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04화 (104/404)

104. 혼원장

카일은 가져온 나뭇가지 끝을 밧줄로 단단히 엮은 뒤, 사이를 벌려 원뿔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폭이 1m 정도 돼 보이는 가죽 천을 가져와 나뭇가지 위에 덮었다. 순식간에 작은 천막이 탄생했다. 크기는 협소했으나 차가운 산바람을 막아주고, 내부의 열기를 잡아주기에는 충분했다.

“허어어.”

용병들은 순식간에 만들어진 천막 안으로 사라진 카일 일행을 보곤 입을 쩍 벌렸다.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던 용병들 중 한 명이 부럽다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확실히 밖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저 정도면 차가운 밤바람도 막아주고, 내부에 불을 피우면 엄청 따듯하게 밤을 보낼 수 있을 걸.”

점점 떨어지는 기온에 중년 용병이 피풍의를 바투 여미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막 위로 흰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사실 카일이 만든 천막은 전생에서 본 영상에 등장했던 툰드라 네네츠 족의 이동식 가옥 춤(Chum)을 응용해 만든 것이었다. 구조가 단순해 나뭇가지와 가죽 천만 있다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천막이었다.

“하, 왜 우린 지금껏 저런 생각을 못 했지?”

오들오들 떨던 용병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운이 좋은 몇몇 용병은 수레 밑에 자리를 잡아 밤을 아늑하게 보내기도 했으나, 대부분 좋은 자리는 상단의 물품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일꾼들이 차지했다.

때문에 노상에서 피풍의 하나만 걸치고 버텨야 하는 용병들로서는, 그럴듯한 장소에서 잠을 청하는 카일 일행이 더더욱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천막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용병은, 훅 밀려드는 싸늘한 바람에 툴툴거리며 피풍의로 몸을 좀 더 감싸 안았다.

* * *

새벽녘.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 카일은 천막 밖으로 나와 길게 하품했다. 모닥불은 꺼져버렸고, 불침번을 서고 있던 용병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이들 중 누구도 카일에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카일은 가볍게 기지개를 켠 뒤 숲 가장자리로 향했다.

“으… 차갑다.”

숲속에서부터 흘러나온 얼음장 같은 시냇물이 그나마 남아 있던 잠기운을 모두 날려주었다.

이곳에 쉼터가 생긴 건 바로 이 차가운 시냇물 덕분이었다. 비록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깨끗하고 맑은 물이 꾸준히 흘러내리고 있어 마실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카일은 느긋하게 몸을 풀었다.

비록 마을을 떠나왔지만, 아침 수련을 빼먹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용병들이 보는 앞에서 제대로 된 수련을 하기는 힘들어, 태극권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혼원장을 수련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말로 참장공이라 불리기도 하는 혼원장은 각 무술마다 불리는 명칭만 다를 뿐, 단련 방식은 비슷했다.

말을 타듯 무릎을 굽혀 큰 항아리나 나무를 끌어안은 자세를 취한 뒤 버티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동작이었다.

혼원장은 비록 마나를 몸 안에 축적할 순 없지만, 신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하체를 단련해줄 뿐 아니라, 몸 안에 쌓여 있는 탁기를 배출해 줘 오러 연공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부수적인 장점일 뿐이었다. 카일이 혼원장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는 최근 혼원장의 새로운 장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혼원장 자세를 취하면 내부를 울리는 작은 진동이 일어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이러한 떨림이 내부의 근육이나 장기를 풀어준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오러가 축적된 몸에 이와 같은 진동은 조금 다르게 적용됐다. 신체 내부를 흔드는 떨림은 각 혈마다 잠들어 있는 오러를 깨워 체내 깊숙한 곳까지 오러를 스며들게 해, 근육과 장기를 강화시키고 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저 녀석 이른 새벽부터 뭘 하는 거지? 벌써 한 시간 째 꼼짝도 하지 않고 저러고 있는데.”

“확실히 수련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수련일까?”

꾸벅꾸벅 졸고 있던 용병들이 하나둘 일어나 카일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이곳에 있는 용병들은 카일의 부친인 보일이 꽤나 대단한 용병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려 엑스퍼트 중급에(실제로는 상급이지만) 달하는 실력자!

샤론 마을에 정착하지 않고 승급심사를 받았다면 A급 용병패는 무난히 받았을 것이다.

그런 보일의 아들의 수련이라면 뭔가 특별하고 대단하지 않을까?

용병들은 눈을 빛내며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숨을 죽인 채 카일을 흘끔거렸다.

“휴~.”

탁한 숨을 토해낸 카일은 몸을 이완시키듯 깊게 호흡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마을을 떠나서도 열심히 내요.”

언제 왔는지 카일의 옆으로 다가온 시안느가 마른 천을 건넸다.

“하하. 습관입니다.”

카일이 천으로 진득하게 배어나 온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상쾌하게 웃는 카일을 보던 시안느가 우물쭈물 물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괜찮으니, 물어보십시오.”

“방금 수련한 동작에 관해 물어도 되나요…?”

시안느가 조심스럽게 카일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시안느의 행동은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수련의 내용과 방식은 그 가문의 비전으로 외부에 섣불리 알려 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카일의 부친인 보일은 무려 상급 엑스퍼트로, 지금 카일이 수련하는 모든 것은 사실상 상급 엑스퍼트로 진입할 수 있는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전 중의 비전이란 말이었다.

