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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30화 (130/404)

130.고블린의 복수

“약속대로 난 이대로 돌아가겠다. 하지만 노인이 가지고 있던 물건은 내가 가져가겠다.”

“물론입니다. 승자의 권리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칼빈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물러났다. 보일은 노인이 가지고 있던 최상급 마력검과 그의 팔에 채워져 있는 푸른 보석이 박힌 황금색 팔찌를 빼냈다. 노인이 가진 물건이라고는 그다지 많지 않아 블링크가 걸린 아티팩트라면 이 팔찌밖에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만 돌아가 보겠다. 다시는 보지 않기를 바라지.”

“저 역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그런가?”

보일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왠지 불안해 보였던 칼빈이 급히 주변을 살폈지만, 숲속은 더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일단 상처부터!”

칼빈은 보일의 모습이 사라지자 급히 바닥에 주저앉아 품 안에서 꺼낸 포션을 마셨다. 일반적인 포션보다 질이 좋아 상처에서는 금세 피거품이 일며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물론 피를 멈추게 하는 응급처치일 뿐이었다. 아직 내부 상처는 거의 아물지 않았다. 이 상태로는 오래 버티기 힘든 만큼 급히 돌아가 장시간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흥! 지금은 물러나지만, 반드시 돌아와 내 것을 찾아가겠다.”

칼빈이 이미 떠나간 보일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비록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어놓았지만 레드 와이번을 잃었다는 생각에 절로 심장이 아려 왔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보일을 상대할 수 없었다. 결국 칼빈으로서는 다음을 기약할 방법밖에는 없었다.

칼빈이 분루를 삼키며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렸을 뿐 아니라 밤새 오크와의 전투로 칼빈은 극도로 지쳐 있었다. 서둘러 숲을 빠져나가 쉴 곳을 찾아야만 했다.

“젠장…. 이 정도면 적어도 한두 달은 충분히 쉬어야겠군.”

투덜거리던 칼빈이 한참을 걸어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이미 해가 높이 올랐는지, 나무 사이로 스며든 밝은 빛으로 숲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고 거대한 나무 사이로 자라는 작은 잡목과 풀숲, 그리고 고요함, 특이할 것 하나 없는 이른 아침 숲속의 전경이었다.

그러나 칼빈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숨… 이 막힐 정도로… 고요하군.”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난 새들은 여기저기 지저귀며 이른 사냥을 다니고 풀벌레들이 요란하게 울어야 정상인 숲속의 아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쥐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무엇인가에 놀라 숨을 죽이듯 모든 동물이 모습을 감춘 듯했다.

“무… 언가 있다.”

칼빈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암살자인 그의 눈으로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낼 수 없었다.

“키이익.”

순간 수풀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툭 튀어나온 두 눈과 허리까지도 오지 않는 작은 체구, 그리고 체구보다 큰 못생긴 머리, 녹빛의 피부까지 칼빈도 익히 알고 있는 숲속의 청소부.

“고블린?”

칼빈이 맥이 풀린 듯 눈앞에 나타난 고블린을 멍하니 바라보다 화가 난 듯 발로 힘껏 차버렸다.

고작 고블린에게 겁을 먹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화가 난 것이다.

“키엑!”

칼빈에게 걷어차인 고블린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다 대자로 쓰러졌다. 칼빈은 마침 화풀이 대상이라도 찾은 듯 성큼성큼 다가 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미 고블린은 목숨을 잃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입에서는 검녹빛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고블린은 몬스터 중 가장 약한 놈이라 일반 성인 남성이라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그런 몬스터를 엑스퍼트 중급의 실력자가 분노에 쌓여 내지른 발길질을 견딜 수는 없었을 것이다.

“멍청한 녀석이군!”

그때였다.

칼빈의 머리 위에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빈이 급히 검을 뽑아 뒤로 물러났다.

“당신은… 돌아간 것이 아니었습니까?”

“돌아가려다 경고를 하나 해주려고 돌아왔지. 하지만 이젠 필요 없겠군.”

