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31화 (131/404)

131.오러의 변화1

“아아,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요.”

“오… 해라니요. 분명 오러에 문제가 생겼다고….”

“아아, 오러에 문제가 있다고 했을 뿐 카일 님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혀 걱정하실 일이 아니죠.”

멀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카일의 몸 안에는 흑기사와 대결을 벌이며 침투했던 암흑 마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인 오러라면 암흑 마기가 침투하는 순간 몸 안에 있던 오러가 적극적으로 암흑 마기를 밀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일의 오러는 특이하게도 암흑마기가 몸 안으로 침투하는 순간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암흑마기를 밀어내기는커녕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마기까지 적극적으로 붙잡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을 일반적인 마법사가 봤다면 크게 놀라 호들갑을 떨었을 만큼 특이한 이상 현상이지만, 멀린은 달랐다. 그 스스로가 어둠의 마나를 다루는 회색 마법사인 만큼 카일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을 전혀 거부감 없이 자세히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저 스스로 암흑마기를 받아들여 변화한 오러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럼… 카일 님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가요?”

세인이 마치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모으고 멀린을 보며 물었다.

“지금 카일 님은 그저 스스로 조금 더 특별해 지고 있을 뿐입니다. 안심하십시오.”

멀린의 말에 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 님에게 문제가 없다면 전 괜찮아요.”

“지금 당장은 걱정이 되겠지만, 카일 님은 이렇게 잠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 이제 밖으로 나가 치료도 하시고 식사도 하십시오.”

“그래요. 여긴 멀린 님께서 계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 세인 경은 저와 같이가요.”

시안느가 세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세인이 고개를 흔들며 거부하려 했지만 시안느가 더욱 강하게 팔을 잡았다.

“이런 모습을 카일이 깨어나 본다면 분명 세인 경을 싫어 할거예요.”

시안느의 말에 세인이 당황스럽게 변했다.

“무… 슨 말이에요?”

“지금 세인 경을 보세요. 상처 치료는 접어두더라도, 전투를 벌인 이후 씻지도 않고 있었잖아요.”

“아…!”

전투 이후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하루 종일 마차 안에만 있었다는 생각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느껴지지 않았던 악취가 세인의 후각을 자극했다. 이 악취가 바로 자신 때문이란 생각에 그만 얼굴도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는 없었다.

“다행히 이곳에 적당한 샘이 있어 물을 받아 놓았어요. 그러니 같이 가요.”

“아… 알겠어요.”

시안느의 말에 세인이 못 이기는 척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깨어난 카일에게 이런 몰골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카일이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세인과 시안느가 마차를 벗어나고 얼마 안 있어 카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서서히 눈을 떴다.

“……여긴?”

“마차 안입니다. 물부터 한잔하시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목이 마를 겁니다.”

카일이 정신을 차리자 마차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멀린이 급히 다가와 맑은 물을 건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기억 안나십니까?”

멀린의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카일이 애써 기억을 떠올렸다.

“…회색빛의 구체가!”

카일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바로 언덕 위에서 떠오른 회색빛 구체, 정확히는 마법진이었다.

“멀린 님이었습니까?”

카일이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짓고 있는 멀린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멀린이 다가와 목에 걸고 있던 커다란 수정 목걸이를 내밀었다.

“일단 목걸이는 주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시카니스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잘 달래 주십시오.”

“…그런.”

카일이 당황한 표정으로 얼떨결에 목걸이를 받아들었다. 그동안 시카니스의 아공간석은 멀린이 마법 연구를 위해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상단과 함께 이동해야 하기에 멀린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카일이 아공간 석을 멀린에게 내어준 가장 큰 이유는, 멀린이 하려는 연구에 카일도 큰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공간에 대한 연구가 끝난겁니까?”

“그런건 아닙니다. 아직 아공간에 대한 연구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만 이번 일 때문인지 시카니스가 제 질문에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멀린이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달래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언덕 위에서 본 회색빛의 구체, 제 생각에는 멀린 님의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하하, 역시 카일 님도 바로 알아보셨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암흑마법사와 대결하며 만들어낸 강력한 봉인 마법진이었습니다.”

