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34화 (134/404)

134.훔쳐 배운 수련법

이른 아침 카일이 천막 밖으로 나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원래 마차는 멀린이 마법을 각인시키기 위해 상단에서 내어준 것이라, 카일로서도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암흑마법사를 처치하는 과정에서 이미 각인을 마친 검까지 모두 사용해버렸기에 멀린은 새로운 각인을 새기느라 얼굴도 마주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

멀린이 머무는 마차의 틈새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을 보며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숲으로 향했다.

“헉헉! 못 해! 아니, 안 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일어나지 못해!”

“안 해! 못 한단 말이야! 그리고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너도 확신이 없잖아!”

숲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앞쪽에서 두 사람의 투닥거림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냥 돌아가려 했지만 이어지는 목소리가 카일의 발목을 잡았다.

“넌 카일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난 아직도 흑기사와 싸울 때 봤었던 선명한 청백색의 오러 소드를 잊을 수 없어.”

“하지만… 이 수련 때문인진 알 수 없잖아.”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마크가 바닥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 수련 때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 녀석이 매일 빠지지 않고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하지만 벌써 두 시간이나 이러고 있었잖아! 그저 힘만 들뿐 오러 수련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잖아.”

“그 녀석 말 못 들었어? 10년을 수련해야 한다잖아, 이제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이야. 지금 뭔가를 얻기는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비터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하지만 10년이야! 10년이나 꾸준히 수련해야 한단 말이야! 그러기엔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해.”

“녀석이 수련하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30분에 지나지 않아! 30분씩 10년을 수련해야 한다면 난 1시간, 아니, 매일 두 시간을 수련해서 그 절반의 절반으로 시간을 단축하겠어!”

비터의 단호한 외침에 마크는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비터의 옆으로 다가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자세를 잡으며 투덜거렸다.

“알았어! 알았다고. 하면 될 거 아니야. 아무튼 독종이란 말이야!”

“고맙다.”

“피! 나중에 잊지나 말라고.”

마크가 피식 웃으며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이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엉망진창이군.”

카일은 두 사람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터와 마크는 지금 어설프게 혼원장 흉내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자세부터 호흡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저렇게 수련을 해서는 10년이 아니라 100년을 수련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혼원장은 단 몇 분을 수련하더라도 정확한 자세에서 호흡을 해야만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오러를 깨울 수 있었다. 저렇게 억지로 수련시간만 많이 채운다고 수련의 성과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에서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버티다 보면 골격이 틀어져 몸을 망칠 뿐이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카일은 두 사람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카일 스스로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손해 보길 싫어할 뿐만 아니라 욕심도 많았다. 더구나 두 사람은 자신과 좋은 관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악연으로 얽혀 있었다.

“훔쳐 배웠잖아. 문제가 생겨도 날 원망을 하지는 못하겠지.”

카일이 스스로를 납득시키듯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른 아침부터 카일이 숲으로 들어온 건 스튜에 넣을 허브를 찾기 위해서였다.

요 며칠 상단에서 만든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채우고는 있지만, 시안느와 이엘의 투덜거림이나 대련을 도와주는 세인의 은근한 압박에 결국 카일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카일 스스로도 더는 참고 먹을 수 없어 오늘부터 직접 음식을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이익!”

돌아서 걸어가던 카일이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는 다시 몇 발자국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결국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는 없었다.

“괜히 신경 쓰이게….”

카일이 짜증스럽게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걸어 비터와 마크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도 수련에 집중하느라 카일이 바로 뒤까지 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퍽-

툭-

카일의 발이 슬쩍 비터의 발목을 차고, 동시에 마크를 등 뒤에서 가볍게 밀었다.

“허억-.”

“뭐야!”

-우당탕탕-

두 사람은 카일의 가벼운 동작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바닥을 꼴 사납게 뒹굴고 말았다.

“아이고!”

“크윽….”

이미 잔뜩 지친 상태에서 바닥을 뒹군 두 사람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눈앞에 카일이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자 깜짝 놀라 주춤 물러났다.

“누구….”

“헉!”

남의 수련법을 훔쳐 배우다가 딱 걸린 상황이니 두 사람을 죽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공개적인 장소에서 수련을 했으니 누구나 훔쳐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도 당사자가 없을 때의 일이다. 정확히 당사자가 보는 앞에서 훔친 수련법으로 수련을 하고 있었으니 카일이 문제로 삼는다면 중급 엑스퍼트인 카일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다.

“설마… 뽑으려는 건 아니겠죠.”

잔뜩 긴장한 얼굴로 검을 반쯤 뽑은 마크의 얼굴을 보며 카일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헉…! 아니… 나도 모르게….”

마크가 깜짝 놀라 더듬거리며 서둘러 검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잔뜩 굳은 얼굴로 바라보던 비터가 카일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마크는 잘못이 없다. 내가 강요하는 바람에 수련을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책임지겠다.”

“비터… 하지만….”

“넌 돌아가…! 그리고 미안하다고… 전해줘.”

