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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09화 (109/404)

109.세인2

“전 이곳 자경 대장의 아들 카일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수련을 몰래 훔쳐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제가 가끔 수련을 위해 찾는 곳이라, 손님이 계신지는 몰랐습니다.”

세인이 이채를 띈 얼굴로 세심하게 카일을 관찰했다. 바로 이 소년이 아버지인 켈토는 물론 영주까지 탐내고 있는 카일이란 말에, 세인으로서는 더욱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이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세인의 얼굴은 절로 침울해졌다.

“아…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수련을 훔쳐보려 했던 건 아닙니다.”

갑자기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짓는 세인의 모습에 당황한 카일이 허둥지둥 말했다.

그런 카일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세인은 저도 모르게 살며시 실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투를 정중하게 바꿔 대꾸했다.

“괜찮아요.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하급기사들이 익히는 검술이라, 카일 님이 보셔도 가문에서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거예요.”

명확히 하자면 하급 검술이 아니라 몰티엔 가문 검식의 일부였다. 가문의 것인 만큼 비밀스럽게 취급해야 할 검술이지만, 보일 자경 대장의 검술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기에 세인은 상관없다 한 것이다.

“그럴 리가요. 제가 식견이 부족해도, 방금 전 검술이 하급기사가 익히기에는 과한 감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요?”

“흠. 이럴 게 아니라 사과의 뜻으로 검 한 자루를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검은 아니지만, 수련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만… 아니….”

세인이 카일의 소맷자락을 붙들려 했지만, 카일은 세인의 말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달려가 버렸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카일의 손에는 폭이 좁고 긴 검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과거 카일이 대장장이 수련 중 시험 삼아 만든 검이었다.

너무 가벼운 탓에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었는데, 세인의 검술 수련장면을 보고 갑자기 생각나 가져온 것이다.

“예전에 만들었던 겁니다만,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으니 찌르기 위주의 검술 수련에 제법 도움이 될 겁니다.”

“검을 직접 만들었단 말인가요?”

“이 경험 덕분에 어떤 사람이, 어떤 검을 쓰면 좋을지 생각해 보게 된 겁니다. 자, 한번 들어보세요.”

카일이 붉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을 내밀었다.

“다른 걸 섞지 않고 질이 좋은 철 하나로 만든 거라, 강한 충격을 받으면 부러질 수 있습니다. 나중에 좋은 합금으로 가벼운 진검을 만들면 될 겁니다. 하지만 수련용으로는 이 정도 무게가 적당할 겁니다.”

카일의 말에 흥미를 느낀 세인이 홀린 듯이 검을 뽑아 보았다. 날을 세우지 않았음에도 검은 달빛을 은은하게 반사했다. 한눈에 봐도 제법 큰 정성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좀 지나치게 가벼운데요?”

“검신의 폭을 줄여서 그렇습니다. 기존 검보다 대략 4분의 3 정도 될 겁니다. 하지만 길이는 일반적인 롱 소드 보다 약간 길게 만들었습니다.”

세인은 카일의 말에 검을 휘둘러보았다. 확실히 검속이 빨라지고 둔탁했던 손목의 움직임도 자연스러워졌다.

“정말 검 하나만 바뀌었는데도 움직임이 훨씬 낫네요.”

“그럴 겁니다. 아가씨께서 사용하시는 검술은 체중을 실어 공격을 하는 검술이라, 투박한 움직임이 많습니다. 솔직히 아가씨에게는 맞지 않지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검술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어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세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 한 번 검술을 보고 문제점을 파악한 것도 놀랍지만, 검을 바꾸는 것 말고도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니 호기심이 일수 밖에 없었다.

“간단합니다. 힘을 버리고 정교함을 더하면 됩니다.”

“그럼 검술의 특성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나요?”

“바로 그겁니다. 검술의 특성을 변화를 통해 자신에게 맞게 검술을 변형시키는 거죠. 힘의 검술은 섬세함이 떨어지죠. 그러니 힘을 빼고 정교함을 더해 내가 원하는 곳,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검을 찌를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세인은 시선을 내리깐 채 신발 끝으로 땅을 툭툭 두드렸다. 고민에 빠진 듯, 그녀의 이마엔 작은 주름이 생겼다.

