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27화 (127/404)

127.암흑마법사2

“이놈!”

파이어 애로우를 조정하던 검은 로브가 기겁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파이어 애로우가 지팡이의 궤적을 따라 회전하는 검에 작렬했다. 하지만 검은 파이어 애로우를 파괴하며 검은 로브를 스치고 지나가 바닥에 푹 박혔다.

“그냥 아티팩트가 아니구나!”

검은 로브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처음 파이어볼을 갈라냈을 때는 단순히 검을 회전시켜 핵을 가른 것이리라 생각했다.

파이어볼은 강력한 마법이긴 했지만, 구체의 특성상 마법의 핵이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마법사 멀린이 검의 회전력을 이용해 파괴했다고 여겨버린 것이다.

마나의 집약체인 마법을 마법으로 해소하려면, 비슷한 위력의 주문을 외워 파기하거나 방어마법으로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간단한 방법은 물리력으로 마법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용병이나 기사들이 마법 해지에 유리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마나를 구성하는 핵심을 파악한 뒤, 연결고리를 정확히 끊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마법사가 물리력을 사용할 일이 없었고, 용병이나 기사들은 마법의 핵심을 파악할 능력이 없으니,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멀린은 물리력으로 단숨에 파이어볼을 파괴했다. 즉 위력은 강력하지만 느린 파이어볼을 던져 봐야 멀린이 던진 검에 의해 번번이 부서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검은 로브는 검으로도 쉽게 맞출 수 없는 파이어 애로우를 이용해, 보다 효율적으로 멀린을 공격한 것이다. 더군다나 멀린은 술식이 아닌 아티팩트를 이용해 마법 화살을 피하느라 당장 마법을 시전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파이어 애로우를 검이 갈랐을 때, 검은 로브는 분명 보았다. 파이어 애로우가 검 쪽으로 빨려들어 소멸했다는 것을 말이다.

검은 로브가 처음 노린 대로 파이어 애로우가 회전하는 검의 중심을 정확히 가격했다면, 검은 분명 외곽으로 튕겨 나갔을 것이다.

“아하! 이거 말입니까?”

멀린이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냈다. 파이어 애로우를 피하느라 땅을 몇 번이고 굴러 꼴이 말이 아니었다. 대충 옷매무새를 정리한 멀린은, 남은 검 중 하나를 막대기 삼아 힘겹게 일어나며 말했다.

“일전에 제 주군께서 참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마법 그 자체가 아니라, 마법에서 발행하는 힘을 이용해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죠.”

“그래서 마법사가 검을 들었다는 말이냐?”

멀린의 손에 들린 검을 흘깃거린 검은 로브가 물었다.

“이 아티팩트엔 몇 가지 마법이 각인 되어있습니다. 정확히는 세 가지 마법이죠.”

히죽 웃은 멀린은 검은 로브를 경계하듯 슬금슬금 옆으로 피했다. 검은 로브의 주변으로 떠오른 새로운 파이어 애로우 두 개가 멀린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린이 검을 날릴 것을 대비하려는 모양이었다.

“하나는 스핀을 일으키는 각인입니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다른 하나는 바로 바람의 각인입니다. 회전을 하는 검 주변으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는 거죠.”

“바람을 이용해 흡입력을 만들어 냈다는 말이냐.”

“바로 그겁니다. 이해력이 빠르시군요.”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등 뒤에 남은 하나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음… 뭐랄까, 남은 두 마법과는 아주 별개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침묵하던 검은 로브는 굵은 침을 삼키고 질문했다. 불안했는지 지팡이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 엇이냐.”

“하하.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멀린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장 바닥에 검을 박아 넣었다.

“각인 마법 봉인진!”

바닥에 박힌 검에서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바닥에 박혀있던 십여 개의 다른 검에서도 환한 빛과 어두운 빛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와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을 구성했다.

“각인 마법진!”

