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32화 (132/404)

132.오러의 변화2

-꽈아앙-

새벽녘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폭음은 공작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려 십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폭발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무기고나 식량창고, 영주성이나 치안대에 이르기까지 영지의 핵심기반 시설에서부터 작은 찻집이나 음식점, 대장간과 하다못해 빈민가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새벽의 붉은 태양 속에서 붉은 와이번을 선두로 20여 마리의 골드 와이번이 나타난 것이다.

-꽝-

와이번에서 날아든 스피어가 지상으로 떨어지며 폭음과 함께 불길이 수없이 일어났다. 불의 마탑이 자랑하는 화염의 스피어였다.

수십 발에 이르는 화염의 스피어가 떨어질수록 공작령은 엄청난 불길과 함께 불바다로 변해 갔다.

-쉬익-

그때였다. 푸른 기운에 휩싸인 스피어 한 자루가 지상에서부터 빛살같이 레드 와이번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레드 와이번이 몸을 가볍게 비틀어 피했다.

하지만 뒤에 있던 골드 와이번 한 마리가 미처 피하지 못했고, 스피어는 와이번과 기수를 동시에 관통해 버렸다.

-퍽-

“캬아악!”

목을 관통당한 와이번은 비명과 함께 뱅글뱅글 돌며 붉은 목조건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우르르

와이번이 떨어진 건물은 곧 무게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역시 등장했군.”

‘조심해라! 여기까지 강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걱정 마라! 무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선물을 받았다면 보답을 해야겠지.”

사내가 높은 첨탑 위에 서 있는 중년의 남성을 보며 말했다. 그가 바로 이 넓고 아름다웠던 공작령의 주인인 트라발트 공작이었다.

사내는 안장에서 스피어 한 자루를 자연스럽게 뽑아 던졌다.

사내가 던진 스피어는 곧장 붉은 기운에 휩싸이다 불벼락으로 변해 공작에게로 곧장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하늘 위를 올려다보며 눈썹을 치켜세운 공작이 언제 뽑았는지 모를 황금빛 검을 휘둘렀다.

-꽈앙!

황금빛 검에서 발출된 기운이 둥글게 뭉쳐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불벼락과 부딪히며 화려한 불꽃을 피워올렸다.

“역시 소드 마스터란 말인가?”

사내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귀에서 작은 소리가 울려왔다.

“대주! 공작성에서 본격적으로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흠…. 역시 공작성이란 말인가?”

영주성이 온통 불바다로 변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상당히 빠르게 대처하고 있었다.

사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적어도 수백의 기사들이 몰려나와 하늘을 향해 스피어를 던지고 있었다. 모두 바람의 마탑에서 생산한 윈드 스피어로 순간적으로 스피어의 후미에 강한 바람을 일으켜 속도와 사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윈드 스피어라도 하늘 위에 떠 있는 와이번을 맞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수십에서 수백 명이 조를 이뤄 대공망을 형성해 공격하고 있었다.

비록 바람의 마탑에서 생산되는 윈드 스피어의 가격이 일반적인 마법 스피어보다 낮다고 해도 수백 명의 기사들이 무차별적으로 던질 만큼 가벼운 가격은 아니었다.

그만큼 트라발트 공작령의 재력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쯧, 이미 알고 있던 대부분의 대공망을 파괴했는데도 아직 이 정도의 스피어가 남아있다는 말인가?”

“내성은 경계가 워낙 삼엄해 잠입해 있던 여우들이 극히 미미합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여우들은 최소한의 정보수집을 위해 이번 작전에는 참여시키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지. 일단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니 철수한다.”

사내는 첨탑 위에서 자신을 쏘아보는 트라발트 공작을 바라보다 천천히 기수를 돌렸다. 어차피 이번 트라발트 공작령에 대한 공격은 그저 왕국을 흔들려는 사내의 첫 단추에 불과했다.

* * *

이른 아침 북동쪽에서 시작된 싸늘한 바람이 테라스로 불어오자 황금빛 머리칼이 세찬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날렸다.

“아가씨! 날이 춥습니다. 이거라도 입으세요.”

언제 다가왔는지 갈색 코트형 레더 아머에 황금빛 방어구를 착용한 중년의 여인이 순백의 털코트를 여인의 어깨에 걸쳤다.

“벌써 20년이 넘었군요. 여기에 머문 지도…. 그를 떠나보낸 게 며칠 전인 것 같이 생생한데 말이에요.”

“아가씨….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 겁니까?”

“휴…. 처음에는 저도 그를 잊으려 노력했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를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그가 그리워지는걸요.”

“아가씨….”

중년의 여기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잘 지내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도 약속을 지키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날 잊었겠죠. 너무 오래전 일이니….”

“그럴 리가…. 그도 삼인의 맹세를 아직도 변치 않고 지키고 있어요. 그러니 절대 아가씨를 잊지 않았을 거예요.”

여기사의 단호한 말에 여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가 기억하는 나는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겠죠. 그와 함께했던 고난과 기쁨 그리고 행복까지 말이에요. 하지만 이젠 저도 너무 나이를 먹었어요.”