‘조금 더 도움을 줘 볼까?’

카일이 상냥한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제가 직접 보여 드려도 될까요?”

세인은 그때서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껏 이렇게 자세하고 부드럽게 검술을 가르쳐 준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부탁드릴게요.”

세인이 고개를 숙이며 간청했다.

카일은 가타부타 대꾸하는 대신 나무 앞에 섰다.

“제가 익힌 검술 역시 아가씨의 것과 유사합니다. 가문 대대로 용병으로 떠돌며 검식을 추가하다 보니, 검술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버렸지요. 때문에 전 검술에 정교함과 속도를 가미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카일의 허리에서 뽑혀 나온 환도가 빠르게 나무를 스치고 다시 검집으로 사라졌다. 나무 위로 새겨진 작은 흔적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검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술을 수련하다 보니 스피드가 곧 힘이라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쉬익-

또다시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에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렸다. 나무에는 여전히 작은 흔적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세인은 조금 전 바람을 가르며 지나간 검이, 똑같은 곳에 흔적을 남겼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놀랍도록 빠르고 정확하며 치밀한 검술이었다.

쉬쉭

“정교함에는 검술의 정교함도 있지만 검을 쓰는 사람의 정교함도 있습니다.”

“힘을 중시하고 단순한 검식이라도 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정밀하게 검식을 펼치느냐에 따라, 검술에 담아낼 수 있는 의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카일이 납검을 하고 돌아섰을 때, 세인은 나무에 새겨진 단 하나의 조그만 흠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원하는 곳에 얼마나 정확하게 원하는 힘으로 찌르는 가도 중요하지만, 내가 검을 뻗었을 때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신속히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넋을 빼고 있던 세인이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는 건 처음 검을 잡을 때부터 배워 왔어요.”

세인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나 배시시 웃었다. 그들 사이로 벌려진 거리는 카일이 검을 뻗었을 때 닿을 정도의 간격이었다.

“검술교관님께서 항상 강조하셨거든요. 저도 대련 때마다 가장 먼저 파악하는 게 상대의 팔 길이예요. 그래야지 공격 범위를 미리 예상할 수 있으니까요.”

세인의 대답은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정석적인 대답이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런 건 가장 기본적이면서 본능적으로 파악해야 할 내용입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그런 게 아닙니다.”

카일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상대의 공격 범위만 염두에 두나요? 자신의 공격 거리는 어째서 생각지 않는 거냔 말입니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휴우,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보여드리죠. 하지만 이게 마지막입니다. 이러다간 제가 가진 밑천을 모두 공개하고 말 거예요.”

카일이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위압적인 덩치와 소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놀라운 검술 식견에, 세인은 지금껏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15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세인은 조금 전 툴툴거림에서 소년의 앳된 면모를 엿본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흔들린 세인은 저도 모르게 볼을 붉게 물들였다. 다행히 어둠이 내려앉아 붉어진 얼굴을 감출 수 있어 세인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제 앞에 서 보세요.”

“제가 말인가요.”

“네. 좀 위험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경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세인은 순순히 카일의 앞에 섰다.

“놀라지 마세요. 진검이지만 절대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까요. 검집으로 할 수도 있지만 빠르게 익히려면, 몸과 머리가 동시에 체감해야 하거든요.”

카일이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주의를 주었다.

“걱정 마세요. 카일 님이 절 다치게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세인은 굳건한 신뢰가 담긴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았다. 비록 오늘 하루, 아니 고작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그녀는 카일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좋아요. 그럼 갑니다.”

카일의 말에 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쉬익-

그 순간 섬뜩한 바람 소리가 좌측 귓가를 울렸다.

카일의 검신이 세인의 귓불에 닿아 있었다.

“팔을 온전히 뻗었을 때, 상대의 검이 내 몸에 치명상을 입히게 되는 거리입니다. 상대 역시 이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과 방어를 하게 될 겁니다.”