“아! 혼원장 말입니까?”

“혼… 원장?”

시안느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비록 발음이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예. 이건 음… 일종의 마나 아니, 오러 수련법이라 할 수 있겠군요.”

카일은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지만 듣고 있는 사람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헙.”

둘의 대화를 귀를 세우고 듣고 있던 하급용병 하나가, 너무 놀라 터져 나오려는 비명에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행여 대화가 중단될까, 소리를 낸 용병을 향해 사방에서 살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마나… 연공법!”

너무 놀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시안느는 더듬더듬 말했다.

마나 수련법은 고위 귀족 가문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가지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에 해당하는 수련법이었다. 대다수의 기사 가문이나 귀족 가문도 검술과 마나 연공법을 따로 익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 카일이 그런 마나 연공법을 익히고 있다 했으니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아닙니다. 마나 수련법이 아니라 오러 수련법입니다.”

카일은 시안느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제가 한 수련은 오러 수련법이지, 마나 수련법이 아닙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수련법입니다.”

“기본적으로 마나와 오러는 다르지 않아요. 그러니 결국 둘 모두 같은 수련법 아닌가요?”

시안느의 물음에 카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전혀 다릅니다. 마나가 대기 중에 흩어져 있는 기운이라면, 오러는 마나를 몸으로 받아들여 정제한 기운이라 할 수 있지요. 흩어지려는 성질이 강한 마나와 달리, 오러는 응집력이 강합니다. 하여 이 두 가지 기운엔 명백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마나 연공법이 외부에 산재한 마나를 몸 안으로 끌어들여 오러로 변환시키는 수련법이라면, 혼원… 장은 이미 쌓여 있는 오러를 단련하는 방법이군요.”

“정확합니다.”

카일이 뿌듯한 미소를 띄웠다. 이해력이 빠른 학생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사실을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말해도 되는 건가요? 제가 먼저 물어보긴 했지만….”

시안느가 불안한 것처럼 사방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용병들이 움찔 떨며 딴청을 피웠다. 허나 그렇다고 자리를 피하는 이는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이 수련법에는 엄청난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력을 해도 그저 그런 하체 단련술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네? 단점이라니요?”

불안함이 서려 있던 시안느의 낯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이 수련법은 제가 십 년 동안 수련하며 깨달은 방법입니다. 즉 십 년 이상 꾸준히 연공을 해야 성취를 볼 수 있다는 말이지요.”

웃음을 참느라 떨리는 카일의 음성에 기웃거리던 용병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용병들은 모두 카일의 수련법이 보일에게서 비롯되었다 생각해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수련법이 카일이 직접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자, 실망을 넘은 분노를 느낀 것이다. 또한 10년 동안 수련을 했다는 건 적어도 7~8살에 이 수련법을 만들어 냈다는 소리였으니, 이들이 카일의 말을 신용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카일을 향해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용병들 모두 카일과 시안느의 대화를 훔쳐 듣고 있었고, 성질을 낸다는 자체가 남의 연공법을 훔치려 했다고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어떻습니까? 배우고 싶다면 가르쳐 드리지요.”

실망한 용병들이 화가 난 얼굴로 하나둘 발을 구르며 자리를 떠났지만, 시안느는 여전히 카일의 곁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용병들이야 카일의 말을 믿을 수 없을지 몰라도 시안느는 달랐다.

카일은 17살의 나이에 중급 엑스퍼트가 되었을뿐더러, 비록 편법이긴 하지만 최상급을 바라보는 힐튼 남작을 꺾은 천재였다. 지금까지 시안느는 그보다 뛰어난 검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카일이 10년 전에 만들어 낸 오러 수련법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돋는 당연한 일일 터였다.

“좋아요. 배우겠어요. 아니, 꼭 가르쳐주세요. 부탁할게요.”

시안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하하, 좋습니다. 그럼 바로 가르쳐 드리지요.”

시안느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것처럼 손짓한 카일은 작게 속삭였다.

“비밀 하나 가르쳐 드리자면, 몸 안에 오러가 없을 시 십 년 동안 수련을 해야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겁니다. 시안느 경은 이미 엑스퍼트이니, 몇 달만 해도 성취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일부로 0년이라고 말한 건가요. 용병들을 속이기 위해?”

시안느의 물음에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10년을 수련해야 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다만 저들 중, 제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시험해본 것뿐이지요.”

“그럼 만약 용병 중 누군가 수련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면 알려줬을 건가요?”

“흠…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카일은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시안느는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카일이 기쁜 마음으로 오러 연공법을 알려 주었으리란 걸.

어깨를 으쓱인 카일은 시안느에게 본격적인 가르침을 시작했다.

“수련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히세요.”

“이렇게요?”

“아뇨. 조금 더 굽혀야 합니다.”

카일은 작은 나뭇가지를 들고 시안느의 동작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주었다.

“이제 두 손을 뻗어 커다란 통나무를 가볍게 안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허리를 너무 세웠습니다. 앞으로 살짝 숙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훌륭합니다. 이제 눈을 감고 숨을 편안하게 내쉬며, 몸 안의 떨림을 느껴 보세요.”

카일은 시안느의 자세를 계속 잡아주며 천천히 기다렸다.

시안느는 20여 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첫 수련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카일이 실망한 듯 머리를 떨구고 있는 시안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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