“봉인… 마법진?”

“네! 상대를 가두는 가장 강력한 마법진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탑 마법진을 연구하다 만들어낸 마법진이죠. 제가 알고 있는 마법진 중에 가장 강력한 마법 중 하나입니다.”

어깨를 늘어트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멀린의 표정이 한순간 밝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럼 그 암흑마법사는 어떻게 된 겁니까?”

“흑기사가 나타나 봉인진을 파괴하고 데려가 버렸습니다. 만들어낸 저도 해체하기 힘든 마법진을 힘으로 부숴버리다니….”

멀린이 그때를 떠올리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검이 조금 더 튼튼했다면 어쩌면 흑기사도 그렇게 쉽게 마법진을 파괴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휴…. 그래도 멀린 님 덕분에 목숨을 구했군요.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감사 인사는 저보다 시카니스에게 해야 할 겁니다. 가장 먼저 암흑마법사와 흑기사의 존재를 발견한 건 바로 시카니스니까요.”

멀린은 시카니스 덕분에 변종 오크들이 숲에서 빠져나오기 전부터 오크는 물론 흑기사와 암흑마법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서둘러 검에 각인을 세기고 언덕 위로 향할 수 있었다.

“이래저래 시카니스에게 도움을 받는군요.”

카일이 길게 한숨을 쉬며 손에 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시카니스에 대한 감사는 잠시 미뤄두시고, 먼저 오러를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좀 이상한 점이 없습니까?”

멀린의 말에 카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오러 말입니까?”

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오러는 카일에게 마치 신체의 일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오러에 이상이 생겼다면 카일이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세계의 용병이나 기사에게는 오러에 대한 수련이 전무했다. 오죽하면 전투가 없을 때는 몸 안에 잠들어 있는 오러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하게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카일은 달랐다. 끊임없이 오러의 움직임을 통제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오러의 작은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흑기사와의 충돌 여파로 온몸의 감각이 둔화되면서 다소 늦게 오러의 이상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

카일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지금까지 그가 익히고 수련한 오러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오러가 부드럽고 순했다면, 지금의 오러는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강하면서도 유했다. 무엇보다 그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오러가 마치 끈적한 기름처럼 흡착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암흑마기의 영향입니다. 보통의 오러는 마기를 적극적으로 배척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카일 님의 오러는 특이하게도 마기를 삼켜 스스로 오러의 특성을 변화시켰습니다.”

“마기를 삼켰단 말인가요. 제가…?”

“그렇습니다. 삼켰습니다. 몸 안에 들어온 마기를 삼켜 양분으로 삼고 스스로 변화했으니까요.”

카일을 바라보는 멀린의 눈빛이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음산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칼을 들어 카일의 몸을 해부해보고 싶은 듯 카일의 전신을 쓸어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빛으로 절 보시는 겁니까?”

카일이 멀린을 피해 주춤 물러났다.

“하하. 제 눈빛이 이상합니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멀린이 카일에게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으으…. 마치 절 당장이라도 해부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 얼굴에 표가 납니까?”

멀린이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며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

“헉…. 그럼 정말… 절… 해부하시려고.”

“안 그래도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늦게 깨어나셨어도….아니 세인 경이 조금만 일찍 자리를 피해 줬으면 어떻게 해보는 건데 말입니다. 하하”

멀린의 진담 같은 농담에 카일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며 조금씩 멀린과 멀어지려 뒤로 물러났지만, 마차 안이 아무리 넓어도 카일이 도망갈 곳은 없었다.

“하하. 장난입니다. 장난, 설마 제가 카일 님을 해부해보겠습니까?”

“그… 그렇죠. 저도… 장난이었습니다.”

두 손을 흔들며 크게 웃는 멀린의 모습에 카일이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말했다.

* * *

터벅터벅-

중년의 사내가 쩔뚝거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붉게 칠해진 문 앞이었다.