비터가 비장한 얼굴로 마크를 보며 외쳤다. 그리고는 카일을 돌아보며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난 준비 됐다.”

“안돼, 비터! 돌아가야 할 사람은 너야! 그러니 책임은 내가 지겠다.”

마크가 달려와 비터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카일을 돌아보며 외쳤다.

“책임은 내가 진다. 날 죽여라.”

“아니다! 날 죽여라! 싫다는 마크를 억지로 수련시킨 건 나다.”

“아니! 내가 죽겠다.”

“안 돼! 넌 돌아가야 해!”

서로 앞을 막아서며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은 이젠 카일이 앞에 있는 것도 잊었는지 서로 뒤엉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 내가 이 바보들 때문에 여기까지 다시 온 거야?”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그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죽겠다며 이젠 주먹질까지 벌이고 있었다.

카일이 두 사람을 뒤로하고 일행에게로 돌아왔을 때는 간이 천막은 이미 해체되어 있었고 죽어있던 모닥불도 다시 살려 놓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세인이 숲에서 빠져나오는 카일을 보며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요즘 들어 카일과 단둘만의 대련이 이어지며 세인은 좀 더 편하게 카일을 대할 수 있었다.

“숲에서 야생허브를 조금 찾아 가져왔죠.”

카일이 모닥불로 다가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주변에 흩어진 돌로 솥이 놓일 자리를 만들었다. 그 사이 이엘과 시인느가 깨끗이 씻은 무쇠솥과 물이 가득 든 물통을 들고 돌아왔다.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카일의 눈이 시안느의 손에 들려있는 솥으로 향했다. 카일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작은

무쇠솥이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는 없어요.”

시안느가 창피한 듯 붉게 물든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기사가 되기 위해 평생 말을 타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여인들이 일상적으로 배우는 바느질이나 요리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는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그녀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다. 동부의 맹주인 그린넨 백작가의 기사로 영애의 호위무사였다.

그런 그녀가 평범한 여인들이나 배우는 바느질이나 음식을 배운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시간에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거구의 사내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높은 경지에 올랐을 뿐 아니라 고급스러운 음식만 먹어온 이엘까지 놀랄 정도로 뛰어난 음식 솜씨까지 가지고 있었다. 항상 못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런 작고 사소한 것들을 카일은 너무도 당연하게 하고 있어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닙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도 훨씬 단축되고 말입니다.”

“그, 그런가요.”

시안느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준비는 끝났으니 곧 맛있는 스튜를 끓여 드리겠습니다.”

카일이 웃으며 영지에서 사 온 재료를 솥에 넣고 볶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이엘이 시안느를 보며 작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오늘부터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벌써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시안느도 서서히 풍겨오는 고소하고 달큰한 향기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 카일이 솥에 물을 붓고 곡물가루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시안느를 바라보았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제… 가요?”

시안느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작은 주걱을 내밀었다.

“그냥 제가 돌아올 동안 타지 않게 저어주고 계시면 됩니다.”

“그… 래도 전 이런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걸요.”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입니다. 처음이라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영영 할 수가 없죠.”

카일이 시안느의 손에 직접 주걱을 쥐여주었다.

“솥 바닥까지 깊숙이 주걱을 넣은 후 저어주시면 됩니다. 바닥을 저어주지 않고 윗부분만 저으면 바닥이 타버리니 조심하시고요.”

“알겠… 어요.”

시안느가 천천히 스튜를 저으며 반드시 타지 않게 젓겠다는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카일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단 일꾼에게로 향했다. 카일이 비록 스튜를 만들었다고 해도 스튜만으로 아침을 해결하기는 부족해 보리빵을 얻기 위해서였다.

“헉헉…. 너!”

“으헉!”

카일이 막 보리빵을 들고 몸을 돌렸을 때 깜짝 놀라 급히 뒤로 물러서야 했다.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두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바닥을 굴렀는지 입고 있는 옷은 흙과 낙엽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얼굴 역시 시퍼렇게 멍이 올라와 있었다.

“저한테 할 말이 있습니까?”

“너… 그러니까…!”

카일이 두 사람을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잔뜩 화가 난 마크가 막 소리를 지르며 따지려다가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막상 카일에게 따지려 해도 따질 거리가 없었다. 정작 카일은 가만히 있는데 서로 죽겠다고 싸움을 벌인 건 자신들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죽이지 않고 살려줘 고맙다고 감사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할 말이 없으면 가보죠. 일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카일이 냉정하게 돌아서 걸어가자 마크가 분통이 터지는지 가슴을 두들겼지만 그렇다고 분노를 배출할 수는 없었다. 그저 속으로 화를 삭일 뿐이었다.

“아!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에 찾아오십시오. 할 말이 있으니.”

카일의 말에 굳게 닫혀있던 비터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유… 가 뭐냐!”

비터의 물음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찾아오라는 말에 대한 물음과 동시에 자신들을 살려주고 돌아간 이유에 대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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