보일이 안타까운 얼굴로 칼빈을 바라보다 죽어있는 고블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고블린은 본명 약하디약한 몬스터지만, 반드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녀석이 있다네.”

“무슨 말입니까?”

“저 녀석 말이야. 일반적인 고블린과는 좀 틀리지 않나?”

보일이 죽어있는 고블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일의 말에 칼빈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죽어있는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고블린과 큰 차이는 없지만, 자세히 보니 머리 위로 작은 뿔처럼 생긴 혹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도 가장 많이 알려진 고블린에 대한 습성을 모를 리가 없었다.

“홉… 고블린.”

“오! 잘 알고 있군.”

“하… 하지만 홉고블린은 이렇게 작지 않습니다. 녀석은….”

“당연히 다 자란 홉고블린은 이보다 크다네. 녀석은 아마 다음 대를 책임질 녀석일 거야.”

보일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래. 다 자라면, 아마도 저만하겠지.”

보일이 숲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대략 12~3세 아이 크기 정도 되어 보이는 커다란 홉고블린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죽어있는 어린 홉고블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홉고블린이 눈을 들어 칼빈을 노려보았다.

“키에에엑!!”

홉고블린이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는 순간, 칼빈의 종아리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작은 침이 날아와 박혔다.

“이런, 조심해야지. 저 녀석들의 마취 침은 제법 세다네.”

보일의 말에 칼빈이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당신이지!”

칼빈이 사납게 보일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 상황이 그냥 벌어진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아! 화내지 말라고. 난 분명 약속을 지켰어! 자네의 신체에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네. 홉고블린의 새끼가 자네에게 위해가 된 것도 아니지 않나? 그리고 고블린을 죽인 것도 자네지 내가 아니야.”

보일은 마치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일단 홉고블린은 성체든 새끼든 죽인 자를 끝까지 추격해 보복하는 녀석들이니 조심하게. 아! 그래도 숲을 빠져나가면 살 수 있지만… 이곳엔 녀석들이 좀 많다네. 부디 살아남기를 바라지”

“이… 이! 죽여버리겠다!”

칼빈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쉭.

하지만 칼빈이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도 작은 대롱을 손에 든 고블린들이 주변으로 몰려들며 작은 독침들을 무수히 날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보일의 모습은 나무에 가려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젠… 장!”

당황한 칼빈이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독침을 쳐내는 순간, 바로 앞까지 달려온 고블린들이 떼를 지어 칼빈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칼빈이 뛰어드는 고블린을 검으로 쳐내며 달렸지만, 처음 종아리에 맞은 독침에서부터 독이 서서히 퍼져나가며 왼쪽 다리가 점차 마비되기 시작했다.

-쉭.

둔해진 움직임에 따라 더 많은 독침이 날아들어 몸 여기저기에 박혀 들었다. 중급 엑스퍼트인 칼빈이라면 아무리 많은 고블린이 달려든다고 해도 물리칠 수 있는 실력과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오크를 상대로 밤새 전투를 벌이느라 상당히 지쳤고 큰 부상까지 입은 상태라 최하급 몬스터인 고블린마저도 상대하기 벅찬 존재였다.

더군다나 이미 독침까지 맞아 한쪽 다리가 굳어 움직임조차 힘들었다.

“으악!”

칼빈이 비명을 질렀다. 팔에 매달린 고블린 한 마리가 기어코 날카로운 이빨로 팔을 물어뜯은 것이다.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며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

칼빈이 주먹을 들어 팔에 매달린 고블린의 머리를 박살 내자 고블린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죽어 나간 고블린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또다시 십여 마리의 고블린이 칼빈의 몸에 달려들었다.

“크윽, 이… 이놈들이!”

이번엔 오른쪽 허벅지를 물어뜯은 고블린의 목을 향해 주먹으로 내려치려 했지만, 언제 달려들었는지 고블린 한 마리가 팔에 매달려 팔뚝을 물어뜯고 있었다.