“더 가까우면 검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고, 더 멀리 떨어지면 상대에게 검이 닿지 않으니까요.”

잘 벼려진 칼이 귓가에 붙어 있지만 세인의 안색은 평온하기만 했다. 진심으로 카일을 온전히 믿고 있는 것이다.

세인의 담대한 모습에 카일이 속으로 감탄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이 거리, 정확합니까?”

유심히 카일의 팔과 어깨를 뜯어보던 세인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요.”

“좋습니다. 자, 그럼 응용편입니다.”

카일의 검이 검집으로 돌아갔다.

아까 느꼈던 짜릿한 한기가 또다시 세인의 귓불을 자극했다.

“어떻습니까? 귓불에 닿을 것 같았던 검 끝이 귓가를 한 뼘 이상 지나갔습니다. 다시 묻지요. 조금 전 확인한 거리감이 정확합니까?”

“이건…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 검신과 팔의 길이를 감안하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 불가능해요.”

당황했는지 세인은 횡설수설거렸다.

“다시 보십시오.”

카일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쉬이익

“이번엔 어떻습니까?”

카일의 검이 세인의 얼굴로 향했다. 하지만 검신은 정확히 세인의 얼굴 한 뼘 정도 앞에 멈춰 있었다.

“조금 전보다 검의 위력이 떨어졌을까요?”

카일의 물음에 세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분명 카일의 팔과 어깨는 처음 검을 뻗었던 자세와 같았다. 그런데 오직 검의 길이만이 변화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으로 여겼던 상대와의 거리감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래서는 상대편을 제대로 공격할 수 없었다. 상대방은 자신의 거리를 온전히 알고 방어를 할 수 있지만, 자신은 그것조차 모른 체 공격을 받아야 했다.

상대가 같은 검식으로 공격을 하면, 당연히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는 거리 감각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갑자기 더 짧은 곳, 아니 더 먼 곳에서 같은 검식으로 공격을 받는다면, 순간 당황하게 되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미칠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이유가 눈앞에 싸늘한 한기를 흘리고 있는 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켈토와 다핸 남작이 왜 그렇게 이 소년을 얻으려고 했는지. 세인은 그 까닭을 절감했다.

“어떻게 한 거죠.”

세인이 잠시 쿵쿵 뛰는 심장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살짝 기교를 섞은 겁니다. 검 손잡이를 조금 길게 만들어, 검을 잡는 위치에 따라 변화를 주는 겁니다. 그럼 상대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죠.”

카일이 검을 검집째 뽑아 세인이 자세히 볼 수 있게 내밀었다.

“제가 보기에 아가씨께서 재능은 훌륭하시지만, 검술 자체의 변칙적인 기교가 떨어지는 것 같아 말씀을 드린 겁니다. 검식의 변화가 적다면 저처럼 검을 잡는 위치만 빠르게 변화시켜도 상대에게 혼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다정한 카일의 음성에 세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여태껏 누구도 그녀가 검술에 재능이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카일의 한마디는 그녀에게 작은 희망을 보여주었다.

“제게 재능이 있나요. 정말 검술에 소질이 있단 말인가요?”

“설마 모르셨습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격렬한 그녀의 반응에 카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수련 모습을 보던 카일은 그녀가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다만 검술이 그녀와 맞지 않아 도움을 주려 한 것뿐이었다.

“아가씨께서는 큰 재주를 가지셨습니다. 익히신 검술 자체가 강인한 육체를 가진 기사들이 익히는 검입니다. 그런 검술만으로 소드 유저 끝자락에 올랐다면, 여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상당한 소질이 있으신 겁니다. 검술을 가르치신 교관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요?”

“사실 전 어렸을 때 가문의 검술교관에게 기초를 배운 이후, 아버지께 가문의 검술을 잠시 전수하였을 뿐이에요. 그러다 아버지께서 바쁘셔서 10살 이후로는 줄곧 홀로 검술을 익혔어요.”

세인이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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