현재 각인 마법은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을 뿐이지만, 고대에는 각인 마법을 활용해 강대한 마법진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종족전쟁으로 인해 많은 마법사들이 죽게 되어, 각인 마법을 이용한 마법진도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바로 그 소실 되었던 마법이 여기에 등장했다는 것도 황당한데, 지금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법은 어둠의 마나까지 혼합해 만들어진 특이한 마법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검은 로브 자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멀린이 검은 로브에게 던진 검들은, 마법진을 형성하기 위한 고도의 계산에 의해 이루어진 사전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 마법은 저도 처음 사용하는 거지만, 쉽게 빠져나오지는 못할 겁니다.”

멀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겁지겁 자리를 피하려는 검은 로브를 비웃기라도 하듯, 검에서 흘러나온 기운들이 하나로 뭉치며 회색빛의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곧이어 서서히 떠오른 마법진은 검은 로브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안돼에!”

검은 로브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울렸다. 허나 마법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로브를 공중으로 끌어 올렸다.

검은 로브는 필사적으로 마법을 펼쳐 반항하려 했지만, 마법진에서 발생한 흡입력이 모여드는 마나를 끌어들여 흡수했다. 마나를 빨아들인 마법진은 더욱 강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이 마법진은 외부에서 끌어들인 마나로 진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내부에 형성된 마나로 더 강해지니까요.”

“아니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단 말이야!”

겁에 질린 검은 로브에서 뜻밖에도 여인의 맑고 청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숲에서 검은 갑주로 무장한 기사가 뛰어올라, 검은 마나로 물든 거검을 들어 마법진을 향해 내려그었다.

쿠웅-

커다란 충격을 받은 지반이 붕괴하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마법진이 흔들렸다.

“세상에, 마법진을 힘으로….”

멀린이 기겁하며 뒤로 엉거주춤 물러났다. 다행히 마법진은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안돼. 멈춰! 멈추라고. 그만둬!”

발버둥 치던 검은 로브의 여인이 흑기사를 향해 간절히 말했다. 하지만 흑기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더욱 강한 힘으로 마법진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사내의 몸에서도 막대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검에 몰려들었다.

“그만해, 그만하라니까!”

검은 로브는 정체가 드러나는 것도 두렵지 않은지 몸부림치며 손을 마구 휘저었지만, 마법진 안에 갇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쩌적 쩌저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불길한 소리가 멀린의 귓가로 들려왔다.

“이… 건.”

멀린이 박혀있는 검을 향해 화급히 달려갔다. 마법진을 구성하고 있던 검에서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비단 눈앞에 있는 검만이 아니었다. 진을 구성하는 모든 검들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윽고 마법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법진 자체는 흠잡을 데 없는 최고의 봉인 마법진이지만, 마법진을 형성하는 핵심인 장검이 흑기사가 내리누르는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부스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멀린은 당장이라도 마법을 날려 흑기사를 막고 싶었지만, 마법진을 형성하기 위해 마력을 쏟아부었던 터라 당장 마법을 발현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검을 날리며 몸을 피한 것 역시 마력을 최대한 아껴 마법진을 형성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마법으로 붙는다면 이길 수 없다.’ 멀린 스스로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멀린은 흑기사와 처절하게 울부짖는 검은 로브를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쩡 쩌정 쩌엉-

바닥에 박혀있던 10개의 검들이 일제히 부서지며 마법진이 사라졌다.

흑기사는 곧장 검은 로브의 여인을 안고서 베링 산맥을 향해 도망쳤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멀린은 머리를 긁으며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 * *

“안돼, 안된다고. 이렇게… 이런 식으로…!”

여인은 흑기사의 품에서 처절히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어서 이것 놔! 안돼, 시간이 없어!”

여인은 헐떡이면서도 쉼 없이 절규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발버둥에 흑기사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땅에 나자빠지게 된 흑기사는 품 안에 안긴 여인이 다칠까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무너지게 된 탓에 거센 충격을 그대로 받게 되었으나 여인을 안은 손만은 절대 풀지 않았다.

“아악!”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여인은 콜록대며 흑기사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져 있는 흑기사를 보곤 허겁지겁 무릎을 꿇었다.

“안 돼… 안돼, 안돼! 여기서 죽어선 안 돼. 절대 죽게 둘 순 없어! 그건 내가 허락 못 해.”