“죽어! 제발 좀 죽어라!”

칼빈은 검을 휘두를 여유도 없이 몸에 달라붙은 고블린을 떼어 내려 했지만 달라붙은 고블린은 잔인하게 칼빈의 살점을 조금씩 조금씩 뜯어냈다.

칼빈은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며 고블린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고블린들이 칼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결국 칼빈의 몸은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무방비상태가 되어버린 칼빈의 몸 위로 또다시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달려들며 무차별적으로 살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칼빈은 두 눈을 부릅뜬 체 무방비상태로 자신의 몸이 고블린에게 뜯겨나가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박힌 고블린의 독침이 서서히 효력을 발생하며 이젠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고블린에 의해 뜯겨나가는 살점의 느낌만이 생생할 뿐이었다.

“크르르륵.”

커다란 지팡이를 손에든 홉고블린이 천천히 다가와 붉게 충혈된 살기 어린 눈으로 칼빈을 내려다보며 지팡이를 두 손으로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힘차게 내려쳤다.

-퍽!

거친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칼빈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퍽!!

내려친 지팡이의 충격으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아련하게 칼빈의 귓가로 들려왔다.

-퍽!!!

또다시 충격, 그리고 홉고블린이 칼빈의 몸에 손을 집어넣어 펄떡이는 심장을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입을 벌렸다.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로 붉은 심장을 뜯어냈다.

-어그적.

홉고블린이 잔인하게 심장을 씹어먹는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칼빈도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갔다. 그의 비참한 생도 끝이 난 것이다.

이미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홉고블린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자 주변에 몰려있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칼빈에게 달려들었다.

숲의 청소부 고블린의 이름에 걸맞게 고블린들이 모습을 감췄을 때는 그곳엔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칼빈이란 존재는 없었던 것처럼

* * *

깜깜하고 어두운 공간, 속 무릎을 감싸 안은 여인이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나 때문이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그녀는 퉁퉁 부어오른 눈을 들어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벌써 하루가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는 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나만 아니었으면….”

그녀의 얼굴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순간의 방심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몸을 날려 그녀를 구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는 그녀의 눈앞에서 쓰러져 꿈쩍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펄럭~

어둠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며 공간을 밝혔다.

“벌써 하루가 지났어요. 치료 받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 세인 경이 먼저 쓰러질 거예요.”

시인느가 어두운 구석에 무릎을 안고 있는 세인을 보며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면 카일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시안느가 부드럽게 달래듯 세인을 보며 말했다. 그제서야 세인이 고개를 들어 시안느를 바라보았다.

“멀린 마법사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상처를 입긴 했지만 위중할 만큼 큰 상처는 없어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벌써 하루가 지났어요. 큰 상처가 없다면 왜 깨어나지 않는 거죠?”

세인의 물음에 시안느는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는 없었다. 멀린 마법사가 겉으로 드러난 상처들을 마법으로 치료했지만, 정작 무슨 이유 때문인지 카일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일론 상단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야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혹 무리하게 움직였다가 카일에게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무엇보다 상단의 용병들이 대부분 목숨을 잃어, 상단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전원이 엑스퍼트로 구성된 카일 일행의 도움은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건 오러의 문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때 마차 안으로 멀린 마법사가 천천히 들어와 카일의 옆에 앉아 세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본 흑기사의 오러는 암흑 마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암흑 마기가 카일 님의 오러와 충돌하며 어떤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멀린이 담담하게 말을 하면서도 카일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단순히 상처 때문이 아니라 오러에 문제가 있단 말인가요?”

세인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시안느도 창백해진 얼굴로 멀린을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 그저 상처 때문에, 오러블레이드를 뿜어대는 소드마스터와의 대결로 인한 충격에 단순히 정신을 잃었다 생각했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곧 깨어날 거라 애써 위안하며 참고 있었던 시안느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오러는 검사에겐 생명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오러에 문제가 생겼다면 검사로서는 치명적일 뿐 아니라 자칫 몸을 망처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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