“이곳도 오늘이 마지막인가?”

중년의 사내가 잠시 회한에 젖은 눈으로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백인장님 아니십니까?”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와 함께 번뜩이는 할버드를 든 병사가 다가왔다.

“어허, 오늘 8조가 번을 서는 날인가?”

“그게… 원래는 6조가 번을 서는 날입니다. 다만 오늘 6조장의 부인이 출산하는 날이라 순서를 바꿨습니다.”

8조 조장 벤이 조심스럽게 백인장 노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노프는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을 제일 싫어했다.

“그런가? 아무래도 6조장이 자식 복을 타고났나 보군.”

노프가 8조장 벤을 향해 잠시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일이면 나도 은퇴를 하니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겠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내일이군요.”

“허허, 그래, 벌써 내일이지.”

씁쓸한 표정을 지은 노프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럴 것 없네! 자넨 이곳 경계에나 집중하게.”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저도 마침 교대 병사들을 인솔하고 있었습니다.”

“쯧, 그럼 서둘러 병사들이나 교대시키게,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있나?”

노프의 눈썹이 찡그려지며 목소리가 올라갔다.

“아…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백인장님.”

“다시 올 것 없네, 주변만 둘러보고 갈 테니.”

노프는 쩔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벤도 서둘러 병사들에게 달려갔다.

“노프 백인장님께서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내일이 은퇴하시는 날이라 한번 둘러보러 오셨단다.”

“아! 내일이 은퇴하시는 날이었습니까?”

벤이 병사를 인솔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 노프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딱딱하고 쌀쌀맞았던 사람이 오늘은 어쩐지 달라 보였다.

“노프 백인장님이 다친 다리 말입니다. 어쩌다 다치신 겁니까?”

“궁금하냐?”

“그럼요. 자유민 신분이시긴 하지만, 다친 다리로 백인장까지 오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병사가 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사지가 멀쩡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병사가 된 이후라도 다치거나 부상을 당하면 그때부터 병사로서 생명은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노프는 온전하지 못한 다리로 무려 백인장에 올랐다가 이제 은퇴까지 하게 된 것이니 궁금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야 일반적인 사정이고, 노프 백인장은 완전히 다르다. 백인장님의 다리는 소공자님의 생명과 바꾼 거니까.”

“소, 소공자님 말입니까?”

“그래! 그게 아마도 대략 30년은 넘은 것 같은데…. 그때는 아마도 소공자님의 키가 요만했을 거다.”

벤이 손으로 자신의 허리 어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당시 소공자께서는 한참 승마를 배우고 있었다. 헌데 어느 날 갑자기 말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지.”

어린 공자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순하고 나이 많은 암말을 골라 승마를 연습시키고 있던 와중에 생긴 일이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나다 보니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지 옆에 있던 호위 기사들까지 말이야.”

“아! 그럼 노프 백인장님께서 소공자를 구한 겁니까?”

“그래! 날뛰는 말에게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소공자를 구했지, 하지만 노프 백인장은 쓰러지는 말에 깔리는 바람에 다리를 잃고 말았다.”

“아!”

벤의 말에 병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아무리 용기가 있다고 해도 날뛰는 말에게 다가가 사람을 구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주님께서 그 보답을 하신 거군요.”

“그렇다고….”

꽈-앙

순간 귀를 먹게 할 정도의 엄청난 폭음과 함께 커다란 붉은 대문이 폭발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며 비산했다.

꽝-

또다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불길이 치솟았다.

“이… 게 무슨….”

첫 폭발에 깜짝 놀라 바닥을 뒹굴었던 벤이 황급히 일어나 폭압으로 날아가 버린 문 안쪽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얼마나 엄청난 폭발이었는지 건물 자체가 날아가 버리고 남은 건물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조… 장님.”

“어떻게 이런 일이!”

꽝-

그때 또 다른 폭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하지만 분명 이곳에서 일어나는 폭음이 아니었다.

“공… 격!?”

벤이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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