여인의 말에 여기사가 다가와 부드럽게 손을 잡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아가씨는 여전히 아름다운 우리들의 주인이십니다. 이런 모습은 주인다운 모습이 아니에요.”

“그런가요.”

여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슬픈 이야기를 그리하십니까?”

언제 왔는지 검은 정복을 입은 노년의 사내가 다가와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시종장님!”

여기사가 시종장에게 달려가 반갑게 맞았다.

“날씨가 싸늘한 것 같아 차를 가져왔습니다.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역시 시종장님이세요. 아가씨 어서 드세요.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여기사가 차를 따라 여인에게 내밀었다. 그사이 시중장이라 불린 노인이 여기사의 옆에 섰다.

“잘 있었느냐!”

“이곳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쯧, 아무리 외진 곳이라 해도 방심해선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시종장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사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시종장의 팔에 매달렸다.

“칫, 제가 주인을 위험에 빠트릴 사람으로 보이세요.”

“방심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황량한 곳에 무슨 일이 있겠어요. 올 사람도 없잖아요.”

“아무리 올 사람이 없다고 방심하면 트라발트 공작령처럼 만신창이가 되고 말 거다.”

“트라… 발트 공작령이 공격당했단 말인가요?”

“아주 잿더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종장의 말에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이 고개를 돌려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시종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무심한 눈빛에 기이한 빛이 어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종장의 얼굴에도 온화한 미소가 어렸다.

“이 소식은 아무래도 아가씨께 서둘러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제가 직접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시종장님, 설마!”

여기사의 얼굴에 어떤 기대감이 어렸다.

“이곳에 오기 전 전서구 한 장을 받았습니다.”

“전서구라면…!”

“트라발트 공작께서 20년 만에 영지를 벗어나셨습니다.”

시종장의 전언에 테라스에 앉아 있던 여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가씨!”

여기사 역시 놀랐는지 크게 뜬 두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잠시 격동되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종장을 보며 말했다.

“손님이 오시겠군요. 준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거인이 움직였으니 그에 맞는 대접을 해야겠지요.”

시종장의 얼굴에 잠시 붉은 기운이 은은히 맺혔다 사라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뒤 천천히 문밖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여인이 물러나는 시종장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이제 곧 그를 만나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전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아가씨.”

시종장이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고 물러났다.

* * *

“부탁이 있습니다.”

카일이 마차에서 벗어난 것은 깨어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다행히 몸에는 큰 이상이 없어 깨어나고 얼마 안 있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오러를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여 마차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세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부탁이라니요. 그냥 말씀하셔도 돼요.”

카일의 부탁이란 말에 세인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대… 련이요?”

“아무래도 변화된 오러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대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야 어렵지 않아요.”

“다른 분들은 알지 못했으면 합니다.”

“비… 밀인가요?”

“그렇습니다. 비밀입니다. 지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카일이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이에요. 반드시 지킬게요.”

세인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로서는 카일과 단둘만의 비밀이 생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그만큼 세인에 대한 그의 믿음이 크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었다.

“마침 숲 안쪽에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대련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가시겠습니까?”

“네. 좋아요.”

“가시죠.”

카일은 세인의 대답에 만족한 듯 몸을 돌려 천천히 숲속으로 들어갔다. 카일이 도착한 곳은 상단과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공터였다.

“그냥 최선을 다해 공격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최선을 다하겠어요.”

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카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세인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크와 전투를 치르며 쌓인 투기가 자연스럽게 몸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물론 오러처럼 유형의 기운은 아니지만 그만큼 그녀의 집중력과 예기가 날카롭게 다듬어졌다는 것이다.

‘역시 수십 수백 번의 수련보다 한 번의 실전이 더 효과적이군!’

카일이 그녀의 달라진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십시오.”

“네.”

짧은 대답을 한 세인의 검이 빠르게 다가왔다. 단순한 찌르기에 불과했지만, 며칠 전 세인이 펼쳤던 찌르기와 지금의 찌르기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실전을 치르며 검에 담긴 마음가짐이 바뀐 것이다.

“훌륭합니다.”

카일이 미소를 지으며 느릿느릿 부드럽게 검을 회전시켜 뒤로 물러나며 다가오는 세인의 검면을 밀어냈다.

세인이 재빨리 검을 빼내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카일의 검과 부드럽게 얽힌 세인의 검은 마치 기름 속에 빠져 검을 휘젓듯 묵직하고 끈적했다.

-스르릉 스르릉

세인이 검을 빼내려 하자 카일이 부드럽게 검을 회전하듯 당기고 밀어냈다. 공터 안은 두 사람이 일으키는 검신의 마찰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다.

“헉헉…. 이게 무슨 검법이죠. 검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기름 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어요.”

세인이 비틀거리며 물었다. 마치 카일에게 조종을 당하듯 움직이다 보니 세인의 체력은 금세 바닥이 나고 말았다. 카일이 작은 원을 그리듯 검을 회전시키며 몸을 움직였다면 세인은 카일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움직이다 보니 카일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지칠 수밖에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고 버틴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을 받을 만했다.

“검술이라기보다는… 오러의 특성이 바뀌며 생긴 현상입니다.”

“그럼 그 끈적한 기운이 오러 때문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카일은 손에 들린 검을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 천천히 오러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