여인이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꽂아 넣었다. 지팡이 위에 박혀있던 핏빛 보석이 음침한 붉은 기운을 뭉클뭉클 뱉어냈다.

그러자 바닥에서 육망성의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나, 텅 빈 하늘에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목에 걸려있는 황금빛 보석을 손에 쥐며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중얼 영창했다. 주문이 끝나자 허공이 길게 갈라지며 어두운 녹빛 보석을 토해냈다.

여인은 보석을 마법진 육망성 꼭짓점에 가져다 놓고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어 과감하게 팔을 주욱 그었다.

“마계의 왕 칸타나. 그대의 종 사하가 피로 재물을 바치니, 마계의 문을 열어주세요.”

여인의 말이 끝나자 팔에서 흘러나온 피가 공기 중에서 일렁이던 마법진으로 스며들었다. 마법진을 중심으로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공중에 거대한 원형의 블랙홀이 만들어지더니, 암흑 마기가 마법진 중심에 놓인 흑기사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크크크. 아직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블랙홀에서 핏빛으로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나타나, 사하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끈적한 눈길로 훑어보며 음침하게 말했다.

“그래… 기다리지.”

그의 눈빛을 정통으로 받은 사하의 팔 위로 소름이 돋았다. 살갗에 돋았던 닭살은 팔뚝에 남아있던 긴 상처와 함께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로 떠 올라있던 마법진이 강한 진동과 함께 허공에서 퍽 하고 터져나가듯 사라져 버렸다.

사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대로 주저앉아 양 무릎을 끌어당겨 얼굴을 파묻었다.

“저, 정말… 싫어… 왜… 내가….”

낮게 중얼거리는 사하의 뺨을 타고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언제 깨어났는지 모를 흑기사가 소리 없이 누워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 * *

“아름답군.”

투박한 레더 아머를 입은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지붕 위에 앉아있었다. 그는 호숫가 주변에 세워진 화려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주.”

평온하게 경치를 감상하는 사내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부복했다.

“쓸데없는 예는 집어치워. 여기까지 와서 예를 차릴 생각인가?”

경치를 감상하며 들떴던 기분이 상했는지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한번 대주는 영원합니다. 밖으로 나왔다고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쯧, 고지식하기는…. 부 대주가 이 모양이니,대원들도 변하지 않는 것 아니겠나.”

비아냥거리는 사내의 말에도 부복한 자는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 모습이 못마땅한지 사내가 가볍게 혀를 차며 물었다.

“소식은?”

“이미 쉐도우가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성격도 급하시군. 조금 시간을 두고 처리해도 될 일인데.”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낸 사내는 멀리 호수 위로 마법등을 단 채 떠다니는 쪽배를 응시했다.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사내가 차분히 질문을 던졌다.

“여우들은?”

“잠입해 있던 자들은 모두 몸을 감추었습니다. 이번 작전으로 일부 거점이 드러날 것 같아미리 철수시켰습니다. 곧 새로운 거점을 조직할 겁니다만, 아무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거미들은?”

“아직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동안 감시하고 있던 자가 움직였다는 정보가 있긴 했으나, 정확한 목적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추적 중 일부가 발각되어 희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희생? 분명 감시만 하는 것 아니었나?”

“충돌이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추적 중 발각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희생이 일어난 뒤, 대부분 철수하고 쉐도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전언만 받았습니다.”

습관적으로 목에 걸린 붉은 보석을 쓰다듬던 사내가 생각에 잠겼다.

“일단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그저 지켜만 보도록 전하게. 작전이 시작되고 상황이 복잡해 지면 결국 그자도 여왕거미에게 돌아가겠지.”

“네. 지시를 내려놓겠습니다.”

“좋아. 그럼 오늘 새벽 작전을 시작한다.”

“명!”

부복한 사내가 곧 모습을 감췄다. 사내의 시선은 다시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로 향했다. 날이 서서히 저물어 가자 호수 주변으로 하나둘씩 마법들이 켜졌다. 오색의 빛으로 물든 호수는 낮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야경을 앞으로는 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군.”

사내가 느긋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이 점차 붉은 기운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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