 오히려 카일은 마크를 앞세워 조종하듯 비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비터는 혹 마크가 다칠까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연신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합격술이 마크가 붙잡히며 어이없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이 비겁한 놈! 날 방패로 세우지 말고 깨끗이 죽여라!”

비터가 자신 때문에 수세에 몰리자 마크가 격렬하게 발버둥 치는 것도 모자라 카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언젠 서로 죽겠다고 난리더니 이젠 날 비난하는 거냐? 둘이서 검을 들지도 않은 사람을 공격하는 건 비겁한 게 아니란 말이냐?”

“흥! 먼저 우릴 죽이려 했던 사람은 너다! 우린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뿐이다. 애초에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수련한 네놈 잘못이다!”

마크가 지지 않고 카일을 향해 말했다.

“멍청한 놈들, 네가 언제 네놈들을 죽이겠다고 했냐! 서로 죽겠다며 싸운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아니냐!”

카일의 말에 비난을 이어가려던 마크가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앞에서 마크를 구하려 기회를 엿보는 비터마저 당황해 주춤 물러나 버렸다.

그러자 카일이 붙잡고 있던 마크를 비터에게 밀어버렸다. 미처 대비도 하지 못한 두 사람이 서로 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난 너희를 죽이겠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다짜고짜 서로 죽겠다 싸움을 벌인 건 너희들이었다. 그리고 검을 뽑아 날 죽이려 하더니 이젠 비난까지 하는 거냐?”

카일이 화가 난 듯 말하자 바닥을 뒹굴던 비터와 마크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결국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돌이켜보면 카일은 두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제 발이 저린 두 사람이 서로 죽겠고 나서며 일어난 일이었다.

“그럼… 조금 전 누가 죽을지 물은 것도….”

“숲에서 서로 죽겠다고 주먹다짐까지 했으니 누가 죽을지 궁금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카일의 얼굴이 짓궂은 미소가 어렸다. 결국 두 사람을 상대로 장난을 쳤다는 말이었다.

“그… 럼 숲에서 왜 우릴 공격한 거냐!”

마크가 아직도 경계의 빛을 지우지 않고 물었다.

“혼원장이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리 간단한 수련법인 줄 알았나? 그렇게 막무가내로 수련하면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걸려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몸만 망칠 뿐이다. 그러니 하려면 제대로 하란 말이다.”

“제… 대로…?”

비터가 당황한 듯 물었다.

“그래.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 멍청한 짓 하지 말라고 부른 거다.”

카일이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정식으로 수련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냐?”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다신 그런 멍청한 수련은 하지 마라.”

카일이 두 사람을 뒤로하고 몸을 돌려 아직도 수련 중인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카일이 두 사람과 대결을 펼치고 있는걸 알았지만 시안느나 세인은 여전히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의외로 이엘 역시 5분이 넘었지만 잘 버티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카일의 말에 세 여인이 자세를 바로 하고는 카일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얼굴 가득 땀방울이 맺혀있는 이엘이 지친 와중에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장 먼저 달려와 물었다.

“재밌는 일이죠.”

카일이 웃으며 답했다.

“피! 하나도 재미없어요.”

이엘이 토라진 듯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엔 궁금증이 가득했다. 세 사람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거리가 있어 정확한 말소리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하! 아무래도 오늘부터 수련에 참여할 사람이 두 사람 정도 늘 것 같습니다.”

“수련요? 저 두 사람 말인가요?”

시안느가 카일의 옆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멀리서 안절부절못하며 카일을 바라보고 있는 마크와 비터 때문이었다.

“그렇겠죠.”

“혼원장을 가르쳐 줄 건가요?”

세인이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

“그럴 생각입니다. 숲에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엉망이더군요. 그런 식으로 오래 수련하면 몸을 망칠 겁니다. 못 봤다면 모르지만, 제가 안 이상 가만히 두고 보기는 어렵더군요.”

카일의 말에 시안느와 세인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혼원장을 수련하면서 두 사람은 이제 이 수련법의 효과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몸 깊은 곳에서 시작된 오러의 떨림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대단한 수련법을 이렇게 쉽게 공개하려는 카일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하하! 그냥 재미있잖아요.”

카일이 두 사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웃으며 말했다. 그사이 비터와 마크가 더는 참지 못하고 카일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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